'1장''''''미풍이 불자 길가의 코스모스가 바람을 따라 움직였다. 병원 담을 따라 핀 코스모스를 구경하던 미아는 지나가는 자동차 경적 소리에 놀라 자신이 있는 곳이 그제야 생각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병원에 들어서자 약품 냄새가 코를 덮쳤다. 그녀는 양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병원 냄새를 맡으면 더 아픈 것처럼 느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에 그녀는 짧은 한 숨을 내 쉬었다.''‘고집통 늙은이.’''그녀는 거울을 보면서 볼을 풍선처럼 부풀려 터트리기를 반복했다. 그게 신기해서인지 아님 다른 이유에서인지 엄마 손을 잡고 있던 꼬마가 그녀를 멀뚱하니 쳐다보는 게 거울에 비치자 그녀는 엄마의 시선을 피해 아이를 향해 혀를 쏙 내밀었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기분이 가라앉아 있을 때는 신경이 쓰였다. 공연한 잡생각이다 싶었다. 입원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할아버지는 퇴원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도 할아버지와의 신경전을 생각하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노크를 하고 병실에 들어서자 그녀의 할아버지는 침대에 앉아 창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예전엔 무척이나 커 보이던 할아버지의 어깨가 갑자기 나이가 드신 것처럼 작아 보였다. 푸른색의 병원 복에 감싸인 할아버지에게선 입원하기 전의 모습이 차츰 사라지는 것 같았다. 왠지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세상의 누구보다 강한 분이셨다. 미혼모의 자식인 자신을 혼자서 지금까지 키워주신 분이셨다.''“할아버지.” ''그녀는 최대한 밝게 웃었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창가에서 시선을 거둬 그녀를 봤다. ''“오늘은 좀 늦었구나?” ''“미안, 오는 길에 잠깐 딴 생각을 하다가 버스를 놓쳐서.” ''할아버지는 짐작한 듯 웃고는 그녀가 깎은 과일을 집어 들었다. ''“뉴욕에 가거라.”''차분한 목소리에는 아무런 톤도 느껴지지 않았다. ''“갑자기 웬 뉴욕? 무슨 동네 슈퍼도 아니고.” ''그녀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보았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고집스러운 주름이 얼굴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거기에 네 아버지가 있을 거다.” ''사과를 깎던 그녀의 손이 일순 멈추었다. 그녀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할아버지를 보았다. 지금껏 한 번도 자신의 아버지 얘기를 한 적은 없었다. 그녀 역시 불문율인 것처럼 물어보지 않았다. 아버지라는 단어는 아무도 건드리거나 해체하지 못하는 지뢰와 같았다. 할아버지의 입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아버지 얘기가 나오자 심장이 심하게 뛰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밖으로 심당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최대한 숨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흥분으로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지금. 내가 들은 단어가 아, 아, 아버지라는 단어가 맞아요?” ''“그래.” ''할아버지 대답은 짧았다. 더 이상의 설명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지 할아버지는 어느새 도로 자리에 등을 돌리고 누워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