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메모리즈

“이년아! 그만자고 일어나! 해가 중천에 뜬지가 언젠데!”'“아웅, 어제 새벽 4시까지 그림 그렸단 말이야!”'“지금 낮 2시다! 10시간 잤으면 충분한 거 아니야?”'“미인은 잠꾸러기야.”'“꼴값하네. 자는 걸로 미인 되면 넌 미스코리아 진! 아니 세계대회 진이었게?”'“고마워, 음냐, 음냐.”'분에 못이긴 엄마가 재영을 발로 내리찍고 나서야 그녀는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정사정도 없는 엄마 같으니라고. 아마 난 주워온 자식일거야. 그런 생각을 하는 재영은 갑자기 자신이 불쌍해졌다. 27살……. 이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자신밖에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백수생활 6년째, 그녀에게 늘은 것은 많았다. 첫째 이 자도 자도 끝이 없는 잠과 엄마의 잔소리, 저게 사람 구실은 하려나 하는 가족들의 걱정, 시간이 남아돌아 생기게 된 게으름, 엄마가 밥값이라도 하라고 시켜서 자연스레 늘게 된 빨래솜씨, 다른 식구들이 없을 때는 밥도 안 차려주는 바람에 어쩔 수없이 생긴 음식솜씨……. 반면, 잃은 것도 많았다. 자신감, 돈 그리고 청춘, 그림 그린답시고 이렇게 집안에만 쳐 박혀 지내면서 그 흔한, 남들은 그 세월이면 12번도 더 깨졌다 붙었다 했을 법한 연애도 한 번 못해봤다. 물론 친구들이 주선하겠다는 의뢰가 몇 번 있었으나 어릴 때는 빨리 그림 그려서 데뷔해야한다는 마음에 모두 거절하고 지금은 그 주선마저도 들어오지 않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가 뭐 너무나 남자가 궁하다거나 연애를 못해봐서 슬프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렇다는 상황설명일 뿐이다.'엄마의 발길질에 일어나긴 했지만 그녀는 뭘 해야 할지 멍한 기분이 들었다. 침대에 앉아 머리를 긁적이며 하품을 해댔다. 밥을 먹을까? 세수를 할까? 아님 다시 잘까? 널널한 백수의 행복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다시 잤다간 발길질로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일단 밖에 나가서 나 일어났어요, 하는 척이라도 해주어야겠기에 그녀는 방을 나와 부엌으로 가 물을 마셨다. 물을 마시며 슬쩍 보니 엄마가 세탁기를 돌리려 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다음 일이 정해졌다. 밥을 먹고 나면 다 돌아갔을 세탁기에서 빨랫감을 꺼내고 그녀가 일일이 헹구어 일일이 널어줘야 하는 것이다. 깔끔한 성격의 엄마는 세탁기가 혼자 하는 빨래를 별로 미더워하지 않았고 세탁만도 3회, 그 후 빨래를 꺼내 일일이 살펴보면서 아직 더러운 곳은 비누를 묻혀 깨끗이 빨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세탁기로 헹구면 보풀과 먼지가 잘 묻어나기 때문에 사람 손으로 비눗기가 안 나올 때까지 헹궈줘야만 했다. 그런 엄마의 성격에 괜히 죽어나는 건 밥 값해야 하는 재영이긴 하지만 재영은 빨래하는 것을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더러운 것을 자기 손으로 깨끗이 하고 나면 왠지 기분도 깨끗해지고 상쾌했다. 또 이렇게 찌는 듯한 더운 여름날은 빨래라는 명목 하에 차가운 물을 맘껏 틀어놓고 첨벙거릴 수 있어서 좋았다. 오늘은 유별나게 덥다고 생각하며 재영은 물을 한잔 더 따라 마셨다. 그런데 갑자기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 소리와 엄마가 빨리 전화 받으라고 소리 지르는 통에 마시던 물을 다 뱉어낼 뻔했다. 재영은 기도에 잘못 넘어간 물을 재채기로 빼내며 전화를 받았다.''“켁켁, 여,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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