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여보세요.” '이불 아래로 뻗은 가늘고 섬세해 보이는 손이 침대 옆에 놓인 이탈리아풍 짙은 갈색의 고급원목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전화 주변을 한참이나 더듬거리더니 간신히 수화기를 집어들었다.'“강세영 씨! 모닝콜입니다.”'수화기에서 아침을 알리는 여자의 예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잠꾸러기 손님도 높고 청량한 소프라노 톤의 목소리에 잠이 깨지 않고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네, 고마워요.” '세영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른한 몸을 꽈배기처럼 이리저리 비틀었다. 아직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세영아, 그만 일어나라. 내가 언제까지 아빠랑 너 땜에 실랑이 해야겠니?’ '‘알았어, 알았다고요.’ '‘세영아, 아직 안 일어나고 뭐하니?’ '‘미안해요. 아빠, 일어날게.’'“일어난다니까요, 일어날게.” '세영은 아버지의 무서운 얼굴에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가늘게 실눈을 뜬 그녀는 아침마다 좀 더 자기 위해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던 시끄러운 자기 방이 아니라 이탈리아 조용한 어느 호텔의 침대라는 걸 깨달았다. 세영은 어제 폼페이에서 새로 발견되었다는 화석을 취재한다는 핑계로 로마로 왔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취재를 마치고, 기사를 본사로 보낸 후 호텔로 돌아와 그대로 잠들었다. 침대 위에는 세영이 아무렇게나 벗어둔 옷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고, 옆에는 전화와 물이 든 컵이 놓여있었다. 그녀는 습관대로 반쯤 일어나 물 컵을 힘들게 집어 숨도 쉬지 않고 쭉 들이켰다. 물 한 컵이 식도를 타고 위를 지나 장 속으로 시원하게 흡수되는 걸 느끼면서 그제야 생기가 도는 사람처럼 눈을 떴다. 세영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드디어 아버지와 피스지가 없는 이탈리아 로마에 온 것이다. 오늘부터 일주일간 자유다! '‘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