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의 한가로운 점심시간, 사무실 내의 사람들은 저마다 포만감을 느끼며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엎드려 꿀맛 같은 수면을 취하는 이도 있었고 짬을 내어 책을 읽는 사람도 있었다. '대충 점심을 때우고 나른하게 자리에 앉아 있던 어라는 책상 위에 놓인 탁상용 달력을 집어들었다. 습관처럼 달력을 들춰보는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닌데, 이 달력을 눈에 담으면 청량음료라도 마신 듯 가슴속 깊숙이 짜릿해졌다.'지금 어라가 푹 빠져서 보고 있는 것은 세계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프린트되어 있는 달력으로, 각국의 특징들이 잘 담겨져 있었다. 멕시코의 칸쿤 해변, 페루의 우마요 호수, 스페인의 정열적인 투우사, 호주의 하버 브리지……. 꼭 그녀 자신이 달력의 그곳을 여행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벅차올랐다. '언젠간 한비야처럼 세계를 눈에 담고 싶은 욕망이 그녀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꿈이요, 희망이었다. 매일 쳇바퀴 돌듯 똑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월급쟁이 그녀에겐 그저 즐거운 상상일 뿐이었다. 잠시 일렁이는 눈으로 달력을 바라보던 어라는 이내 그것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나 커피 마실 건데, 커피 마실 사람?” '휴식을 취하던 몇몇 동기와 후배들이 슬쩍 손을 들며 커피가 필요하다는 의사를 밝혀 오자, 어라는 눈으로 숫자를 파악한 뒤 동전 지갑을 챙겨들었다. '하품을 하며 막 밖으로 나가던 어라는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자리를 비울 거라던 최 실장, 윤원이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미간을 찡그리며 사무실 내부로 고개를 돌렸다. '“최 실장 떴다.” '어라의 말에 모두들 인상을 쓰며 한숨 섞인 불만들을 가볍게 토해냈다. 특히 남자들은 노골적으로 ‘재수 없다.’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무실 내 직원들에게 자신이 공공의 적인 줄 모르는 윤원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성큼 그녀와의 거리를 좁혀왔다. '“피 대리, 어디 가?” '어라는 못 들은 척,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휴게실 근처의 커피 자판기로 향하려고 했지만, 그만 발걸음이 묶이고 말았다. 어느 틈에 바짝 코앞으로 다가온 최 실장이 슬금슬금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코앞에서 윤원의 얼굴을 마주하자 속이 욱 치받혀 올라왔다. 그녀는 어깨에 올려진 윤원의 기다란 손을 쓱 밀쳐내며 무심한 얼굴로 내뱉었다. '“커피 뽑으러 가요. 드실래요?” '“아냐, 커피는 됐고 말이지…….” '말끝을 흐리며 윤원이 이번엔 그녀의 등을 슬슬 손으로 훑어 댔다. 어라는 짜증스런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그의 손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잔뜩 아쉬운 얼굴로 손을 거둬들인 윤원이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피어라 씨, 언제 시간 좀 내 봐.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다들 한 번씩 저녁 같이 했는데, 피 대리만 번번이 내 제의 거절했잖아. 저녁만 한 번 같이 먹자는데 뭐가 그렇게 어려워?” '눈에 훤히 보이는 윤원의 꿍꿍이에 어라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저 지금 생리 중이라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