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lily'''prologue''1978년 초겨울.'“사람들 많이 모이는 자리니까 꼼짝하지 말고 내 옆에만 붙어 있어야 돼. 알았지, 서현진?”'오빠 현우는 여전히 7살 현진을 어린아이 취급을 하고 있었다.'“치잇, 자기는 만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나만 못하게 하고 있어!”'현진은 집에서부터 골이 나 있었다.'하고 싶은 것도 많고 호기심도 왕성한 현진은 늘 어리다고 보살피려고만 하는 현우가 항상 불만이었다.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하고 현우는 별반 어른들의 손길을 많이 필요로 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어디에 데려다 놓아도 있는 듯 없는 듯 흔적을 남기지 않는 조용한 아이였다. '그런 현우를 아버지 서병화 사장은 지방 출장길이나 지사 방문길에 자주 데리고 다니면서 현우 스스로 현재와 미래에 대한 비전을 깨달아 갈 수 있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업무상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어른들 틈에서 한 번도 지루하거나 재미없어하는 표정 없이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들을 모두 이해하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현우의 모습은 그런 의미에서 서 사장에게는 큰 자랑이고 자부심이었다.'그에 반해 세 살 터울의 일곱 살 현진은 매사 현우와 비교되는 말괄량이 사고뭉치 외동딸이었다. '어느 하나라도 눈에 넣어 아프지 않은 자식이 없지만 유독 현우가 어른스럽고 믿음직한 아들이라면 현진은 말 그대로 천방지축 철부지 어린 딸이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새로운 곳 또는 처음 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낼 때까지 그 샘솟는 호기심을 어쩌지 못하는 현진의 태도는 늘 그녀를 어리고 한시도 눈을 떼어서는 안 되는 ‘요주의’ 인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가족이 모두 참석한 ‘서린 물류’ 창립기념행사장에서 현진은 꼼짝없이 오빠 현우 곁에서만 있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다짐에 다짐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오빠, 나 케이크 먹고 싶어. 가지러 가자.”'어머니 한 여사가 고운 연분홍의 깨끼한복을 준비하며 같은 감으로 현진에게 앙증맞은 현대식 드레스를 맞춰 입혔다.'어깨너머 숱 많은 머리를 소담하게 양 갈래로 쫑쫑 땋아 내린 까만 머리가 실내 조명등 불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진한 분홍 리본으로 머리끝을 묶어내려 말끔하게 단장한 모양새가 한결 아이의 얼굴을 말갛고 앙증맞아 보이도록 했다.'현진은 한동안 실내 분위기를 살피느라 조용하게 앉아있었지만 어느새 그것도 싫증이 나서 오빠가 가져다주는 먹을거리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된 것이다.'“금세 떡 한 접시를 다 먹어 치우고는 무슨 케이크야, 케이크가?”'벌써 여러 번 현진의 몫으로 먹을 것을 가져다주기 위해 걸음을 했던 현우가 급기야 볼멘소리를 불퉁하게 내뱉었다.'“꼼짝하지 말고 있으라며? 나도 저기 상에 무엇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단 말이야. 만날 오빠만 구경하고 나는 꼼짝도 못하게 하면서 먹고 싶은 것도 가져다주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