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천사원]

앞머리는 반 이상이 벗겨져 반들반들하고 살집이 붙어 제법 둥근 배를 소유하고 있는 채석영은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천사원에서 연신 눈치를 보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는 가장 큰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는 거부 최노진 회장 앞에 마주 앉아 있었다.

“어떤가? 내가 말한 조건의 아이가 있기는 한가?”

“네. 하나 있기는 한데. 그것이 저어.”

“뭔가? 똑바로 말하게.”

알아들을 수도 없게 웅얼거리는 채석영으로 인한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며 날카롭게 일갈했다.

그 우렁찬 울림에 덩치가 한참 큰 채석영조차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등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서는 눈앞에 머리를 잔뜩 조아리고 앉은 자신을 깔아보듯 내려다보는 그 눈길에 석영은 초조한 눈초리로 두 손을 맞잡아 연신 비벼댔다.

그 모습은 마치 잘 보여야 하는데 큰 실수로도 한 양 보였다.

“나이가 열다섯이라.”

“흐음, 열다섯이면 좀 많은데.”

“그래도 상당히 똘똘합니다. 아마도 보시면 욕심이 나실 겁니다. 그건 제가 장담합니다.”

채석영은 노진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자 고개까지 끄덕이며 그 아이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 노력했다.

제 속의 욕심을 채우고자 최노진을 설득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노진이 원하는 조건에 꿰어 맞추느라 애는 먹었지만, 어떻게든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에 필사적이기도 했다.

능구렁이 같은 최노진 앞이라 그런지 맞잡은 손 안에는 땀이 흥건해졌다.

“흠. 그 아이 말고는 없는가?”

단칼에 채석영의 말을 자르고 자신의 할 말을 하고 마는 최노진이었다.

“네. 회장님이 말씀하신 조건에 해당하는 마땅한 아이는 그 아이밖에는 없습니다만.”

형제도 없어야 하고 더군다나 일가친척 하나 없는 열두 살의 남자아이를 무조건 찾아오라면 있냔 말이다.

그나마 최노진이 말하는 조건에 어느 정도 맞는 아이는 그 아이밖에는 없었다.

말끝마다 조아리느라 땅바닥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슬쩍 들어 올려 최노진의 눈치를 살피며 회의적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할 수 없지. 일단 그 아이를 데려오게나. 내 한번 봄세.”

“아유! 네. 네.”

그들의 짧은 대화가 끝나자마자 채석영은 육중한 몸을 재빨리 일으켜 문을 열고 뛰듯이 나갔다.

* * * * *

채석영은 눈을 잔뜩 부라리고는 진하를 찾아 나섰다.

벌써 천사원을 몇 번 돌았는데도 진하는 눈에 띄지 않았다.

크지도 않은 천사원 안에서 도대체 어디로 숨어 버린 것인지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박진하. 어디 있어? 진하야. 박진하.”

혹시라도 최노진의 귀에 들어갈까 싶어 목청껏 부르지도 못한 채 한껏 목소리를 낮추고는 박진하라는 아이를 찾아 한참을 돌아다녔다.

다 큰 아이들은 채석영이 큰 눈을 부라리며 진하를 찾아 나서자 눈치를 보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날 뿐이었다.

“진하 어디 있는지 다들 모르는 거야?”

“모르겠어요. 아까부터 안 보였어요.”

무리 중의 덩치가 좀 있어 보이는 아이가 제법 용기 있게 대답했다.

“내 이놈의 박진하.”

채석영은 힘이 드는지 둥근 배가 위로 솟아오르는 것이 다 보일 만큼 들숨과 날숨을 들이마시었다가 내쉬고는 다시 한 번 원을 돌기 시작했다.

원을 꽤 여러 번 돌았는데도 진하는 꼭 일부러 숨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여전히 석영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드니 약이 올라 더 씩씩거리게 되었다.

***

온 사방을 다 뒤진 후에야 창고 뒤편에서 뭐가 불만인지 볼이 잔뜩 부어 있는 진하를 드디어 찾아낼 수 있었다.

찾아냈다기보다는 진하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석영은 숨이 차 둥근 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다 보일 정도로 숨을 몰아쉬며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박진하. 숨어 있으면 못 찾아낼 줄 알았냐? 응?”

“숨은 거 아니거든요.”

진하는 원에 있는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석영에게 유일하게 할 말 다 하는 배짱 두둑한 아이였다.

“그럼. 어디 있다가 이제야 코빼기를 비추는 게야.”

“아. 왜요?”

눈치가 빤한 진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그래서 원장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피하고 피하면서 여태 숨어 다녔는데 죄다 헛수고가 되어버린 것이다.

타이밍이 어긋나 채석영한테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 못마땅하기만 했다.

어긋난 타이밍이 못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진하는 그게 내내 못마땅해 도리어 퉁퉁거렸다.

“말끝마다 그놈의 왜요 소리는.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듣거라. 지금 거부이신 회장님 앞에 불려가게 될 거야. 쓸데없는 소리 지껄일 생각은 요만큼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알겠어? 안 그러면 네 동생이 여기서 생활하는 게 아주 편치 않을 테니까. 너 가고 나서 네 동생이 조금 더 편하게 생활하는 걸 바라면 잠자코 내가 하라는 대로 해. 그러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니까. 알았어? 으흐흐.”

석영은 큰 덩치를 흔들며 웃어댔다.

생각만 해도 신이 나는 일이었다.

노진이 원하는 조건의 아이를 찾아주는 조건으로 자신이 받게 될 대가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비밀로 하고 이 일을 진행하고 있으니까.

아무튼, 어떻게 해서든 저 쇠심줄 같은 놈을 구워삶아야 했다.

어리니까 충분히 가능할거로 생각했다.

혹시라도 통하지 않으면 협박이라도 해야 했다.

그래야 자신이 살 수 있었다.

“우이씨.”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듯 노려보는 아이를 별것 아니라는 눈빛으로 무시하고는 한 손으로

밀어 쉽게 제압했다.

우악스럽게 멱살을 잡고 끌어가려 큼지막한 손을 내밀어 옷깃을 잡는 순간이었다.

진하가 조금 더 재빨랐다.

순간 잽싸게 도망을 쳐버렸다.

“저. 저놈이.”

석영은 덩치는 엄청나게 컸어도 젊었을 적 운동을 했던 터라 몸이 제법 빨랐다.

진하라는 아이는 멀리 가지도 못하고 석영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화가 잔뜩 난 석영의 힘에 떠밀려 벽으로 휙 밀쳐졌다.

빼빼 마른 진하는 힘없이 날아가 벽과 한 몸처럼 붙어버렸다.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응?”

멱살을 잡고는 찍어 누르자 아이의 목이 억눌려 새된 비명이 새어 나왔다.

“윽.”

“이제 좀 상황 파악이 좀 되시나? 어떻게,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거야?”

아이는 목이 졸려 숨을 쉴 수가 없을 지경이 되자 눈알이 튀어 나올 것처럼 벌겋게 충혈이 되었다.

어쩔 수 없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사정없이 끄덕였다.

가녀린 두 손으로는 석영의 두툼한 팔을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며 제발 살려만 달라는 눈빛을 간절히 보냈다.

“들어가서 찍소리도 하지 말고 회장님이 물어보는 질문에만 아주 간단하게 대답하도록 해. 알았어? 나머지는 이 원장님이 알아서 다 할 테니까. 그래야 네 동생이 여기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어. 그리고 네가 그 집으로 들어가야 나머지 원생들이 배부르고 등 따숩게 지낼 수 있다는 걸 왜 모르지? 다 알만한 애가.”

그렇게 말하면서 찍어 누르던 팔을 풀고는 야비한 웃음을 흘리는 채석영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기만 하는 진하였다.

이미 몸싸움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안 따라와?”

자신을 노려보고만 있는 진하를 향해 한 번 더 윽박지르고는 돌아서서 걸음을 떼 놓았다.

돼지같이 살이 찐 석영의 육중한 뒤태를 하염없이 노려보기만 했다.

자신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문득 스치듯 떠오른 생각은 아까 분명 채석영이 거부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거부라면 엄청 부자라는 뜻일 것이다.

차라리 그 부잣집으로 들어가 눈치껏 지내면서 어느 정도 힘을 기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매섭게 노려보던 눈에 힘을 풀고 얌전히 석영의 뒤를 따랐다.

* * * * *

최노진은 시간이 한참 지나도 채석영이 들어오지 않자 초조한지 소파 위로 올려둔 손가락으로 소파를 신경질적으로 두들겨댔다.

토독. 톡톡. 톡톡톡.

딱딱한 소파 팔걸이를 두드리는 소리는 점점 커지고 신경질적으로 들렸다.

채석영은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제 나이보다 약간 커 보이는 남자아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남자아이의 모습이 약간 눈에 익은 듯도 했지만, 최노진은 조급한 마음에 눈을 한 번 두었다가 무심히 지나쳐 버렸다.

지금 아이의 모습이 눈에 익는다고 자세하게 살펴볼 마음의 여유 따위는 없었다.

자신이 당한 일이 하도 어이가 없고 황당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으니까.

“인사 드리거라. 어서.”

제 옆에서 눈을 빛내며 뻣뻣하게 서 있는 아이를 향해 채석영은 눈을 부라리고는 옆구리를 쿡 찔렀다.

진하의 몸이 쿨럭하고 흔들렸다.

그리고는 상체를 약간 낮추고는 아이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다그쳤다.

‘안녕하세요.’라고 해, 어서.

“안녕하세요.”

그제야 아이의 입에서 어딘가 억눌린 듯 그리고 불만이 잔뜩 섞인 볼멘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그래. 네 이름이 뭐냐?”

아이에게는 한없이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이름을 물으면서도 살피는 눈빛에는 날카로움이 스쳤다.

그런 눈빛을 아이도 당연히 느끼는 듯했다.

“박진하라고 하는데요.”

삐딱한 태도로 대답하는 박진하의 태도에 화가 날 법도 했지만 최노진은 화를 누르고 느긋하게 굴었다.

아이한테까지 초조한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살피는 눈빛만 날카롭게 빛날 뿐이었다.

최노진의 눈에 비친 진하라는 아이는 열다섯이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다부져 보였다.

나이에 비해 키는 커 보였지만, 생각보다는 많이 마른 듯 보였다.

날카로운 눈빛 속에는 여러 가지 계산이 바삐 두드려지고 있었다.

노진이 처음에 생각한 것은 동갑내기 남자아이였다.

은수와 친구처럼 지내면서 마음을 보듬어 주려면 아무래도 또래 남자아이가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자신의 외손녀 은수가 지금 열세 살이니까 두 살 나이 차이가 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두 살 정도야 오누이로 지내기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넘겨 버렸다.

그런 것보다 남자아이의 강렬한 눈빛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거기다 뭔가를 꿰뚫어버릴 것 같은 강렬한 눈빛에 매료되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한때, 자신도 저런 독기 어린 눈빛을 갖고 싶다고 열망한 적이 있었다.

한참 어린아이가 저런 눈빛을 하고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래. 저런 독기가 있어야 이 험한 세상 살아내지. 쯧쯧. 독하지 못한 것.’

진하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약해빠져서는 너무나도 허망하게 죽음을 선택해버린 자신의 딸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지독할 만큼 냉정한 최노진이었지만, 유일하게 남은 피붙이인 외손녀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지키고 싶은 마음이었다.

딸은 어이없게 잃었지만, 외손녀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지켜내야만 했다.

그러려면 눈앞에 남자아이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자신은 지금껏 일만 할 줄 알았지, 자신의 외손녀는 도통 다룰 수 있는 법을 알지 못했다.

거기에 더 죽을 맛은 자신의 외손녀가 어릴 적 자신의 부모가 이혼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제 엄마까지 자살했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한참 어린 나이인 열세 살인데도 불구하고 대인기피증에 공황장애까지 겹쳐져 제 가슴을 치게 만들었다.

그런데다 은수가 어른을 보면 경기라도 하는 것처럼 온몸을 떨어대며 금방이라도 거품 물고 쓰러질 것처럼 구는 통에 매번 조여드는 심장을 부여잡아야만 했다.

그게 연기인지 실제인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른은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만드니 애가 닳은 노진은 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며칠을 고심한 끝에 은수가 끔찍해하는 어른보다는 은수의 마음을 보듬어줄 또래의 아이가 제격이라는 생각까지 하기에 이른 것이다.

혹시나 자신의 외손녀도 딸처럼 자살이라도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해 듬직하게 보디가드처럼 지켜줄 남자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보디가드까지는 안 되더라도 상처 가득한 제 외손녀의 마음을 보듬어 줄 수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때론 친구처럼 때론 경호원처럼 말이다.

노진은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다시 한 번 진하를 계산하듯 꼼꼼하게 살폈다.

진하의 값어치가 어느 정도나 될 것인지를 매기는 눈빛이랄까.

진하는 자신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살피고 또 살피는 노인의 눈빛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여기를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저녁 내내 두들겨 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아까 석영의 협박이 꼭 그런 의미 같았다.

어쩌면 자신의 죄 없는 여동생까지도 같은 꼴을 당할까 봐 그게 겁이 나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참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까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다면, 자신이 저 노인을 따라간다면 동생을 포함한 남은 아이들이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다고 분명 그렇게 말했다.

물론 채석영 원장의 말을 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어도 반은 믿어도 될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를 노려보며 살피는 눈초리가 오고 갔다.

노진은 다른 것 다 떠나서 진하라는 남자아이의 눈에 깃든 독기가 마음에 들었다.

저 정도의 독기라면 자신의 외손녀쯤이야 충분히 지키고도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딴 맘만 먹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것에 관한 대비책은 이미 구상해 놓았다.

자신의 성을 사용하게 만들어 외손녀 하은수와 인척 관계를 만들어 두면 될 것이었다.

그 외의 것은 계약서를 서면으로 작성해 공증까지 마치면 완벽할 것이란 계산이었다.

어느 정도 계산이 끝나자 느긋한 표정으로 소파에 깊숙하게 기대앉았던 몸을 일으키고는 자세를 똑바로 했다.

마음으로야 채석영을 채근해 당장이라도 데리고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 전에 정확하게 확인할 건 확인해야 했다.

훗날에 생길 문제의 근원조차 확인해서 없애는 것이 최선이었다.

화근 덩어리는 없애버리는 게 안전했다.

“그래. 넌 부모님은 안 계실 테고. 형제도 없고. 그 뭐냐 일가친척도 없는 게냐?”

“…….”

속으로 여동생이 있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채석영은 노진이 보지 못하도록 바짝 붙어 서서 또 한 번 진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진하는 고개를 들어 석영을 힐끔 바라보고는 제 눈에 보이는 그의 표정만으로도 의중을 파악했다는 듯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네.”

진하가 별다른 설명 없이 무미건조한 얼굴로 답했다.

“진하는요. 형제도 없을뿐더러 여기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십 년이 되어 가도록 친척 그 비슷한 것도 찾아오질 않았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회장님.”

진하가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바짝 붙어 서 있던 채석영이 초조한 표정을 짓고는 묻지 않은 것까지 세세하게 설명하고 나섰다.

아무래도 그쪽이 최노진에게 더 잘 먹힐 듯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조금 애간장이 타기도 했고 말이다.

진하가 여간 뻣뻣한 게 아니어서 초조하기도 했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그랬구나. 내 뭐 하나만 더 물어보자꾸나. 너도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나이니. 어디 보자 흠. 만약에 내가 너를 데려다가 친자식처럼 먹여주고 재워주고 공부시켜주고 그 밖의 모든 필요한 경제적인 지원을 해준다면 너도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테냐?”

최노진은 아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의견을 묻듯 진하의 얼굴을 주시하며 대답을 기다려주었다.

“그럼 제가 하고 싶은 공부는 다 할 수 있는 건가요?”

무미건조하기만 했던 얼굴이 조금은 상기되어 발그스레해지면서 비정하리만치 차가웠던 두 눈이 순간이지만 아주 잠깐 반짝였다.

그 눈에서는 빛이 나기까지 했다.

‘그래. 저런 강렬한 눈빛의 소유자여야 해. 벌써부터 싹이 보이는구만. 채 원장이 제대로 고르기는 한 것 같군.’

“그럼. 공부는 어디까지나 네가 할 탓이지.”

다만, 저 싹을 미리부터 안전하게 잘라둬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

진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물론, 자신이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영하가 마음에 걸렸다.

천사원에서 나가려면 제일 걸리는 것이 동생 영하였다.

영하는 나중에라도 자신이 성공해서 복수할 능력을 갖추고 찾으러 오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마음먹자 한결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졌다.

“그럼 회장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데리러 오겠다고 연락할 때까지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거라. 내가 회사에 가서 서류도 준비해야 하고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좀 있거든. 그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지?”

“아! 네.”

막상 가겠다고 대답하고 나니 지금 당장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겠지. 뭐든지 절차라는 것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나도 영하한테 인사도 해야 하잖아. 다른 아이들한테도 그렇고.’

진하는 그 자리에 서서 그렇게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일어서는 거구의 최노진을 우러러보듯 올려다보았다.

* * * * *

영하는 기온이 뚝 떨어져 입에서 연신 입김이 나오는 와중에도 쪼그리고 앉아서는 눈물 콧물 다 빼며 훌쩍거리고 있었다.

“흐엉, 오빠. 나만 놔두고 가면 난 어떡하라구. 오빠 미워. 흐엉.”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그것도 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데리고 나와서 얘기하던 중이라 몸을 따뜻하게 할 공간조차도 마땅히 없었다.

“끅. 흐엉. 크억.”

제 오빠를 바라보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더 크게 우는 시늉을 하는 것이 꼭 가짜울음 같았지만, 진하로서는 어떻게 달래야 할지 그저 속수무책이었다.

저러다가 괜히 감기라도 걸릴까 그것이 더 걱정될 뿐이었다.

여기서 혼자 있다가 아프기라도 할까 봐.

한참을 제 동생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만 봤다.

영하의 얼굴은 추워서 발개지고 손은 점점 얼음장처럼 차가워져만 가고 있었다.

손을 가져가 영하의 얼음장 같은 손을 손안에 가두고는 더 이상 시리지 말라고 살살 주물러 주었다.

너무 세게 비비면 아플까 봐 살살 주무르다가 이내 비볐다.

그리고는 손을 비비면서 영하의 눈을 바라보고 천천히 어르기 시작했다.

“그 집이 엄청 부자래. 오빠가 그 집에 가서 공부도 많이 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우리 영하 데리러 올 수 있지 않겠어? 그러니까 울지 말고 씩씩하게 잘 버티고 있어야지.”

“싫어. 나 오빠 없으면 무섭단 말이야.”

영하가 콧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얼굴로 소리를 빽 질렀다.

콧물이 흐르는데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진하는 화도 내지 못하고 비비던 손을 가져가 손으로 영하의 콧물을 닦아서는 제 옷에 쓱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는 다시 영하의 손을 살살 문지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문지르자 영하의 작은 손에 온기가 도는 것 같았다.

진하가 아무리 열심히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어린 영하는 고집불통에 막무가내였다.

아무래도 무섭긴 할 것 같았다.

아기 때부터 늘 같이 지냈던 오빠가 갑자기 내일 떠난다니까 겁이 나기도 할 터였다.

진하는 제 앞에 쪼그리고 앉아 계속 훌쩍거리는 영하를 달래다가 통하지 않자 더는 안 되겠는지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든 꼬맹이 영하를 단단하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