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탈수된 기저귀를 빨래 바구니에 산더미같이 담아 든 보모가 세탁실에서 나왔다. 루아가 손을 내밀자 보모가 고마운 표정을 지으며 바구니 한 개를 건넸다. '“웬 기저귀가 이리 나오는지, 빠는 것도 그렇지만 너는 것도 큰일이에요.”'보모와 함께 뒤뜰 작은 마당으로 나온 루아는 쇠 파이프를 양쪽에 세워 만든 빨랫줄에 기저귀를 널었다. 뒤뜰은 빨래를 널고 걷을 때 외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평소처럼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다른 날과 달랐다. 웬 낯선 남자가 그곳에 서 있었다.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입성이 무척이나 고급스런 남자가 불만이 가득 찬 표정으로 거칠게 담을 걷어차고 있었다. '퍽 퍽. '남자는 루아와 보모의 기척을 느꼈을 텐데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계속 벽만 걷어차고 있었다. 많이 아파보였다. '“저 사람, 기성 사모님의 아들이래요.”'보모가 속삭이듯 말했다. 재은이 속해있는 친목회의 여자들은 서로 남편의 기업이나 직책 뒤에 사모님이란 호칭을 넣어 불렀다. 대한제철 사장의 부인인 재은이 대한 사모님이라 불리는 것처럼 기성그룹 회장의 부인인 유미는 기성 사모님이라 불렸다. '“참 잘생겼죠? 아까 운전기사와 같이 왔어요. 기성 사모님을 많이 닮았어요. 귀족적이고 냉정해 보이는 게, 진짜 멋있어요. 여자깨나 울릴 상이에요. 호호호.”'젊은 보모가 황홀한 눈빛으로 남자를 보며 루아에게 속삭였다. 루아는 기저귀를 집어 탁탁 털었다. 젊은 남자에게 호기심을 느낀 듯한 보모의 말에 루아는 동조하지 않았다. 보모의 말대로 퍽 잘생긴 남자였지만 이상하게도 어딘가가 몹시 아픈 환자로 보였다.'퍽!'연속으로 들리는 발길질 소리가 귀에 거슬렸지만 루아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는 탁탁 턴 기저귀를 집게로 집어가며 빨랫줄에 가지런히 널기 시작했다.'쿵! '갑작스럽게 들린 소리에 루아는 하던 일을 멈추었다. 놀라 돌아보니 남자가 통나무처럼 땅에 쓰러져 있었다. 금방까지도 벽을 걷어차던 남자가 허공을 향해 눈을 홉뜨고 있었다. 잔뜩 굳어 빳빳해 보이는 몸이 경련을 일으키며 입에서 하얀 거품이 흘러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흑흑 대는 신음소리가 남자에게서 새어나왔다. '무서웠다. 조금 전까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잘생긴 남자라고 말했던 보모 역시 갑작스런 상황에 정신이 나간 듯 허둥대기만 할 뿐 가까이 갈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어머, 어머나 이를 어째, 어떡해? 간, 간질 환잔가 봐.”'루아는 재빨리 다가가 남자의 입가에 묻어있는 거품부터 닦아 주었다. 이 사람이 깨어났을 때를 생각해, 다른 사람이 보고 혐오감이나 공포감을 느끼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감춰주고 싶었다. '“안으로 가서 기성 사모님께 살짝 말씀드리고 이리로 모셔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