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주라기 공원으로 간 옴므파탈[Homme Fatal] 2권

< 20 > ''''『 2003. 04. 06. 日'Irreversible. 돌이킬 수 없는. 』''버스 차창을 통해 들어온 따사로운 저녁 햇살이 미세한 먼지들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엔진소리가 들린 그 순간부터 따라오기 시작한 태양은, 산 너머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불그스름한 노을과 거뭇해진 구름들을 보니 금세 서산 너머로 사라질 태양이건만,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버스 차창을 따르고 있었다. 따끈하게 데워진 창문에 손가락을 밀어 촌스러운 풀색 커튼을 걷어냈다. 훨씬 보기가 좋았다. '물끄러미 붉은 태양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아주 잠깐 봤을 뿐인데도, 눈꺼풀 안의 새까만 어둠 속에서는 태양이 보였다. 잔상이었다. 의식적으로 잊으려고 노력해도, 감각기관들은 본능적으로 그 자극을 이으려고 해서 생긴다는 그 현상……. '세상엔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태양을 보면 당연히 잔상이 남는 것처럼, 누군가를 만나면 기억이 남고 추억이 남기 마련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의식적으로 기억할 수 없는 날이 오게 된다 해도 의식 저 건너편의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잔흔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눈으로 손으로 수도 없이 만졌던 이목구비며, 숲 향기와 비슷하던 내음, 다정하고 부드러운 손길, 중독적인 목소리까지. 한동안은 환청이 되어 등 뒤에 따라붙어서 무던히도 괴롭히던 그 아메리카노의 목소리……. 눈을 감고 잔상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생각했다.'차라리…… 잊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게 나았을까?'“언니? 자요?”'“응? 아니.”'다시 눈을 떴을 땐, 지현이가 옆에 앉아 깨워서 미안하다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잔 거 아니야. 잠깐 눈이 아파서.”'“어머. 이젠 괜찮아요?”'“응. 괜찮아.”'웃으며 말을 하는 이 순간,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비교적 앞쪽에 앉아있지만 시끄럽기는 뒤나 앞이나 매한가지였다. 시각적으로는 주홍색 저녁 햇살이 비치는 아늑한 전세버스였지만, 청각적으로는 폭락시의 뉴욕증권거래소가 따로 없었다. 게임을 하는 것인지, 싸움을 하는 것인지 분간을 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여자들이건 남자들이건 하나같이 목소리들이 왜들 저렇게 큰지. 정녕 ‘찍’다운 사람들이었다. 안 그렇던 사람들도 ‘찍’에 들어오면 죄다 저렇게 되나보다. 그 깍듯하고 예의바르던 장효원조차 저렇게 핏대 세우고 노는 걸 보면. '선배들 사이에서 개구지게 노는 녀석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들려오는 지현의 물음에 표정관리를 해야 했다.'“시끄럽죠?”'

미리보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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