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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프롤로그
자욱한 안개처럼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이 그날만큼은 어릴 적에 보았던 것처럼 푸르렀다.
탁 트인 바다 색깔 같기도 했다. 물장구칠 때마다 한 아름의 보석이 반짝이던 그 어느 때가 생각났다. 한 발자국만 더 가면 손에 닿을 것만 같았다.
한 걸음, 더⋯⋯.
“오늘은 아니다. 꼬맹이.”
어디선가 들려온 묵직한 목소리에 빨간 목도리를 칭칭 감고 있던 교복 차림인 소녀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번쩍 든 정신으로 보니 무척이나 평온한 바다 같았던 하늘은 순식간에 현실이 되었다. 25층 높이의 아찔함에 하늬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여긴 어떻게?
상황 판단이 되기도 전에 순식간에 기억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순간 울컥 치밀어올랐지만 더 이상 눈물은 나지 않았다. 숨을 한번 깊게 들이마시고 나니 눈 아래 세상이 보였다. 장난감처럼 작은 건물들과 차들 그리고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통스러울 거다. 떨어지면서 후회하겠지. 게다가 사체는 어떻고. 뼈들이 산산이 부서져 아무도 너인 줄 알지 못할걸?”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문 채 남자는 성큼성큼 다가와 소녀가 보는 눈 아래 세상을 함께 내려다보며 무감정하게 내뱉었다.
“상, 상관 말아요.”
발끝이 긴장으로 바들바들 떨려 왔지만 하늬는 괜한 오기를 부렸다.
“난 네 일에 눈곱만치도 관심이 없어. 하지만, 네가 떨어지면 난 119에 신고해야 하고, 목격자니 뭐니 경찰에게 자꾸 전화 올 테지. 생각만 해도 피곤해.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상당한 민폐 아닌가?”
“민폐가 싫으면 나가면 되잖아요.”
얼마나 울었는지 잔뜩 잠긴 목소리로 하늬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나갔다가 여기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리가 들리면? 몰랐으면 모를까, 밤마다 꿈자리도 사나울 거고, 무엇보다 내가 받을 정신적인 충격에 대한 손해배상을 어떻게 할 거냐?”
듣다 보니 어이가 없었는지 하늬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지금 그게 애한테 할 소리예요? 어른이? 이럴 때는 위로라던가, 뭐 다른 걸 해야 하는 거 아녜요? 그리고 그 정신적인 충격은 지금 내가 받았는데 어떻게 보상할 거예요?”
말이 곱게 나갈 리 없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답답한 마음까지 얹어서 내뱉다 보니 앙칼지다 못해 서슬이 퍼렜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느새 옆에 서서 난간에 등을 기댄 채 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남자는 물끄러미 소녀를 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춥다, 내려와. 위로 같은 거 먼저 하고, 보상은 생각해 보자.”
뭔가 트집 잡을 만한 거로 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목소리의 무게만큼이나 깊은 그의 눈동자에 왠지 마음이 누그러졌다. 게다가 아까부터 긴장했던 다리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알려 왔다.
하늬는 그가 내민 커다란 손을 물끄러미 보다가 오늘따라 파란 하늘에 잠시 마음을 빼앗긴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2월의 시린 햇빛이 그의 얼굴 위로 내려앉아 반짝이다 못해 눈이 부셨다.
“봐줬어요. 오늘!”
못 이기는 척 그의 손을 잡고 난간에서 폴짝 뛰어내리면서 뾰로통했던 하늬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풀어졌다. 남자의 눈꼬리가 슬쩍 가늘어지며 멋들어진 주름을 잡았다.
“그래, 고맙다. 꼬맹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나랑 아무 상관도 없으면서.”
“사전 설명은 이미 끝난 거로 아는데? 귀찮아지는 게 싫었을 뿐이야.”
갑작스럽게 불어오는 바람에 발을 동동거리는 하늬에게 정우가 코트 주머니에서 꺼낸 캔 커피를 내밀며 답했다.
“사람이 말과 행동에 일관성이 없어.”
하늬는 아직 온기가 느껴지는 캔 커피를 냉큼 받아 얼굴과 손에 문지르며 입을 삐죽였지만 이내 따뜻한 온기를 느낀 손처럼 그녀의 마음 역시 조금은 따뜻해졌다.
“담배, 피워도 괜찮아요.”
입에 문 담배를 피우는 대신 질겅질겅 씹고 있는 정우에게 하늬가 입을 열었다.
“혹시, 담배 피우나?”
정우가 담뱃갑에서 한 개비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아뇨. 안 피워요. 목숨 담보 잡히긴 싫거든요.”
“난간에서 한 발짝만 더 디뎠으면 곧장 세상 하직 각이었던 사람 말치곤 상당히 기특해.”
“죽을 생각 없었어요. 답답해서 잠시 내려다본 건데 아저씨가 설레발친 거라구요.”
“뭐? 하하하하.”
정우의 입에서 큰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반전 영화처럼 소년같이 티 없는 웃음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따라 웃게 되는 웃음이었다.
“그런데 아저씨라니. 원래 잘생기면 다 오빠 아냐?”
“그런 말, 본인이 하면 안 부끄러워요?”
“진실에 대한 외면은 겸손이 아닌 자신감 결여일 뿐.”
정우가 거대한 어깨를 으쓱였다.
“왓, 자뻑!”
하늬는 질색인 듯 눈을 질끈 감았지만, 그의 말에 반박하지는 않았다. 허세라고 말하기엔 남자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어쩌면 이국적으로도 보일 듯한 그의 구릿빛 피부는 짙은 검은 눈동자와 찰떡궁합처럼 잘 어울렸으며 운동으로 다져진 것인지 아니면 태생 자체가 그러한지 모를 딱 벌어진 어깨는 묘한 아우라를 풍겼다.
“다, 담배 오래 피웠어요?”
하늬가 마른기침을 큼하고 내뱉으며 말을 돌렸다.
“얼마 안 됐어. 남들 다 하는 거라고 나도 덜컥 따라 하긴 싫었거든.”
“어련하시겠어요? 그런데 결국엔 한 걸 보니 끈기는 없나 봐요?”
“너무 특별해서도 안 되겠더라고. 원래 손에 닿지 못하는 것이 탐스럽긴 하지만, 너무 다르면 위화감이 생기기 마련이거든. 배려 차원이지.”
피식 입꼬리를 늘인 남자가 대꾸했다. 이상했다. 원래 이런 말을 들으면 거부 반응이 먼저 드는 게 마땅한데 그는 그 말들을 기정사실들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완전 자뻑 왕자시네.”
그의 말에 납득한 자신이 어이없는 듯 하늬의 입에서 탄식 같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자뻑 왕자?”
“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왔는데⋯, 완전 찰떡이지 않아요? 별명으로?”
하늬의 눈동자가 또르르 구르며 그의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별명? 누구 맘대로?”
“내 맘대로요. 그리고 먼저 날 꼬맹이라고 부른 게 누군데.”
“넌, 당연히 꼬맹이니까.”
정우가 고갯짓으로 그녀의 교복을 가리켰다.
“내일이면 이 교복하고도 이별이에요. 이젠 같이 늙어 가는 처지라구요.”
말을 뱉고 보니 잊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 내일이 졸업식이었지.
본인의 암 재발 소식보다 딸의 졸업식에 못 간다는 사실에 더 통곡하던 엄마의 눈물이 생각나 코가 다시 시큰해졌다.
“그래, 늙어 가는 꼬맹이.”
정우가 아까부터 코를 문지르고 있는 하늬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자 잘 참고 있던 마음이 갑자기 울렁거렸다.
“제 이름, 서하늬예요. 꼬맹인 졸업시켜 줘요.”
손수건을 받자마자 맺히려는 눈물을 찍고선 하늬는 일부러 더 환하게 웃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눈가가 햇빛에 빛났다. 정우는 소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꼬맹이, 사는 게 잿빛이야?”
정우의 말에 잠시 멈칫하던 하늬는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되물었다.
“그러는 자뻑 왕자는 꽃길 인생이라기엔 너무 힘쓰는 거 아녜요?”
온 얼굴에 힘을 주어 살짝 주름진 미간과 꾹 다문 입술로 자신을 흉내 내는 하늬의 모습에 정우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 나름 포커페이스인 줄 알았는데 꼬맹이 도사에게 들켰군.”
“울 엄마가 그랬는데, 마음의 소리는 밖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래요. 지금 모습, 너무 빈틈없이 완벽하잖아요. 숨 막힐 정도로…. 숨 좀 쉬어요.”
저 아이의 눈에 뭐가 보이기라도 한 걸까?
어떻게 된 건지 소녀의 그 한마디에 언제나 긴장하고 있던 어깨가 편안해지는 느낌에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입꼬리를 치켰다.
빤히 그의 모습을 쳐다보던 하늬는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까닥였다.
“사연 팔이 해봐요. 내가 들어 줄게요.”
“콧물이나 닦아. 감기 걸려서 비실거리지 말고. 나보다 네가 더 급해 보이는데? 눈이 퉁퉁 부어서 안 그래도 작은 눈, 실종 직전이야.”
“가상 세계에서만 사셨나? 이 정도면 중간은 하는 거거든요?”
하늬가 빽 하고 소리 지르자 그 모습이 귀여운 듯 정우는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리다 정색했다.
“혼자 참지 말고 말해 봐. 아까 약속했던 위로해 줄게.”
“쳇, 위로도 완전 자뻑 왕자다워.”
투덜거리는 하늬의 목소리가 그녀의 의지완 상관없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낮은 그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는 바위 같아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열게 되었다. 뚝뚝, 더 이상 흐르지 않을 것 같았던 눈물이 또다시 쏟아져 내렸다.
“엄마가 재발했는데 가망이 없대요.”
#1. 재회
저녁부터 눈이 산발적으로 내리더니 결국은 온통 하얀 세상을 만들었다. 화려하게 빛나던 네온사인들도 하얀 눈송이에 갇혀 마치 도시 전체가 크리스마스 마을 같아 보였다. 해가 뜨기 전부터 빛나는 눈빛에 눈을 뜬 사람들은 좀 더 이른 아침을 맞이했다. 반짝이는 바깥과는 정반대의 세상같이 어둡고 무거운 곳에서 정우는 온통 자신에게로 몰려오는 듯한 한겨울의 냉기에 이불을 둘둘 말았다.
“⋯네가 버렸어⋯.”
정우의 눈이 번쩍 떠졌다. 희미한 조명등의 빛을 받아 요상하게 번쩍이는 샹들리에가 제일 먼저 그를 반겼다. 한기가 들어 떨리는 몸과는 달리 온몸은 땀에 젖어 있었다. 익숙한 새벽녘의 공기가 그의 코끝을 간질였다. 굳이 시계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마치 완벽한 알람 시스템처럼 그의 몸은 새벽 5시로 맞춰져 있으니까. 수면제가 놓인 탁자 위를 허탈하게 쳐다보던 정우의 입에서 꽤 무거운 웃음이 떨어졌다.
‘시차는 좀 고려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나, 조금 전에 한국에 떨어졌다고.’
짓눌리는 어깨를 간신히 치켜올려 앉은 정우는 지끈거리는 두통 때문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정말 나 때문이야? 윤유리? 정말 그래?”
정우는 마치 대답이라도 기다리는 것처럼 천장을 노려보았다. 약한 조명만이 켜진 방 안 탓에 그가 올려다본 곳은 어두움이 가득 찼다. 정우의 얼굴에 두려움이 덮쳐 왔다. 순간적으로 베개 옆에 놓았던 조명 리모컨을 찾아 손이 움직였다.
‘제길, 어디 있는 거야?’
있어야 할 자리에 물건이 없음을 알아차린 손이 분주해진 만큼 어두움은 남자에게로 성큼 다가왔다.
[이미 알고 있잖아?]
어두움이 마치 답을 하듯 일렁였다.
“그렇게 뒤에 숨어 있지만 말고 앞으로 나와서 답해, 윤유리!”
정우는 손에 집힌 베개를 점점 다가오는 듯한 어둠을 향해 던졌다. ‘쟁.’ 유리컵의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조명이 밝아졌다. 정우는 리모컨을 든 손으로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냈다. 환해진 실내로 인해 어두움은 자취를 감추었다. 3년이라는 세월 동안 참으로 많이도 본 어두움이지만, 여전히 낯설고 두려웠다. 하아, 무거운 한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정우의 눈동자는 한 곳에 고정되었다. 유리컵과 함께 떨어진 종이 위로 쏟아진 물 안에서 삐뚤빼뚤 조잡하게 맞춰진 글자들이 그를 삼킬 듯 꿈틀거렸다.
[그가 날 버렸다. 죽고 싶다.]
욱신.
정우는 극심한 통증에 몸을 웅크렸다.
‘빌어먹을⋯ 윤유리⋯.’
**
[지방에 있던 우리 딸이 이번에 졸업하면 올라온대. 아직 새아빠와는 서먹하고 하니까 그 방을 썼으면 하더라구. 그래서 말인데⋯⋯.]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가득한 주인집 아주머니가 머뭇거렸다.
[무슨 말씀인 줄은 알겠는데, 아직 계약 기간이 6개월이나 남았어요. 전, 나갈 생각 없어요. 아주머니.]
웬일인지 꿈속의 하늬는 자신과는 달리 그동안 입 안에서만 맴돌던 말을 내뱉었다.
[그래, 그래. 맞아. 내가 괜한 말을 했어. 오늘 오랜만에 전화가 왔길래 기쁜 나머지 괜한 말을 한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 하늬야.]
돌아서는 아주머니의 어깨가 들썩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주머니. 제가 방을 구할게요. 그동안 아저씨 때문에 따님이랑 멀어진 것 같다고 서운해하셨잖아요.]
결국, 자신이 아주머니에게 했던 말을 끝으로 꿈에서 깨어났지만, 하늬는 더는 후회를 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도리어 후련했다. 오지랖이 넘쳐 앞뒤 생각 없이 뱉었던 말이라 생각하니 자신이 바보스러워 며칠 동안 머리를 쥐어뜯었던 터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어.
그녀 성격에 그 집에서 계속 산다고 해도 아주머니가 마음에 걸렸을 것이고, 언젠간 똑같은 말을 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시기가 좀 일렀을 뿐이야. 겨울이라 집 얻기가 좀 힘들 테지만, 잘 될 거야. 이때까지도 잘해 왔잖아?”
입으로 중얼거리던 하늬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가를 슬쩍 올렸다. 청각은 뇌를 속인다고도 했다. 긍정적인 말을 되뇔수록 뇌는 안정을 찾는다는 심리학 교수의 말이 참말이길 바랄 뿐이었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알람이 울리기 전인 4시 30분이었다. 오늘 할 일들을 체크해 보던 하늬는 문득 포토에 뜬 추억의 그날 사진을 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자뻑 왕자.”
5년 전 사진에는 교복 입은 소녀와 그녀의 몸만큼 큰 꽃다발을 들고 있는 남자가 찍혀 있었다.
졸업사진을 혼자 찍게 된다는 걸 알게 된 정우는 보상이라며 들고 있기에도 버거운 꽃다발을 내밀었다. 사진과 함께 떠오른 기억에는 심장을 간질이는 감정이 함께 존재했다. 홀로 있었던 졸업식장을 한순간에 뒤흔들어 버렸던 그의 등장과 동반했던 설렘과 기쁨, 환하게 웃어 주던 남자를 향해 조심스럽게 뛰던 심장의 느낌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벌써 5년 전이네⋯. 근데, 엄마 세월이 약이라고 하던데, 나에겐 잘 듣지 않나 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그립고, 보고 싶어. ⋯아놔, 당연히 물론 엄마지!”
마치 엄마가 살아서 옆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다가 울컥, 한동안 잊고 살았던 감정이 몰려왔다. 하늬는 급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맺히던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지만, 모른 척했다. 언제부터인가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것이 두려워졌다. 생각이 자신을 잠식하고 나면 날것 그대로의 감정만이 남아 우울해졌다. 우울감이 좀먹듯 커져 결국엔 껍데기만 남겨 놓는다는 것을 경험하고부터는 모든 상황에 너무 깊이 빠지지 않기를 노력했다.
“⋯그나저나 잘 있으려나? 자뻑 왕자? ⋯내 참, 내가 지금 누굴 걱정하니? 내 코가 석 자인데.”
더 깊은 생각에 빠지려는 자신에게 정신 차리라는 듯 하늬는 고개를 흔들었다.
“또, 여기서 잤어? 겨울이라 몸에 안 좋다니까는.”
투박한 말투 속에 걱정이 느껴지는 목소리와 함께 직원 탈의실 불이 켜졌다.
“송 주임님, 벌써 출근하셨어요? 늦더라도 집에 가려고 했는데 어제 행사가 생각보다 늦게 끝나서요. 아침 알바가 있어서 집까지 왕복하느니 몇십 분 더 자는 걸 택했어요.”
자신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송 주임을 보며 하늬는 배시시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녁에는 여기 보일러도 안 트는데⋯, 입 돌아가.”
그러고 보니 찬 기운이 패딩 안으로 들어온 탓인지 몸이 여간 찌뿌둥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게요. 몸이 두들겨 맞은 거 같긴 해요. 악!”
찌뿌둥한 몸을 기지개로 늘리다가 갑자기 옆구리에 담이 결리자 손으로 연신 치고 있는 하늬를 바라보던 송 주임이 쯧 소리를 내고는 손에 수영장 키를 쥐여 주었다.
“내가 지금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러니까 수영장 샤워실 청소 좀 해줘. 청소하다가 따뜻한 물에 몸도 좀 녹이고. 알았어? 지금 네 몰골이 아주 가관이야.”
여간 깐깐하지 않아서 사람들의 오해를 종종 사곤 하는 송 주임의 속뜻을 알아챈 하늬의 눈이 순간 커졌다가 이내 시큰거리는 코를 훌쩍였다.
“고맙습니다. 송 주임님.”
“내가 뭐 한 게 있어서⋯. 도리어 청소해 준다고 하니 내가 더 고맙지.”
“그나저나 왜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진상 VVIP, 며칠 여기에 없다면서요?”
“응, 해외 출장 중이라고 통보받긴 했는데, 몸에 익었는지, 4시면 눈이 딱 떠지더라고. 근데 진상 VVIP가 뭐야? 사, 아니 고객님에게.”
“송 주임님 힘들게 하니까 그렇죠. 새벽 5시 수영장 오픈이 웬 말이래요? 자기가 잠이 없다고 다른 사람도 없는 줄 아시나.”
“그러지 말어. 힘든 일을 당하셔서 그래. 원래는 아주 좋으신 분이야.”
“잘 아시는 분이세요?”
“알고 지낸 지는 오래되었지. 여기 단골이셨으니까⋯. 내 정신 좀 봐. 어서 갔다 와. 괜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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