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 - 횡단보도 변태사건'''' 붐비는 지하철 2호선이 역내로 미끄러지듯 들어서자 그 속에서 튕겨져 나온 여인. 상당히 촌스럽지만 묘하게 어울리는 긴 뽀글 파마머리, 요즘 한창 유행 중인 사각의 갈색 뿔테안경, 화장기라고는 전혀 없는 얼굴, 옅은 회색의 평범한 비즈니스 슈트, 굽이 낮다 못해 바닥에 붙을 지경인 펌프스, 가느다란 팔뚝에 버겁다 싶게 무거워 보이는 노트북 가방. 혹, 그녀가 세인들의 눈 속에서 사라지고 싶었던 거라면 축하의 박수라도 쳐주고 싶을 정도로 성공적인 모습이다.' “휴…….” ' 잠시 숨을 고른 그녀는 정신없이 몰려가는 사람들 속으로 슬며시 흘러들었다.'' 쭉쭉 뻗어 올라간 빌딩들마다 사람들을 쏟아냈다 집어삼키기를 반복하고 있는 이곳은 하루 종일 끊임없이 사람들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서울의 중심가다.' 횡단보도 앞에 오글오글 몰려있는 군중 속에서 족히 10센티는 위로 불쑥 솟아 있는 남자의 머리 하나가 눈에 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나선 낯선 길. 자신과 비슷한 외양의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속에 섞여 있다는 것은 어색하기도 하고 편안하기도한 이중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그를 둘러싸고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무표정 하다. 생각도 감정도 모두 저 깊은 속 어딘가에 묻어두고 있는지 아무도 눈을 마주 치지도 않고 웃어주지도 않는다. 처음 와본 고국은 그렇게 투명한 유리벽처럼 모든 것을 보여주지만 다가설 수 없도록 가로막혀 있었다. 문을 찾아야 하는 걸까. 어디서? 왜 하필 이곳을 선택했을까. 이곳에서 뭘 바란 것일까. 알고 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어서 라는 걸…….'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던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보다 한 발짝 앞에 서있는 마흔은 족히 넘었을 작달막한 남자가 옆으로 살짝 비껴 서있는 여자의 엉덩이를 슬슬 쓰다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일행은 아닌 듯싶은데.' 뭐야? 저 자식은, 어디에 만질 게 있다고 남자 망신은 다 시키고 있다. 그가 더듬고 있는 여자는 얼핏 보기에도 말라서 몸의 굴곡이라고는 없어보였다. 주먹을 불끈 쥐고 앞으로 나서려는데 여자의 손에 들린 노트북 가방이 위로 올라가는가 싶더니 무서운 속도로 뒤에 선 40대 남자를 후려쳤다. 순간 비명이 터지고 남자의 몸이 앞으로 푹 숙여졌다. 내려다보니 엉덩이를 더듬던 남자가 몸을 웅크린 채 자신의 급소를 움켜쥐고 신음하고 있었다. 잔뜩 웅크린 채 아픔으로 말도 못하고 있는 그 40대 남자에게 바짝 마른 뽀글 머리 아가씨가 시큰둥한 한마디를 던졌다. ' “남에 거 탐내지 말고, 아저씨 물건 간수나 잘 하시죠. 아저씨 같은 변태한테도 여우같은 마누라랑 토끼 같은 자식이 있을 거 같아서 이쯤에서 참습니다. 아니면 아주 못쓰게 만들어 드릴수도 있거든요.”' “으윽…….”' 쓰러지듯 쭈그려 앉은 남자는 연신 신음만 삼킬 뿐 대꾸조차 하질 못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하는 표정들이었다. 처음부터 그들의 행각을 주목하고 있던 키 큰 남자는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눌렀다. 정통으로 맞았으니 저 남자 며칠은 얼음찜질을 해야 할 테고, 또 여우같은 마누라에게 꾸며댈 변명거리도 생각해내야 할 테지. 정말이지 혼자보기엔 너무 아까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환영인사는 생각지도 못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