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빵집 앞.

조리복 차림의 아정은 어린 남매에게 눈높이를 맞추며 빵이 가득 든 비닐봉지를 건넸다.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진 남매는 뒤도 안 돌아보고 빵집 앞을 떠났다.

남매가 멀어질 때까지 흐뭇한 미소로 돌아보던 아정이 빵집으로 들어온 순간, 빵 몇 개가 아정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악!”

바닥에 떨어진 빵을 보고, 고개를 들어보니 씩씩거리고 있는 점주가 보인다.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니가 여기 사장이야? 왜 빵을 그지 새끼들한테 맨날 퍼주고 지랄이야, 지랄이!”

“제 돈 주고 산 빵이라고 말했잖아요.”

“알게 뭐야. 남은 빵인지, 아님 그냥 슬쩍했는지!”

어이가 없는 나머지, 말문이 막힌 아정이 매장에서 빵을 고르다가 멍한 표정이 된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오늘도 분노조절에 실패한 점주가 아정의 어깨를 밀쳤다. 그와 동시에 중심을 잃은 아정이 계산을 기다리고 있던 손님 쪽으로 몸이 기울어지는가 싶더니 대책 없이 자빠지려는 순간!

“어? 어!”

넘어지는 아정이 본능적으로 뭔가를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우두둑!’

뭔가 뜯어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지만, 아정은 바닥으로 추락하는 충격을 조금 덜 받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한숨을 내쉰 아정의 눈앞에는 넘어진 것보다 더 당황스러운 장면이 펼쳐졌다.

남자 손님의 멱살을 오지게 잡아 쥐고 넘어져서 그 남자의 셔츠 단추가 후두둑 떨어져 나간 것이었다. 덕분에 화려한 그의 복근까지 세상 빛을 보고 있었다.

“어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서 어떡하지?”

당황한 아정이 고개를 들어 그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매장 내 손님들이 일제히 경악과 경탄의 표정이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남자의 얼굴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신이 섬세한 터치로 그려낸 눈과 아침 햇살에 그늘을 만들어내는 날렵한 코, 햇빛을 머금은 유려한 곡선의 입술까지. 그 남자의 눈부신 이목구비에 넋이 나간 아정이 그의 베일 듯한 턱 선에 시선을 옮겼다.

“제 멱살부터 좀 놓죠?”

“아!”

그제야 아정은 그 남자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뗐다.

“죄송해요, 손님. 셔츠는 어떻게 제가…….”

“그쪽이 넘어지려고 넘어진 것도 아니고. 사과는 사과해야 할 사람한테 받는 게 상식적이기는 하죠.”

“무슨 말씀이신지…….”

“밀려 넘어진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민 사람이 잘못이라는 말입니다.”

그제야 점주가 쭈뼛거리며 남자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죄송합니다. 저희 아르바이트가 손님께 실례를…….”

남자가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지금 피해 본 사람한테 잘못을 미루는 겁니까? 그건 사과하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가게 안 손님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어쩔 줄 모르던 점주는 이내 고개를 숙이며 남자에게 연신 잘못을 빌었다.

점주의 눈치를 보던 아정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떠올랐다. 통쾌한 기분이 드는 걸 감추기 힘든 탓이었다.

***

원래부터 그만두려고 했던 참이었다. 그 동네 남매에게 빵 선물을 더는 못 해준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아정이 대신 빵 값을 내가면서 남매에게 빵을 건네주는 동안 그래도 아정의 마음이 참 따뜻했더랬다. 호기롭게 그만두고 나오는 거까지도 너무나 좋았다. 문제는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거였다.

“대책은 세워놓고 나올 것이지, 냅다 때려치우고 나오면 어떡하니. 너도 참. 어쩌려고 그래.”

“다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이지.”

“깊은 뜻은 뭔 놈의 깊은 뜻. 열 받아도 좀 참아보라고 했잖니.”

“넌 오늘 촬영 없어? 오프야?”

“그러는 넌 언제까지 오프니? 벌써 한 달이 넘었어. 재취업 안 해?”

아정의 룸메이트인 슬이는 방송 리포터로 일하는 중이었다. 촬영 없는 오늘은 종일 아정을 들들 볶을 예정이다.

“너 내 능력 모르냐? 내일부터 출근이다.”

“진짜? 너 그냥 해보는 말 아니지?”

“넌 너무 사람을 못 믿는 경향이 있어. 그거 안 좋은 버릇이다, 너.”

“어딘데? 불쌍한 중생을 받아준다는 착한 가게가 어딘데?”

“베로나.”

“베로나? 내가 아는 그 베로나? 진짜??”

슬이가 놀란 입을 닫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베로나는 손꼽히는 베이커리 겸 카페로, 커피를 직접 로스팅하고 핸드드립 커피를 내는 퀄리티 높은 음식과 세련된 인테리어로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

첫 출근의 긴장감으로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지만, 아정은 주먹을 불끈 쥐어보았다.

“해보는 거야, 뭐 별거 있어?”

카페 베로나 문을 열고 들어선 아정의 앞에는 텅 빈 매장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첫 출근이라고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오픈 준비 시간보다도 1시간 먼저 도착해버린 것이다.

‘아무도 없나?’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내딛는데 어디선가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아해요. 진짜 몰랐어요? 그렇게 티를 냈는데?”

여자가 따지듯이 묻고 있었다. 상대방은 눈에 확 띄는 미남이었다. ‘미남’이라는 글자가 이렇게 어울릴 수가 있나 싶게, 하얀 셔츠에 나무색 앞치마를 두른 넓은 어깨가 눈부신 외모를 서포트했다.

눈매는 또 어떤가. 오랜 세기 동안 만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온 예술가가 신중한 붓 터치로 그려낸 작품, 그 자체였다.

남자는 여자의 말에는 아랑곳없이 컵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자 여자가 남자의 손목을 잡으며 조급해진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뭐라고 말 좀 해봐요.”

긴 속눈썹을 내리깐 남자가 말없이 여자의 손을 떨궈냈다. 그러자 여자가 움찔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지금 거절하는 거예요? 나를?”

“그래요. 거절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나가주시죠. 오픈 준비해야 돼서요.”

어이가 없다는 듯 거칠게 돌아서는 여자가 문 앞에 엉거주춤 서 있는 아정을 지나쳐 나갔다. 여자의 외모도 감탄할 만큼 예쁜 얼굴이었다.

‘연예인인가?’

본의 아니게 사생활을 엿듣게 된 것 같아서 꺼림칙한데, 그 와중에 지나치게 훌륭한 남자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근데 저 남자 어디서 봤더라. 분명 어디서 봤는데.’

다시 말을 걸어봐야 하나 갈등하고 있는데, 카페 문이 열렸다.

“어떻게 오셨어요?”

***

베이커리 부 직원들은 아직 출근 전이었다. 그나마 카페 부 막내가 일찍 와서 다행이었다.

눈웃음 가득한 얼굴의 막내는 아정에게 탈의실과 주방을 알려주었다. 아정에겐 있지도 않은 막냇동생을 보는 느낌이랄까. 사랑스러운 에너지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박예찬! 오픈 준비 안 해?”

“옙! 갑니다!”

남자의 부름에 막내가 급하게 답했다.

“베이커리 부도 곧 출근할 거예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될 거예요.”

막내가 마지막까지 친절한 말을 남기고 총총 달려가고 나자 아정은 다시 혼자가 됐다. 하지만 곧 베이커리 부 직원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고, 아정과 인사를 나눴다. 딱 한 사람만 빼고. 이름이 뭐랬더라. 같은 베이커리 부의 가장 선배라는 배… 뭐시기는 인사 대신 못마땅한 눈초리를 보내왔다.

첫 만남에 이름부터 외우긴 힘들지, 아무렴. 그런데 카페 부 막내 이름은 외웠다. 박예찬.

출근 첫날이라고 본격적인 제빵 작업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대표인 영준의 배려였다. 베로나는 역시 생각대로 규모가 큰 곳이었다. 아정은 새로운 일터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

다음날 점심시간. 몰려든 손님 때문에 베로나 홀은 그야말로 북새통이 되어버렸다. 그중 절반은 그 쌀쌀맞은 바리스타, 강윤오의 팬들인 듯했다.

“아니, 바리스타가 연예인도 아니고 왜 저렇게 난리들이래요?”

아정의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주방 직원들의 어이없어하는 시선이 집중됐다.

“진짜 몰라서 묻는 건 아니죠? 윤오씨를 보고도 그런 멍청한 질문을 할 수가 있나? 아정씨도 눈은 있을 거 아니에요. 아니, 미의 기준이 좀 남다르신가?”

아정에게 되묻는 사람은 사사건건 시비 거는 시비장이 배재인이다. 오전 내내 빵 성형하는 작업에 잔소리를 퍼부었던 바로 그 여자.

그때였다. 북새통 같은 홀에서 높아진 언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럼 이 빵을 그냥 먹으란 거야? 네가 드셔 보시던지요.”

주방 직원들이 고개를 한껏 뽑아내 홀을 내다보니, 베이커리 부 막내 효은이 진상 손님에게 딱 걸려 된통 당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손님이 떨어뜨린 빵을 새로 드리기는…….”

“아~ 네가 떨어뜨렸으니, 네가 주워 먹어라? 뭐 이런 게 다 있어!”

진상 손님이 손에 들고 있던 빵 집게로 효은의 머리를 내리치려는 순간, '탁!’ 손님의 손목을 움켜쥐는 손이 있었으니…. 바로 아정이었다.

빵집 안에 있던 사람들 시선이 순식간에 아정에게로 쏠렸다. 카페 부 바리스타들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또 뭐야?”

“이건 또 직원인데요. 빵 새로 드릴게요. 노여움 푸세요. 빵 좀 떨어졌다고 혈압 높이심 건강에 해로워요. 아셨죠?”

아정의 연이은 사과와 미소에 손님이 잠잠해졌다. 다시 주방으로 복귀했을 때 아정은 배재인에게 불려 주방 뒤쪽으로 향했다.

“너 뭐야?”

“네? 무슨 말씀이신지.”

“네 맘대로 새 빵을 주네 마네, 네가 뭔데?”

“그거야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아, 그러니까 네가 왜 상황을 진정시키냐고! 네가 뭔데!”

“직원이 손님한테 당하고 있으면 돕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네가 여기 사장이야?”

재인의 추궁에 아정이 아닌 다른 목소리가 되물었다.

“그쪽도 사장은 아니지 않나?”

놀라 돌아보니 구석 쪽에 선 바리스타 윤오가 보였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출연에 놀란 건 아정보단 재인이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요?”

“좀 비켜줄래요? 나 좀 나가게.”

놀라 한쪽으로 비켜선 재인과 아정 앞을 지나는 윤오가 힐끗 아정에게 눈길을 주는 듯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들은 거야. 아이 씨, 짜증 나.”

“할 말 끝났죠?”

한마디도 지지 않고 자리를 떠나려는 아정을 보니, 재인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아정의 옆쪽에 있던 선반 지지대를 툭 밀어버렸다.

주방 기구와 재료들로 가득한 선반이 기우뚱 기울어지는가 싶더니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정이 그 밑에 깔리려는 순간! 누군가 아정 위로 선반을 막아섰다. 선반을 어깨에 짊어진 형국이 된 남자, 윤오였다.

문제는 거의 동시에 벌어진 상황에 있었다. 아정이 넘어지면서 반사적으로 윤오의 멱살을 붙잡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의 셔츠 단추가 후두두둑 떨어져 나가면서 숨을 멎게 하는 가슴골이 훤히 드러났다.

“제 멱살 좀 놓죠?”

그제야 아정은 깨달았다. 전 빵집에서 자기가 멱살을 잡아 셔츠 단추를 뜯어버렸던 바로 그 남자!

그 남자가 바로 강윤오였다는 사실을!

“어쩌면 좋아. 셔츠 벗어서 저 주세요. 제가 바느질 진짜 잘하거든요.”

윤오의 화려한 가슴근육에 감탄하며 벌린 입을 채 다물기도 전, 배재인의 발언에 아정은 할 말을 잃었다.

“됐습니다. 바느질은 저도 할 줄 압니다. 그보다 여기 쏟아진 거부터 치우죠. 선반 넘어뜨린 사람이 치워야 될 거 같은데.”

“이아정씨, 뭐해. 얼른 안 치우고.”

“이아정씨는 넘어진 선반에 깔린 사람이고, 넘어뜨린 사람은 그쪽. 억울하면 CCTV 돌려봐도 좋고.”

“아… 하하…. 그랬나요. 미처 몰랐네요. 그랬구나~!”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자 배재인도 입을 꾹 닫고 쏟아진 재료들을 치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상황은 종료됐고, 윤오는 자리를 떠났다.

반죽 기계에 밀가루를 넣으면서, 그리고 기계를 작동시키면서도 아정의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윤오의 가슴팍이 아른거렸다. 그럴 때마다 그건 아마도 자기가 멱살을 잡아 뜯었다는 죄책감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마침 똑 떨어진 밀가루를 보충하려고 작은 창고 문을 열었을 때 아정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작은 보관창고 안에서 셔츠 단추를 달기 위해 바느질을 하고 있는 윤오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윤오가 웃통을 벗은 상태였다는 것!

“어머, 죄송해요!”

아정은 놀라 다시 문을 닫았다. 잠시 고민하던 아정은 다시 창고 문을 두드리고는 이내 슬며시 문을 열었다. 상의를 벗고 있는 윤오를 보지 않으려고 고개는 반대쪽으로 돌린 채였다.

“제가 그 단추 달아드리면 안 될까요? 제가 뜯어놨으니까, 제가 책임지고 싶은데요.”

윤오는 대답 없이 순순히 셔츠를 내줬다.

셔츠를 받고 보니 왜 그렇게 순순히 셔츠를 내줬는지 알 것 같았다. 바느질이 삐뚤빼뚤, 생전 실과 바늘이라고는 만져보지 않은 사람의 손길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정은 먼저 윤오가 얼기설기 이어놓은 바느질 실밥들을 뜯어내고 실과 바늘을 집어 들었다. 안 보는 척하면서 유심히 그 모습을 지켜보는 윤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막 바느질을 시작하는 찰나, 이내 윤오는 할 말을 잃었다.

아정의 바늘이 갈 길을 잃고 셔츠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악!” 소리와 함께 자기가 찌른 손가락을 얼른 입에 넣고 쪽쪽 빨았다. 그러면서 윤오의 눈치를 보는 모양새라니.

“이리 주죠. 내 셔츠 망가뜨리려고 그러는 거 아니면.”

“죄송해요. 제가 원래 곱게 자란 애가 아니고 되게 독립적으로 자랐는데, 바느질은 독립적이지가 못하더라고요.”

셔츠를 받아들고 미련 없이 창고 방을 나가버리는 윤오를 보면서 아정은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

베로나의 대표인 영준이 직원들을 홀로 모이게 했다.

“건너편에 새로 베이커리가 들어선다는 소식, 다들 알고 계시죠. 저희도 뭔가 대책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운 빵을 개발해보려고 하는데요.”

음식점에서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듯이 빵집에도 새로운 빵을 개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베로나의 경우 워낙 인기 빵들이 많고, 매출도 크게 떨어진 적이 없어서 새로운 빵이 나온 지는 수년이 지난 상황이었다.

“물론 선정된 빵에는 부상도 있습니다. 3일 휴가와 포상금! 여러분의 역량을 집중시켜서 좋은 빵 개발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빵 개발 계획이 발표되자, 당연히 베이커리 부 직원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카페에 남은 건 아정 뿐. 개발에 필요한 재료는 본인 부담이었지만 재료비를 아낄 때가 아니었다. 아정에게 자기만의 빵을 갖는 건 오래 꿈꿔온 일이었기 때문이다.

시계는 이미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정은 지금 혼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왠지 으스스해져서 애써 생각을 떨쳐버리려는 순간, 어디선가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히이익!! 이게 무슨 소리야!’

빵 냄새에 이끌려온 길고양이 울음소리였다는 걸 얼마 안 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정은 굽다가 실패한 빵 부스러기들을 모아 길고양이에게 주고는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많이 배고팠나 보네. 악! 깜짝이야!”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아정은 어느새 뒤에 와있는 윤오를 보고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바리스타님이 이 밤에 무슨 일이세요?”

“그런 그쪽은 이 밤에 여기서 뭐 합니까?”

“보면 모르세요? 고양이 밥 주잖아요. 그리고요, 저는 그쪽이 아니라 이아정이거든요?”

“저도 바리스타님이 아니라 강윤오인데요.”

의외의 대답에 아정이 당황한 사이, 윤오가 돌아서더니 커피 작업대에서 두고 갔던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다.

“길고양이 밥 주다 버릇하면 안 되는 거 몰라요?”

“왜요?”

“밥 얻어먹었는데 그 다음 날은 또 얻어먹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럼 여기 또 오겠죠.”

“그럼 또 주면 되죠?”

“여긴 고양이 밥 주는 데가 아닙니다. 그쪽, 아니 이아정씨 집도 아니고.”

“사람이 인정이라는 게 있어야죠. 그리고 어차피 버릴 거 좀 주는 건데.”

핸드폰을 찾은 윤오가 빵부스러기를 먹고 있는 길고양이를 보면서 말했다.

“그 고양이가 죽을 때까지 밥 책임질 수 있습니까?”

“사람이 뭐 그렇게 극단적이에요? 줄 수 있을 때까지 주는 거지.”

“책임지지 못 할 일은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윤오는 그대로 카페를 나갔다. 아정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남이야 고양이한테 밥을 주든 말든, 사사건건 시비래? 별 이상한 사람을 다 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