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현재> ''''한 남자가 자신의 사무실 의자에 앉아 한 면을 트인 넓은 창으로 지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나른해 보이다 못해 모든 것이 다 귀찮고, 흥미 없어 보였다. 그저 숨만 쉬고 있을 뿐, 더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마치 관속에 생매장 당한 그 느낌은 오랫동안 그를 괴롭혀 왔지만, 이제는 그것마저도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느껴졌다.'모든 것이 그에게 쉬웠다. '' 그는 한 마디로 완벽 그 자체였고 또 그렇게 키워졌기에 구지 완벽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다. 분명 누구나 바라는 삶을 살고 있는데 왜 자신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지…….''어렸을 때부터 그래왔었다. 그 어렵다는 공부, 그는 한번 읽으면 쉽게 머리에 이해 될 뿐만 아니라 각인까지 되었다. ‘언론 재벌’인 아버지를 둔 덕분에 돈은 집에 굴러다닐 만큼 많았다.''그는 유리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았다.'부드러운 갈색의 머리카락이 뒤로 넘겨져 있었고, 머리카락과 같은 색의 따뜻한 갈색 눈에는 아르마니 안경이 가볍게 올려져 있었다. 그 아래로 우뚝 솟은 콧등은 마치 희랍 신화에 나오는 아폴론 조상처럼 아름답게 뻗어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 육감적인 입술이 마치 비웃듯 한쪽만 살짝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멋지게 소화해 내는 최고급 아르마니 양복은 그를 더욱 세련되면서도 고귀하게 만들었다. 185의 78킬로의 몸은 다소 호리해보여 그를 문약하게 보이게도 하지만 그 아래 숨어져 있는 몸은 어렸을 때부터 해 온 검도와 재학 시절 암암히 치러왔던 전쟁으로 군살 하나 없이 단단하고 날렵하였다.''마치 잘 다려진 하나의 명검과 같이!''그것은 유독 그의 외모에서뿐만 아니라 그가 풍기는 나른함 속에 숨겨진 카리스마로 인해서 더욱 그러리라.''그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멀리 응시하였다. 그의 눈동자는 서서히 빛을 잃어가며 마치 유리알처럼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리모콘을 누르자 한 눈에도 무척이나 값비싸 보이는 오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정열과 애절함의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이.''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애잔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음(音)에 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이 곡을 들을 때면 의래 떠오르는 한 여자가 그의 닫혀 진 망막 위로 나타났다.''검은 긴 생머리를 어깨 뒤로 넘긴 하얗다 못해 정맥까지도 비치는 창백한 얼굴, 연주 할 때면 눈을 꼬옥 감고 모든 감정을 아미에 그리는 작고 가냘픈 여자, 하지만 안아주고 싶은 외모와는 달리 그 누구보다도 더 밝고 씩씩했던 그 여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그는 가만히 여인의 이름을 불러본다. 늘 가슴 한 켠에서 심장을 쿡쿡 찌르며 조아오는 그 이름을 누가 들을세라 조용히, 하지만 메마르게 불러본다.''“혜연, 정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