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의 고리

뱀파이어. 인간의 피를 먹고 사는 존재. 마계를 탈출한 뱀파이어는 인간 속에 섞여 들어갔고, 뱀파이어는 모든 인간의 조상이자 후손이 되었다. 인간들 사이에서 태어난 뱀파이어는 어미를 잡아먹었고, 뱀파이어들 사이에서 태어난 또 다른 뱀파이어는 무수히 많은 인간을 잡아먹었다.

인간들로부터 태어난 아이는 버려졌고, 뱀파이어들로부터 태어난 아이는 죽어갔다. 언제나 천대받아 왔으며, 제거의 대상이었고,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뱀파이어. 그들은 신전의 등장을 시작으로 점차 인간 세계에서 자취를 감춰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북쪽으로, 누군가는 숲 속으로, 누군가는 눈 덮인 산 위로. 살아남기 위해 뿔뿔이 흩어진 뱀파이어들은 그 어떤 교류도 하지 않은 채,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하지만. 몇몇 뱀파이어들은 도망 대신 인간의 틈에 숨어 살기를 택했다. 북쪽 대신 남쪽, 동쪽, 서쪽으로, 숲속 대신 도심 속으로, 산 위가 아닌 사람들 위로. 인간들 사이에 숨어 살아가는 소수의 뱀파이어들은 제 본성을 죽인 채 삶을 살아갔다.

“저 왔습니다.”

“오늘은 늦었네?”

방금 술집에 들어온 아드리안처럼.

“도련님이 사라지셔서.”

아드리안이 고개를 까닥였다. 술집은 한산했다. 시끌벅적한 바깥과는 다르게 고요한 술집의 분위기를 느끼며 아드리안이 짧은 숨을 들이켰다.

“아이고. 또?”

한숨을 머금은 아드리안의 말투에 주인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네.”

화려하게 빛나는 은빛 머리. 맑은 기운을 가득 머금은 검붉은 눈동자. 도자기로 빚은 듯한 투명하고 깨끗한 피부와 늑대의 것과 비슷한 매서운 눈매. 183이란 큰 키와 늘씬하게 뻗은 팔다리, 그리고 오랜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과 굳은살로 가득한 손바닥.

멋쩍은 웃음을 흘린 아드리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뭐, 어쩔 수 없죠. 도련님 뒤처리하는 게 제 일인데.”

아드리안의 말에 혀를 끌끌, 찬 주인장이 미리 준비해둔 도수 낮은 술을 아드리안 앞에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래?”

“…그냥, 몸이 좀 안 좋으셨나 봅니다.”

“그래서 찾았나?”

제 머리를 투박하게 쓰다듬는 주인장의 손길에 아드리안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아뇨.”

“그럼?”

“쪽지를, 한 장 남겨 놓으셨더라고요.”

익숙하게 술잔을 들어 올린 아드리안이 씁쓸한 미소를 목 뒤로 넘겼다.

“아마 오늘 밤 안에는 돌아오실 겁니다.”

“쪽지에 그렇게 쓰여 있었나?”

“네.”

“그럼 자네, 오늘은 자네 가게서 자고 갈 텐가?”

“…아.”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으니, 오늘 하루쯤은 거기서 자고 가는 게 낫지 않겠나?”

“….”

“시간도 늦었는데.”

아드리안이 느릿하게 눈을 껌벅였다. 망설임이 그득그득한 아드리안의 모습에 주인장이 피식, 웃으며 아드리안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자네, 얼마나 마셨다고. 벌써 취한 건가?”

“…안 취했습니다.”

“자네 가게지 않나. 아무리 가기 싫더라도 한 달에 한 번은 가야지.”

“…가기 싫은 건 아닙니다만.”

아드리안이 술잔을 손에 든 채 눈을 낮게 내리떴다. 아드리안의 손끝에 잡힌 술잔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 냥….”

머리가 복잡했다. 지끈거리며 아파오는 머리에 고개를 푹 숙인 아드리안이 입술을 달싹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속내를 감추는 듯한 아드리안의 모습은 그를 5년간 만나 온 주인장에게 익숙한 모습이었다. 절대 제 속내를 내뱉지 않는 아드리안에게 “무슨 일 있냐.”라고 묻는 건 쓸데없는 일이란 걸 깨달은 주인장은 그에게 다른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가기 싫어도 가야지. 부모 얼굴은 보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부모. 내 부모는 날 죽이고 도망친 지 오랜데.

아드리안이 버석한 미소를 흘렸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한 잔만 더 하고 가.”

주인장의 투박한 위로 아닌 위로에 아드리안이 고개를 설핏 내저었다.

“돈 없습니다.”

“공짜로 줄 테니까, 마시고 가.”

붉은 거리에서 맨 정신으로 있기는 힘들잖아?

주인장이 눈을 찡긋거렸다. 이어진 주인장의 말에 아드리안이 눈썹을 으쓱이며 채워진 술잔을 들어 올렸다. 아드리안이 화끈거리는 고통에 미간을 약하게 찌푸렸다. 소매로 입가를 훔친 아드리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기, 술값입니다.”

동화 두 개를 주인장 앞에 내려놓은 아드리안이 망설임 없이 등을 휙, 돌렸다.

“돈 없다며.”

“생각해보니 술값 낼 돈은 있더라고요.”

“…으응.”

주인장이 눈썹을 으쓱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힘내게나.”

“감사합니다.”

달달한 향기만을 남긴 채 술집을 빠져나온 아드리안이 짧은 숨을 내뱉었다.

“후우….”

술 냄새가 진동하는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와 검게 흐르는 강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아드리안의 눈에 들어온 붉은빛의 조명이 은은하게 빛났다. 새까만 강물 속, 옅게 빛나는 붉은 조명을 발견한 아드리안이 한숨을 삼키며 강가로 몸을 돌렸다. 붉은 거리의 입구를 지키는 성기사들의 시선을 피해 붉은 거리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도대체 입구를 왜 이런 곳에 만든 건지….”

단단하게 만들어진 포장된 도로에서 내려와 흙이 가득한 곳에 발을 디뎠다. 질퍽하게 신발에 달라붙은 진흙의 감촉에 인상을 찌푸린 아드리안이 익숙하게 강물 속에 발을 들였다. 차디찬 강물이 아드리안의 몸을 집어삼키듯 거세게 소용돌이쳤다.

“에오스.”

아드리안의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은빛 마나들이 아름답게 빛나며 아드리안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와 동시에 강물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갈라진 강물 사이로 나무문이 두둥실 떠올랐다. 문 위에 매달린 붉은 조명이 은은하게 깜박였다. 평소라면 깜박이지 않을 조명이었다. 적어도 다섯 이상의 뱀파이어가 들어갔다는 조명의 신호에 아드리안이 고개를 작게 내저었다.

“하아….”

한숨을 푸욱, 내쉰 아드리안이 단 1의 망설임도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문 안은 불안하리만치 온통 붉었지만, 문 안으로 발을 내딛는 아드리안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찰랑. 아드리안이 문 안에 들어감과 동시에 강물이 맑은소리를 내며 닫혔다. 낡았지만 단단한 나무문도, 강물 속을 흐르던 붉은 조명도, 아드리안의 흔적도. 모두 삼켜버린 검은 강물은 그저 부드럽게 흐를 뿐이었다.

*

홍등가. 통칭 붉은 거리. 홍등가는 뱀파이어들이 만들어낸, 뱀파이어들의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뱀파이어가 모두 사라진 지금, 붉은 거리는 인간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뱀파이어를 막기 위해 성수를 거리 입구에 잔뜩 쌓아둔 인간들은 안전해진 붉은 거리 안에서 쾌락과 사치를 마음껏 즐겨댔다. 하지만.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뱀파이어들은 언제나 붉은 거리 곳곳에 존재했다. 뱀파이어들에게는 인간들은 모르는 그들만의 통로가 있었다. 살갗을 태우는 성수를 피해, 검을 내지르는 성기사를 피해, 뱀파이어들은 그들만의 통로로 거리를 드나들었다.

“오셨어요, 사장님?”

“오늘은 늦으셨네요?”

“피곤해 보이시는데, 괜찮으신가요?”

붉은 거리 한가운데에는 낡고 우중충한 건물 하나가 우뚝 세워져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건물 안으로 들어온 아드리안이 옅은 미소를 그려냈다.

“전 괜찮습니다. 늦어서 미안해요, 다들.”

아드리안은 붉은 거리에서 가장 유명한 가게, [엘 셀레나]의 주인이었다. 피곤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직원들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아프신 건 아니에요?”

아드리안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프진 않습니다.”

“방을 준비할까요?”

“빈방이 있으면 기꺼이.”

긍정적인 아드리안의 대답에 직원 한 명이 활짝 웃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럼 제가 방을 준비할게요!”

“고맙습니다, 엘피스.”

다정다감한 아드리안의 말투에 직원, 엘피스가 얼굴을 옅게 붉혔다. 잘생긴 외모와 무뚝뚝하지만, 은근 자상한 성격의 아드리안은 붉은 거리의 인기남 중 하나였다. 비록 그 본인은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그리고 술도 조금만 준비해줄 수 있나요, 혹시?”

“네?”

“술 말입니다.”

“술, 이요?”

“네.”

예상치 못한 아드리안의 말에 당황한 엘피스가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그, 진짜요?”

“네. 너무 세지 않은 걸로. 부탁합니다, 엘피스.”

아드리안이 눈꼬리를 곱게 접어 내렸다. 붉은 조명이 비쳐 붉게 물든 아드리안의 은빛 머리칼이 사르륵, 하는 소리를 내며 아드리안의 눈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엘피스.”

나긋한 아드리안의 부름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엘피스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그럼요! 그, 그럼 전 이만 준비하러 가 보겠습니다!”

엘피스가 빠른 걸음으로 2층을 향해 움직였다. 그녀의 뒤를 따스한 눈길로 쫓던 아드리안이 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전 이만 올라가 보겠습니다.”

“사장님. 인간 한 명을 올려 보낼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고개를 작게 내젓는 아드리안을 가만히 바라보던 또 다른 직원이 한숨을 삼키며 작게 속삭였다.

“식사는, 하셨고요?”

아드리안의 평생을 지켜본 직원, 세실이 날카로운 눈으로 아드리안을 노려보았다.

“또 쓰러지시려고요? 아무나 한 명 올려 보낼 테니, 입이라도 축이세요.”

“…내가 데려갈게요, 세실.”

부드럽지만 단호한 거절에 세실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방까지 안내해 드릴게요.”

“세실. 내가 알아서 할게요.”

“사장님. 사장님 이번 달에만 벌써 세 번이나 쓰러지셨어요.”

“…쓰러진 게 아니라 쓰러질 뻔한 거예요.”

“그게 그거예요.”

“…다른데요.”

“사장님. 식사 안 하실 생각이신 거 아니까, 제발 말 좀 들으세요.”

세실의 말에 아드리안이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

“먼저 올라가 계세요. 금방 준비해 따라 올라갈 테니까.”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한 세실의 모습에 아드리안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부탁할게요.”

“네, 사장님.”

아드리안은 몸을 돌려 가게를 빠져나가는 세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등을 돌려 2층으로 향한 아드리안이 새까만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방안의 온도는 딱 적당했다. 침대에 털썩, 주저앉은 아드리안이 탁자에 놓인 술잔을 집어 들었다. 술잔은 일반 술잔보다는 조금 더 커다랬고, 술은 평소 마시던 것과는 다르게 투명하고 맑았다.

“…?”

아드리안은 뭔가 이상한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다. 목구멍이 홧홧 타는 듯했다. 절로 나오는 기침에 아드리안이 당황하며 술병을 들어 올렸다. 평소 먹던 술과는 다른, 훨씬 도수가 높은 술이었다. 아드리안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엘피스가 잘못 갖고 온 건가?”

그때, 향긋하고 달달한 향기가 아드리안의 코를 강하게 찔렀다. 익숙하지만 낯선 향기에 아드리안이 다급히 코를 막았다. 석 달째였다. 식사하고자 하기만 하면 어디선가 나타난 향긋하면서도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살아남기 위해 간간이 목을 축이긴 했지만, 제대로 된 식사는 하지만 못했던 아드리안이었다.

“!”

냄새를 피하고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아드리안이 핑, 하고 도는 시야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배가 고파왔다. 피를 먹지 못한 몸은 평소보다 약해져 있었고, 빈속에 마신 술은 안 그래도 피곤한 아드리안의 몸을 더욱 피곤하게 만들었다.

아드리안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흐려지는 시야, 울렁거리는 속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머리. 점점 강해지는 향긋한 향기에 아드리안이 달뜬 숨을 내뱉었다.

“하….”

“사장님, 들여보내겠습니다.”

때마침 세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리고, 낯선 남성 하나가 방안으로 들어섰다. 술에 잔뜩 취한 채,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남성이 비틀거리며 아드리안을 향해 다가섰다. 세실이 상처를 낸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상처가 나 있던 건지. 남성의 팔에 난 상처에서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우웅, 당신은 누구….”

순간, 중심을 잃은 남성이 아드리안 쪽으로 넘어졌다.

“우왁!”

“괜찮, 습니까?”

다급히 남성을 낚아채듯 잡아낸 아드리안이 아찔하게 풍겨오는 달콤한 피 냄새에 눈을 질끈, 감았다.

“주인니임?”

아드리안의 품에 폭, 안긴 남성이 화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인님인가아?”

“…아닙니다. 술을 많이 드신 거 같은데, 들어가서 쉬시는 게….”

“나 술 안 마셨어요오!”

남성이 발끈했다. 실제로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남성은 술을 마시지 않았고, 아드리안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드리안은 다시금 남성에게 말했다.

“술 취하신 거 맞아요. 들어가서 쉬세요.”

“주인니임.”

“전 당신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럼 주인님이라 불러도 되요오?”

애교스럽게 말꼬리를 늘인 남성이 순식간에 아드리안의 입에 제 입을 가볍게 맞췄다. 남성의 입술이 쪽,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나갔다.

“지금 뭐하는…!”

“싫어요, 주인니임?”

남성이 사르르, 하고 눈꼬리를 접어 내렸다.

주인님. 신전의 눈을 피해 뱀파이어를 왕처럼, 신처럼 모시는 인간들은 뱀파이어를 주인님이라 부른다 들었다. 뱀파이어들은 인간들에게서 피를 얻고, 인간들은 제가 모시는 뱀파이어에게서 쾌락을 얻는다. 그게 둘 사이의 계약 조건. 이론으로만 알고 있었던,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던 그 일이었는데. 저를 주인님이라 부르는 남성을 내려다보는 아드리안의 눈이 옅게 흔들렸다.

한편, 아드리안의 몸에 제 몸을 완전히 기댄 남성이 몸을 옅게 비비적거렸다. 남성이 움직일 때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찔한 향기가 훅, 하고 풍겨왔다. 자꾸만 들이대는 남성의 모습에 아드리안이 당황하며 입술을 지그시 짓씹었다.

“우웅, 주인님으은, 진짜 예쁘게 생겼다아.”

“….”

“늑대같이 생겼어어.”

느릿한 손길로 술잔을 집어든 남성이 해맑게 웃으며 아드리안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주인니임, 한 잔 하실래요오?”

“사양하겠습니다.”

“왜요오?”

“술을 잘 못해서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남성이 제 옷을 어깨까지 끌어내렸다.

“배고프지 않아요오?”

아드리안의 몸이 움찔, 떨렸다. 남성은 뱀파이어와의 식사에 중독된 인간이었다. 술에 취하지 않았음에도 술에 취한 것처럼 해롱거리는 남성의 모습에 아드리안이 입술을 말아 물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훅, 하고 풍겨왔다. 새하얀 남성의 목덜미를 발견한 아드리안이 마른 침을 삼켰다.

“괜찮습니다. 배 안 고파요.”

아니. 사실은 배가 고팠다. 아드리안이 인간의 피를 먹지 못한 지 세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강한 뱀파이어라 해도 세 달 이상을 버티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애써 미소를 그려낸 아드리안이 고개를 작게 내저었다.

“우웅, 세실이 그러던데에. 우리 주인님, 엄청 배고플 거라고.”

남성이 아드리안을 약하게 떠밀었다. 순순히 남성의 손에 밀린 아드리안이 침대에 몸을 기댔다.

“진짜, 배 안 고파요?”

남성의 눈이 몽롱하게 빛났다. 다친 남성의 팔에서 또옥, 하고 흘러내린 핏물이 새하얀 시트를 적셨다.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밀려왔다. 아드리안이 마른 입술을 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