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달도 뜨지 않은 컴컴한 밤이었다. 간간이 켜져 있는 가로등이 그나마 어두운 밤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채경은 한손에 콩나물이 든 검정 비밀봉지를 들고 터벅터벅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이 야심한 시간에 다 큰 처녀에게 콩나물을 사오라며 무시무시한 밤길에 내보내다니. '그러면서 평소에 집에 늦게 들어오면 다 큰 계집애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밤늦게 싸돌아다닌다고 잔소리를 하는 엄마 영숙의 모습이 떠오르자 채경의 입에서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더군다나 지금은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인 석영의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아 집안은 초긴장 상태였다. '“칫! 나 고등학교 다닐 때는 시험을 보는지도 몰랐으면서.”'갑자기 서운한 마음이 울컥 올라와 그녀의 기분은 좀 전보다 더 심하게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하긴 범생이랑 나처럼 지지리 공부도 못하던 열등생이랑은 다르겠지.” '터벅터벅 걷는 그녀의 입에서 연신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때였다. 바람결인가? 어디선가 짧은 비명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채경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윽!” '둔탁한 소음에 이어 제법 큰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채경은 조심조심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놀이터였다. 동네 뒤쪽으로 위치해 있는 이 놀이터는 낮에도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었다. '채경은 최대한 몸을 낮추고 놀이터 담에 숨었다. '놀이터 안에 있는 유일한 가로등 아래서 모두 다섯 명의 남자가 한 남자를 두고 빙 둘러서서 집단 구타를 하고 있었다. '혼자인 남자도 나름대로 그들을 향해 주먹을 날리긴 했지만 상대가 다섯이나 되는지라 거의 얻어맞고만 있었다. '가로등에 비친 그들의 옷차림을 보니 동생 석영이 다니는 서일 고등학교의 교복이었다. '채경은 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반바지의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하지만 주머니에는 손수건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제야 핸드폰을 화장대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어떡하지? 그냥 갈 수도 없고. 아우! 어떡해.”'채경은 발을 동동 굴렀다. 저렇게 맞다가는 남자애가 금방이라도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그냥 두고 가버릴까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남자애의 교복을 본 순간 동생 석영이 떠올라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요량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개미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않았다. '채경은 손을 가슴에 얹고 심호흡을 천천히 했다. 그리고 최대한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