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무슨 봄비가 한 여름 장마보다 더 거센지 손을 들어 가린 얼굴은 이미 빗물로 세수를 한 것처럼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을 지경이었고 흠뻑 젖은 머리카락은 제 멋대로 흘러내려 안 그래도 잘 보이지 않는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드라이 했더니 뭐야 진짜…….’' 어쩐지 일어나기 싫었던 아침이었다. 선배인 정미의 부탁만 아니었다면 돈도 되지 않는 일을 받으러 이 비를 맞으며 거리를 활보하지는 않았으리라.' 제대로 마친 대학은 아니지만 지금까지도 그때의 동기들이나 친했던 선배들과는 계속해서 연락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정미는 번역 일을 시작하고 막막해 하던 율이에게 아는 지인들을 소개하거나 가끔 일을 주는 고마운 선배였고 가족 같은 존재였다. 힘들 때 옆에 있어주고 지루하지 않게 웃겨도 주면서 지금까지 함께한 율에겐 친자매 같은 사람이었다.' 손으로 이마 위를 가리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지만 점점 쏟아지는 비를 막기에 손은 너무 작고 무용지물이었다. 가방에 있는 서류가 젖을까봐 율이는 더 이상의 무모함을 포기하고 눈앞에 보이는 커피숍 앞으로 비를 피하기 위해 뛰어갔다. 햇볕이나 비를 가리기 위해 설치해 놓은 가리개 덕분에 비를 피하기는 그만이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났나. 도대체 왜 이렇게 쏟아지냐.”'소나기 치고는 너무 많은 비가 오고 있었다. 율이는 엉망으로 흐트러졌을 머리카락을 대충이라도 만지려고 커피숍 유리창 쪽으로 몸을 돌려 얼굴을 바짝 갖다 댔다.' “머리가 이게 뭐…….”' 눈을 가렸던 앞머리가 뒤로 젖혀지면서 율이의 눈앞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리고 분명 비에 젖은 머리카락은 다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 눈앞을 가리는 건 하나도 없었는데도 시야가 흐려지면서 그가 보이질 않았다.' “왜 따뜻하지……. 이거 눈물인가…….”'손을 들어 닦아내면 그에게 우는 걸 들킬까봐 율이는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한때 너무나 미치도록 그리웠던 그 남자. 너무 많은 추억을 남겨줘서 잊을래야 잊을 수도 없게 만든 잔인한 그 남자. 눈을 감으면 더 또렷하게 보이는 그의 영상으로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리게 만들어준 그 남자. 세상의 축복인 크리스마스가 그녀에겐 다시 돌아오질 않길 바라게 만든 그 남자.' 서지혁.' 그 남자가 지금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녀와 마주하고 있었다.'' 새로 시작하는 사업인 만큼 일일이 다 챙겨야 마음이 놓이는 지혁 때문에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정말 죽을 맛이 아닐 수 없었다. 회사의 모든 직원들을 지혁이 면접을 보고 뽑았고 첫 영화가 될 작품 역시 지혁이 전부 시나리오를 검토해서 정하는 중이었다. 셀 수 없이 쌓이고 또 오고 있는 시나리오들을 그는 집으로 가지고 가서까지 꼼꼼하게 읽고 있었고 조금 괜찮다 싶음 작품들은 작가를 직접 만나 인터뷰까지 하고 있었다. 빨리 자리를 잡고 일을 시작해서 대박을 내자는 다른 제작자와는 달리 지혁은 천천히 시작하더라도 제대로 된 첫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