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뒤바뀐 세상

1999년.

화창한 봄날이었다.

고르지 못한 돌길을 달리는 자동차에서는 털털거리는 낡은 기계음이 연속해서 들려왔다.

좀 더 깊은 시골길에 들어서자 자동차 안은 흡사 스쿠터라도 타는 듯 좌우로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불편하지?”

눈가에 주름이 자글거리는 사내가 옆 조수석에 앉아 책가방을 꽉 쥐고 앉은 어린 사내아이를 향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무표정한 아이가 사내의 물음에 대답했다.

짙고 깊은 눈매.

아직 어린아이 임에도 반듯하게 올라간 콧날과 한 일자로 굳게 닫힌 입매가 멋스러웠다.

빛을 전혀 막아주지 못하는 창에서는 자잘하게 부서지는 봄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국밥 집이 있으니 거기서 밥이라도 한 끼 먹고 가자꾸나.”

“배. 고프지 않아요.”

“아저씨가 배가 고파서 그래. 한 끼 먹자.”

사내의 말에 아이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10여분을 더 달리자 작은 시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중 낡은 건물의 도로 한 편에 주차를 하고는 사내와 아이가 내려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모님~ 여기 국밥주세요.”

조용한 식당 안에서는 사내의 낮고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익숙하게 아이를 향해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쥐어주고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고추를 집어 들어 장에 찍어 입 속에 넣었다.

사내의 입에서는 아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래지 않아 국밥이 두 사람 앞에 내어졌다. 돼지 부속고기가 수북하게 담겨 진 뚝배기는 한눈에도 푸짐해 보였다.

“먹어라.”

“네. 감사합니다.”

아이가 느리게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사내가 뚝배기 그릇의 반절을 비울 동안 아이의 그릇은 처음의 상태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한빈아.”

사내가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나마도 느릿느릿 젓가락질을 하던 아이가 동작을 멈춰 버렸다.

흐윽.

흑.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한빈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밥 안으로 짠 눈물을 흘렸다. 사내가 다급하게 아이를 향해서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냅킨을 꺼내 아이의 손에 쥐어 주었다.

“…미안하다. 내가.”

“아저씨가, 뭐가요. 아니에요.”

낮은 음성으로 한빈이 사내를 향해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올라가지 않는 입술을 끄집어 올리며 아이가 웃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숟가락질을 하던 사내의 손끝에 힘이 들어가 빨갛게 피가 몰렸다.

“우라질.”

한빈을 보던 사내가 식당 바닥으로 시선을 옮기며 낮게 내뱉었다. 사내의 눈가에도 뜨겁게 열상이 올라왔다.

한빈이 다시 내려놓았던 숟가락을 들어 뜨거운 국밥을 한 수저 떠서 입안으로 우겨 넣었다.

시내를 지나 이팝 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진 길을 달렸다.

하얗게 눈이 내린 듯한 길은 현실을 지나쳐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다.

한빈과 사내가 상록 보육원에 도착을 했다.

보육원 안에서 중년의 여자 한 명이 웃으며 뛰어 나왔다.

“오셨어요? 형사님.”

반갑게 인사를 건넨 여자를 향해서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원장님, 잘 지내셨어요?”

“저야, 덕분에 늘 잘 지내죠.”

서로의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이 반가운 듯 쥔 손을 놓지 못했다.

사내처럼 눈가에 잔주름을 가득 담은 여자가 한빈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가 강한빈이니?”

커다란 가방을 어깨에 짊어진 한빈이 뒤로 한걸음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눈에 한 가득 품어놓은 경계심이 여실히 드러났다.

사내가 한빈 앞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커다랗고 두꺼운 손이 한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한빈아, 예청아 원장님이란다.”

“안녕… 하세요.”

경계를 풀지 않은 한빈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래. 반갑다. 한빈아.”

원장은 한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형사님, 안으로 들어가시죠. 한빈아, 너도.”

원장은 햇살이 따가운지 눈살을 찌푸리며 사내와 한빈을 보육원 안으로 안내했다.

창밖으로는 짚은 녹음이 우거져 보이는 낡은 사무실 안에서는 벽에 달린 선풍기 한대가 고개를 바삐 돌리며 돌아갔다.

서류를 보던 원장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 나왔다.

한숨 끝에는 한빈를 향한 안타까운 시선이 걸렸고, 눈치가 빠른 한빈은 그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형사님은, 늘 이렇게 어려운 숙제를 주시네요.”

“꼭, 부탁드립니다.”

원장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빈아, 넌 괜찮은 거지?”

“네.”

짧고, 빠른 대답.

어떠한 설명보다 확실한 의사표현이었다.

이야기가 정리 될 무렵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빈아, 그럼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 아저씨 번호 알지?”

“네.”

“원장님, 감사합니다.”

인사를 나눈 사내는 그렇게 사무실을 나갔다.

일 년이 되어갈 무렵 보육원 아이들 중 누구보다 먼저 입양처가 정해졌다.

그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빈은 그 누구와도 친하게 말을 섞거나 어울리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한빈 스스로 철저하게 벽을 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다시 봄이 시작되었다.

봉사를 온 사람들을 피해서 한빈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구와도.

작은 도서관 구석에서 책을 보는 한빈을 찾아 사내가 다가왔다.

“갈 곳이 정해졌다고?”

“네.”

유일하게 한빈이 자신의 마음을 내어준 사람.

일 년 사이 훌쩍 자란 아이는 전보다 조금 더 표정을 잃어버린 후였다.

“괜찮지?”

“제가 원했잖아요.”

보육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미소를 사내에게는 보였다.

“그래.”

사내가 한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맙습니다.”

“아니다. 고맙긴. 난 원장님 좀 만나고 올게.”

“네.”

사내가 도서관을 나가고 한빈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불쑥! 그 아이가 나타났다.

“뭐 봐?”

포니테일 머리를 흔들며 맑고 순한 초식동물의 눈을 한 여자아이였다.

“뭐야?”

“어, 어린왕자네! 나도 이 책 좋아해.”

여자 아이가 한빈이 보던 책을 뺏어 들었다.

“줘!”

한빈이 아이를 향해서 손을 뻗었다.

“우리 같이 보자!”

경계심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함박웃음이었다.

창가 가득 바람이 불어왔다.

새하얀 커튼이 바람에 펄럭였다.

책을 뺏어 든 여자 아이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대로 중심을 잃은 아이가 한빈에게로 쓰러져 내렸다.

창 밖에서는 달콤한 꽃향기가 독하게 흘러들었다.

창틀에 기대선 한빈에게 여자 아이의 손이 정확하게 가슴을 짚었다.

쿵!

손가락 한마디 정도로 가까워진 두 사람에게 정적이 흘렀다.

한빈이 여자아이의 눈을 멀뚱하게 쳐다보다 바람에 떠밀리듯 가까워진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를 마주했다.

놀란 여자 아이가 까만 눈이 흔들렸다.

“손 치워줄래?”

“…응? 응!”

후다닥 아이가 한빈의 손에 책을 놓고는 빨갛게 익은 얼굴로 도서관을 나가며 소리쳤다.

“아빠~!”

책을 손에든 한빈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봄날이었다.

여름처럼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던 봄날.

***

봄의 초입.

채경은 드디어 제 명의의 집이 생겼다.

2년마다 옮겨가던 자신의 생활을 청산하고 드디어 정착하는 날이 오게 된 것이다.

오롯이 혼자서의 삶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들뜨고 행복한 기분.

이사 짐을 옮기는 기사님에게 드릴 음료를 사기 위해서 단지 입구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냐아옹~

냐옹!

편의점 입구의 화단 앞.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어린 고양이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어디서 고양이가 이렇게 울지?

채경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는 화단 사이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지럽게 쌓아 올린 박스들 사이에 검은색 후드를 깊게 덮어쓴 남자가 손을 뻗어 바닥을 기고 있던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집어 올렸다.

뭐야?

동물학대!

채경이 발걸음을 서둘러서 화단 안쪽으로 뛰듯 걸어 들어갔다.

“무슨 짓이에요!”

성큼.

화단 안쪽으로 들어간 채경이 남자를 향해서 손을 뻗어 올리며 소리쳤다.

손바닥 만한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남자의 큰 손에 올려 있었다.

발버둥 치는 작은 발가락이 하늘을 향해서 움직거렸다.

후드를 쓴 남자가 그 고양이를 향해서 한쪽 손을 들어 올렸을 때 채경이 다시 으름장을 놓으며 남자를 향해서 소리쳤다.

“그만두지 못해요! 동물학대로 신고 할 거예요! 고양이 다시 어미 고양이한테 돌려주세요.”

간헐적으로 나오는 동물 학대 기사를 이렇게 직접 눈으로 목격하게 되다니. 채경의 심장은 그 어떤 때보다 심하게 쿵쾅거렸다. 자신보다 나약한 동물을, 그것도 어린 새끼 고양이를 해하려 하다니. 채경의 의협심이 그 어느 때보다 불타오르고 있었다.

후드 안으로 검은 마스크까지 쓴 남자가 채경을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마스크 밖으로 깊은 한숨이 흘러 나왔다.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던 남자는, 들었던 손을 뻗어 박스 안으로 고양이를 돌려놓았다.

그리고는 양 손을 들어 보이며 박스 안이 잘 보이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다.

채경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지막하게 숨을 내쉬었다.

이사 온 첫날부터 흉한 일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 내심 심장이 쫄려 있었다.

하지만 다시 엄마의 품으로 돌아간 고양이를 보며 자신의 행동을 뿌듯해…. 하려 했는데.

어라랏!

후드의 남자가 안으로 들여보낸 그 새끼 고양이를 어미가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 아닌가.

그것도 아주 치열하게 다른 새끼들을 품으며 밖으로 쫓아내는 것이었다.

그 새끼 고양이만.

후드를 쓴 남자가 고개를 돌려 채경을 노려보고 마주섰다.

기어이 그 고양이 한 마리는 다시 박스 밖으로 밀려나와 화단을 헤맸다.

냐아.

냐아~

고양이의 얇은 아랫배가 풀숲에 쓸리며 연신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남자는 채경과 고양이를 번갈아 보다가 허리를 숙여 그 새끼 고양이를 들어 올렸다.

“아….”

눈을 잔뜩 찡그린 남자가 채경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섰다.

“모성애가 부족한 어미 고양이 같지는 않고, 이 새끼 고양이가 사람 손을 탄 건지. 계속 밀어내네요.”

“죄… 죄송합니다. 전 그런 줄 도 모르고. 의심을….”

채경이 급하게 허리를 깊게 숙여서 사죄를 했다.

“됐어요.”

남자는 집에서 가지고 나온 듯한 깨끗한 담요를 박스 위로 올려 새끼 고양이들이 밖으로 보이지 않도록 씌웠다.

그리고, 후드 티 안쪽 주머니에 새끼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넣고는 채경의 어깨를 스치듯 지나쳐 사라졌다.

“정말! 정말로 죄송합니다.”

채경이 남자의 뒤통수에 대고는 연신 사과를 했다.

에라이. 이 멍충아. 앞뒤 상황도 안보고.

멀찍이 남자의 모습이 사라졌을 무렵 채경은 주먹을 쥐고는 자신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저렇게 착한 사람을 동물학대 범으로 오해 하다니!”

채경은 보이지 않는 남자를 향해서 다시 허리를 숙여 사과를 하곤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1. 옆 집, 이사를 오다

“야~ 마셔! 마셔! 오늘은 끝까지 가야지!”

10년간 죽도록 일만 했다. 남들이 다 갖는 명품 가방, 브랜드 옷 따위는 입어본 적도 없다. 문화생활이라고는 큰마음 먹고 한 달에 한번 정도 할인을 받아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다였다.

그렇게 치열하게 돈을 모아 드디어 채경은 ‘내 집’을 마련했다.

15평 남짓의 작은 아파트.

집값의 70%는 대출이었지만 그래도 서울근교. 그리고 채경은 ‘내 명의’ 집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보상받는 듯한 기쁨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이사를 온 당일. 가깝게 지내는 대학동기들을 불러 모아서 집들이를 계획했던 것이다.

“역시, 하채경! 너 해낼 줄 알았다. 그렇게 독하게 돈만 모으더니 말이야.”

채경이의 대학동기 문규가 손을 들어 올리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웃기셔~ 문규 너는 졸업이랑 동시에 집 샀잖아!”

“에이~ 뭐, 내 돈으로 산거냐. 어차피 명의만 내 명의지. 아빠 집이지!”

있는 집 자제. 문규가 양 손을 비벼가며 굽실거리는 시늉을 했다.

“채경이 이제 아파트도 있겠다. 직장도 빵빵 하겠다. 이 집에 모셔올 남자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야?”

혜진이가 채경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동아리 선배와 연애를 하던 혜진이는 3년 전 우리 동기 중 가장 먼저 결혼을 했다.

“그러게. 요즘 남자 여자 따지나? 집도 훵~ 하겠다. 혼수로 가구만 해오라고 하면 되겠네.”

혜진의 말에 승현이 맞장구를 쳤다.

“이것들이! 남의 신성한 집에 어디 남자 따위를 들이려고 해!”

“뭐야? 하채경 말하는 것 보게. 우리는 남자도 아니라는 거야?”

제대로 된 가구도 없이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배달 음식으로 차려진 집안에서는 저녁 늦게까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배달 음식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 추가로 배달을 시킬까 고민을 하던 채경과 친구들은 동네 구경이라도 하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