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개가 된다는 것은

“그래서 오늘은.”

분명히 시곗바늘은 퇴근 시간인 6시를 가리킨 지 한참이 지났건만, 오히려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여는 박 부장의 모습에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설마, 재빨리 옆에 앉은 입사 동기 지은 씨에게 다가가서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지은 씨, 나 몸이 안 좋아서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부장님께 잘 말씀드려 주세요.”

“네? 아… 네….”

오케이. 이제 잘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

얼떨결에 임무를 떠맡게 된 동기를 보며 잠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박 부장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틈을 타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조심히 문 앞에 서서 문고리를 돌려 열고 나가려던 순간,

“하영 씨?”

갑작스레 들리는 목소리에 삐걱거리는 목을 움직여 뒤를 돌아보았다.

잦은 야근과 영업을 위한 술자리로 인한. 아니 그 이전부터 있었을지도 모르는 푸짐한 뱃살과 그 반대급부로 더욱 초라해 보이는 머리숱을 지닌 박 부장이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하영 씨? 오늘 회식이라고 말하는 중인데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나.”

역시.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아… 하하… 부장님 그게… 제가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아무래도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누가 보더라도 거짓말이라 생각할 정도로 뻔한 말을 늘어놓고 눈치를 살폈다.

내 말을 들은 박 부장은 ‘이거 또 시작이구먼.’ 하는 눈빛으로 나를 주시했다.

“다들 아까 말했던 삼겹살집으로 각자 알아서 모이고, 하영 씨는 못 들었을 테니 나랑 같이 움직이자고.”

누구 하나 나를 구해 주려는 사람 없이 힘내라는 눈빛으로 한 번씩 쳐다보고 갈 뿐이었다.

괜찮아. 인생은 원래 혼자 사는 거니까. 그런데 왜 눈물이 나지?

원래 인생은 혼자라는 것을 되뇌며 체념한 나는 열심히 박 부장을 따라가며 자기변호를 시작했다.

“부장님, 제가 얼마나 술에 약한지 아시잖아요. 저 술만 마시면 개 되는 거 모르세요?”

내가 회식에서 도망쳐야 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내가 술만 마시면 ‘개’가 된다는 것이다.

원래 다 술을 마시면 그럴 수도 있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만취하여서 하는 행동을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동물 ‘개’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시작은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스무 살이 넘어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고, 술만 마시고 정신을 차리면 ‘개’로 변해 깨어나곤 했다.

그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나서부터는 술자리를 어떻게 해서든 피해 다니려 노력했다.

컨트롤할 수 없다면 아예 상황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유리하니까.

입사 이후 첫 회식에는 술이 아니라 음료수를 마시면 될 것이라는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참석했다가 그것이 큰 오산이었다는 걸 바로 알게 되었다.

“하영 씨라고 했죠. 음료수만 마시지 말고 같이 술도 한 잔씩 하면 얼마나 좋아요.”

“자, 하영 씨, 내 잔도 받아.”

여기저기서 권하는 술잔에 이래서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순간 ‘나에게는 아예 술도 못 권하게 만들어 버려야겠다.’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건네 오는 술잔을 마시는 척하며 처리한 후 타이밍을 보다가 실행에 옮겼다.

나는 술에 취한 척하며 술병을 마이크 삼아 음치처럼 음을 다 틀려 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술병 이어 돌리기를 하며 몰래 버린 술들로부터 시선을 돌리게 만들었다.

“하하, 하영 씨에게 이런 주사가 있었네.”

다들 재밌다고 웃다가도 자신에게 병 마이크가 건네지면 민망해하며 도망가기도 했다.

아마도 자신까지 엮여 놀림거리가 되기 싫은 거겠지.

하긴 부스스한 머리 상태로 술병 마이크를 들고 음을 다 틀려 가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 딱 봐도 술 취한 사람 아닌가?

나는 이렇게 첫 회식부터 내 이미지를 ‘술만 마시면 개가 되는 사람’으로 인식시켜 놓고(물론 진실은 다른 의미의 진짜 개가 되는 거지만) 여태까지의 회식을 잘 무마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나를 바라보던 박 부장이 이윽고 작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오늘 높은 분들이 참석하시는 회식이야. 자리만 지키고 있으라고.”

그는 할 말이 없어져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나를 보고는 위로하듯 어깨를 툭툭 치더니 대신 취하지 않게 이거나 먹고 들어가라며 약을 건네주고 지나갔다.

무슨 몸에 좋은 환약 같은 거라고는 하는데… 냄새가 영 좋지는 않다. 몸에 좋은 약은 쓰다니까 반대로도 쓴 약은 몸에 좋은 걸까?

상황이 상황인지라 일단 챙기고 보자는 생각을 하며 얼굴을 찌푸린 채로 약을 거칠게 씹어 삼켰다.

높은 분들이 온다고 하는데 나 같은 일개 월급쟁이가 뭐라 할 수 있을까. 까라면 까야지, 뭐.

“회사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위하여!”

우렁찬 구호와 함께 다들 잔을 마주 들었고, 잔들이 부딪치자 테이블은 쨍, 하고 맑은소리로 가득 찼다.

좁은 식당 안에는 사람들이 북적였고 양옆, 앞 할 것 없이 사람이 꽉 차 그 사이에 낀 나는 간신히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지금이라도 몰래 빠져나갈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갈증이 일어 술 대신 미리 바꿔치기해 두었던 물이 들어 있는 잔을 기울여 목을 축였다.

물맛이 이상했다. 이건 맥주 같은 맛이 나는데?

그 순간, 옆에서 누군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맥주에서 보리차 맛이 나는데요? 물 섞은 거 아닙니까?”

“네 혀가 맛 간 거야. 그냥 마셔.”

“아, 이건 괜찮네요. 방금 잔이 이상했나 봅니다.”

망했다.

상황을 인지한 순간 화장실에 가는 척 몰래 빠져나와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 달려갔다.

어차피 사람이 많아 한 명 빠진 걸로는 티도 안 날 것이다.

집으로 가기 위해 뛰어가던 중, 하늘에서 하나둘 작은 물방울이 떨어지더니 이내 굵은 비가 되어 쏟아졌고 나는 급히 비를 피하기 위해 주변에 있는 큰 나무 아래로 내달렸다.

나무 아래에서 잠깐 비를 피하고 있으면서도 휴대전화로 언뜻 보이는 시간에 얼른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없다. 얼른 택시를 잡아 집에 가야지.

그 순간, 하늘이 새파랗게 번쩍였고 내 시야도 동시에 암전되었다.

***

몽롱한 정신을 붙잡고 깨어났을 때는 이미 개로 변한 뒤였다.

귓가를 때리는 빗소리. 축축한 습기, 물비린내. 그리고 개가 되어 버린 나.

이보다 더 최악일 수가 있을까.

축축해진 털의 물기를 털어내고 또다시 번개가 칠세라 황급히 저 멀리 보이는 주택을 향해 내달렸다.

어느 집 문 앞에서 비를 피하고 있자니 왜 내가 이 비 오고 축축한 날씨에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왜 하필 그 순간에 컵이 바뀌었는지. 왜 내가 개로 변해야만 했는지 따위의 많은 생각이 나면서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걸어오는 듯 흙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게 긴장을 늦추지 않고 문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위에서 담요 한 장이 떨어졌다.

“왜 여기서 울고 있니?”

고개를 흔들어 담요 밖으로 얼굴을 빼내어 보니 한 남자가 물이 담긴 그릇을 내주며 안심하라는 듯 미소 지었다. “비가 그칠 때까지 마음껏 쉬다 가렴.”이라 말하면서도 남자는 혹시라도 내가 자신을 보고 겁먹을까 걱정되는지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사실 내가 사람인지도 모르고.’

남자를 향해 픽 하고 웃었지만, 비 맞은 강아지에게도 사람을 대하듯 존중해 주는 태도를 보니 참 따뜻한 사람일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낯선 떠돌이 강아지를 위해 준비해 준 따뜻한 담요와 물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다 남자의 상냥한 마음이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아 마음 한쪽 편이 뭉클해졌다.

한 방울, 두 방울.

그렇게 거세게 내리던 비도 점차 그치고 어두컴컴하던 하늘도 동이 트고 있었다.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다. 뒤돌아서 구석에 갈무리해져 있는 담요와 물그릇. 그 위에 얹어 놓은 꽃 한 송이를 보다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저 남자에게 행복만이 가득하기를.

***

한참을 걷다 발견한 공원. 그 공원 안의 화장실에 들어가 있기로 했다.

힘들여 집에 찾아가도 문을 열 수 없어서 변기 커버 위에 올라가 사람으로 변하기를 기다린 것이 몇 시간째.

왜…?

어째서 사람으로 돌아가지 않지? 여태까지 이렇게 오래 걸린 적이 없었는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회식 자리에서 도망쳐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림잡아 계산해도 여섯 시간은 족히 지났을 터다. 그런데도 이렇게 변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나도 모르게 변기 커버를 앞발로 툭툭 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새로 들어온 인물이 화장실 칸을 하나씩 열기 시작했는지 끼익, 하는 낡은 경첩 소리가 이어졌다.

첫 번째 칸, 두 번째 칸, 세 번째 칸….

이내 내가 있는 옆 칸까지 열렸고, 마침내 화장실 안을 울리던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다.

긴장감에 숨을 흡 하고 들이마신 순간, 적막감이 감도는 화장실에 노크 소리가 울려 퍼지고 낡은 것 특유의 끼익 소리가 소름 끼치게 귓가에 꽂혀 왔다.

열리는 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건 공원 화장실 청소부 아주머니였다.

긴장이 풀려 도르륵 눈을 굴린 나와 눈이 마주친 청소부 아주머니는 이게 왜 여기 있냐는 듯이 황당한 얼굴을 하더니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엄마야, 개가 왜 여기 있어! 썩 꺼지지 못해?”

아주머니는 나를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대걸레로 위협하다가 점점 더 거칠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허공을 휘저으며 파공음을 내던 대걸레는 내 앞을 스쳐 지나가다 곧, 나에게로 거세게 내리쳐졌다.

나는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바닥으로 처박혔고 흐릿해지는 의식을 붙잡으며 아주머니를 피해 황급히 화장실 밖으로 도망쳤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를 만큼 하염없이 달려가다 멀리서부터 풍겨 오는 향긋한 냄새에 걸음을 멈췄다.

꼬르륵.

이 어이없고 황당한 상황에도 어김없이 배는 고파 왔다.

그 사실이 너무나 허탈하면서도 살아 있는 생명이라면 어쩔 수 없는 당연한 본능이라 위로하며 그 냄새가 풍겨 오는 곳으로 뛰어갔다.

‘무슨 냄새일까? 치킨? 김치찌개? 삼겹살?’

이때까지 살면서 이렇게 좋은 냄새는 맡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냄새의 근원지로 향하기 시작했는데 멀리 점처럼 보이던 것이 점점 가까워지고 냄새의 주인을 찾았다.

찾았긴 찾았는데….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건… 음식물쓰레기통이었다. 냄새에 혹해서 먹으려 해도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어디선가 불쑥 고개를 들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어떻게 음식물 쓰레기를 먹을 수가 있어?’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포기하고 돌아가려 마음먹고 뒤돌아선 순간 옆에서 틈을 노리고 있던 개가 슬그머니 다가와서 눈치를 보더니 쓰레기통으로 달려가 음식물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먹방을 보는 게 이런 느낌일까?

꿀꺽.

커다랗고 하얀 개 한 마리가 그저 음식물을 먹고 있을 뿐인데.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나도 모르게 군침을 삼키며 슬쩍 다가갔다.

호기심이 자존심을 누르고 본능에 이끌려 음식물에 다가가는 찰나, 섬광과도 같이 발을 뻗어 내 앞발을(손을) 치고 부리부리한 안광을 빛내며 나를 쳐다보는 개를 볼 수 있었다.

‘내 음식에 눈독 들이지 말고 꺼져.’

‘아 진짜… 그러지 말고 나 한 입만 맛보면 안 될까?’

나는 애절한 표정을 하며 다시 발을 뻗었는데, 갑자기 크르릉 소리와 함께 개가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내 목덜미에 박혔고, 몸싸움 끝에 나는 항복 의사로 꼬리를 만 채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힘없이 주위를 서성이는데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이러다 영영 사람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게 아닐까?

나는 언제까지 이 모습으로 지내야 하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터덜거리며 정처 없이 걷다 허기진 배와 상처로 인한 통증으로 인해 주저앉았다.

‘집에 가고 싶어.’

흐릿한 시야에 왠지 아까 전 보았던 상냥한 남자의 집이 보인 것만 같았다.

따뜻한 담요에 누워 잠드는 상상을 하던 순간.

다시 한번 시야가 암전되었다.

#Chapter 2. 행복할 수 있게 도와줄게

꿈을 꾸었다.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따뜻한 꿈이었던 것 같다.

깨어난 지금이 에일 듯이 춥게 느껴지는 것이 그 때문일까?

꼭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에 꿈속에서 느꼈던 따뜻함이 실려 날아가 버리는 것만 같았다.

쌀쌀함에 몸을 떨다 문득 정신을 잃기 전 보았던 풍경이 떠올랐다.

비에 젖어 떨고 있던 나에게 쉴 곳이 되어 주었던 집. 담요를 덮어 준 그 남자.

‘그 남자라면.’

그 상냥한 사람이라면 나를 받아 줄지도 몰라.

언제 사람으로 돌아갈지도 불확실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 남자에게 잘 보여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목표가 정해지자 어두웠던 앞날에 내가 나아가야 할 작은 불빛이 생긴 것 같았다.

‘두고 봐, 제발 자신과 같이 가자고 애원할 정도로 푹 빠지게 만들어 주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충실한 애완견 노릇이라도 마다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기억을 더듬어 그 남자의 집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남자가 주었던 담요에서 맡았던 냄새를 찾아 킁킁거리기를 몇 시간, 이 골목 저 골목을 지나 겨우 그 남자의 집을 찾아 문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자, 이제 어떻게 집에 들어간담… 밖에서 멍멍 짖어 볼까? 문을 긁어 볼까?

어떻게 하면 집주인을 밖으로 불러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찰나, 뒤에서 컹컹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본 곳에는 주인과 산책을 나왔는지 목줄에 묶여 있는 덩치 큰 핏불테리어가 날 보며 이를 드러내며 경계하고 있었다.

‘아니, 핏불테리어면 그 맹견 아닌가? 입마개는 어디 있지?’

입마개도 없이 산책을 나온 핏불테리어의 한 끼 식사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는 나는 얼음처럼 굳어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주인이라는 사람은 으르렁거리는 자기 집 개를 보며 “우리 토리 친구 만나서 좋아? 앞으로 자주 나와서 놀자.” 같은 한심한 말이나 늘어놓으며 이 상황이 개들의 사교 현장이라 믿는 분위기였다.

어찌할 바를 모르며 눈동자만 데구루루 굴리고 있던 순간, 그 남자가 나타났다.

“저기, 아주머니.”

나를 상냥하게 맞이해 주었던 남자가 싸늘하게 얼굴을 굳히고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저 강아지가 아주머니네 개 때문에 무서워서 얼어 있는 거 안 보이십니까?”

‘맞아 당신네 개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알아? 저 근육 좀 보라고!’

“우리 토리가 친구 만난 게 반가워서 그런 건데 왜 호들갑이람. 원래 개들은 다 이러고 친해지는 거야!”

“제가 알기로는 핏불테리어는 입마개를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니, 우리 애가 얼마나 순한데 입마개를 씌워야 한다고 그래!”

허 참, 우리 ‘애’? 순해?

애라고 지칭하기에는 너무 크고 험악하게 생긴 아주머니의 ‘토리’를 보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개가 순하고 순하지 않고를 떠나서 사람이나 동물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핏불테리어 같은 종은 반드시 입마개를 착용시켜야 합니다. 아주머니가 인정하지 못하신다면 경찰을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남자의 일침을 끝으로 개 주인아주머니는 우리 아이가 그럴 리가 없다며 윽박지르며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잘한다, 잘한다!’

사람이었다면 대화 사이사이에 끼어들어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개의 입으로는 사람처럼 말을 할 수가 없어 그저 속으로만 남자를 응원해 줄 수밖에 없었다.

또 이 상냥한 남자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내게 위협을 가했던 개는 사라졌지만, 아직 두려움이 가시지 않아 오들오들 떨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는데 그런 나를 보며 남자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