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잘것없지 않아요

그래, 이건 아주 오래전 일이야.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하델리움의 수도 테오란에는 많은 사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붉은 머리 아가씨가 있었어.

이 아가씨가 가는 곳엔 언제나 매혹적인 꽃향기가 흘렀고, 그 뒤를 수많은 사내가 뒤따르곤 했지.

그러던 어느 날, 이 아가씨의 마음을 차지한 사내가 나타났는데, 그건 바로 제국의 하나뿐인 황태자였어.

시간이 흘러 둘은 결혼을 약속했고, 그녀는 그를 너무 사랑하는 마음에 용기를 내어 자신의 비밀 하나를 알려 줬지.

그리고 그 비밀을 들은 황태자는 바로 그녀를 떠나며 결혼 약속을 취소했는데,

이유는 간단했어.

사실 그녀는,

온 제국민이 두려워하는 마녀였거든.

황태자는 아가씨의 비밀을 알고 난 후 모든 제국민들 앞에서 그녀의 정체를 폭로했고, 그녀의 부모는 마녀를 감춰 뒀다는 이유로 바로 사형에 처해졌어.

그리고 충격을 받은 아가씨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제국에서 모습을 감췄단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곧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고, 황제로 즉위한 그는 다른 여인과 결혼해 아이를 가지게 되었어.

그렇게 아이가 태어나기 며칠 전, 그는 꿈을 꾸었지.

[당신은 결국, 나를 이렇게 만드는구나.]

오랜만에 보는 얼굴과 목소리였지만 그는 단번에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었어.

[나는 당신을 용서하지 않아. 이 제국은 앞으로 네 후손에 후손까지, 서서히 망가져 갈 거야. 모든 것은 오로지 당신의 죄 때문이니, 이 저주를 풀고 싶다면 곧 태어날 네 후손의 심장을 제단에 바치도록 해.]

그가 소름 끼치는 마녀의 꿈에서 깼을 땐 이미 온몸이 얼어붙어 덜덜 떨리고 있었어.

하지만 결코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지 않았던 그는 황태자가 태어난 날 같이 태어난 다른 아이의 심장을 대신 제단에 바쳤지.

어때, 결과가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아?

당연히 예상한 대로 그는 저주를 풀 수 없었어.

뿐만 아니라 그는 마녀의 경고를 무시해 버린 대가로 정확히 5년 후에 황후와 함께 의문사했고, 혼자 남은 어린 황태자가 황제로 즉위하게 된 이 제국엔 그야말로 혼돈의 시대가 찾아왔지.

그리고 그렇게, 어딘가에서 제국의 모습을 지켜보던 붉은 머리의 마녀는 자신의 머리칼보다도 더 붉은 입술을 끌어 올리며 웃었어.

거봐.

결국,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건 당신이었는데,

당신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이 제국은 앞으로도 혼란의 시대에 살겠구나.

***

“아무래도 아르가 또 그곳을 간 것 같아요, 아버지.”

인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바다 아래 깊은 곳,

영롱한 푸른빛의 머리칼을 가진 해왕 미켈리오는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흐음, 아르벨을 닮아 그런지, 우리 막내 정령님은 항상 호기심이 넘치는구나.”

미소 짓는 그의 앞으로 동글동글한 물고기들이 춤을 추듯 멀어져갔다.

“그래서 제가 지금 데려올까 하는데.”

“……아니, 그냥 두어라. 이제야 좀 생기가 도는 듯하니.”

미켈리오는 자신을 똑 닮아 진한 푸른색을 띠는 라이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저…… 해왕님, 송구하오나 공주님을 그리 두셔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근래 들어 베요르 언덕에 자주 가시는 것 같은데 그러다 그들에게 물들기라도 하시면…….”

“괜찮네. 난 우리 아르멜리아가 조금 더 넓은 세상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 있거든. 그러니 그런 사랑스러운 정령님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펠로스는 이 루아힐 왕국, 그러니까 오랜 시간 동안 이 바다의 모든 것을 지켜온 해왕 미켈리오의 듬직한 모습을 항상 존경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가 종종 아르멜리아와 관련된 일들에 판단력이 흐려질 때면, 충신으로서 염려될 수밖에 없었다.

“외람된 말이지만 해왕님. 막내 공주님은 여왕님의 기운을 가장 짙게 이고 태어나신 만큼 더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러니 그때까지라도…….”

“그만.”

미켈리오의 푸른 청안이 가벼운 이채를 띠며 펠로스를 향했다.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펠로스.”

“…….”

“그보다 어제 못다 한 북쪽 해 이야기나 다시 해보는 게 어떤가.”

“……해왕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저도 별수 없군요. 공주님 이야기는 그만하겠습니다.”

체념한 듯 입을 다무는 펠로스를 보며, 미켈리오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말래도. 정말 아무 일 없을 걸세.”

***

“오늘 모임은 해산이라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루아힐 왕국의 변두리, 베요르 언덕에서는 길고 긴 바다 정령의 생활을 지겨워하며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모임이 정기적으로 열렸다.

그리고 여기, 아주 우연히 그런 모임이 있단 걸 알게 된 아르멜리아는 아버지와 오빠들의 만류에도 끝끝내 이곳을 찾아오고야 말았다.

“아까 하셨던 그 이야기, 다시 듣고 싶어요!”

사랑스러운 물빛 눈동자가 보석을 뿌려 놓은 듯 어두운 언덕을 환하게 비췄다.

“……흐음? 어떤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거죠, 공주님?”

“여기 루아힐 왕국에서 키우는 브리톤 꽃이 일곱 번 피고 질 만큼 꼬박 헤엄쳐 가면,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 나온다고 하셨잖아요!”

또박또박 뱉는 목소리가 주변을 울림에 이 모임의 주도자 트리샤는 꽤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아, 그 이야기 말이군요. 이건 얼마 전에 들은 거지만, 그들의 모습은 저희랑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공주님.”

“……응? 생김새가 다르다는 말인가요?”

“그렇다고 합니다. 그들은 저희 같은 지느러미가 아닌, 발이란 신체로 땅을 걸어 다니며,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는 건 물론 모습 또한 저희보다 월등히 보잘것없다 하더군요.”

“……월등히…… 보잘것없다니요?”

“그들과 말을 섞게 되면 더는 정령 생활을 못 할 만큼 타락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니, 그들이 어떤 존재들인지 조금은 아실 것 같지 않나요?”

“으음…….”

아르멜리아는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트리샤는 꼬물거리는 푸른 머리칼에 손을 뻗으러 다가섰다.

“하지만 그건 조금 이상해요, 트리샤.”

“…….”

맹랑한 물빛 눈동자를 마주한 그녀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무슨 말씀이시죠, 공주님?”

“우린 아직, 그들 모두를 겪어 보지 못했잖아요.”

“……겪어 보지 못해도 알 수 있는 게 있지 않나요?”

“그렇지 않아요. 내 어머니께선 어떤 것이든 겪어 보지 않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트리샤는 잠시 눈앞에 있는 이 순진하고 아름다운 정령을 응시했다.

그녀를 비추는 금안에는 이 세상 모든 것들에 초연한 슬픔이 어렸지만, 어느새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이런, 공주님께서는 제 생각보다도 무척 사랑스러운 분이셨군요. 그럼 공주님. 제가 공주님의 궁금증을 풀어 드릴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아르멜리아의 눈동자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며 빛나기 시작했다.

“저는 공주님께서 닿고 싶어 하는 그곳으로 안내해 드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 거짓말이죠?”

“거짓말일까요? 감히 해왕 미켈리오 님의 하나뿐인 따님에게 어떤 정신 나간 이가 이런 거짓말을 할까요.”

두근두근.

그녀의 작은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간다.

정말 그런 게 가능하다면…….

인간을 만나 볼 수 있다면…… 그런 거라면.

‘……어머니를 깨울 수 있어!’

[그러니까, 어머니가 도와준 그 저주받은 인간 남자의 심장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자신이 왕궁으로 일찍 돌아온 날,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이 몰래 나누던 그 이야기를.

[그 인간, 듣기로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것 같던데…….]

‘어머니가 구해 준 인간이 정말로 나쁜 인간이라면, 그 심장, 내가 가져와도 되지 않을까?’

작은 입술을 굳게 다물던 그녀의 눈동자가 이채를 띠며 트리샤에게 향했다.

“트리샤, 나 그곳으로 갈래요! 인간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가게 해줘요!”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응, 괜찮아요! 내가 꼭 확인해야 할 게 있거든요!”

“그렇지만 해왕님과 왕자님들께서는 그러지 않길 바라실 텐데요.”

“그래도 난 결심했어요. 가고 싶어요!”

가서,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요.

정말로 그 인간이 나쁜 인간이라면, 어머니의 영면을 의미 없게 만든 게 너무 괘씸하니까.

절대로 용서하고 싶지 않아요.

“……좋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그곳으로 가시겠습니까?”

“응, 그럴게요. 어차피 어머니를 깨우기 위해 가는 거니까 아버지와 오라버니들도 이해해 줄 거예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공주님께서 인간 세상에서 겪게 되시는 모든 경험과 선택에는 그에 따른 책임이 있음을 반드시 명심하셔야 합니다.”

“알겠어요, 트리샤. 명심할게요. 나 이제 어떻게 가면 되는 거예요?”

아르멜리아의 물음에 트리샤는 눈짓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기 시작했다.

“공주님, 혹시 저기 있는 달고래가 보이십니까.”

트리샤가 가리킨 곳에는 온몸을 빛으로 두른 커다란 달고래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어? 남쪽 바다의 수호신님! 분명히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제가 우리 귀여우신 공주님을 위해 불렀습니다. 인간들의 시간으로 100년에 한 번 정도 볼 수 있는 귀한 존재죠.”

“와아…….”

“자, 공주님, 그럼 지금부터 저 달고래를 잡고 계시면 제가 인간 세상으로 보내드리죠.”

“정말요? 그렇게 간단히요?”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잡으세요. 해왕님이 오시고 계십니다.”

“아버지가요? 알겠어요! 있죠, 트리샤! 어머니가 깨어나면 우리 꼭 다시 만나요! 틀림없이 어머니도 트리샤에게 고마워할 거예요! 그럼 나 다녀올게요!”

아르멜리아는 바로 위를 지나가는 달고래에게 다가가 그 반짝이는 등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그러자 달고래는 기다렸단 듯 매우 빠른 속도로 바다 위를 향하며, 곧 트리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공주님께서 다시 돌아오시게 될 때까지 제 목숨이 온전히 붙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그렇게 공주님에겐 들리지 않을 말을 뱉던 순간, 예상했던 상황이 닥치며 그녀는 천천히 뒤를 돌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해왕님.”

여유 있게 예를 갖추는 트리샤에게 미켈리오는 푸른 청안을 어둡게 빛내며 경고하듯 말했다.

“난 너 같은 이를 모른다. 아르의 기운이 빠르게 멀어지기에 와봤는데, 정말 인간 세상에라도 보낸 건가.”

“저는 그저, 우리 귀여운 공주님의 호기심을 풀어 드리고자 도움을 드렸을 뿐입니다.”

표정을 굳히던 미켈리오는 물결을 거세게 휘감으며 위로 향할 준비를 했다.

“……우선, 아르를 데려오고 나서 그때 널 제대로 벌하도록 하지.”

사실 미켈리오는 지금 이 상황에 단단히 화가 나는 중이었다.

어여쁜 딸의 기분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상황이 반가워, 잠시 판단력이 흐려졌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소용없을 겁니다, 해왕님.”

“……!”

“아시겠지만, 제가 평범한 정령이 아닌 덕분에 공주님께선 지금쯤이면 인간 세상에 도착하셨을 겁니다.”

“…….”

“그러니 해왕님께선 그저 공주님이 원하는 답을 가지고 올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건 아무리 해왕님이라 하셔도 절대 막지 못하십니다.”

부드드득.

미켈리오의 주변을 맴돌던 강한 파동이 날카로운 창들로 변하며 트리샤의 목을 조였다.

“……넌 누구지?”

해왕 미켈리오의 화난 모습을 마주한 트리샤는 살짝 놀란 듯했지만, 잠시 후 그녀는 그 붉은 입꼬리를 스르륵 올렸다.

“지금 당장 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이것 하나는 약속드리죠. 공주님께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실 겁니다.”

“난 당장에라도 널 이 세상에서 멸할 수 있지만, 아르를 위해 참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니 주제넘은 건방진 말 대신 내가 원하는 답을 내놔.”

위압적인 미켈리오의 말과 동시에 굉장히 날카로운 물결이 트리샤 주변을 빠르게 휘감기 시작했다.

“……절 믿지 않으신다 해도 이미 모든 것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해왕님께선 공주님을 따라가셔 봤자 이 흐름을 늦추는 일밖에 되지 않을 테니,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잠시 후, 트리샤를 감고 있던 물결이 서서히 느려지며 트리샤의 목을 향한 창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미켈리오, 난 우리 아르가 더 많은 세상을 겪어 봤으면 좋겠어요. 분명히 이 지루한 바다와는 다른, 아주 멋진 경험일 거야.]

“……아르가 무사히 돌아오는 게 확실한 건가.”

“네. 확실합니다. 공주님께서는 분명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실 겁니다. 그러니 언제가 됐든 공주님을 믿고 기다려 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마 제가 드린 선물 정도면 공주님께서도 인간 세상에 적응하시는 데 어렵지 않으실 겁니다.”

“선물이라니.”

“별건 아닙니다. 공주님께서 인간들을 상대하셔야 하니, 같은 조건에서 시작하실 수 있도록 작은 축복을 담아 드렸을 뿐입니다.”

트리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잔존해 있던 물보라들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왔지만, 미켈리오는 방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거운 기운으로 그녀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네 말을 믿어 보겠지만, 만약 아르에게 무슨 일이 생기게 된다면 그땐 네가 어떤 존재든 상관없이 널 멸할 것이다.]

그러자 듣고 있던 트리샤는 제법 매력적으로 눈가를 휘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해왕님.”

***

“……뜨거워…… 내 몸이 왜 이러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달고래를 잡고 올라가던 아르멜리아는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온몸에 열이 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온몸이 뜨겁고 숨이 가빠! 아직 인간 세상에 도착하려면 한참 더 올라가야 할 텐데…….’

점점 흐릿해지는 주변을 힘겹게 둘러보던 아르멜리아는, 순간 달고래의 움직임이 갑자기 느려진 것을 느꼈다.

“……어? 수호신님? 아직 가려면 멀었는데…….”

아르멜리아의 물음에도 달고래는 아무 답 없이 움직임을 멈췄고, 곧바로 아르멜리아를 힘껏 던져 버렸다.

“수호…… 꺄아아악!”

거친 물보라들이 아르멜리아의 주변을 휘감으며 매우 빠르게 스쳐 갔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오로지 가쁜 호흡 소리만 남겨지던 순간, 어렴풋이 자신이 어딘가를 향해 오르고 있단 사실에 아르멜리아는 기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와아, 나…… 정말 인간 세상으로 가는 건가 봐!’

아르멜리아는 생전 느껴 보지 못했던 속도로 바다 위를 향해 올라가며 어느새 바다 위 세상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단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뜨거웠던 몸이 점점 더 뜨거워지며 견딜 수 없을 만큼 어지러움을 느끼던 그때.

첨벙.

“꺄아아아악!”

물 위로 솟아오르며 모래밭에 던져졌다.

“으윽, 퉤퉤. 아파라…….”

그녀는 모래밭에 떨어지며 부딪친 곳을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 문질렀고, 한참을 문지르던 순간 자신의 눈에 띈 어색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 이…… 이게…… 뭐야?”

반짝이는 비늘로 뒤덮인 지느러미 대신 하얀 다리와 작은 발가락이 자리하고 있음에, 아르멜리아는 깜짝 놀라 두 손으로 만져 보기 시작했다.

새하얀 모래가 묻어 있는 다리는 매끄러웠고, 자신의 의지대로 꼬물거리는 발가락은 너무나도 신기했다.

“어…… 내, 내 지느러미가 사라졌잖아? 이게 도대체 어떻게…….”

그때였다.

아르멜리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살펴보던 도중, 갑자기 그녀의 맨몸이 머리칼과 똑같은 푸른빛의 원피스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어어? 인간들은 몸에 이런 걸 두르는 건가? 으윽, 다…… 답답해!”

양손에 원피스 자락을 쥐고 힘을 주어 당겨 보지만, 원피스는 마치 자신에게 붙어 있던 비늘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너무 답답한데…… 아,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아르멜리아는 비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으아악!”

하지만 맨다리로 걷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던 그녀는 일어나자마자 계속해서 주저앉음을 반복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