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방 내기
동백이 수줍은 여인의 치맛자락처럼 풍성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이젠 제법 여인으로서의 모습을 띤 얼굴을 다온은 거울에 비춰 보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뜻을 꺾지 않고 곧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 항상 단정하고 우아한 기품을 유지할 것.
여인이라 하여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고 다방면에서 미인이 될 것.
다온은 정1품의 도제조 대감인 아버지를 어릴 적부터 바라보며 자란 터라 아버지의 행동 하나하나를 배우고 자연스럽게 서책을 가까이했다.
덕분에 오라버니나 남동생보다도 뛰어난 학식을 자랑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그 학식을 숨기고 억누르며 지내고 있다.
여느 여인이라면 얼굴에 분칠하고 자신을 꾸미기에 바쁘겠지만 다온은 그런 것보다도 서책의 종이 냄새에 더한 매력을 느꼈다.
오늘도 어김없이 다온은 서책을 읽는 데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가씨, 일어나 계십니까?”
문 너머로 몸종 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온은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장지문 너머로 눈을 돌렸다.
“깨어 있다.”
“또 서책을 읽고 계시는 거지요?”
다온이 읽던 서책을 치마폭 아래로 숨겼다.
“아니다. 이제 일어난 참이야. 무슨 일이 있니?”
“도제조 대감 어르신께서 부르십니다.”
“아버지께서?”
‘아버지께서 왜 날 찾으시지?’
다온이 차분히 집안의 작고 큰 행사의 날짜들을 꼽았다.
하지만 이번 달에는 그녀를 찾을만한 집안 행사도 없었다.
아버지의 부름을 받으면 다온은 걱정부터 앞섰다.
‘혹시 자수를 놓는 시간에 몰래 서책을 봤다는 걸 들켰나?’
다온은 자수 수업 시간에 수업을 받는 규수들의 뒤에 숨어 서책을 읽었던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건 들키지 않았으니 문제가 없을 텐데…. 그게 아니면…. 서책을 숨겨 둔 걸 들켰나?’
“별이야, 혹시 내가 없는 동안 아버지께서 내 방에 다녀가신 적이 있니?”
“아니요. 없습니다. 그랬다면 벌써 난리가 났겠지요. 아가씨가 서책을 곳곳에 숨겨 두시지 않으셨습니까?”
생각하기만 해도 손이 떨린다는 듯 별이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렸다.
‘그럼 그것도 아니라는 건데….’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다온이 여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은 뒷전으로 미루고 서책에 혼을 빼며 지내는 것을 아는 아버지는 그녀에게 서책을 읽는 것을 금하라 명하셨다.
하지만 다온은 아버지 몰래 이불 밑에 숨겨 둔 서책을 읽고 또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잊을 만큼 그녀는 책 읽기를 좋아했다.
‘아버지께서 무슨 일로 나를 부르는지 알지 못하겠으니 일단은 아버지를 만나 보는 게 좋겠어.’
생각보다 아무런 일도 아닐지 몰랐다.
‘혹여 들킨다고 해도 난 서책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다온은 이참에 서책을 더 읽고 학문을 배우고 싶다는 뜻을 확실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별아, 채비하고 나가도록 하자.”
“예, 갈아입을 옷을 준비하겠습니다.”
기다란 머리카락을 빗어내 머리를 곱게 땋은 다온이 반듯한 차림새로 아버지, 도제조 대감이 있는 곳으로 걸음 했다.
“아버님, 다온이 왔습니다.”
“왔구나! 어서 안으로 들어오거라.”
“예.”
문이 열리고 다온이 도제조 대감의 방에 들어섰다.
샛노란 저고리에 금수가 박힌 선홍빛 치마를 입은 모습이 한 떨기 아름다운 꽃을 연상하게 했다.
한 마디 한 마디 내뱉는 목소리가 옥구슬이 쟁반에 굴러가는 소리와 같이 맑고 청아하니 듣는 이를 즐겁게 했다.
도제조 대감은 그런 딸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다온은 나비처럼 사뿐한 걸음으로 걸어 들어와 도제조 대감의 앞에 살포시 앉았다.
“아버지, 간밤에 평안하셨습니까?”
“그래! 우리 딸이 이렇게 어여쁘게 자라 주니 평안하지. 평안하고말고.”
딸의 문안 인사에 엄한 인상의 도제조 대감이 선하게 웃었다.
아버지의 웃음에 다온도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이 좋으신 걸 보니 서책 때문에 날 부르신 건 아닌 것 같아.’
다온은 조금이나마 불안한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홀가분한 그녀와 달리 도제조 대감은 생각이 많아 보였다.
‘금지옥엽 키운 내 딸을 어떻게 보낼꼬? 아직 내 눈에는 이렇게 어린데.’
도제조 대감은 어느새 나이가 찬 딸을 보며 감상에 젖었다.
한동안 말없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그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오늘 이렇게 너를 부른 것은 너에게 전할 중대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중대한 이야기요? 그 이야기란 것이 무엇입니까?”
도제조 대감이 말을 꺼내기를 망설였다.
‘아버지께서 뜸을 들이시는 걸 보면 가벼운 문제는 아닌 듯한데.’
침묵이 길어질수록 다온의 호기심은 증폭되어 갔다.
도제조 대감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하다가 말을 이어 갔다.
“혹시 영의정 대감의 아들, 민윤성 도령. 그자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있느냐?”
‘민윤성 도령이 누구지?’
완전히 처음 듣는 이름은 아닌 것 같지만, 다온은 아는 바가 없었다.
“아니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이름은 다온에게 별다른 흥미를 끌지 못했다.
“영의정 대감의 아들 민윤성 도령을 모른단 말이냐?”
다온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내 딸이 사내에게 무심한 줄은 알았어도 이 정도로 관심이 없을 줄은 몰랐다.’
도제조 대감은 그마저도 다온답다고 생각했다.
“여인들이 그렇게 좋아 죽는다는 꽃품도 중 한 명이….”
민윤성 도령에 관해 설명하려던 도제조 대감이 지루함에 하품을 참고 있는 다온을 발견하고 입을 다물었다.
‘설명한다고 해도 먹히질 않는 눈치이니….’
이성에게 눈을 뜰 시기도 되었는데도 서책에만 관심을 보이는 딸 때문에 도제조 대감의 근심이 깊어졌다.
“큼, 어쨌든 간에 그 풍채가 뛰어나고 사내다운 용모를 가졌으며 학식 또한 뛰어나 주상께서도 눈여겨보고 계시는 인재다.”
도제조 대감은 다온의 관심을 끌기 위해 민윤성 도령에 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렇군요.”
하지만 이 무심하디 무심한 딸내미 김다온은 그 사람이 그렇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냐는 얼굴로 도제조 대감을 쳐다보고 있었다.
도제조 대감의 한숨이 전보다 깊어졌다.
‘이대로는 안 된다. 내 딸을 평생 혼자 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아?’
제 딸이 홀로 살다가 죽어 그 자리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한 도제조 대감은 끔찍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더라도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돼! 우리 다온이를 좋은 사내와 짝을 맺어주어 평생 웃으며 살게 할 것이다.’
도제조 대감은 제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 이 자리를 지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민윤성 도령이라면 다온이의 눈에 들지도 모른다.’
적어도 도제조 대감이 아는 청년 중에는 제일 건실했다.
어디 건실하기만 한가?
두뇌도 명석해서 어릴 때부터 수재라는 말을 들은 데다 외모도 수려해서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다시금 자신만만해진 도제조 대감의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책방은 언제쯤 다시 갈 수 있을까? 아버지가 외출하셨을 때가 가장 안전한데.’
전혀 관심 없는 이야기가 계속되자 다온은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듣고 있었다.
“그 영의정 대감의 아들, 민윤성 도령과 너를 혼인시키기로 하였다.”
“네. 그렇군요. 혼인이라.”
형식적으로 답한 다온이 다시금 도제조 대감이 한 말을 되새겼다.
‘방금 혼인한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아버지, 조금 전 제게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민윤성 도령과 너를 혼인시키겠다고 했다.”
다온이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민윤성 도령이 누군데? 왜 나랑 혼인하는데?’
“혼인이라니요? 지금 제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다온 때문에 도제조 대감은 덩달아 펄쩍 뛰며 놀랐다.
“혼인을 하는 게 그리 놀랄 일이냐? 너도 어엿하게 자라 혼기가 찼으니 제 짝을 만나는 것이 법도이지 않으냐?”
“아버지, 그렇지만 저는 아직 혼인할 생각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얼굴도 모르는 이와의 혼인이라니요? 저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혼인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온이 확고하게 혼담을 거절했다.
화가 난 듯한 다온의 모습에 도제조 대감이 그녀를 살살 달랬다.
“다온아. 지금 당장 혼인하라는 것이 아니다. 네가 스무 살이 되는 해에 혼인을 치르기로 약속한 것이다. 그때가 되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아버지! 저는 분명히 뜻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민윤성 도령을 사윗감으로 탐내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너도 만나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그럼 아버지께서 민윤성 도령이란 자를 탐내는 사람들에게 그 자리를 양보해 주시면 되겠군요. 왜 아버지께서 누누이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베풀며 덕을 쌓으면 복으로 돌아오는 거라고요.”
‘누굴 닮아 머리가 좋은지.’
도제조 대감이 차를 마시며 흘리듯이 한 이야기를 다온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써먹었다.
그는 영특한 딸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난처했다.
‘뭔가 다온이의 마음을 흔들 수 있을 만한 좋은 구실이 없을까?’
조용히 머리를 굴리던 도제조 대감에게 다온이 솔깃할 만한 제안이 떠올랐다.
“좋다. 네가 혼담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은 잘 알았다. 하지만 혼인이 네게 나쁜 일만은 아니다.”
“좋을 것은 또 뭐가 있습니까? 혼인을 하면 시어머니에게 붙잡혀서 시집살이에 시달리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고생하기를 바라십니까?”
다온도 혼인이 영영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르게 혼인해서 좋을 건 없다고 생각했다.
마을에 나가면 아낙네들이 빨래터에 모여 한탄하는 말들을 종종 들었기 때문이었다.
[혼인하기 전에는 간이며 쓸개며 다 내줄 듯이 굴더니! 혼인하고 나니 내가 언제 그랬냐며 시치미를 떼더라니까?]
[사내들은 입만 열면 거짓을 말하지. 서방만 믿고 시집온 여자들만 시어머니 등쌀에 죽어나는 거 아니겠어?]
“내가 어찌 너를 불행하게 하려고 혼인을 시키려고 하겠느냐? 너를 시집보낼 때 예물도 산더미만큼 싸서 보낼 생각이고 몸종들도 여럿 붙일 것이니 네가 고생할 일은 없다. 이런 이야기를 내가 해도 될까 싶지만, 영의정 대감의 안사람은 윤성 도령을 낳으면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영의정 대감도 심성이 좋으니 널 딸처럼 아껴 주실 것이야.”
“아버지께서 절 이미 아껴 주시고 계시니 충분합니다.”
“그건 맞지. 옳….”
도제조 대감은 사랑스러운 딸의 말에 하마터면 현혹될 뻔했다.
‘다온이가 이렇게 싫어하니 혼담은 취소하도록 할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보다 좋은 혼처를 찾기 어려울 텐데.’
무엇보다 영의정 대감은 올곧은 생각을 가진 사돈과 민윤성 도령처럼 바른 사위를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딸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내가 흔들리면 안 된다. 나에게는 비장의 수가 남아 있으니.’
도제조 대감은 비장의 수를 꺼내 들기로 했다.
“아버지도 제 말이 옳다고 하셨으니 혼담 이야기는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아직 결정을 내리기에는 섣부르다. 내 말을 끝까지 듣고도 네가 혼담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나도 말리지 않으마.”
자리를 뜨려는 다온을 도제조 대감이 붙잡았다.
‘뭐, 들어 보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
다온이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차피 도제조 대감의 말을 듣고 거절하면 그만이었다.
“예, 아직도 남은 것이 더 있습니까?”
“그렇다. 네가 이 혼담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네가 좋아하는 서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서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고?’
심드렁하던 다온의 눈이 서책이라는 말에 번쩍 뜨였다.
‘반응이 오는 것 같군.’
눈에 띄게 관심을 보이는 다온을 지켜보던 도제조 대감이 남몰래 미소 지었다.
“그래. 민윤성 도령은 여인이라고 해서 글을 멀리하라고 하는 고리타분한 자가 아니다. 그도 너 못지않게 서책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그러니 네가 서책을 읽기 위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이 혼인을 받아들이면 숨지 않아도 서책을 읽을 수 있다는 말인가?’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다온의 마음이 마른 풀처럼 흔들렸다.
‘혼인을 하게 되면 책방에 몰래 가지 않아도 되고 책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 영의정 대감도 심성이 좋은 분이라고 했으니 시집살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고. 내게도 꽤 나쁘지 않은 제안이잖아?’
다온의 마음이 민윤성 도령과의 혼담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그때, 큰소리와 함께 도제조 대감 방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덩치가 커다란 사내 두 명이 쏟아져 들어와 넙죽 엎드렸다.
“아버지! 안 될 이야기입니다! 우리 다온이가 혼인이라니요? 시집을 가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널찍한 어깨와 쌍꺼풀이 없는 큰 눈.
글공부에는 큰 소질이 없지만, 무예에는 남다른 재능을 보이는 김차현 도령.
그는 다온과 두 살 터울이 나는 오라버니였다.
“그것도 딱딱하기로는 바위나 다름이 없는 돌부처 윤성사형에게 시집을 보내다니요! 저는 절대 반대입니다. 그 사형에게 시집을 갔다가는 우리 누이가 망부석이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막내지만 커다란 키에 다온을 닮아 토끼같이 선한 얼굴을 한 사내는 김무열 도령.
어리광 많은 다온보다 두 살 아래 남동생이었다.
“어허! 이 녀석들이! 누가 예도 갖추지 않고 제멋대로 아비의 방에 들이닥친다는 말이냐? 들쥐들도 아니고 숨어서 말을 엿듣기나 하고!”
도제조 대감이 제 아들들에게 호통을 쳤다.
하지만 그들은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듯 엎드린 몸을 일으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예도 갖출 수 있을 때 갖추는 것이지요! 하나뿐인 여동생이 돌덩이에게 시집을 가게 생겼는데 들이닥치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도제조 대감의 타박에도 차현은 꿋꿋이 다온의 혼담을 반대하고 나섰다.
겨우 다온의 마음을 움직여 놓았더니 아들들이 나타나 훼방을 놓았다.
도제조 대감은 뒷덜미가 뻐근해지는 것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민윤성 도령은 너희들과도 의가 깊은 친우 사이가 아니었느냐? 그러니 그가 얼마나 바른 사내인지도 잘 알 텐데? 이렇게 반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도제조 대감은 그들이 다온의 혼담에 훼방을 놓는 이유를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께서 민윤성 도령을 온전히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아버지의 말대로 저와 무열이는 민윤성 도령과 오랜 친우 사이지요. 그러니까 누구보다 민윤성 도령에 대해 잘 압니다. 민윤성 도령은 의리가 있고 대나무처럼 곧은 사람이기는 하나 여인에게 관심이라고는 없고 서책만 껴안고 산다는 말입니다.”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팍을 치는 차현의 말을 무열이 뒤이었다.
“형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민윤성사형과 누님이 혼인한다면 누님은 평생토록 사랑받지 못하고 독수공방하는 불운의 여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영의정 대감이 아들이 지나치게 여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걱정이라고 했던 적이 있었지. 사실 내 딸도 같은 상황이긴 하다만.’
둘 다 서로에게 관심이 없으면 행복한 가정이 만들어지기 어려웠다.
‘아무리 괜찮은 사윗감이라고 해도 내 딸이 행복하지 않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지.’
두 아들의 설득에 도제조 대감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말을 들어 보니 일리가 있다. 혼담 상대와 집안이 좋다고 해서 우리 다온에게도 좋다는 법은 없지. 나도 내 딸이 사랑받지 못하는 혼담을 원하지 않는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아버지! 우리 누님은 누님만을 영원히 사랑해 줄 사내에게 시집을 가는 것이 맞습니다. 그 사내를 찾기 전까지는 절대로 누님을 내주지 않을 겁니다.”
도제조 대감이 혼담에 뜻을 굽히자 무열이 옳다구나 하고 맞장구를 쳤다.
“너희들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나도 이 혼인에 대해서 다시 논해 보도록 하마. 그러니 너희들도 이만 고개를 들어라. 누가 볼까 두렵구나.”
도제조 대감이 혼담을 취소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겠다는 듯 드러누운 두 아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아버지께서는 현명하십니다!”
원하는 답을 얻어낸 무열이 환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야 주변을 의식한 듯 차현은 활짝 열린 방문을 닫았다.
모두가 만족스러운 상황에 한 사람만이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바로 다온이었다.
미리보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