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녀들을 감히 꽃에 비유할 수 있을까. 한없이 아름답고, 한없이 우아하다.

철저하게 틀이 갖춰진 이곳에서 꿈보다는 현실. 최선이 아니라면 버리는 것도 과감하기만 하다. 오직 의무에 대한 의지로 스스로 발을 들이거나, 혹은 권유를 받고 고이 모셔지거나.

이 아가씨들의 인생이란, 반려자의 곁에 나란히 서서 동등하게 견제와 협력을 동시에 하는 어쩌면 모순된 것.

어디에 내놔도 빠질 곳 없는 몸짓. 말투. 지식의 그 자체.

어떤 말로 찬사를 보내도 부족한, 어쩌면 서로의 존재를 드러내며 싸워 나가는 전사라고 해도 좋겠지. 예쁜 꽃이 아니다. 그녀들은 그들의 나무. 그들의 뿌리. 그들의 반쪽.

“그러니까, 이런 학교에 내 신부가 있다는 말이야?”

솔현은 푹신한 소파에 등을 기대고 눕듯이 앉아 있었다. 큰 키에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체형임에도 길고 커다란 소파 위의 그는 온통 비싼 것들을 걸친 몸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편안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나이 든 굳은 표정의 남자가 눈앞에 서 있는 데도.

“예. 도련님.”

“아아, 따분하기는. 이럴 때 보면 난 괜히 재벌 집에 태어난 것 같아. 그렇지 않아?”

“회장님과 사장님 이하 일가친척의 동의하에 선택된 분입니다.”

앞에 선 서 집사는 어린아이처럼 불만을 드러내는 갓 대학에 입학한 이 도련님에게 오로지 해야 할 말만 할 뿐 그 외에는 어떤 투정도 용납하지 않고 쓸데없는 물음에 답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 여자애 이름이?”

“이브 윤. 올해 열일곱 살이 되셨죠.”

“어차피 결혼식은 적어도 그 애 스무 살이나 넘어야 할 거고. 난 갓 대학 입학한 파릇한 청년인데, 연애도 내 맘대로 못하겠네?”

솔현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연애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상식도 있는 사람이고, 어린아이에게는 더더욱 관심도 없었다. 세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해도, 어찌 되었든 성인과 미성년 아닌가.

“정략이라는 것이 이런 점이 난 참 싫어. 서 집사.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저는 회장님의 말씀은 모두 전달해 드렸습니다. 그분에 대해 더 궁금한 부분은 없으신지요.”

“없어. 나가 봐.”

서 집사는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나갔다. 솔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늘 딱딱한 태도로 일관하는 서 집사가 두고 간 그녀의 프로필을 들어 흘낏 보았다.

하얀 피부에 전체적으로 가녀려 보이는 인상. 165cm/47kg.

“뭐 이렇게 말랐어? 잘 좀 먹어야겠네.”

상일 기업의 입양아. 다섯 살에 영국에서 한국으로 온 기록. 긴 머리카락을 단정히 묶고 있는 모습에, 연한 갈색 눈동자는 속을 알 수 없이 무표정하게 보였다.

“인생이 어지간히 어릴 적부터 꼬인 애네. 그런데 상일 기업이면 중소기업 아닌가? 탄탄하기는 하지만 우리 집안에 비해 많이 빠지는데…….”

그는 무엇인가 계산을 하는 듯한 표정으로 자세하게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만나러 가야겠군.”

***

2개월 전.

“이브야, 아버지 왔다.”

“잘 다녀오셨어요?”

길게 기른 머리를 단정하게 하나로 올려 묶은 이브가 현관으로 나와 아버지를 맞았다. 어머니는 출장 중으로, 집안일을 해주는 아주머니가 퇴근한 후 맞이할 사람은 오늘 그녀뿐이었다.

양아버지임에도, 상일 기업의 회장 윤재환은 이브를 친자식 이상으로 아껴 주는 다정한 아버지였다. 이브도 아버지에게 효심이 극진한 딸이었고 이렇게 홀로 아버지를 맞는 날에는 직접 건네주는 외투를 받아 정리도 척척 했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정도로 일찍 귀가한 것이 아닌지라 그녀는 간단히 과일과 차를 준비했다. 늦게 오더라도, 윤 회장은 이브와 늘 간단한 대화를 마치고 쉬러 들어갔기 때문이다.

“우리 딸, 이거 받으렴.”

“이게 뭔가요?”

그녀가 받은 것은 흰색 서류 봉투로 별다른 것은 없이 이브의 이름, 그리고 LS 그룹의 심벌이 인쇄되어 있었다.

“LS 그룹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지?”

“아, 네.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이잖아요.”

“그래. 그곳에서 운영하는 학교가 있는데…….”

윤 회장은 잠시 말을 흐렸다. 이브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조용히 서류 봉투를 열었다.

입학 허가서. LS 그룹에서 운영하는 자사고, 국제 학교의 성향을 띠고 있어 외국인도 입학이 가능한 인재 양성 고등학교. LS 고등학교의 입학 최종 결정을 축하한다는 서류에, 간단한 안내문이 포함되어 있다. 각종 그룹의 후원을 받으며 연간 학비는 1억 원 선.

인재 양성이라고 하지만, 기업 간에 도는 소문은 이브도 들어 알고 있었다. 각종 정, 재계를 비롯해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의 신부 양성 학교. 곧 그 집안의 안주인이 될 후보들을 길러내기 위한 장소.

이곳에 입학하면 정치. 경제. 외국어. 가사 및 특정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입지가 탄탄한 상일 기업의 여식이라고는 하지만 이브는 자신이 이런 곳에 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버지, 전 분명 일반 고등학교 진학을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저번에 이야기했듯이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어서요.”

“안다. 하지만 이곳에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겼구나.”

윤 회장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현재 진행 중인 거대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를 위한 자금을 예성 홀딩스라는 대기업에서 투자하겠다고 나선 일을.

그리고 이브를 그 집안의 3남 3녀 중 막내인 신 회장의 손자 신솔현에게 결혼 상대로서 내달라는 조건이 붙었다는 것.

“왜 하필 저일까요? 예성 홀딩스 정도라면 거대한 지주 회사인데……. 아버지껜 죄송한 말일지 모르지만… 전 입양된 몸이고….”

“그래. 나도 그 점을 의문으로 가져서 물어보기는 했다만… 정확한 이유는 묻지 말고 그렇게 해달라는구나. 신 회장님은 나도 뵌 일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윤 회장의 말이 무겁게 늘어졌다. 이브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결심한 듯 말을 했다.

“걱정 마세요, 아버지. 제가 신 회장님의 뜻에 따르겠어요.”

“이브야… 혹 네가 싫다면….”

“이 문제는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닌 거, 아무리 아직 어려도 저는 알아요. 단순히 지금껏 키워 주셨다는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것은 아니고요. 이건 어쩌면 아버지께도, 저에게도. 그리고 상일 기업에 소속된 모든 사람들의 생계가 걸린 문제이지 않나요.”

이브의 연한 갈색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윤 회장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브가 다섯 살일 무렵, 본인이 먼저 그녀의 모친에게 받은 은혜가 있어 차마 이런 식의 미래를 알 수 없는 정략결혼의 수렁으로 이 사랑스러운 딸을 보내야 한다는 그 사실이 가슴 아팠다.

물론 현명한 딸의 말대로,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면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길이 열리는 것은 물론 가족만큼이나 소중한 자신의 직원 하나하나의 복지를 더 신경 써 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자신을 살려 주었던, 이 아이와 간혹 겹쳐 보이는 그녀 올리비아에게 죄책감이 들어 마음의 짐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이 결정을 망설이게 했다.

“괜찮아요, 아버지. 저는 잘 해낼 거니까요.”

이브는 아버지의 단단한 손을 꼭 잡고 위로했다. 그런 딸을 바라보며 윤 회장의 얼굴에 약간이나마 미소가 지어졌지만, 마음으로는 온갖 근심으로 가득했다. 그래도 딸의 손을 꼭 잡아 주며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

2개월 후, 이브는 이제 막 꽃송이가 올라오려 하는 봄날, 입학하게 될 학교의 거대한 정문 앞에 섰다. 높게, 저 멀리 있는 곳이 본관. 그리고 기숙사는 후문 밖 별도의 부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쩌면 대학교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부지에, 교문에서 보이는 것은 넓게 잘 정돈된 아름다운 중앙 정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본격적으로 날이 따뜻해진다면 꽃이 한가득 피어 그 우아하고 화려한 자태들을 뽐내게 되겠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운 이곳의 위용에 이브는 조금 위축이 되었다.

“…하….”

낮게 한숨이 나왔다. 비록 이곳에 입학하는 일은 자신이 결정했지만 아직 어린 고작 17세의 소녀에게는 무거운 짐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1억 원에 육박하는 학비의 절반까지 모두 예성 홀딩스에서 대겠다는 말과 사랑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도망칠 수 없었다.

일단 오늘은 내일 입학식 전에 모든 재학생과 신입생이 기숙사에 들어오는 날이었기에 이브도 이곳에 있었다.

시간은 많았다. 이제 고작 오전 열 시. 몇 시에 들어오던 오늘 오후 다섯 시만 넘기지 않으면 되었다. 조금은 학교 지리를 익힐 겸, 산책을 좋아하는 이브는 일부러 기숙사가 가까운 후문이 아닌 정문에서 내렸다. 짐은 일하는 분들이 있어 배정된 신입생 전용 건물 308호에 올려 두었고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든 그것은 자유였다.

우선 정문 안쪽으로 들어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넓은 교정에 주변은 나무가 많았다. 그 나무 사이로 앞으로 공부하게 될 수많은 건물들이 보였다.

과연 학비가 비싼 만큼 시스템이나 환경적인 부분에 있어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났다. 겨우 3학년까지 모두 합산해 총 재학생 100여 명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임에도 일반 학교에 비하면 이곳은 딱 부와 명예의 상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할까.

중앙 정원을 지나 드디어 본관이 떡하니 모습을 드러냈다. 안내문에는 이 본관 뒤쪽 체육관에서 입학식이 치러진다고 했었다. 일단 본관 건물 하나만 해도 공부하는 교실에 교사 전용 수업 준비실까지 딸려 있다. 여느 학교처럼 교무실이 따로 있다기보다, 각 교사별로 하나씩 개인 방이 있었다.

거기에 본관 바로 옆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한 건물 자체가 각 학년별 도서관이라고 했다.

“…엄청나구나. 여기.”

늘 전교 일등을 놓치지 않던 이브였지만 각종 정, 재계 인사들의 여식들이 다니는 학교인 만큼 공부만으로 경쟁하는 것은 아닐 터였다.

필수 과목 중 하나가 요리인 것만 보아도, 확실히 신부 양성 학교임을 알 수 있었다.

본관을 지나 체육관. 그리고 그 뒤에 후문이 보이고 여기까지 오는 데에 걸어서 30분이 걸렸다. 보통은 걸을 일은 없이 교내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학생들이 편할 수 있게 각 수업마다 이동하는 작은 버스까지 갖춰져 있는 실정이었다.

이브는 우선 후문 밖으로 나왔다. 기숙사 건물까지는 생각보다 금방이었다. 대략 10분 정도 걸으면 닿을 만큼

차가운 봄 날씨에도 걸어서인지 더웠다. 가느다란 손목이 드러나도록 이브는 옷소매를 걷고 천천히 다시 걸어갔다.

이때, 그녀의 뒷모습을 누군가 바라보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차 창문을 반쯤 내리고 앉아 있는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찾았다, 내 신부.”

#1. 그들이 사는 세상

이브가 지낼 신입생 기숙사 308호는 들어서자마자 깔끔하게 정돈된 아담한 거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거실을 가운데에 두고 왼쪽은 침실과 개인 욕실, 오른쪽은 드레스 룸과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작은 서재가 마련된 곳이었다.

이곳에서 1년을 지내면 2학년 기숙사로, 이후 3학년 기숙사로. 학년이 바뀔 때마다 방도 바뀌게 된다고 안내서에는 나와 있었다.

방 구조는 대체로 동일하며 혹시 자매가 이 학교에 다닌다면 둘이 함께 쓸 수 있도록 2인실도 마련되어 있었다.

“와아…….”

이브는 낮게 탄성을 냈다. 방도 깔끔하게 청소되어 있고, 침구류도 학교 측에서 제법 신경 써서 고른 티가 났다. 드레스 룸에는 지급된 교복이 걸려 있고 디자인은 깔끔하게 무릎 위로 살짝 올라오는 H라인의 검은 스커트와 블라우스, 회색 재킷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미 학교의 전문 인력들이 짐도 모두 풀어 세세하게 빠진 것 하나 없도록 정리를 해 둔 상태를 확인하고 우선 이브는 깔끔하게 샤워를 마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입학식 전날은 식사가 방으로 따로 올라온다고 해 내일까지는 밖으로 나갈 일은 없었다.

“…음? 이건 뭐지?”

거실 테이블 위에, 선물 상자가 놓여 있었다. 아버지가 보낸 것은 아닐까 해 그녀는 의자에 앉아 상자를 집어 들었다.

아버지가 보냈다고 하기에는, 어쩌면 유치할 수 있는 핑크색 상자에 리본까지 묶여 있는 모양새로 보아 어쩐지 다른 사람이 보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옆에는 다른 상자가 한 개 더. 그것은 상당히 고급스럽게 포장된 상자로 집어 든 상자와는 차이가 있어 보였다.

이브는 먼저 핑크색 상자를 열었고, 그 안에 들어 있던 편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Dear. 미래의 내 신부?

당신의 언젠가는 남편이 될 신솔현이라고 해요. 뭐 피차 정략결혼에 묶인 몸들끼리 잘해 봅시다.

이건 작은 선물. 맘에 안 들면 버리든가.

From. 미래의 당신 남편?-

뭔가 엄청나게 무성의해 보이는 편지였다. 어색한 것일까. 하긴,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었으니 그도 그럴 듯했다.

상자 안에 든 것은 작은 토끼 인형이었다. 딱 품에 안고 잠들기 좋은 사이즈.

벌써 열일곱 살인 그녀에게 이런 애착 인형은 사실 별 필요는 없었지만, 그러기에는 표정이 너무 사랑스러운 인형이었다. 발그레한 볼도 수놓여 있고 말랑한 감촉이 마음에 들어 이브는 그것을 침대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두 번째 상자를 열었다. 안에 든 것은 유명 문구 브랜드의 필기구와 화장품 세트. 발신인은 예성 홀딩스 본가였다. 예비 며느리를 위한 선물로 가격도, 품질도 모두 상당한 것들이었다.

“하…… 미래 남편에, 미래 시부모님의 정성에 몸 둘 바를 모르겠네.”

물론 이브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것들이기는 하지만 어쩐지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휴대폰을 들고 그녀는 아버지의 측근, 박윤현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가씨, 기숙사는 잘 들어가셨습니까?]

받자마자 안부부터 확인하는 그의 말에 이브는 웃음이 났다. 아버지만큼이나 이브를 친딸처럼 예뻐하는 그에게 그녀도 상당히 의지하고 있었다.

“잘 들어왔죠. 박 비서님. 잘 지내고 계시죠?”

[그렇습니다. 한데 어쩐 일이십니까?]

“음… 기숙사에 와 보니 예성 홀딩스에서 입학 축하한다며 선물을 보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

[그렇군요. 회장님과 상의해서 저희도 답례를 하지요. 일단 예성의 신 회장님과 신 사장님. 그리고 이 여사님, 이렇게 세 분이면 될까요?]

“한 명 더… 신솔현 씨 앞으로도. 이건 제가 골라서 보낼까 해요.”

[알겠습니다.]

박 비서와 전화를 끊고 이브는 살짝 웃어 보였다. 장난기 많은 미래 남편에게 어울릴 선물을, 그녀는 이미 생각해 두었다.

똑똑, 누군가 자신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이브는 문을 열었다.

“상일 기업의 이브 양 맞습니까?”

“네.”

“오늘 일찍 들어오신다는 이야기에, 점심 식사부터 준비했습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용건을 말하는 그녀, 기숙사 주방의 셰프 지홍연은 흐트러짐 없이 깔끔하고 공손한 태도로 이브에게 깊게 인사를 건넸다. 이브 또한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곧 거실에 있는 작은 식탁에 요리가 차려졌다.

“올린 요리는 연어 스테이크에 시저 샐러드, 과일도 몇 가지 준비해 보았습니다. 혹시 음료는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커피면 됩니다. 원두는 상관없이 조금 연하게요. 설탕이나 시럽은 모두 빼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이브의 취향대로 그녀는 그대로 준비해 앞에 차려 놓고 인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시면 저 벽에 벨을 한 번 눌러 주십시오.”

“알겠어요.”

벽에는 몇 가지의 벨이 있었는데 식당, 긴급 상황을 대비한 교내 병동, 그 외 기숙사 내의 업자 호출 벨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이런 것도 있구나….”

이쯤 되면 준비성이 어마어마했다. 상일 기업 윤 회장은 평소 검소하고 청렴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인지라 꼭 필요한 필수 인력을 제외하면 집 안에 많은 사람을 두지 않았다.

해서 어느 정도 이브는 가사 및 기타 사소한 일은 스스로 이미 할 줄 알기에 이런 벨까지 준비되어 있는 이곳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불안해졌다.

지시를 내리는 것이 익숙한 최상류층 아가씨들의 속에서 흠을 잡혀서는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브는 식사를 마치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벨을 눌러 식당을 호출하고 그들이 식기를 치우고 나가자 그제야 한숨을 쉬고 멍하니 의자에 앉아 앞으로의 일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