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수 _ 원고만 주세요. 조용히 꺼져 드릴게요.''''''오늘도 늦어 버렸다. 게다가 비까지 오는 날이다. '시민의 약속을 지켜준다는 지하철은 오늘도 바로 앞 역에서 딱 멈춰버리고 또다시 나를 보기 좋게 물 먹였다. 늦잠 잔 죄로 눈물을 머금고 아침밥도 포기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콩나물국이라도 마시고 나올 걸 그랬다. 어젯밤 회식자리는 내게 너무 무리였는지 숙취 때문에 코에선 아직도 술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서둘러서 사무실로 올라갔다. 출근시간이 훨씬 지난 시각이라 다행히 한산하다. 엘리베이터가 한번도 서지 않고 곧장 17층까지 솟구쳤다. 아무도 모르게 살짝 들어갈 생각에 조용히 문을 밀었는데 십여 개의 눈동자와 딱 마주쳐버렸다. 눈동자 돌아가는 소리가 날만큼 조용한 분위기에 꼿꼿하게 얼어버렸다. 무거운 침묵과 팽팽한 명주실 같은 긴장감으로 꽉 들어찬 사무실 전경. 생생한 흥분이 떠다니던 평소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잔뜩 화가 나서 검은 오라를 풀풀 풍기고 있는 편집부장을 곁눈질하며 김 대리가 두 검지를 뒤통수에 슬쩍 갖다 댔다. 부장님이 왜 저리도 화가 나신 걸까? 설마 사무실 안에 불어 닥친 이 해괴망측한 태풍의 눈이 나란 말이야? 만에 하나 그게 사실이어서 당장 잘리기라도 한다면 끝장이다. 김 대리의 암호를 알아서 기라는 뜻으로 눈치껏 해독하고 허리를 구부리고 살금살금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 했다. ''“하연수 씨!” ''“넷! 부장님!” ''편집부장의 목소리에 살금살금 도둑발로 들어오던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다시 쩡 얼었다. 심장보다 허리가 쨍하고 울린다. 이런 자세가 건강에 얼마나 안 좋은데. 퉁기듯 몸을 일으켜 한껏 미안하게 웃었다. 평소에는 큰 오빠나 작은 아버지 같은 푸근한 분인데 한번 화가 나면 이렇게 사무실 안에 광풍을 일으키신다. 이 정도는 약과고 얼마 전 박정수 씨가 작은 실수로 어마어마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정말 끔찍했다. 그날 저녁 당장 이모한테 전화해서 생명보험 하나 들었었지. ''“마침 잘 됐네. 자리에 앉을 필요도 없이 당장 나가도록.” ''설마 했더니, 변명의 여지없이 해고란 말인가? 횟수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공금횡령도 아니고 까짓 지각으로 잘린단 말이야? 입사한지 10일 만에 잘리는 남다른 재능에 엄마가 가만 계실 리 없다. 난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무서운 사람이다. 제발, 농담이라고 말해줘요! ''“부장님! 이러실 수는 없어요. 절 보면 막내 동생 생각나 좋다 하시며 오래오래 같이 일하자고 그러셨잖아요.” ''“무슨 소리야?” ''“이렇게 잘라버리시면 전 갈 데도 없어요. 제발 선처를. 흑흑.” ''나지도 않는 눈물 찍어내는 척 하며 부장님의 얼굴을 힐끔거렸지만 우는 연기는 씨알도 안 먹힌다는 표정이었다. 슬쩍 뒤를 돌아다보았다.''서로 잘 지내보자고 어제도 삼겹살에 소주하면서 끈끈한 동료애를 다졌던 사람들이 왜 멀뚱히 보고만 있는 거야? 이게 침 튀겨가며 그렇게나 주장하던 끈끈한 동료애란 말이야? 누구 하나 말리지도 않고 너무하다. ''어제 회식자리에서 술을 제일 많이 권했던 박정수 씨를 확 째려봤다. 컥 하고 숨을 집어 삼키며 외면하며 모르는 척하는 게 가증스럽다. 이젠 상관없는 사람이니 내 알바 아니란 건가. 기실 내가 지각한 것에는 사무실 동료들의 책임이 더 크다. 소주 세 잔이면 위아래도 몰라보는 나한테 억지로 먹이지 못해 안달한 사람들이 누군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손해배상 청구라도 불사할 생각이지만,''“괜히 오버하지 말고 외근 좀 갔다가 와요.” ''다행이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휴, 살았다. ''“그럼 해고가 아니란 말씀이세요?” ''“왜, 그만두고 싶어? 하연수 씨?” ''“어머, 그만 두긴요. 누가 그만둔 데요. 외근! 당장 갔다 올게요. 분부만 내리십시오.” ''피식 웃는 부장의 얼굴에 완전히 안도해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쯧쯧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내가 실없다는 건 알지만 뒤통수에다 대고 노골적으로 저러면 성격상 면전에다 따지지도 못 한다. 아직 입사 2주차 밖에 안 된 풋풋하고 꿈 많은 신입사원의 사기를 이렇게 무참히 짓밟다니 잔인하시군요들! '''''''■ 2. 태민 _ 그다지 신사는 못 되서 날이야''■ 3. 연수 _ 헛다리 짚으셨어요''■ 4. 태민 _ 위로 받고 싶었니?''■ 5. 연수 _ 애 취급 하지 마세요''■ 6. 태민 _ 사랑하진 않아. 그래도 좋아?''■ 7. 연수 _ 그게 왜 유혹이 되는 거냐고요!''■ 8. 태민 _ 나는 원래 그런 놈이니까''■ 9. 연수 _ 그래요. 당신을 원해요''■ 10. 태민 _ 여기서 그만 멈추자''■ 11. 연수 _ 깨어나지 말 걸 그랬어''■ 12. 태민 _ 나 없이도 행복할 거야''■ 13. 연수 _ 사랑해요. 더한 이유가 필요한가요?''■ 14. 태민 _ 다시 잠드는 일은 없을 거야''■ 15. 연수 _ 위로받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