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０１

희연은 노총각 회원들의 서류 리스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매칭 할 여자 회원도 없는데.’

중얼거리며 앞머리를 한 손으로 흐트러뜨렸다. 창밖에선 추적추적 빗소리가 들렸다. 갈라진 천장 틈에선 물방울이 규칙적으로 떨어졌다. 의자에서 일어나 재활용 수거함을 빗물이 새는 천장 아래에 두었다. 똑똑. 규칙적인 그 소리가 맥박과 비슷하게 뛰었다.

“희연 씨!”

알로하 피플의 권석철 대표가 서류 뭉치를 들고, 곤란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여자 쪽에서 잠수야. 한 번 더 부탁하면 안 될까?”

“장소는요?”

“강남역 근처니까 차 한 잔 하고 와. 애프터는 거절한 거로 둘러댈게.”

권석철 대표는 헝클어진 뒷머리를 매만지며 장소를 말해주었다. 희연은 대표가 건넨 회원 정보 서류를 건네받았다. 그나마 가입된 회원의 이탈을 막는 게 매니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녀는 책상 아래 칸에 방치해 둔 정장 원피스를 집어 들었다. 언제 빨았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옷에서 꿉꿉한 냄새가 풍겼다.

“오늘은 비 오는 날이니까, 이 정도 냄새는 인간적으로 느껴질지도.”

적당히 합리화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지하철 안. 희연의 가방에 들어있던 휴대폰의 진동음이 느껴졌다. 천연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자 휴대폰 너머로 승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벌써 퇴근이야? 지하철 소리 들리는데?”

“음…. 퇴근은 아니고, 외근이랄까. 설명하려면 길다.”

희연은 민망한 듯 웃으며 모호하게 답했다.

“외근? 회원 유치하러 가는 거야?”

“뭐, 그런 셈이지.”

쓴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몇 해 전부터 알로하 피플엔 여자 회원이 급격히 줄었다. 스펙과 외모를 겸비한 여자 회원은 없고, 노총각 남자 회원들만 가득했다. 매칭 할 여자 회원이 없다 보니 매니저인 희연이 대역으로 만남에 나가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이런 회사의 사정을 친구인 승호에게 이야기하는 건 곤란해서 ‘외근’이라 포장할 수밖에.

“끝나면 몇 시야? 늦어지는 거 아니면 저녁 먹자. 중요한 할 말도 있고.”

“중요한 말?”

“끝나면 연락해. 네가 있는 쪽으로 갈게.”

희연은 강남역 앞 카페 주소를 알려준 뒤 통화를 마쳤다.

‘할 말? 갑자기 무슨 말일까?’

중요한 할 말이라는 그 말을 연신 곱씹으며 희연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경쾌한 발소리처럼 느껴졌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오는 승호의 발걸음이 연상되자 가라앉았던 감정이 솟아올랐다.

‘화이트데이에 중요한 할 말? 설마….’

마음속에서는 어느새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이번 역은 강남역입니다. 내리실 분은 오른쪽입니다. ]

승차 역을 알리는 안내 음성이 울렸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승호가 했던 말을 곱씹다 하마터면 역을 지나칠 뻔했다. 희연은 반쯤 닫히려는 문으로 냅다 돌진했다.

‘후 살았다. 하마터면, 외근에 늦을 뻔했어.’

무사히 역에서 내린 희연의 입에서 외근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외근이라… 외근은 맞지. 상대가 클라이언트가 아닌 노총각 회원이라는 게 문제지만.’

희연은 외근이라는 말을 알사탕처럼 입안에서 굴려보았다. 기울어가는 결혼정보회사의 매니저로서 지금 제일 중대한 업무인 건 맞다. 자조 섞인 웃음을 흘리며 카페로 향했다.

‘오늘은 또 어떤 아저씨가 오려나.’

출입문이 잘 보이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며 희연은 생각했다. 지난번 맞선 때 만난 사내는 이름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김필두. 촌스러운 성명에 불혹을 훌쩍 넘긴, 푸석한 피부 결을 가진 사내였다． 장황한 자녀계획을 늘어놓던 그에게 마시던 커피를 뿜은 것이 바로 엊그제 일이다.

결혼정보회사 매니저가 맞선 대역까지 해야 하다니. 자신의 상황이 신문 한 토막에 나오는 어설픈 유머 한 줄처럼 느껴졌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중요한 할 말이 뭘까?’

적당히 만남을 끝내고, 한시라도 빨리 승호를 만나고 싶었다. 시계를 힐끔 보자 약속시간은 벌써 20분이 지났다.

‘바람맞은 건가? 이 정도면 기다릴 만큼 기다렸으니….”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희연은 옳다구나 싶어 얼른 가방을 챙겨 들고 일어섰다. 암묵적인 약속 취소라 결론 내리며 일어났을 때 출입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다부진 체격의 사내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신상 정보에서 봤던 바로 얼굴.

“뭐야, 결국 온 거야…?”

두리번거리던 남자와 눈이 마주친 희연은 힘없이 가방을 내려놓고 고개를 까딱했다.

“안녕하세요. 사진보다 훨씬 미인이신데요?”

테이블로 다가온 사내는 뒷머리를 긁으며, 누런 이를 드러내 보였다.

“네 안녕하세요.”

자리에 앉자마자 사내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일이 많아서 약간 늦었습니다.”

‘약간은 무슨. 첫 만남에 30분이나 늦는 건 아니지.’

사내는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는 표정이었다. 희연은 속으로 실소를 터뜨렸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읍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땅이 많습니다. 예부터 아버지가 부동산 쪽으로 배우라고 하신 대로 공부한 덕이지요. 그래서 남들보다 수환도 좋아요.”

희연의 불쾌한 표정 따윈 아랑곳없이 남자는 하던 말을 이어갔다.

“아, 네….”

“남자가 큰일을 하려면, 물심양면으로 도울 여자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거 아시죠? 그쪽은 딱 제 스타일인데요.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하나요? 하하.”

희연은 입 꼬리를 올려 어색하게 웃었다.

‘운명이 아니라 회원 관리거든.’

억지 미소를 유지하던 희연은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 잔으로 손을 가져갔다. 덥석. 사내가 희연의 손을 잡아 쥐었다. 손을 빼내며 애썼지만, 억센 손아귀 힘이 만만치 않았다.

“갑자기 왜 이래요…?”

“결혼할 사이에, 내외할 필요 있나요. 가만, 정화 씨는 무슨 일 한다고 했지?”

“…우선 이것 좀 놓고 말씀을….”

“여자가 일해 봤자 몇 푼 번다고, 떡두꺼비 같은 아들만 낳으면 되지. 안 그래요?”

희연이 손목을 비틀어 빼자, 사내는 손등을 덮고 있던 소매를 걷어 올렸다. 소매 밑으로 두꺼운 팔목을 휘감은 용의 꼬리가 드러났다. 팔목에 있는 문신에 흠씬 놀랐지만, 희연은 의연한 척하려 애썼다. 눈알을 굴리며 이 상황을 넘길 방법을 찾던 그녀는 무언가 생각난 듯 다급하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집에서 급한 연락이 왔어요. 먼저 가봐야 할 것 같….”

“그러지 말고 잠깐만 앉지 그래요.”

가방을 집어든 희연의 손목을 잡아끌며 사내는 위압적으로 굴었다. 잡힌 팔목이 당겨지자, 희연의 상체가 사내와 가까워졌다.

“부끄러워하기는. 2차로 곱창에 소주 어때요?”

“죄송하지만 집에 급한 일이 생겨….”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사내는 손목을 그러쥐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잠깐이면 된다니까 그래. 잠깐 한 잔 하자고.”

짜증이 치솟은 희연은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다. 욱하는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거칠게 팔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좀 놔요!”

“……!”

남자는 얼떨떨한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댁 같은 아저씨는 딱 질색이야. 여자들이 제일 기피하는 타입인 거 모르죠?”

“뭐?”

사내의 미간이 일그러졌지만, 희연은 차갑게 쏘아붙였다.

“고작 여자를 아이 낳아 기르는 기계 정도로 취급하니까, 지금까지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한 거예요. 본인이 뭐가 문제인지 전혀 모르는 태도 자체가 문제라고요! 초면엔 할 말 못 할 말 정도는 구분할 정도는 있는 게 기본 아닌가요?!”

“…이 미친. 너 뭐라고?”

“어디서 미친 이야. 미친 건 너지. 고작 너 같은 남자 때문에 시간 낭비한 여자들 대신 내가 한마디 할게.”

희연은 검지를 사내의 눈앞에 들이밀며 경고하듯 또렷하게 말했다.

“댁처럼 안하무인의 고조선 시대 사고방식을 지닌 놈은, 평생 혼자 사는 게 만인의 평화를 위해 옳은 일이야！ 알아들어？”

희연의 말에 사내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노기가 서린 얼굴로 ‘요거 봐라?’ 싶은 눈빛으로 쏘아보자, 희연은 움찔했다.

“얼굴 좀 반반해서 좋게 봐 좋더니, 방금 뭐라 그랬냐?”

사내는 눈을 치켜뜨며 때릴 듯이 팔을 들어 올렸다.

“첫 만남부터 다짜고짜 손잡고 선 넘은 건 아저씨가 먼저였어요.”

“하 참. 계집애 말하는 거 봐라? 너 같은 여자들 속내 모를 것 같아? 돈 많은 남자 잡아 팔자 피는 게 목적이면서 왜 고고한 척 잡아 빼는데?”

“…뭐라?”

남자의 말에 기가 찬 희연은 헛웃음을 쳤다. 뻔뻔한 면상으로 무례한 말을 지껄이는 저 무뢰한에게 어떻게 엿을 먹일까.

희연의 머릿속 이성과 감정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더니 분노를 연료로 빙글 돌아갔다. 주먹을 불끈 쥔 그녀의 입에서 깊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마 위에 있던 앞머리가 숨결에 가볍게 흔들렸다. 그 순간, 팝콘처럼 펑 터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문신 아저씨. 그 친구는 손끝 하나 건들지 않는 게 좋을 걸요.”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한 승호가 웃으며 가까이 다가와서 말했다.

“하, 한 승호? 네, 네가 왜 벌써 왔어?”

“때마침 적절할 때 온 것 같은데?”

“넌 뭐야?!”

사내는 허리춤에 두 손을 올리고 따져 물었다.

“남자도 숨기고 있었으면서 맞선에 나온 의도가 도대체 뭐야？ 엉？”

“남자를 숨기다니 무슨 그런… 그런 게 아니라….”

흥분한 사내는 으르렁거리며 희연의 손목을 확 끌어당겼다. 승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사내의 손을 재빨리 채가더니 반대편으로 세차게 꺾었다. 그 바람에 힘을 잃은 남자의 손에선 희연의 손이 튕겨 나왔다. 등 뒤로 손목이 꺾인 그는 올무에 잡힌 동물처럼 거칠게 반항했다.

“이 새끼가. 야, 이 손 놓지 못해? 죽고 싶어 환장했냐? 놔! 안 놔?!”

태권도와 합기도로 단련된 승호에겐 이 정도의 기술은 식은 죽 먹기였다.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보는 눈도 많은데, 더 망신당하기 싫으면 소리 낮추시죠, 아저씨.”

“이 새끼가 돌았나! 어디 어른한테! 당장 못 놔?!”

괴로운 듯 일그러진 남자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었다.

“방금 이 친구한테, 야, 너, 이년 따위의 개소리를 지껄인 거 사과해요. 그럼 놔줄 테니까.”

“미친! 이 새끼가 어디서! 놔! 놓으라고!”

남자가 발버둥을 치자, 승호는 팔을 더욱 세게 꺾은 뒤 테이블에 강하게 내리눌렀다.

“아악. 아, 알았어. 알았다고. 사과하면 되잖아!”

그제야 옭아맸던 팔을 거두자, 사내는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켰다. 씩씩거리던 남자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쏘아보며 지껄였다.

“반말한 건 미, 미안하게 됐어. 쳇.”

심기가 불편한 표정으로 영혼 없는 사과를 내뱉은 뒤 남자는 문을 향했다. 쾅! 거칠게 닫히는 문소리가 남자의 혈기를 대변해주었다. 뒤이어 들려오는 투덜거림이 또렷이 들렸다.

“나 참! 더럽고 치사해서. 남자도 있으면서 선 자리에 나온 건 뭐야. 제길 똥 밟았네!”

시끄러웠던 카페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승호가 물었다.

“설마, 내가 오붓한 두 사람 사이를 방해한 건 아니지?”

“구해준 건 고맙지만, 덕분에 곤란해진 건 맞아.”

소개팅이 종료됐다는 사실에 허탈감을 느낀 희연은 자리에 털썩 앉았다. 컵에 놓여있던 얼음을 하나 입에 털어 넣고 와그작 씹었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일이 일찍 끝나서 미리 왔지. 방금 전 저 남자는 뭐야?”

“글쎄. 나도 초면이라 모르지.”

긴장이 풀린 희연은 책상에 픽 엎드렸다.

“만날 거면, 괜찮은 놈을 만나. 네가 뭐가 아쉬워서 저런 아저씨를 만나?”

“묻지 마. 설명하긴 어렵고 말하기는 구구절절 복잡해.”

“아니긴. 저런 남자 말고, 너만 괜찮으면 내가 좋은 사람 소개해준다니까.”

“됐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희연은 몸을 일으켰다. 표정을 굳히고 정색하자, 승호는 멈칫했다.

“아니라고 했잖아. 그런 거 아니라고.”

“그럼 저 아저씨는 뭐야?”

“여자 회원이 부족해서 매니저로서 대타 나온 거야. 덕분에 소중한 회원을 잃었는데, 어떻게 책임질래?”

일부러 희연은 정색하고 답했다. 어쩐지 승호를 놀리고만 싶었다.

“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승호의 표정이 난감해졌다. 그 얼굴을 마주하자, 희연의 마음은 무장해제 돼버렸다. 승호의 얼굴을 마주 볼 때면 희연은 저절로 웃음이 터지고, 마음이 약해졌다. 내일 회사에서 대표님을 어떤 낯짝으로 봐야 할지 떠올리면,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울분을 터뜨리며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를 단숨에 제압한 승호는 멋있었고， 내 눈에 그가 나를 구하러 온 백마 탄 기사로 보였다．

“어쩌지? 지금이라도 용문신 아저씨한테 가서 사과라도…?”

“농담이야. 흥분해서 먼저 지른 건 너가 아니라 나였어.”

그 말에, 곤란한 듯 처져 있던 승호의 눈썹이 완만한 곡선을 그렸다.

“흥분해서 본심 나왔구나? 해나 네 성격을 그 아저씨가 전혀 몰랐던 거지.”

눈을 가늘게 뜨며 승호가 장난스레 말했다． 해나는 희연의 과거 이름이었다． 개명을 하고 몇 년이 흘렀지만， 승호는 그 사실에 괘념치 않는 듯했다． 승호가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든 상관 없었지만 가끔은 희연의 마음 한 구석에 불편감이 일 때가 있었다． 그녀는 일부러 퉁명스레 받아쳤다.

“아니거든. 어쨌든 타격은 크다고. 회원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판국에….”

“이거… 미안한데. 내가 그럼 이탈한 회원 대신….”

“됐고. 밥이나 사.”

희연은 승호의 반응에 피식 웃었다. 승호는 허공으로 팔을 쭉 뻗고 시원스럽게 기지개를 켰다.

“예약 손님 많았어?”

“응. 이런 날은 정신없지.”

승호는 메인 셰프로 청담동 A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다. 뛰어난 요리 실력과 유려한 외모로 방송 출연까지 한 스타 셰프다.

“아, 잊을 뻔했다. 받아.”

승호는 손바닥만 한 쇼핑백을 건넸다. 희연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쇼핑백을 확인했다. 쇼핑백 안에는 고급스러운 초콜릿 상자가 들어 있었다.

“갑자기 웬 초콜릿?”

희연의 입가엔 벙싯 미소가 지어졌다.

“화이트데이 선물.”

“갑자기?”

상자를 열어보며 그녀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있잖아, 나 말할 게 있는데 사실….”

그는 답지 않게,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말끝을 흐렸다.

‘드디어, 고백인 건가? 설마….’

승호는 망설이며 입을 달싹이길 반복하였다.

“아, 이거 되게 민망하네.”

고백을 목전에 둔 소년처럼 강우는 쑥스러워했다.

“어울리지 않게 왜 그렇게 망설여?”

“사실 나… 명주랑 다시 시작했어.”

내가 뭔가 잘못 들은 건가?

희연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빤히 보았다.

“너한테도 인사시켜주고 싶어서 불렀는데, 괜찮지?”

“…마음 접은 거 아니었어?”

표정 관리가 어려워 희연은 그만 정색하고 물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줄게.”

“…….”

“곧 도착한댔어.”

할 말을 잃은 희연은 컵에 담긴 얼음을 마저 입에 털어 넣었다.

“우선 너한텐 말하는 게 맞을 것 같아. 잘 알고 있지? 내가 명주 많이 좋아했다는 거.”

대학 후배인 명주와 연인 사이였던 승호는 이별 후 몇 해 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 마음을 접었으리라 생각했던 그의 재결합 소식.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참아왔던 감정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느낌.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아 희연은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