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신 내 팬 아니지?

“195번! 축하드립니다!”

번호가 공개되는 순간 조용하던 공기가 삽시간에 탄성과 감탄으로 어지럽게 뒤섞였다. 희대의 행운아 195번을 찾기 위해 모두가 이리저리 고개를 바삐 주위를 훑었다. 막 자리에 앉으려 했던 듯 구부정하게 몸을 숙이고 있던 한 여인이 흠칫 몸을 굳혔다.

“195번분 무대로 올라와 주세요!”

사인만 무사히 받으면 끝나겠지 생각했건만 프리허그라니. 평소엔 코빼기도 비추지 않던 행운이 하필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쉰 뒤 비장한 얼굴로 뚜벅뚜벅 무대를 향해 걸어갔다. 무대 위에 서 있던 남자가 그녀를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무대의 중앙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번호표를 확인한 스태프가 어서 가보라는 듯 웃으며 한 발자국 물러났다. 한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놀란 심장이 쉴 새 없이 쿵쾅댔다.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른 긴장감에 앙다문 입술엔 파르르 경련이 일 지경이었다. 남자가 마치 연인을 부르듯 다정히 두 팔을 벌려 보이자 지켜보는 이들은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여인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점점 남자와 거리를 좁혀 갔다. 그의 얼굴을 코앞에서 마주한 순간 둘 곳 없던 시선이 홀린 듯 그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긴 속눈썹이 드리운 짙은 검은색의 눈동자엔 부드러운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꺄!”

천장을 뚫고 나갈 기세로 터져 나온 함성과 함께 남자가 가볍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넓은 어깨 위로 그녀의 뺨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 사이에서 그의 향수 냄새가 퍼졌다. 향수마저도 그를 꼭 닮아 코끝을 스치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심장을 두드렸다. 수아는 땀으로 축축이 젖은 손을 꼭 말아 쥐며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았다.

“당신.”

주위의 웅성거림이 아득하게 느껴지던 순간 그녀의 귓가로 나지막한 속삭임이 찾아 들었다. ‘네?’ 하고 대답하자 남자가 한층 더 낮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내 팬 아니지?”]

[다음은 아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죠?]

[네, 그렇습니다. 1년 반에 걸친 휴식기를 마친 배우 서무영 씨의 복귀 소식인데요. 그동안 기다려 준 팬들을 위한 팬 사인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한다고 합니다.]

“세상에! 줄 좀 봐….”

수아는 찬바람에 꽁꽁 얼어붙은 손끝을 입김으로 녹여 가며 끝도 없이 늘어선 긴 행렬에 합류했다.

유명 아트홀의 입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제각기 설레고 들뜬 얼굴로 사진을 찍거나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사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어, 나야.”

[지수아 내 사랑! 내 은인! 안 헤매고 잘 도착했어? 뭐 하고 있어, 지금?]

“잘 찾았어. 입구에서 대기하는 중.”

[꺄! 심장 떨려서 죽겠어! 내가 말한 거 읊어봐. 다시!]

“최대한 소녀처럼 웃으면서 수줍게 악수하고, 사인지에 꼭 이름 적은 다음, 나올 땐 사인지 구겨지지 않게 포장해서 너네 집으로 배달.”

휴대폰 너머로 희영의 만족스러운 물개박수가 들려왔다. 수아는 작게 웃음을 흘리며 아트홀 벽면에 걸린 사진으로 눈길을 돌렸다. 복귀를 앞둔 인기 배우 서무영이 사진 속에서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흐트러진 짙은 군청색의 머리칼 아래 시원스레 뻗은 눈매엔 부드러움과 남성미가 공존했고, 베일 듯한 콧대와 군더더기 없는 턱 선은 마치 어느 화가가 천 번쯤 실수를 거듭한 끝에 완성한 섬세한 연필 스케치 같았다.

무엇보다 가장 오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그의 입술이었다. 데뷔 이후 매년 훔치고 싶은 입술 1위에 빛날 만큼 도톰하고 모양 좋은 입술은 따로 메이크업을 하지 않아도 나른한 붉은 기가 돌아 짐짓 퇴폐적이기까지 했다. 181cm의 키에 완벽하다는 말로도 부족함이 느껴지는 황금 비율을 감싼 청바지와 하얀 셔츠. 풀어 헤쳐진 셔츠 사이로 드러난 탄탄한 근육들과 넓은 어깨는 운동이 취미라는 그의 말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서무영은 수아의 오랜 친구인 희영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은 인물이기도 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매니지먼트 쪽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의 친오빠가 무영의 매니저를 맡게 됐고, 취업 준비에 시달리던 시절, 스치듯 마주친 드라마의 한 편을 계기로 희영은 서무영에게 기꺼이 일생을 바치겠다며 한 송이의 무영바라기가 되었다.

그의 팬 사인회 소식에 수아는 새벽잠을 뒤로한 채 희영의 티케팅에 동참했는데, 놀랍게도 수아 홀로 당첨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종종 희영의 티케팅을 함께해 준 적은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팬 사인회는커녕 27년간 관심 있는 연예인 한 명 없이 살아온 수아였기에 어찌해야 하나 난감해하던 중 지구가 반쪽이 나도 가야 한다며 눈물을 삼키는 희영을 보고 있자니 거절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입장하겠습니다! 앞에 있는 스태프들에게 신분증과 응모권, 번호표를 보여주신 뒤에 차례로 입장하시면 됩니다!”

로비를 울리는 웅성거림과 함께 입장이 시작되고, 파도에 떠밀리듯 흘러가다 보니 무사히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사인회가 진행되는 소극장의 객석은 먼저 입장한 사람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정돈된 무대에는 무영이 앉을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다.

“혹시 처음 오셨어요?”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분홍색의 쇼핑백을 품에 안고 있던 옆자리의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수아가 움찔 놀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도 웃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럴 것 같았어요. 저도 두 번째이긴 하지만 처음 왔을 때 엄청 떨었거든요.”

“티 많이 나던가요, 저?”

“그냥 조금요.”

멋쩍게 웃음을 흘린 수아는 숨을 고르며 간밤에 희영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진심에서 우러나진 못해도 절대 티 내지 마. 알았지? 그 순간만큼은 네가 우주에서 제일가는 서무영의 팬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모름지기 팬 사인회인데 자기 보고 좋아해 줘야 서무영 입장에서도 힘이 날 거 아냐.’

물론 맞는 말이었다. 게다가 포커페이스라면 나름 자신 있었기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싶었다. 하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고 보니 수아 자신은 태어나 처음 연예인을 보는 데다가 하필 그 연예인이 그녀의 소울메이트가 일생을 내건 인물이라는 사실이 주는 무언의 압박이 생각보다 상당했다.

마음의 준비를 가다듬는 사이 입장이 모두 끝나고 스태프가 주의 사항을 공지했다.

“꺄! 오빠!”

“무영 오빠!”

공지가 끝나고 잠시 뒤, 서무영이 뜨겁다 못해 펄펄 끓는 듯한 환호를 받으며 무대로 등장했다.

검정 슬랙스에 하얀 니트, 그 위로 연한 회색의 코트를 걸친 서무영의 모습은 맨 뒷줄 구석 자리에 앉은 수아의 눈에도 선명하게 들어올 만큼 독보적이었다. 그가 서 있는 곳만 다른 공기가 흐르는 것처럼 서무영이 자아내는 특유의 무게감과 분위기는 배우라는 직업이 주는 느낌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무영은 객석을 한 번 둘러보고는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서무영입니다.”

인사를 마치자 소극장이 송두리째 떠내려갈 듯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오랜만에 복귀하는 소감과 팬들에게 전하는 고마움 등 짤막한 토크가 끝나고 본격적인 사인회가 이어졌다.

200명 중 195번이었던 수아는 한참 기다리겠구나 하며 자리에 앉아 심혈을 기울여 희영에게 보여줄 무영의 사진을 찍었다. 어느덧 저만치 보이던 무영의 얼굴이 코앞으로 다가오며 수아의 차례에 이르렀다.

“안녕하세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수아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수아는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를 것 같았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으며 마주 인사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수아요. 지수아.”

사인지 위로 정갈한 필체의 사인이 담기고, 무영이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던 찰나 재호가 무영의 귓가로 무어라 귓속말을 전했다.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이를 확인한 스태프가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자, 여러분 주목해 주세요! 아까 말씀드렸던 오늘의 깜짝 이벤트 시간입니다! 지금부터 서무영 씨께서 번호 하나를 뽑으실 텐데요, 당첨되신 분께는 서무영 씨와의 프리허그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프리허그 한마디에 객석에서는 숨넘어갈 듯한 함성이 와르르 쏟아졌다. 무영은 추첨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수아에게 양해를 구하는 듯한 눈짓을 보냈다. 가벼운 미소로 답한 수아는 무대에서 내려가 조용히 좌석으로 향했다.

“그럼 번호 뽑겠습니다!”

“꺄!”

“신이시여…! 제발!”

무영이 추첨 박스 안으로 손을 넣은 순간 내부는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곧게 뻗은 긴 손가락 사이에 쥐어진 하얀 쪽지가 스태프에게 전달되고 바스락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쪽지가 열렸다.

“꺄! 무영 오빠!”

“사랑해요!”

“죄송합니다. 잠시 지나가겠습니다.”

화보 촬영을 마친 무영은 스튜디오 입구에 구름처럼 모인 팬들 사이를 지나 서둘러 차에 올랐다. 좁은 골목을 솜씨 좋게 빠져나온 재호는 차가 도로로 접어들자 룸미러로 흘깃 뒷좌석의 무영을 살폈다. 시트에 기대어 앉아 턱을 괸 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고생했어. 아직 복귀 초반이니까 컨디션 조절 잘해 둬.”

재호가 다시금 룸미러로 무영을 살피자 그는 무심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네 집 말인데. 당분간은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는 게 어때?”

“기각.”

“기각 같은 소리 한다. 대표님 지시야 인마.”

“혼자 지낼 데로 알아봐.”

창밖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대답하는 무영에 재호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옆에 놓인 아이스커피 한 모금을 넘겼다.

“당분간만이야. 새로 들어가는 촬영만 잘 끝나면 그때 독립하자.”

“양심하고는.”

“뜬금없이 무슨 양심 타령이야!”

“청소 안 하지, 안 씻지, 코 고는 건 기본에 이도 갈지. 어딜 봐도 바람직한 동거인의 조건은 아니지 않나.”

재호는 최대한 침착하게 무영을 설득해 보려는 심산이었으나 차마 부정할 수는 없는 그의 말에 한껏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아무튼 안 돼. 내 방 너 줄 테니까 얌전히 같이 살자.”

“형.”

갑작스레 목소리를 내리까는 무영에 재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왜?” 하고 짧게 대답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어떻게.”

“내가 형 집에서 지내는 동안 형이 나가서 사는 거야.”

“……미친놈.”

재호는 말을 말자며 혀를 차곤 도착한 목적지의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오오! 이게 누구야! 서무영 씨!”

곧 촬영에 들어갈 새 드라마의 감독과 미팅이 있는 자리였다. 뚱하니 사람 속을 뒤집던 남자는 어디 가고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감독에게 꾸벅 인사를 건네는 또 다른 무영이 여기 있었다. 봐도 봐도 익숙해지질 않는 모습에 재호는 오소소 소름이 돋아 작게 몸을 떨었다. 무영이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재호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조심조심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온 재호가 근처 휴게실로 가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서무영이는 좀 어때?]

“컨디션 좋습니다. 오늘 화보 촬영 다 끝내고 지금 김 감독님과 미팅 중입니다.”

[그래. 이사하는 건 잘 얘기해 봤어?]

무영이 소속된 W 엔터의 한 대표는 재호에게 이야기를 전해 듣고 짧은 한숨을 뱉었다.

[윤 실장. 그놈 괜찮아 보여도 당분간은 지켜봐야 해. 하여간 한 번에 말을 들어먹는 법이 없어 아주 그냥.]

“잘 알죠. 제가 방법을 좀 더 찾아보겠습니다.”

[그래. 부탁해 윤 실장.]

“작가님!”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같이 흐린 어느 날이었다.

한산한 카페로 들어선 수아는 안쪽에서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담당자를 보며 마주 손을 흔들었다. 그녀와 함께 커피를 주문한 뒤 테이블에 몸을 내렸다.

“작가님! 이번 신작 첫 화부터 반응 좋아요. 이대로만 가면 10위권 안으로 금방 들어가겠어요.”

“10위권이요? 세상에, 다행이다! 반응 어떨지 궁금하긴 했는데 조마조마해서 계속 미루고 있었어요.”

담당자가 휴대폰을 들어 포털 검색창에 수아의 작품 제목을 검색해 직접 보여주었다. 어느덧 데뷔 2년 차에 접어드는 로맨스 소설 작가인 수아였지만 반응을 확인하고 나니 절로 안도의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20회차 수정 요청 보내드린 건 보셨어요? 어떠세요?”

“대체적으로 좋은 방향인 것 같아요. 그런데 남자 주인공 과거사는 이후에 나올 사건이랑 연관이 커서 더 손대지는 않았으면 해요.”

머리를 맞댄 수아와 담당자는 각자 노트와 펜을 꺼내 들고 제법 오랜 시간 회의를 이어 갔다. 커피 한 잔을 다 비우고 추가로 주문한 한 잔까지 끝내고 나서야 두 사람은 카페를 나섰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작가님!”

담당자와 헤어진 뒤 수아는 근처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완수 감독 새 드라마 ‘나의 연인에게’ 서무영과 한윤서의 특급 케미 예고>

<서무영, ‘전보다 깊이 더해진 연기 선보이고파’>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이 휴대폰으로 둘러본 뉴스는 무영이 희영을 맡은 드라마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팬 사인회로부터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수아의 머릿속엔 무영의 존재감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내 팬 아니지?’

정곡을 찔렸지만 무어라 변명이라도 할 새 없이 프리허그는 끝나고 말았다. 어차피 더는 볼 일도 없을 테니 잊어버리자고 생각은 했으나 머릿속에 각인이라도 된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의 모습은 더욱 또렷해졌다. 심지어 무영의 잔상은 당시 신작을 고민 중이던 수아에게 번뜩이는 영감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무에게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날의 기억이 이른바 ‘덕통사고’가 되어 조용히 그의 팬이 되어 버린 것이다. 덕분에 그를 떠올리며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간 작품은 첫 화부터 좋은 반응을 얻는 중이었다.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서무영은 단순히 팬으로서 동경하는 인물을 넘어서 작가 지수아에게 생각할 때마다 글이 술술 써지게 해주는 한 사람의 뮤즈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지금 ○○행. ○○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수아는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도착한 지하철에 몸을 싣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지하철 안으로 막 걸음을 옮긴 그때, 주머니에서 휴대폰 진동이 느껴졌다.

“재호 오빠?”

어릴 적부터 거의 친오빠와 다름없이 지내 온 재호의 연락이었다. 그는 국내의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W 엔터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는데, 무슨 인연인지 재호가 담당하는 배우가 바로 그 서무영이었다. 처음 들었을 땐 그저 유명한 사람을 맡았구나 생각했던 수아였지만 팬 사인회 이후로는 새삼 그가 대단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잠깐 통화 괜찮지?]

“그럼.”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 오랜만에 치킨에 맥주나 한잔하자.]

“시간은 괜찮은데 무슨 일 있는 거야?”

재호는 휴대폰 너머로 쓰디쓴 한숨을 내쉬고는 이따 만나서 이야기하자며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수아는 살짝 고개만 갸웃하고는 다시 휴대폰을 주머니로 찔러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