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슈웅-팍!

호세 앞으로 화살이 박혔다. 벌어진 거리가 1km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거리에서 무턱대고 쏜 것을 보면 상당한 실력자들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멜씨가 바짝 붙어서 따라오고 있었다. 같은 또래의 여자였다. 지금 여기서 붙잡히면 저녁 식탁에 자신이 올려진다는 것을 아는 여자였다. 멜씨는 족장 아들과 결혼하기로 되었는데 자신의 아이까지 인육을 먹이고 싶지 않아 5일 장이 열리는 곳에서 위너와 접선하고 도움을 요청하더니 친구들을 5명이나 끌고 나왔다.

아포스 지구에서 사라졌던 인육 먹는 풍습이 다시 시작된 것은 핵전쟁으로 땅이 황폐되고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면서부터였다. 전 세계의 땅이 화산 구덩이처럼 푹푹 꺼지는 것을 두고 사람들은 데오스와 사탄의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거기다 맘모헬까지 하늘을 휘젓다 보니 식량은 늘 부족했고, 원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옛 풍습을 부활시켰다.

함께 쫓기고 있는 6명의 여자들은 체력이 좋았다. 위너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체력이니 쫓아오는 젊은 청년들은 더 할 것이다.

“윽!”

멜씨의 일행 중 한 명이 갑자기 혼절했다. 입술이 새파랗게 질린 친구의 뺨을 두드리는 멜씨 곁으로 다가가 상태를 살핀 호세는 주머니에서 하얀 필터를 꺼내 콧구멍 속에 넣었다. 수명이 다한 필터가 녹아 없어질 때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고마워.”

흉부가 부풀더니 숨을 크게 토해낸 멜씨의 친구가 눈을 떴다.

“괜찮아?”

“너희들 필터 때문에 이런 일을 꾸민 건 아니겠지?”

티노의 비아냥거리는 소리에 멜씨가 큰 눈을 부라리며 으르렁댔다.

“우리가 거지새끼인 줄 알아!”

세상 구석구석이 무너지고 대기오염 가운데 사람들은 호흡하기 위해 콧속에 반영구적 필터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가격에 따라 생존의 격차가 벌어졌다.

“쟤 콧속에 들어간 필터는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줄 알아?”

“티노!”

강한 눈빛으로 제지한 호세는 차분하게 앞으로의 일을 멜씨에게 설명했다.

“멜씨, 친구들에게 상황을 이야기해 줘.”

바짝 쫓는 자들의 대부분이 이들의 예비 신랑들이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도 된다고, 이들의 확고한 의지와 선택이 필요했다.

멜씨가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돌아갈 의향이 있는지 물으니 일제히 주먹을 내밀었다.

<우리는 변함이 없어.>

눈빛에서 이들의 의지를 읽은 호세는 티노와 함께 쫓는 자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멜씨, 너는 친구들을 책임져야 하니깐 절대, 우리에게 오면 안 돼.”

호세가 진지한 눈빛으로 멜씨에게 엎드려 조용히 기다려주기를 당부했다.

의지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었다. 그러니 제발….

수적으로도 밀릴 뿐만 아니라 저들 중에는 화살을 쏘는 자도 있었다. 10대 2. 호세와 티노는 숨을 고르면서 날아드는 화살들을 쳐냈고 베르비오는 멜씨와 친구들을 이끌고 수풀 사이로 숨었다.

최대한 근접 거리에서 공격해야만 한다.

“이럴 때는 맘모헬도 안 지나가네. 혹시 모르니깐, 네 밝기로 맘모헬 좀 불러내 봐라.”

티노가 칼을 다잡으며 중얼거렸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10:2는 너무 했는지 베르비오가 합류했다.

“호세, 방금 환상을 봤어.”

호세가 염려되어 합류한 게 아니었다. 베르비오의 회색빛 눈동자가 무거워 보였다. 수풀 쪽을 가리키더니 고개를 젓는다.

베르비오에게까지 환상으로 보이셨다면 확실한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는 포기할 수 없었다.

“알았으면 가서 지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티노가 둘 사이를 끼어들었다.

“뭔데?”

“그러기에는 이미 늦었어.”

추격자들을 향해 칼을 뽑아 든 베르비오다.

치타 같은 녀석들이 오는 방향을 힐끔 본 호세 또한 티노의 어깨를 두드렸다.

“맘모헬이 오기 전에 끝내자.”

착잡한 심정에 내리깔린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데오스의 군사여!”

생명의 위협 시에만 허락된 순간이었다. 말의 능력을 지닌 호세가 외치자 이들의 세마포가 전투복으로 바뀌었다.

“계속 이 차림이면 얼마나 좋아.”

투덜거리는 티노를 뒤로 하고 호세가 칼을 세우고 뛰쳐나갔다.

꽝!

맞부딪치는 칼과 칼이 번쩍였다. 검은 피부와 짧은 곱슬머리의 추격자들은 충혈된 눈동자로 거친 야생동물처럼 으르렁댔다.

<여자들은 어디 있지?>

공격을 막기도 급급해하던 추격자들이 어느새 긴 창과 검을 휘두르며 3명의 위너들을 가운데로 몰아넣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곁눈질한 호세가 허리에 찬 단검을 왼손에 쥐고 몸을 살짝 뒤로 밀었다 튕겨 나가 추격자의 목을 빠른 속도로 꿰뚫고는 옆에 서 있는 자를 가차 없이 베려는 순간이었다.

<넬슨!>

수풀에 납작 엎드려 있어야 할 한 명이 제 약혼자의 목에 칼이 단박에 꽂히려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지른 것이다.

멈칫하는 사이, 넬슨의 칼이 호세의 복부로 향하는 것을 보고 티노가 발길로 쳐냈고 망설임 없이 호세는 생명을 거두었다.

이를 시작으로 베르비오와 티노도 양 검을 사용하여 찍고 내리치면서 순식간에 6명을 제거했다.

남은 자가 3명, 1명이 보이지 않는다. 피 묻은 칼을 털어낸 호세가 주위를 살피자 화살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윽!”

티 내지 않으려고 했으나 눈썹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희는 위너라고 들었다.”

족장 아들이 회유에 나섰다.

“생명을 중히 여긴다 들었는데 순식간에 6명을 처리했군.”

때아닌 죄책감이 들게 만드는 화법이었다.

베르비오가 뭐라고 입을 열려고 하자 호세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우리는 멜씨와 친구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데오스께 인도할 의무가 있다.”

“멜씨!”

족장 아들이 이마의 힘줄이 볼록해지도록 약혼자를 불렀다.

호세가 주먹을 쥐며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멜씨….

<내 때에는 인육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후손들에게도 그리할 것이다. 가족을 버리고 네가 가는 길이 최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냐?>

조바심으로 바랬던 호세와 달리 수풀에서 일어난 멜씨는 당당히 걸어 나왔다.

<함께 자랐던 친구들이 죽었어.>

침울한 목소리가 피 흘리고 있는 시체들 위를 덮었다.

멜씨가 코웃음을 쳤다. 확실히 연기에 재능이 있는 놈이었다.

<멋있는 척하지 마.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말만 그럴싸한 놈이.>

피슝-!

멜씨가 슬그머니 허리 뒤로 칼을 잡는 것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호세와 친구들이 좌우 측으로 빠르게 달려 나가 남은 자들을 처리했다. 베르비오는 날아오는 화살을 방금 목숨을 거둔 몸뚱이를 이용해 방패 삼았다.

<컥!>

약혼자였던 이의 심장에 칼을 꽂은 멜씨와 그녀의 목동맥에 칼을 박은이의 얼굴은 창백했다.

<화살을 날리면 안 되지.>

제 할 말을 마친 멜씨가 자신의 목에 꽂힌 칼의 손잡이를 있는 힘껏 잡아 빼자 핏빛 분수가 솟구쳤다.

족장 아들의 숨은 붙어있었다. 위너들은 어디선가 이를 보고 있는 추격자에게 뒤처리를 맡겼다.

워십존으로 향하던 중 호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빠티아가 보내는 텔레파시였다.

알파 지구 다비다를 구할 것.

처음이자 나중이신 데오스가 이 땅의 끝을 알리는 메시지를 몇몇 위너(Winner)들에게 보였는데 호세도 그 광경을 보게 된다. 둘째 인이 떼어졌을 때는 붉은 말을 탄 자가 허락을 받아 화평을 제하여 버리고는 서로 죽이는 장면이었다. 큰 칼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전쟁과 살육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졌다.

***

드문드문 불빛만 보일 뿐 알파 지구는 고요했다.

배고파서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는 자장가 소리가 세찬 바람을 타고 흩어지기다가 나무 문을 덜컹덜컹 흔들더니 지하 계단으로 몰려들었다.

밤이면 유독 지하에서 위로를 찾으려는 자들로 테이블마다 인산인해였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고단함을 풀어내려는 늪 같은 곳에서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기 있습니다.”

금발 머리에 여린 목소리를 내는 사라가 손님 앞에 맥주잔을 놓았다.

말만 맥주, 실은 맘모헬의 피를 알코올에 섞은 것이다. 식물을 키울 수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나름 장사수완을 올리는 곳이었다.

“이번에는 좋은 소식 없어?”

우락부락한 덩치와 달리 포근한 인상인 털보가 사라에게 물었다. 주위를 살핀 사라가 삐죽였다.

“그게 제 마음대로 되나요.”

“왜, 둘이 뭐 있는 거야? 나도 켜줘.”

털보의 일행인 자가 관심을 보였다. 허리를 숙인 사라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받고는 있어요. 내일이지 않을까 싶어요.”

새침한 대답을 들은 털보가 주머니에서 달러 5장을 내밀었다.

“내일 틀림없지?”

“뭐, 컨디션에 따라 다르기는 한데….”

“아! 뭐냐고!”

털보의 일행이 맥주잔을 신경질을 내며 내리쳤다.

“아휴, 정말!”

못 말린다는 듯 짜증을 낸 사라가 서둘러 대걸레를 들고 와 바닥을 훔쳤다.

여러 손님을 상대하다 보면 이 정도쯤이야.

그 사이에 털보에게 이야기를 들은 일행이 입맛을 다셨다.

“저, 내가 지금 돈은 없고, 이거라도 걸고 싶은데….”

거친 손바닥에 올려진 정화 필터 3개가 놓였다.

“안 받아요. 괜히 이런 거 받았다가 죽으면 찝찝해서 싫어요.”

손을 크게 흔들며 아니라고 하는 일행은 제 고개를 들어 콧구멍을 보여줬다.

“자, 봐봐. 새로 끼운 지 얼마 안 됐다고.”

아이, 참! 소리를 남발하며 힐끗 본 사라가 필터를 받아 조명에 비춰 상태를 확인하고는 주머니에 넣어 챙겼다.

“다른 데 가서 받아줬다고 소문내지 마세요.”

화색이 돈 일행이 손을 치며 호응했다.

“아, 당연하지! 으하하하.”

사라는 재미를 위해 내기판에 필터까지 내놓는 자를 한심하게 보다가 뒤돌아섰다.

알파 지구에서 유행하는 내기였다. 이는 총사령관의 딸에게 꽂혀 탄생한 놀이였다. 처음에는 한창 물오른 아름다운 다비다가 언제 등장하는지 날짜를 맞추는 단순한 내기였다. 내기치고는 눈과 귀가 호강하고 나름 건전해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점점 많이들 참여했다.

사라는 귀신같이 그 날짜를 맞히고 있어서 수익률 좋은 중개인으로 통하고 있었다. 단, 다비다 친구라는 사실은 1급 비밀이었다.

은밀히 거래된 것들을 정리하러 가는데 누군가 팔을 뻗어 길을 막았다.

수입이 좋아서 상기된 채로 위를 쏘아보니 충혈된 눈과 부딪쳤다.

“너… 아가씨를 상대로 뭐 하는 짓이지.”

일그러진 표정을 가만히 쳐다본 사라가 다급히 그의 팔을 붙잡고 조용한 장소로 끌고 갔다.

군인 가슴팍에 붙은 이름표를 보고 사라는 마른 입술을 적셨다.

“리암 님.”

리암은 바지 주머니에다 돈을 넣으려는 팔을 붙잡았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고개를 푹 숙인 사라가 그의 벨트에 손을 올리고는 만지작댔다.

“병든 할머니를 모시고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어요. 이런 처지를 다비다도 알고 모른 척 넘어가 주고 있으니 봐주세요. 네? 제발!”

고개 들고 애원하는 얼굴을 무감하게 보고 있던 리암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래?”

팔짱을 끼고 검지로 관자놀이를 긁은 리암이 주위를 다시 살피고는 사라의 귓가에다 속삭였다.

“…언제지?”

***

「콜센터로 연결하면 타 지구(地區)에 있는 여성이 부유한 부부를 위해 임신을 해주는데 로봇은 왜 안 된다는 겁니까?」

걸러지지 않은 날 선 공격이었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행위입니다.

불임 부부를 위한 마지못한 기회이지.

다른 불순한 의도로 이를 상업화 시켜서는 안 됩니다.」

「환경 호르몬으로 비정상적인 영아가 태어나는 게 얼마나 되는 줄 아십니까?

자그마치 30%에 달합니다. 인류를 위해 상용화된 로봇을 조금 더 개발시키겠다는데 인간의 존엄만 따질 겁니까?

존엄도 정상적인 인간으로 태어나야 존엄이 있는 거지. 그 외에는 맘모헬의 먹잇감만 되는 겁니다.」

“지니!”

벽에 걸린 센서 등에서 깜박깜박 불빛이 들어왔다.

“네, 찾으셨습니까.”

고개를 360도로 천천히 돌린 다비다가 명령했다.

“클라라 주아 강의 사계 중 겨울 부탁해.”

라디오 열띤 공방을 뒤로하고 욕조 속으로 몸을 깊숙이 담갔다.

오래간만에 6시간 바이올린을 켰더니 몸에 무리가 온 거 같다. 목부터 흉추, 요추까지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통증 완화를 위해 낡은 욕조에 목을 뒤로 젖혔다. 천장 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시작된 곳을 찾아 시선을 돌렸다.

배관 어딘가가 누수되어 판넬 사이에서 물이 고여 흘러내리나 보다.

기울어진 천장의 물줄기를 따라 물방울이 일정한 간격으로 똑, 똑 떨어졌다.

“지니, 아직 멀었니? 요즘 너 너무 느려.”

“쳇, 그러면 업데이트 좀 해주시던지요.”

인간처럼 말대꾸하는 지니가 귀여워 픽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