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감사합니다. 여러 가지로 폐만 끼치고 갑니다.”

집을 나서는 이쯔끼가 고개를 숙여 박 씨를 향해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인사를 하자, 설이 어머니에게 그의 말을 전했다. 이쯔끼에게 다가온 박 씨가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잡았다.

“고맙네.”

단 한 마디의 인사에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설을 한국으로 보내주어서 이 아이와 인연을 맺은 게 고맙고, 손을 다친 아이가 쉴 수 있게 집으로 보내주어서 고맙고, 피붙이라고는 없는 아이를 보듬어주어서 고마웠다. 무엇보다 이 청년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생기가 도는 딸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고마웠다.

자신을 바라보는 박 씨의 눈빛을 본 이쯔끼는 설을 바라보며 눈부시게 미소를 지었다.

손죽도를 떠나는 배를 타기 위해 이쯔끼는 설과 함께 선착장으로 향했다. 한낮의 더위를 예보하듯 아침부터 햇살이 따갑다.

“더운데, 내려온 김에 보건소에 가서 다친 손 치료받고 가자.”

“응.”

이 더운 날씨에 땀에 젖은 붕대를 손에 감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배가 출발할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어, 이쯔끼의 말대로 설은 그와 함께 보건소로 향했다. 간호사에게 인사를 하고 치료받을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설은 이쯔끼와 함께 보건소 마당에 핀 해바라기 꽃을 바라보았다.

쪼르륵 기억자로 놓인 사각돌 화분 위에 어른 가슴팍까지 자란 꽃은 개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쯔끼, 청주에 있는 부헌재 마당에도 해바라기가 있었어.”

있다. 화재로 검게 그을린 돌담 아래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해바라기를 그도 보았다.

하지만 설은 그 꽃이 지금도 있는지 알지 못했다.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고향을 떠올리는 설의 표정에서 이쯔끼는 그녀가 그곳에 가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자신이 설을 찾기 위해 그곳에 갔었던 사실을 말해 주고 싶었다.

“아마 올해도 많이 피어 있을 거야.”

이쯔끼의 대답에 설이 놀라 고개를 돌렸다.

“이주니 씨?”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고 물으려는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설은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간호사가 드레싱을 하기 위해 손에 감긴 붕대를 풀어내자, 깊게 베인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엄지 아래서 시작된 자상은 대각선으로 손바닥 중앙까지 닿아있다.

부어오른 붉은 상처와 검은 봉합사(縫合絲) 위에 핀셋 끝에 매달린 알콜올 솜이 스칠 때마다 이쯔끼의 손을 잡고 있는 설의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상처 소독은 지금처럼 하시고 다음 주에 뭍에 나가신다고 하셨으니까, 치료받으신 병원에 들러 실밥은 제거 받으시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

보건소를 나와서 이쯔끼와 함께 선착장으로 향하는 설의 입술에서 낮은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던 그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유키.”

설이 고개를 돌렸다. 검은색의 짙은 선글라스에 가려 그의 눈동자를 마주 볼 수 없었지만, 설은 자신을 바라보는 이쯔끼를 향해 청염하게 웃었다.

“다음 주에 리조트로 복귀하면, 널…… 객실지원팀이 아닌 경영지원팀으로 발령 낼 거다.”

이쯔끼의 결정을 들은 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져 버렸다. 그의 선글라스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설은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

8월 초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자, T&K 리조트 직원들은 어느 때보다 더 바빠졌다. 새로 이곳에 온 경영진의 힘 덕분인지, 몰라보게 늘어난 객실 점유율과 몰려드는 예약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리조트 직원들을 더 당황하게 한 것은 파격적인 인사이동이었다. D동 본관 로비에는 갑작스럽게 부서를 옮기게 된 직원의 명단이 게시되어 있다.

-인사 공고-

경영지원팀, 김선일 사원

경호팀, 이주환 대리

이벤트팀, 차동명 사원

객실지원팀, 이주니 사원

상기 4인을 ○월○일자로

경영지원 1팀에 인사 발령 조치함.

원래부터 경영지원팀 소속이었던 김선일을 제외하고는 명단 위에 있는 다른 이들은 전혀 다른 부서에 소속되어 있었다. 소영의 약혼자인 이주환 대리는 체육과를 졸업해 경호팀 소속이었고, 음대를 졸업한 스물여섯 살의 차동명 사원은 이벤트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거기에 객실지원팀 소속인 플로리스트 이주니까지.

새로운 경영진의 속내를 알 수 없는 파격적인 인사이동에 월요일 출근 첫날부터 로비가 소란스러웠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일주일간 휴가를 마치고, 첫인사를 건네는 설에게 소영이 달려왔다.

“주니 씨,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네?”

게시판에 붙어있는 인사 공고가 설의 눈에도 들어왔다.

지난주 이쯔끼가 손죽도에 왔을 때 미리 전해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을 마주하고 보니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만 했다.

“저도 잘…….”

설 또한 알지 못했다.

플로리스트인 자신이 경영지원팀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쯔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울 주환 씨도 경영지원팀으로 인사발령이 났어. 도대체 낮도깨비처럼 갑자기 무슨 일 이래?”

울상을 짓는 소영의 모습에 설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찌 되었건 인사발령은 났고, 설은 인수인계를 마친 후 내일부터 경영지원팀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아참, 선배님 이거요.”

설이 소영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뭐야?”

아무런 생각 없이 후배가 준 봉투를 받은 소영은 내용물을 확인하고, ‘꺄악!’ 비명을 질렀다. 로비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둘을 돌아보았지만, 설의 팔을 재빠르게 끌고 벽 쪽으로 다가간 소영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게 뭐야, 항공권이잖아!”

“1등 했어요.”

“뭐?”

“지난번에 났던 아이디어 공모전이요. 제가 1등 하면 선배님께 결혼선물로 드린다고 약속했던 바로 그 부상이에요. 전 세계 어디든지 갈 수 있는 항공권.”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영을 향해 설이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전에 정리한 문서 등을 소영에게 넘기고, 다른 선배를 도와 객실에 교체할 꽃꽂이 작업을 마친 설은 점심도 거른 채 지쳐서 D동 1층에 있는 티 룸에 앉아있었다. 점심을 먹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지나 있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서 저녁때까지 버티기는 힘들 것 같았다.

교대 업무와 바쁜 직원들을 위해 상시 티 룸에 비치되어 있는 빵과 오렌지 주스를 가지고 다시 자리에 돌아온 설이 휴대전화 진동에 시선을 내렸다.

“여보세요.”

“지금 어디야?”

“응?”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다. 어제 오후에 리조트로 돌아와 이쯔끼와 전화 통화를 했지만, 업무 시간에 통화는 것은 처음이었다.

“1층 티 룸.”

“왜? 이 시간에?”

공적인 자리에서는 그가 자신의 상사라는 생각이 처음 들자, 이쯔끼의 물음에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몰라 순간 망설였다.

“B동에 들어갈 꽃꽂이 작업이 늦게 끝나서 점심을 못 먹었어. 그래서 잠시 내려와 있어.”

설의 대답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래,…… 나중에 보자.”

“응? 응.”

막상 통화를 마치고 보니 좀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거르고 일을 했다는데, 칭찬은커녕 안타까운 위로 한 마디 없다니. 남들처럼 ‘우리 연예하자!’로 시작된 관계는 아니지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평범한 연인들의 일상이라는 생각에 설은 혼자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행복했다.

그가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서 행복하고, 그와 같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이주니 씨!”

갑작스럽게 들리는 이쯔끼의 목소리에 설은 너무나 놀라 빵을 입에 문 채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 전화 통화를 마친 이쯔끼가 자신 앞에 서 있었다. 그것도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단정한 슈트 차림에 자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그의 모습, 친숙한 동시에 낯설었다.

순간 테이블 너머로 자신들을 힐끔거리는 직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네, 이사님!”

설은 놀라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인사를 했다.

“시간 괜찮으면, 지난번에 기획했던 아이디어에 대해 이야기를 하죠.”

“네?”

이쯔끼가 앞에 정리된 서류를 놓아주자, 설은 먹고 있던 빵을 옆으로 치우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지난번에 일본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수제 젓가락을 선물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던데, 젓가락이야 너무 흔한 것 아닌가요?”

“네?”

기획서에 자세하게 내용을 올렸음에도 그 내용을 다시 묻는 이쯔끼의 의도가 궁금했다.

“자세한 내용은 지난번 응모한 기획안에도 올렸지만, 와자이후 덴마쿠 신사에는 장수 기원을 의미하는 연수저가 있고, 시마네현 이즈모 절에는 남녀의 인연을 맺어주는 젓가락이 있습니다. 버드나무가 잡기를 물리친다고 믿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경사스러운 날에는 버드나무로 만든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처럼 그 나라 사람들이 가진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저희 리조트를 홍보하는데 활용해 보자는 제안서였습니다.”

막힘없는 설명에 이쯔끼의 입매가 부드러워진다.

“그렇다면 오히려 일본 현지에서 그에 맞는 젓가락을 구하는 것이 좋을 텐데, 굳이 한국에서 젓가락을 구할 필요가 있을까요?”

“한정 판매라는 제한을 이용하는 겁니다. 언제, 어디서든 구할 수 있으면 상관없지만, 그 장소에 가야만 가질 수 있고, 또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든 제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듭니다. 젓가락을 팔자는 것이 아니라 저희 리조트를 방문한 고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그분들의 기억 속에 저희 리조트에 대한 좋은 이미지나 기억을 남길 수 있는 아이디어를 원하셔서 제안을 드린 겁니다.”

설명을 듣는 이쯔끼의 시선이 슬쩍, 티 룸 안을 살핀다. 룸 안에 있는 직원은 각자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귀만큼은 설과 자신을 향해 열려있다는 것을 안다.

부서를 넘나드는 파격적인 인사, 그 안에 있는 유일한 여성이자, 플로리스트인 이주니가 왜 경영지원팀에 선발되었는지 모두 궁금해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지금 자신들이 이곳에서 나눈 대화만으로 충분히 풀어졌으리라 확신한다. 설의 일본어 실력은 리조트에 있는 한국인 직원들 중에서는 최고였다. 필요할 때는 동시통역을 부탁해도 될 정도로.

고등학교 때 자신이 문제아였다면, 설은 ○○○학원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하며 공부만 하는 우등생이었으니까. 떠오르는 기억에 이쯔끼가 피식 웃어버렸다. 그의 표정에 설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좋습니다. 그러면 이주니 씨가 기획한 일이니, 고객들에게 선물로 줄 수제 젓가락을 찾아보세요. 비용과 디자인 관련해서는 내일 경영지원팀으로 이동하는 대로 다른 팀원들과 바로 회의를 할 수 있게 준비해 오시길 바랍니다. 내일 보죠.”

자신이 할 말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버린 이쯔끼의 모습에 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멍하니 그가 나간 출입구만 바라보던 설이 고개를 돌리자, 자신들을 힐끔힐끔 보고 있던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설을 향해 엄지를 들어 보이는 모습에, 그제야 이쯔끼가 왜 이곳에 내려왔는지 간파했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때 기획서 위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바빠도 밥은 먹고 일하도록!

사무실로 도시락을 보냈어.

내일 출근해서 봐.

-井樹-

단정하게 써 내려간 이쯔끼의 글씨에 결국 환하게 웃고 말았다.

마음이 느껴지는, 뜻밖의 선물에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로 돌아가는 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

“이 대리님, 죄송하지만 창문을 조금 열어도 될까요?”

그들이 탄 차량이 T&K 리조트를 출발한 지 2시간 남짓, 에어컨을 틀어놓은 차 안의 공기는 설이 입은 반소매 블라우스 아래에 드러난 피부에 오소소 소름이 돋다 못해 한기가 느껴질 만큼 차가워져 있었다.

“아이고, 미안! 내가 몸에 열이 많아서…… 내 생각만 했네.”

월요일부터 함께 경영지원 1팀에서 일을 하게 된 소영의 약혼자인 이주환 대리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강’으로 틀어놓은 차량 에어컨의 스위치를 내렸다.

“아니에요.”

차의 뒷좌석에 앉아 있던 설은 살며시 미소를 보이며 오른쪽 창문을 조금 열었다.

열린 창문 사이로 뜨거운 공기가 순식간에 불어 들었다. 달구어진 지열 위에 떠돌던 공기가 피부에 닿자,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공기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소음을 들으며, 차창 밖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풍경을 잠시 바라보던 설은 한기가 사그라지자 창문을 다시 올렸다.

“이주니 씨, 조금만 더 가면 진영휴게소인데, 점심은 거기서 해결하지?”라는 주환의 말에 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운 메밀국수를 후루룩거리며 넘기면서도 이마에 땀을 흘리는 이주환 대리와 달리 뜨거운 우동 국물을 조심스럽게 떠먹는 설을 보던 동명이 젓가락으로 면을 뒤적이며 물었다.

“이주니 씨, 소음인인가 봐요?”

“네?”

“아까 차 안에서도 그렇고, 추위에 약하고 더위에는 강한 것 같아서요.”

무심하게 물어오면서도 단번에 자신의 상태를 짚어낸 동명의 눈썰미에 설이 놀라 고개를 주억였다.

예술가적 기질이 넘쳐나는 전직 피아니스트 차동명은 예술적 감각뿐만 아니라 눈썰미가 뛰어났다. 설이 기획서를 작성하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그가 찾아내 넌지시 알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설은 같은 팀에서 일하게 되는 구성원들이 가진 그 같은 재능을 단숨에 찾아낸 이쯔끼의 능력에도 다시 한번 놀랐다.

“네, 좀 추위에 약해요.”

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던 동명이 주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대리님, 업무 마치시면 바로 여수로 돌아가실 겁니까?”

“응, 왜?”

“전 부산에 온 김에 큰댁에 들렀다가 월요일에 리조트로 출근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이주니 씨와 나만 먼저 돌아가지 뭐.”

간단히 점심을 마치고, 부산에 있는 수제젓가락 생산 공장에 들른 설은 이주환 대리가 서류를 확인하는 동안 동명과 완성된 제품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잘 나왔는데요. 이주니 씨가 디자인한 꽃꽂이 스케치만으로 어떤 제품이 나올지 상상이 안 되었는데, 실제 제품을 확인해 보니 더 좋네요.”

천연 옻칠을 한 갸름한 나무 케이스 위에는 설이 디자인한 이케바나가 자게 문양으로 들어가 있었다. 상자를 열자, 안쪽에는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문구와 T&K 리조트의 CI 그리고 같은 자게로 꽃잎이 들어간 고급스러운 수제젓가락 한 쌍이 가지런히 들어있었다.

“만든 분의 정성이 담겨있으니까요.”

설의 대답에 동명이 피식 웃었다.

“그 정성을 실현시킨 것은 사랑에 빠진 여인이죠.”

툭 던진 동명의 말에 설이 놀라 고개를 들자, 동명이 장난스럽게 윙크를 하며 자리를 떠났다.

눈치 빠른 동명이 한 말에 허언은 없다고 느낀 설은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대리님, 괜찮으시면 전 여기서 먼저 인사드리겠습니다.”

“아니, 왜? 저녁 같이 먹고 가지?”

“큰어머니께서 맛있는 것 해 놓으셨다고 빨리 오라시네요.”

“그래, 그럼.”

동명이 인사를 대신해 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택시에 올라타자 주환이 다가왔다.

“좀 이르지만, 저녁 먹고 출발할까?”

“네, 뭐 드시고 싶은 것 있으세요?”

“소영이하고 부산에 오면 유부전골 먹으로 깡통시장에 꼭 들르는데, 주니 씨는 어떨지 모르겠네.”

이 대리의 넉살 좋은 제안에 설이 웃었다.

“풋, 그 사이에 소영 선배 생각하시는 거예요? 가요, 대리님!”

“생각? 생각이야 매일 하지!”

운전석 쪽으로 먼저 돌아가 차에 올라타는 이주환 대리의 모습에 설의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