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장. 잃고 싶지 않아서

선호는 이슬의 메신저 프로필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이슬의 뒤로 남자의 팔이 보였다. 메탈 시계를 찬 것을 보니, 태하의 손임이 확실해졌다. 손가락으로 웃는 이슬의 얼굴을 훑는 선호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이슬이 태하의 비서실에 있을 때, 회사 가는 것이 재미가 있었고 좋았는데 이슬이 없는 회사는 선호에게 출근의 기쁨을 안겨주지 않는다. 그저, 치열하고 치열한 전쟁터일 뿐.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선호가 휴대폰 화면을 껐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 안으로 태혁이 들어섰고, 선호를 보자마자 고갤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이 보였다.

“제가 일정이 있어서 좀 늦었습니다.”

“괜찮습니다. 앉으세요.”

“네 부회장님.”

자리에 앉은 태혁의 맞은편으로 자리를 한 선호가 깍지를 꼈던 손을 풀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브랜드 입점 말입니다.”

“네, 부회장님. 어떻게, 좋은 방법이라도.”

“방법이 필요한가요? 사장님이 저한테 충성만 하시면, 방법은 필요 없습니다.”

선호의 말에 태혁이 고개를 숙였고, ‘맡겨만 주세요.’라고 말을 했다. 그런 태혁의 말에 선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고, 언제 그랬냐는 듯 차게 식은 표정으로 태혁의 눈을 마주했다.

“자수 하세요.”

“네?”

“유태오 이사 사망 사건.”

“그, 그렇지만 그건. 사모님께서.”

“돈도 현금으로 받으셨고, 브레이크 교체는 사장님이 하셨고. 저희 어머니와 모의했단 그 어떤 증거도 없지 않습니까.”

선호의 말에 태혁의 손을 잘게 떨었고, 난감한 기색을 내 비춘다. ‘싫으면 어쩔 수 없네요.’라는 선호의 말에 태혁이 더듬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사실상 제가 입점 브랜드를 늘려도….”

“아, 사장 자리에 앉지 못하면 얻는 것이 없을까 봐 그러세요?”

“네. 아니, 저는 괜찮지만. 처자식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언제부터 그렇게, 처와 자식을 신경 쓰셨다고.”

“그렇지만, 제가 없으면-.”

“착각하고 계신 모양이네요. 사장님께서 태오 백화점을 키우신 것 마냥.”

“…그, 그런 말이 아니라.”

“임원들이 사장님을 원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면, 비워두겠습니다.”

가망이 없다. 임원들은 ‘태혁’을 원하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태오 백화점의 직원들도 악명 높은 태혁을 원할 리가 없었다. 눈을 질끈 감은 태혁이 입을 열었다.

“제가 사장직을 그만둘 테니, 저희 아들이라도.”

태혁의 말에 선호의 입가에서 실소가 터졌다. 자신이 자리에서 내려올 테니 아들을 사장직에 올려달라는 말이다.

“나쁘지 않네요. 그 일에 저희 어머니는 처음부터 없었던 인물이 되는 겁니다.”

내일 아침, 태혁은 경찰서로 자수를 하러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용기를 내 테이블 위에 올려진 종이에는 태혁의 아들인 건수의 번호가 남아 있었다. 태혁의 바람을 들어줄 리가 없는 선호는 쓰레기통으로 종이를 던졌다. 이제 막 시작을 알린 전쟁이다. 태혁이 자수를 해도, 언제 생길지 모르는 변수들에 피곤함이 몰렸다.

한편, 이슬이 깊은 잠에 빠졌음을 안 태하가 침대를 빠져나왔다. 이슬과 아침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태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이슬의 이불을 다시 정리해준 태하가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소파 위에 던져두었던 모자를 챙긴 태하가 조용히 현관을 빠져나왔다.

몇 시간 겨우 잠을 청했던 태하가 시끄럽게도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욕실을 찾아 들어섰고, 태하의 머리 위로 따듯한 물이 쏟아져 내렸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자신을 찾을까 두렵다.

시끌벅적, 태오 그룹의 로비가 시끄럽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 태하의 눈엔 커다란 TV 화면이 들어왔다. ‘태오 백화점 유태혁 사장, 유태오 이사 사망 용의자로 자수’라는 타이틀과 함께 앵커가 시끄럽게도 떠들고 있다.

“이게, 무슨.”

태하는 빠르게 계단을 이용해 이사실로 들어섰고, 재호 역시 표정이 잔뜩 굳은 상태였다.

“뉴스, 뉴스 봤습니까?”

“네, 이사님.”

“일단, 이사실로.”

“네.”

이사실에 위치한 TV의 전원을 켠 재호가 태하의 곁으로 섰고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 시켰다. 기사 내용을 요약하자면, 유태오 이사의 사고 원인은 ‘브레이크’ 고장이었는데 유태혁 자신이 브레이크를 교체했다고 경찰서로 자수를 했다는 것이다.

“브레이크 교체를 유 사장이 했다는 말입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혼자 꾸민 일은 아닐 것 같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단독 범행이었다고 자수를 하셨다 합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무슨 이유로?”

“말로는 유태오 이사님이 손익으로 부담을 많이 주셨다고.”

“그게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세요?”

“이사님. 일단, 조금 기다려 보는 걸로-.”

“아뇨. 분명 윤선영이 손을 쓴 게 분명해요.”

태하가 주먹을 말아 쥐었다. 태혁이 브레이크 교체를 했다고 해도, 분명 그 뒤엔 선영이 있었을 것이다. 선영과 선호보다 한 발 늦었다는 생각에 마른세수를 하던 태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선호, 출근했죠?”

“네. 아까 출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태하가 이사실 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고, 태하에게 어딜 가시는 거냐며 외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부회장실로 향한 태하에 선호의 비서가 인사를 했고, 태하는 그 인사도 받지 않고 부회장실 문을 열었다.

“뭐야, 연락도 없이.”

“유태혁 사장. 네가 벌인 일이야?”

“기사 제대로 보고 온 거 맞지? 자수했다잖아. 자수가 뭔지 모르는 모양인데.”

“그까짓 손익으로 들들 볶는다고 사람까지 죽일 사람은 아니잖아.”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선호가 태하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모니터를 보며 말을 했다. 태하가 말을 할 때마다, 꼬투리를 잡는 선호다. 그런 선호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태하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쾅.’ 주먹으로 쳤다고 하기에는 꽤 큰 소리에 선호의 고개가 태하에게로 돌려졌다.

“사실대로 말해.”

“귀하신 몸을 그렇게 쓰면 어떡해. 곧, 약혼도 해야 할 텐데.”

선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태하의 손목을 잡았다. 태하의 고개가 들렸고, 선호의 눈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어린 티, 그만 내.”

“유선호.”

“말 짧은 것도, 이해 할 수 있는데. 자꾸 내가 하는 것들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건, 용납 못한다는 말이야. 알아들어?”

“네가 덮었다고 생각하지? 절대, 네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거야.”

태하가 선호의 손을 뿌리쳤고 부회장실 밖을 나섰다. 유리창으로 잔뜩 성이 난 태하의 옆모습이 빠르게 지나갔고, 그 모습을 보던 선호는 작게 숨을 뱉었다. 태하에게 차갑게 말은 했지만, 선호의 속도 말이 아니다. 두려움, 그리고 불안함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한편, 이사실로 들어온 태하에게 재호가 물으며 뒤를 쫓았다. 태하는 자신에게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재호에게 먼저 입을 열었다.

“유태혁, 만나야겠어요.”

“지금요?”

“네. 경찰서에 연락 취하세요.”

“이사님.”

“부탁입니다.”

“알겠습니다.”

태하는 이사실로 들어섰고, 자신의 재킷을 챙기기 바빴다. 정말, 태혁이 다 안고 가기 전 이 모든 사실을 밝혀야만 했다. 태하의 다급한 몸짓에 최 비서도 덩달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이사님.”

“네.”

“오늘 당장 면회는 어렵다고 합니다. 아직, 형을 받은 상황도 아니고 조사들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유태혁 사장 말고, 김준호 씨를 만나 보시는 건 어떨까요.”

“김준호?”

“카센터 사장님 아드님이요.”

“그렇게 하도록 하죠. 오늘 일정 다 취소해주세요.”

“네, 이사님.”

재호가 이사실을 빠져나가며 준호에게 전화를 걸었고, 준호도 오늘 아침에 기사를 봤다며 약속을 잡았다. 태하의 모든 일정은 다 취소되었다. 그 일정 중엔, 예림과의 약속도 있었다. 갑작스런 미팅 취소 통보에 태하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도 울렸다. 예림이다.

“네.”

-갑자기 미팅을 취소할 만큼 중요한 일이 있는 거예요?

“개인적인 일이라.”

-여자친구?

“사적인 부분까지 제가 말을 할 관계는 아닌 것 같은데요.”

-갑작스러운 미팅 취소는 태하 씨에게도 좋지 않아요.

“제 이미지까지 신경 써주시니, 감사하네요. 제가 바빠서 비서 통해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태하 씨.

‘태하 씨’라고 부르는 예림의 말에 머릿속에서 이슬이 스쳐 지나갔다. 태하 씨, 태하 씨. 이슬이 늘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다.

-아니에요. 기다릴게요.

예림의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은 태하가 재호의 목소리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김준호 씨가 자택으로 지금 오신답니다.’라는 말과 함께 문을 열었고, 열린 문으로 태하가 먼저 빠져나갔다.

한편 이슬은 은산 병원이 아닌 다른 산부인과를 찾았다. ‘태오 그룹’의 병원인 은산 병원에 괜히 발을 들였다가 태하가 알게 된다면, 일에 신경을 쓰지 못할 테니.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리고, 혹여나 태준이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면 뒤를 쫓을 것만 같은 불안함에 휩싸였다.

“설이슬 씨,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간호사의 부름에 이슬이 몸을 일으켰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진료실 안으로 들어섰다. 쭈뼛쭈뼛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이슬에게 의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주수 체크 하시고 초음파 보시러 오신 거죠?”

“네.”

“초음파실로 안내해 주세요.”

“네, 선생님.”

간호사가 이슬에게 초음파 실을 안내했고, 침대로 몸을 눕힌 이슬은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이슬의 티셔츠가 걷어 올려졌고, 그 옆으로 의사가 앉았다. 차가운 젤이 이슬의 배 위로 잔뜩 뿌려졌다. 기계로 이슬의 배를 이리저리 누르던 의사가 입을 열었다.

“8-9주차 된 것 같네요. 아기집 상태 좋아요.”

“아, 그래요?”

“상태는 좋은데, 그래도 조심하셔야 할 것 같아요.”

“네.”

“자궁 자체가 안정적인 모양은 아니니까,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요.”

“네 감사합니다.”

“오늘 산모수첩 받아 가시고요. 3주, 4주에 한 번 내원하세요.”

“네.”

“축하드려요.”

이슬에게 축하한다고 말을 건넨 의사가 먼저 초음파 실을 나섰고, 이슬의 배를 닦아주던 간호사도 이슬에게 축하한다고 말을 했다. 이슬의 눈시울이 붉게 물든다. 자신만 알던, 존재를 두 사람이 더 알게 되었고 축하까지 받았음에 가슴이 벅차다. 아무에게도 알릴 수 없는 존재를 축하해주는 사람도 있음에.

“어머, 티슈가.”

눈물을 터트린 이슬에 당황한 간호사가 티슈를 찾아 이슬에게 건네었다. 이슬은 티슈를 받아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진정 되면 나오세요.”

간호사는 그런 이슬을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초음파 실을 나섰다. 이슬은 한참이나 눈물을 훔쳤고, 자리에서 일어나 간호사의 앞으로 섰다. 쇼핑백에 각종 영양제와 산모수첩들을 담아 이슬에게 건네는 간호사다.

“몸 관리 잘 하셔서, 예쁜 아기 낳으세요. 다음 예약은 한 달 뒤로 잡아 두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슬이 쇼핑백을 들고 병원을 나섰다. 자신의 손에 들린 쇼핑백을 보니, 그제야 실감이 난다. 정말, 자신의 뱃속에 태하의 아이가 있다. 떨리는 손으로 산모수첩을 열었고, 그 안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은 작은 점이 자리 잡은 사진 한 장이 있다.

초조한 마음에 다리를 떨며 소파에 앉은 태하다. 손톱까지 깨물어대는 태하를 물끄러미 보던 최 비서가 물을 한 잔 떠다 건넨다.

“물드세요.”

“고마워요.”

태하가 물을 목으로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인종 소리가 조용한 집안으로 퍼졌고 최 비서가 빠르게 몸을 일으켜 현관문을 열었다. 그 앞엔 준호가 있었다.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사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아닙니다. 저도 아침에 기사 보고 놀라서, 연락드리려고 했습니다.”

최 비서가 거실로 준호를 안내했고, 소파 근처에 온 준호에 태하가 잔을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갤 숙여 인사를 한다.

“오랜만입니다.”

“네, 이사님. 잘 지내셨죠.”

“네, 저야 뭐.”

“모친상 소식에 장례식장에 갔었는데, 자리에 없으시더라고요.”

“네, 제가 자리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태하의 씁쓸한 대답에 준호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그 기분을 알 것만 같아서, 그리고 준호가 자신의 가방에서 수첩 하나를 꺼내 태하의 앞으로 건넨다.

“저희 아버지가 쓰시던 수첩입니다.”

“아, 네.”

“보시면 아시겠지만, 브레이크를 교체하던 날도 수첩을 쓰셨습니다.”

준호가 수첩을 펴 태하에게 건네었고, 태하는 받아 수첩에 적힌 내용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브레이크 교체, 부품은 직접 가지고 오심. 테스트 거부.]라는 정갈한 글자가 태하의 눈에 들어왔다.

“혹시, 경찰 연락은 받으셨습니까?”

“네, 기사 보고 전화 받았습니다. 내일 서로 좀 나와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이 수첩, 가지고 가실 거죠?”

“네. 아버지가 기록한 것들이니까.”

“저, 이 앞에 내용들 중에 태오 그룹 관련 수리 내역이 더 있을까요?”

“아, 잠시만요.”

준호가 가방에서 수첩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곤, 태하의 앞에 자리한 테이블 위로 올려둔다.

“여기에 다 적혀 있을 겁니다. 단골이시라고, 수첩도 따로 사용하셨어요. 금액도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태하가 낡은 수첩을 자신의 무릎 위로 올려두었고, 준호는 그런 태하를 물끄러미 쳐다보기 시작했다.

“유태혁 사장의 단독 범행은 아닐 겁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내일 가서 알고 계신 것들 정확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네, 이사님.”

“그리고 또 죄송하다는 말씀 다시 드립니다. 자꾸만 제가 나쁜 기억들을 꺼내게 만드는 것 같아서요.”

“아닙니다. 저희 아버지도 있지만, 전 이사님도. 저는 괜찮습니다.”

“부탁드려요. 죄송한 마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탁드립니다.”

“네, 내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수첩은 천천히 보시고, 도움이 된다면 증거로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준호가 태하에게 손을 건네었다. 그리고, 태하가 떨리는 손으로 준호의 손을 마주 잡았고 세게 힘을 주었다.

“힘내세요. 비루한 제가 얼마나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준호의 손이 태하의 손을 놓았다. 그 큰 집에는 또 다시 태하 혼자만이 남았다. 자신의 편이 생겼다. 평생, 혼자일 것만 같았던 자신의 삶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이잉, 지이잉.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고, 발신자는 태준이었다. 받고 싶지 않은 전화에 눈을 감았고, 끊긴 전화에 조용했던 휴대폰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서진과 저녁 약속 잊지 않았지.

“잊진 않았지만, 여전히 갈 생각은 없습니다.”

-선영이는 자리에 없어, 그러니 오도록 해.

“윤선영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럼, 누구 때문인데. 설마, 설이슬 그 계집 때문이야? 그 계집이 너한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야?

계집, 계집이라는 호칭에 태하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리곤, 태하의 목소리에 조금 더 힘이 실렸다.

“계집 아니고, 설이슬입니다.”

-나한텐 그저 부모도 없는 계집일 뿐이야.

“끊겠습니다.”

-네가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내가 떼어 낼 거다. 죽여서라도, 네 옆에 붙어 있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야.

죽여서라도 자신의 곁에서 이슬을 떼어내겠다는 태준의 말에 태하가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떨리는 주먹은, 빨갛게 부어올랐다.

-왜 대답이 없어!

“주소 보내세요.”

태하가 전화를 끊었다. 쿵, 쿵. 태준의 말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슬의 이름을 들먹거림에 태하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에 이슬에게 전화를 거는 태하다.

-네, 태하 씨. 퇴근했어요?

밝은 이슬의 목소리가 태하의 귓가를 울렸고, 안도감에 가쁜 숨을 뱉는 태하다. 그리고, 태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