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의 최애, 제이

“윤채이 대리, 퇴근하려는 건가?”

그다. 채이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그, 안 팀장이다.

화장실에 간 틈을 타서 빨리 가방을 챙겼는데, 언제 저렇게 와 있었던 걸까.

채이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지금 퇴근 시간이 다 되기도 했고… 오늘 약속도 있고 해서요….”

“지금 다들 앉아서 일하는 거 안 보여? 6시에 딱 일어나서 퇴근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입사한 지가 언젠데 그 정도도 몰라?”

하… 이래서 빨리 자리를 떴어야 했는데.

울며 겨자 먹기로 일단 자리에 앉은 채이는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을 윤혜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야… 팀장님한테 걸렸어… 나 일단 눈치 봐서 좀 있다가 퇴근할 테니까 빨리 피시방 가서 내 자리도 좀 맡고 티켓팅 화면 세팅도 좀… 알았지?]

[아오, 그 인간은 왜 퇴근 안 하고 난리냐! 알았어. 야 그래도 빨리 와야 돼. 시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윤혜의 답장을 대충 훑은 채이가 다시 시계를 보았다.

티켓팅 시작 시각은 6시 반,

회사에서 피시방까지는 10분,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마음을 정갈히 하는데 10분,

그리고 피시방 가다가 무슨 변수가 생길지 몰라 확보해야 하는 여유시간 10분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아니, 할 일 끝났고 6시가 됐으면 퇴근하는 게 맞는데, 왜 나는 바보같이 그냥 자리에 앉은 거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채이는 자기도 모르게 안 팀장에게 가서 말했다.

“팀장님, 퇴근하겠습니다. 퇴근 시간이니까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

어이없어하는 안 팀장을 뒤에 둔 채, 팀원들에게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채이는 급하게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빠져 나와서야 오금이 저리고 내일이 걱정되기 시작했지만 지금 그게 문제일 때가 아니었다.

미친 듯이 달려서 피시방에 도착했더니 든든한 윤혜는 이미 티켓팅 사이트 접속을 마친 후였다.

“어, 일찍 왔네?”

“걍 나와 버렸어. 지금 이 순간 나는 인생을 걸어야 하니까.”

“참 너도 대단하다. 신이 계신다면 지금 너의 모습을 보고 반드시 티켓팅 성공시켜 주셔야 할 텐데.”

하… 모르는 소리 하고 있구나, 하윤혜.

이번 티켓은 무려 ‘유니버스’의 첫 단독 콘서트 티켓이라고!

‘유니버스’가 무엇인고 하니,

요즘 채이에게 유일한 삶의 낙이 되어주는 남성 5인조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이었다.

유난히 길고 험한 연습생 시절을 보냈고, 데뷔 후에도 밑바닥에서부터 음악프로 1위를 하기까지 차근차근 논란 없이 꾸준히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멤버들의 결속력은 물론, 팬덤도 단단한 그룹이었다.

사실 채이가 그들을 알게 된 건 얼마 전의 일이었다.

뜨기 시작했을 때 방송에 나온 것을 흘깃 보고는, 그저 겉멋 든 아이돌 그룹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관심 두지 않다가, 평소 애청하던 토크쇼에 나온 그들을 보고는 완전히 매료되었던 것이다.

*

채이는 고아였다.

고아라고 하기엔 부모님이 살아 계신지의 여부가 불확실하긴 하지만, 채이는 두 분 다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27살이 되도록 단 한 번도 찾지 않으셨을 리가 없겠지.

채이를 키워주셨던 친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채이의 아버지는 꽤나 모험가였던 모양이었다.

젊었을 때부터 여러 가지 사업을 하셨다고 한다.

망했을 때도 있었지만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었을 때도 있었는데, 그 돈을 또 다른 사업에 투자하여 망하고, 또 성공하기도 하는 패턴이 계속 반복되었다고 한다.

친할머니는 아버지가 좀 정착했으면 하는 바람에 주변에 며느리가 될 만한 사람을 널리 수소문해 보았고, 그렇게 찾아낸 참한 여자와 선을 보게 하여 빨리 결혼을 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오래 지나지 않아 채이가 태어났다.

하지만 가정을 꾸리면 좀 안정적으로 살 줄 알았던 친할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아버지는 계속해서 무모한 도전들을 멈추지 않았고, 이로 인해 채이의 어머니는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 버리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본인의 사업 외의 것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건 가정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채이의 어머니가 갑자기 집을 나가버린 후에도 딱히 찾지 않으셨다고 한다.

어느 날, 이상하게 밤늦도록 잠이 안 오신 친할머니가 새벽 무렵에 겨우 잠에 드셨다는 바로 그날, 잠에서 깨어보니 머리맡에 통장과 편지가 하나 놓여 있더란다.

통장에는 그간 아버지가 모아왔던 돈들이 들어 있었고, 편지에는, 요약하면 대략, 정말 해 보고 싶은 사업이 생겨서 이젠 거기에 인생을 올인하고 싶다, 성공하면 돈 많이 벌어서 다시 찾아올 테니 그때까지만 채이를 좀 돌봐 달라, 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지만, 친할머니가 사랑으로 키워주셨기에 가난하긴 해도 채이는 별 탈 없이 잘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채이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 친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채이는 무너지고 말았다.

‘도대체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등학교는 겨우 마쳤지만, 대학 등록금은 도저히 마련할 수 없었다.

성인이 되자마자 채이는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열심히 돈을 벌었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사이버대학을 다니며 간신히 대학 졸업장을 따낼 수 있었다.

그래서 27살이 된 지금은, 나름 이름있는 회사에 취업하여 다니고 있지만 학력이 낮은 채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팀장 때문에 힘든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채이가 ‘유니버스’에 빠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갖은 고생 끝에 데뷔하여, 이제야 빛을 보게 된 유니버스의 성장스토리에서 본인의 모습을 본 것이었다.

그렇게 유니버스에 빠지게 되어 매일을 그들의 영상을 보면서 이른바 ‘덕질’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것은 지금까지 딱히 즐거울 일이 없었던 채이의 일상에 한 줄기 빛이 되어주었다.

그들의 무대는 정말 완벽했다.

5명의 훤칠한 남자들의 군무는, 그간 아무 재미없이 살아온 채이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기 충분했다.

한편,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그들의 모습은 카리스마 있는 무대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이웃집 친구처럼 친근하고 귀여웠다.

넘쳐나는 그들의 반전 매력에서, 채이는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들 중에서도 채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25살의 메인 댄서 ‘제이’(본명: 임정민)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춤을 췄다는 제이는, 멤버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180cm의 키, 말랐지만 단단하게 잡힌 잔근육, 긴 팔다리, 무대에서는 카리스마 넘치지만 평소 웃을 때는 그 눈웃음이 마시멜로를 연상시키는, 제이.

채이는 그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뛰는 가슴을 느끼며, 이런 게 사랑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매일 그의 영상과 사진을 보며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벌써 데뷔 3년 차였는데, 지금에서야 그 3년 치의 모습들을 한꺼번에 다 보려니 1분 1초가 아까울 지경이었다.

왜 이제야 그를 만난 걸까.

아냐, 이제라도 만나서 얼마나 다행이야.

그를 보며 앞을 볼 수 있는 시력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그의 목소리와 노래를 들으며 들을 수 있는 청력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하늘에서 27년간 고단하게 살아온 세월에 대한 보답으로, 나에게 지금 제이를 알게 해 준 건 아닐까?

유일한 회사 친구 윤혜가 갑자기 밝아진 채이를 보고 의아해하며 그 이유를 물어왔을 때, 윤혜에게도 그들을 소개하여 같이 입덕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윤혜는 채이만큼은 아니지만, 채이 옆에서 계속 그들을 보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어버렸고 그렇게 자연스레 채이의 덕질 메이트가 되어주었다.

‘아… 제이를 한 번만 내 눈앞에서 볼 수 있다면….’

삶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느라, 연애는 고사하고 남성에게 이성적인 감정조차 느껴본 적 없는 채이에게 제이에 대한 감정은 놀랍고도 소중한 것이었다.

무책임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자연스레 남자에 대한 적대감으로 바뀌었고, 내 인생에 남자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채이의 마음속에 평범한 사람도 아닌, 만인의 연인, 당대 최고의 인기 아이돌 제이가 자리 잡게 된 것이었다.

*

“윤혜야, 너 말이야. 성준 오빠 처음 만났을 때 어땠어?”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으로 윤혜가 시큰둥하게 받아쳤다.

“기억도 안 나는데? 너는 4년 전이 기억이 나냐? 근데 그건 왜?”

자기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별소리를 다 한다는 듯 건성으로 대답하는 윤혜의 눈치를 보며, 채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니… 사실은… 나는 이 감정이 뭔지 모르겠어… 연예인을 좋아하는 감정이라면, 그냥 그 연예인을 볼 때만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는 거면 너무 이상한 거 아닌가?”

100번도 더 들은 채이의 질문에, 윤혜는 채이를 쳐다보며 항상 하던 대로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어 맞아. 너 너무 이상해. 아이돌은 아이돌이야. 그냥 연예인이라고! 아이돌에 너무 빠지면 너 나중에 시집도 못 간다~ 걍 기분 전환용으로만 즐겨 제발!”

“그렇겠지…?”

갑자기 시무룩해 하는 채이의 모습에, 윤혜는 아차 싶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채이야. 연애 좀 하자. 지금 너한테 필요한 건, 평범한 연애의 감정이야. 27살이 되도록 모솔 이니, 사랑에 대한 역치가 너무 낮아져 있는 게 문제라고. 그러니까 조금만 설레도 이게 찐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니 쓸데없는 걸 고민하고 있는 거고. 그냥 너 좋다는 사람이랑 연애 한 번만 해봐도 해결될 문제라니까~?”

티켓팅 할 생각에 들떠 있었던 채이의 마음에 다시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그래. 연예인일 뿐인데. 콘서트 간다고 해서 제이가 나를 알아봐 줄 것도 아니고. 그냥 나는 다른 많은 팬들 중 한 명일 뿐인데.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걸까. 왜 이렇게 생업까지 제쳐가면서 티켓팅에 열중하는 거야, 나.’

채이는 갑자기 방금 전 안 팀장에게 호기롭게 퇴근하겠다고 말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던 자신이 한심스럽고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야, 뭐하냐? 2분 전이야!”

감상에 젖어있는 채이를 다잡아 준 건, 윤혜였다.

“악! 야 진짜 지금부터는 전쟁이야!”

방금 전까지의 우울한 생각도 한순간에 집어치우게 한 윤혜의 2분 전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60초 전, 59초 전, 58초 전,

손에 땀이 흐르고 동공은 확장되기 시작했다.

40초 전, 39초 전, 38초 전….

‘제발, 제발 하느님, 이번 티켓팅 성공하게 해 주시면, 이번 달 월급 들어오면 십일조를 하겠습니다. 아니 반을 헌금할게요. 아니 80%를…!’

10초 전, 9초 전, 8초 전….

‘아니 걍 전체금액 다 드릴게요. 제발…!’

그 이후로는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클릭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다만 옆에서 환호하는 윤혜의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야! 와 윤채이 출세했네! 야 축하해! 드디어 제이 보는 거야?”

“엉…? 어엉?”

아무 영혼 없이 클릭 질을 반복하던 채이의 귓가에 다시 한번 윤혜의 함성이 들려왔다.

“야, 윤채이! 한턱 쏴! 와 하늘이 무심하지 않았네! 한 번에 성공하다니!”

뭐야, 뭐야…? 나 진짜 티켓팅 성공한 거야?!

꿈이 아니었다. 분명히 눈앞의 화면은 결제화면에 머물러 있었다.

자, 흥분하지 말자. 마지막까지 방심하면 안 돼.

떨리는 손으로 결제까지 마치고, 채이는 그대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턱- 떨어뜨렸다.

“하….”

실감이 나지 않아서인가? 미칠 듯한 기쁨은 없었다.

생각보다 조용한 채이의 세리머니에 윤혜는 슬슬 눈치를 살폈다.

“야 괜찮아? 너 갑자기 왜 그래? 이거 꿈 아냐! 너 이제 한 달 뒤면 제이를 본다고! 그것도 바로 앞에서!”

알아, 나도 아는데… 기분이 왜 그렇게 기쁘지가 않은 거지?

다 알겠다는 듯이, 윤혜는 채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야, 나가자. 이런 기쁜 밤을 그냥 보낼 순 없지. 티켓팅 성공기념 파티하자고!”

윤혜의 팔에 이끌려 채이는 그대로 피시방을 빠져나가 맥줏집으로 갔다.

“여기 치킨 한 마리랑 생맥 500 두 잔이여!”

알아서 주문해 주는 윤혜의 맞은편에, 채이는 아직도 멍한 채로 앉아 있었다.

“야 윤채이. 왜 그래? 아니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거냐고. 너 내가 연애 좀 해 보라고 뭐라고 해서 그래?”

갑자기 채이는 부끄러워졌다. 본인 같은 건 알지도 못할 것 같은 톱스타를 진짜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말을 했으니, 이건 평생 이불킥 감이라고 생각했다.

“몰라… 그전까진 내가 제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너한테 말로 털어놓고 나니까 진짜 내가 팬심으로 좋아하는 게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부끄러워 나 자신이… 그리고 이 감정이 뭔지 모르겠어. 그래서 너무 혼란스러워.”

“아구, 야 누구나 아이돌 좋아하면서 그런 감정 한 번씩은 느껴! 아이돌 비밀 여친 한번 안 되어 본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윤혜 너도 그런 적 있었어?”

채이의 영혼 있는 반응에, 윤혜는 조금 안심한 듯이 세웠던 등을 약간 구부리면서 말했다.

“있다 뿐이겠냐? 난 숙소도 막 찾아가고 콘서트마다 다 따라다니고, 난리도 아니었지. 가요 프로그램에서 그 오빠 옆에 다른 여가수 서 있으면 막 티비 화면 째려보고 그랬다니까.”

“진짜? 언제 그랬어?”

“음… 중학교 때?”

“뭐?”

이게 지금 나를 놀리나, 채이가 자기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갑자기 흥분하는 채이를 보고 놀란 윤혜가, 주위를 살피며 채이의 손을 잡고 목소리를 낮췄다.

“채이야. 내 말 좀 들어봐. 내 말은, 아이돌을 좋아하면서, 아니 모든 연예인을 좋아하면서 그 사람에 대해 미친 듯 좋아하는 감정은 누구나 한 번쯤은 다 느낀다는 거야. 그리고 아이돌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연령대가 어린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그 과정을 보통 학창 시절에 겪는 거구. 그러니까 나중에는 그냥 이러다 말겠지, 무덤덤해지는 거라고. 근데 너는 지금까지 그래 본 경험이 없잖아. 너무 늦게 무언가를 좋아하는 경험을 하다 보니까, 헷갈리는 거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거라니까?”

마침 나온 치킨 다리 하나를 들어 자연스럽게 채이에게 건네주며, 윤혜는 부드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난 그래도 네가 이런 고민을 한다는 자체가 진짜 기뻐. 지금까지 너랑 지내오면서 뭔가를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걸 본 일이 없었거든. 나는 네가 감정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니까? 우리 채이 진짜 얼마나 기특한지 몰라. 너도 이제 어른이 되어 가는 거야.”

채이는 윤혜가 건네준 치킨 다리를 받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보기만 해도 바삭할 것 같은 치킨 다리, 코를 찌르는 고소한 냄새, 남들은 다 ‘치느님’이라 부르며 환장하는 치킨 다리를 보고도, 채이는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먹으면 먹고, 못 먹게 되면 못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 확실히 나는 살면서 뭔가를 좋아하고 싫어한다는 감정 자체를 느껴본 일이 없어. 그래서 이렇게 크게 느껴지는 건가 봐.’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채이도 마음이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