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스름한 새벽의 하늘과 코끝을 때리는 싸한 박하향이 제법 운치 있게 느껴지는 날이다. 전날 저녁까지 내린 비 덕분에 공기는 한껏 깨끗함을 자랑하듯 코 안을 신선하게 휘저었다. 미러클 모닝을 실천하는 러닝 동호인들이 모여 의식을 치르듯이 흠, 하, 규칙적으로 숨을 고르고 있을 정도였다.

수현은 사방이 뻥 뚫린 거리를 달리는 기분이 좋았다.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폐소공포증이 있는 탓에 답답하거나 막혀있는 공간은 늘 과호흡으로 힘들었다. 실내에서 사람들과 운동을 하다 보면 분출되는 열기와 땀에 질식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헬스나 요가 같은 운동은 오히려 스트레스만 쌓였다. 그녀의 건강관리에 끊임없이 잔소리를 퍼붓는 친구 김혁의 권유로 가입했지만, 이제는 남들보다 빠른 속도와 러너들을 편하게 유도하는 의외의 재능을 알게 되어 동호회에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맡고 있다.

크루지기 김혁은 새로 가입한 크루들을 확인중이다. 명단 중 한 명이 아직 장소에 나타나지 않아 시간을 재차 확인했다.

“5분 뒤 시작이야. 연락이 안 되면 바로 준비운동 스타트.”

뉴 페이스들에게 친절하게 러닝 법을 안내한 뒤 수현이 혁에게 다가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한꺼번에 설명하는 게 편한데 다른 한 명에게 다시 똑같은 말을 반복해야 한다는 게 불만이라는 듯이.

“오늘 하루만 뛰어보고 결정하라고 했어. 왔으면 했는데…….”

“엥? 가입을 하라고 빌었냐? 왜? 그렇게 예뻤어?”

어이없음에 더욱 미간의 주름이 협곡처럼 구겨진 수현이었다. 이미 충분히 회원이 넘쳐나고도 남았다. 나름 소셜 네트워트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취미동호회라 간부들을 충원하는 중이었고 새로운 크루 모집은 당분간 금지해야 할 터라 이래저래 번거로운 상황이었다.

“남자야. 그냥 사연 있는 것 같은 수컷.”

“아는 사람이야? 뭐, 울기라도 했어?”

“저번 주 금요일 밤에 여기서 봤어. 서툴게 뛰는 준비를 하길래 같이 뛰자고 했거든.”

“넌 새벽에 뛰고 밤에 또 뛰고 싶냐? 진짜 병이다… 병.”

“호흡도 제대로 안 하는 초짜인데 표정이 뭐랄까… 힘이 든 건지, 아닌 건지 복잡 미묘하더라고. 그리고 대뜸 한다는 말이.”

“뭐라고 했는데?”

절묘하게 끊기 신공을 발휘하는 혁 때문에 남은 시간을 체크하는 것도 잊은 채 다급하게 묻는 수현의 표정이 재미있어서 그는 조금 더 꾹 다문 입술을 야무지게 힘을 주며 시간을 끌었다.

“병원에서 느린 부정맥이라고 하는데 달리기를 멈추면 내 왼쪽 가슴은 조용해요. 느리게 뛰던 느낌이 그마저 사라지죠.”

“에? 뜬금없이 그렇게 말했다고? 그 말만 하고 끝?”

미스터리한 의문의 남자를 흉내 내다 곧 고개를 끄덕. 혁은 경건하게 할 일을 마친 것 마냥 게슴츠레한 눈 모양을 했다.

“웃긴 놈이네. 그래서 온댔어?”

“그 날은 참여해 보겠다고 대답했어. 일단 한 번만. 어? 저기 오시네.”

일제히 두 사람은 화제의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커먼 복장으로 우르르 몰려 있는 동호회 무리에 다소 의심스러운 눈빛이 역력한 얼굴로 올지 말지를 망설이는 워킹의 남자였다.

“반갑습니다.”

간결하다 못해 너무 간단한 자기소개였다. 간혹 첫날에 이름을 밝히지 않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런 이들은 보통 다음날에 나타나지 않았다.

수현은 낮고 두꺼운 그의 성의 없는 멘트에 잠시 뜨악하다,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 생각하고는 깔끔하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의 정리와는 별개로 혁의 지시 사항이 떨어졌다.

“수현님. 오늘 이분의 페이스메이커를 부탁드립니다.”

“에? 내가? 요?”

“오늘 세 분이나 새로 오셨잖아요. 부탁드릴게요.”

평소와 다르게 존댓말까지 하며 생글생글 미소 짓는 생뚱맞은 혁 때문에 수현은 눈만 끔벅거릴 뿐이었다. 무엇보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의 남자가 불편해 미칠 지경이었다.

준비운동을 마치고 음악을 세팅하고 오늘도 하이런! 이라는 구호를 이구동성 외친 뒤 출발했다.

수현은 쳐다보지도 않는 남자의 옆에 바짝 다가갔다. 어쨌거나 보는 눈이 많은 자리였고 원데이 클래스라 생각하자며 마음을 다독였다.

“처음 1km정도는 천천히 워밍업으로 이렇게 한 줄로 뛸 거예요. 물론 뉴 크루들은 옆에 페이스메이커랑 두 명이서 러닝 하면 되고요.”

대꾸가 어려우면 고갯짓 한 번이라도 하면 좋을 것을, 듣는 시늉도 하지 않는 남자를 확인한 수현은 민망한 분노가 배꼽부터 끓어올랐다.

“저기요. 호흡을 안 하시고 그렇게 입을 꾹 닫고 뛰시면 본 타임 들어갈 때 힘들어서 뒤처지세요. 흠, 들이마시고 후, 내쉬고. 네? 듣고 계세요?”

더 과장된 호흡으로 시선을 끌어가며 큰 몸짓으로 설명하자 남자가 뛰던 걸음을 그만두었다.

“어? 설마 벌써 힘드세요? 첫날이라도 가던 중에 멈추시면 안 돼요. 느리게라도 뛰셔야 하거든요.”

“내가 페이스메이커가 왜 필요합니까?”

“첫날이니까요. 달리기 좀 해보셨어요? 동호회에 들어오신 거면 규정을 따르셔야죠. 개인 활동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누구보다 필요하신 거 같은데요.”

“누구보다?”

화를 내지도 않고 그저 무신경함이 극도에 다다른, 딱딱하고 차가운 물체 같은 형상이었다. 감정 없이 질문하는 게 오히려 더 으스스한 느낌이었다.

“그쪽처럼 사연이 풍부한 페이스로 등장하시면 더 그렇죠. 하루를 뛰더라도 제대로 한번 해보세요. 평소 머리가 텅 빈 것처럼 어지러우시죠? 가벼운 부정맥 증상이 있다고 크루지기님에게 전달받았어요. 심장이 안 뛰는 것 같은 느낌이라면 마음에서 비롯된 정신적 원인일 가능성이 커요. 맥박이 안 뛰는 게 아니라 느리게 뛰거나 한두 번 건너뛰는 거예요.”

“의사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군요.”

“이렇게 페이스메이커가 붙으면 보통 사람들은 고마워하죠. 혹시 특별하신 분한테 보통 대우를 해서 불쾌하신 겁니까?”

“…….”

“할 말이 없으시면 일단 뛰세요. 뒷줄에 방해되잖아요. 완전 민폐거든요.”

“이게 보통 대우입니까.”

높낮이도 없는 로봇 같은 말에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수현은 아랫입술에 힘을 주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남자의 뒤쪽으로 가서 손바닥으로 등을 앞으로 밀며 뛰기를 강요했다. 동호인들이 힐끗힐끗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한 줄을 서서 뛰어가는 수많은 눈동자가 남자에게 머물기를 반복되자 항복한 듯 그는 뛰기 시작했다.

“동호회 대표가 하는 말과 다르군. 간섭이 지나쳐.”

“저한테 하는 말이세요? 혼잣말이세요? 그냥 자기 방식대로 뛰시면 몸에 무리가 간다고요. 보폭 유지하고! 그렇게 고개를 젖히고 달리면 안 된다고요.”

“조용히 갑시다.”

“저는 오늘 정해진 임무를 마쳐야 하니까 끊임없이 러닝 법 떠들게요. 그쪽은 아무 말도 안 하시면 됩니다.”

드디어 양 입이 벌어지며 그 공간이 화가 난 입 모양을 완성하고 있었다. 남자의 감정이 뛰고 난 후 처음으로 사람다워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만둘 생각이 없는 수현은 오히려 씽긋, 하고 깜찍한 보조개를 보이며 웃음 지었다.

“또 서 있을 거 아니죠? 그런 진상 짓은 노노노!”

마녀라도 본 것처럼 이중적인 장면에 화들짝 놀란 남자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6km를 달리는 내내 책임감을 빙자한 괴롭힘 가득한 사운드를 빵빵하게 채웠다.

“어떠셨어요? 새벽에 뛰고 나니 몸이 훨씬 가뿐해지신 거 같죠?”

분명히 만족했을 거라 확신하는 자신만만한 혁의 말에 이제껏 불만투성이였던 남자는 굳어있던 얼굴 근육을 풀며 말했다.

“네. 뭐….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네요.”

남자를 등지고 수현이 허! 우습다는 듯이 혀를 찼다. 조금 전까지 소시오패스 같은 동작과 영혼 없는 말투로 사람 허파를 뒤집을 때는 언제고, 뭐 하자는 건지 싶었다.

“크루들은 스케줄에 따라 주 2회 이상 참가하십니다. 저는 크루지기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매일 러닝하고요. 내일 오셔도 제가 있다는 겁니다. 오실 마음 생기셨죠?”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큭!”

검토라는 단어 선택에 수현은 그만 입안에 가득 채워진 바람을 막으려 콧구멍에서 방어적 웃음이 나와 버렸다.

“오늘은 조찬모임 하는 날이죠. 가능하신 분들 남으시고요. 인사하겠습니다. 달리는 새벽 파이팅! 오늘 하루도 파이팅!”

크루지기의 우렁찬 인사로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서서히 떠오르는 해가 하루의 고단한 출근에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수현은 혁의 간절한 눈빛을 냉정하게 무시하고 집으로 향하는 쪽을 택했다. 새벽부터 모든 기운을 쓴 탓에 출근 전까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우유 한 잔만 마시고 30분 잠을 더 자야겠다고 생각을 정리하며 걷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의 걸음이 자신의 옆자리에 맞춰 걷고 있음을 느꼈다.

“그쪽이 하라는 방식대로 뛰지 않았음에도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왜 그런 거죠?”

옆자리를 확인하자 허…, 한숨과 함께 양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집요한 남자가 제대로 시비를 걸고 싶은 모양이었다.

“보기보다 체력이 좋으신가 보네요.”

“설명할 말이 없으신 모양이군요.”

“저기요!”

더 이상 참기 힘든 수현은 교양이라고는 없는 사람처럼 길거리에서 소리를 꽥! 질렀다.

아무리 만만하게 본 상대일지라도 제대로 상식이라는 게 박힌 성인이라면 쓸데없이 물고 늘어지는 이런 상황은 만들지 않을 것이다.

“말씀하시죠.”

“내가 만만하죠? 뭣도 아닌 것 같은 여자가 러닝 법이라며 이래라저래라 설교하는 게 꼴 보기 싫은 거죠? 이딴 여자한테 지시를 받는 기분이 들어서 지금이라도 밟아주고 싶은가 본데 해봐요. 일목요연하게 부당함을 따져보든지 깔끔하게 한 대 때리던지.”

“하.”

“해보라고요. 어차피 당신 내일 올 것도 아니잖아. 말해봐.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수현은 짧은 외마디 소리만 내뱉고는 관찰하며 쳐다보는 남자의 시선에 더 열이 올라 그의 가슴팍을 향해 성큼성큼 전진했다. 당황한 그가 두세 걸음 뒷걸음치다 멈추자 그녀는 정수리로 쿡쿡 심장 쪽을 향해 들이댔다.

벽에 머리를 찧듯이 그 동작을 반복하다 어느 순간 반동으로 뒤로 넘어가려 했고 그 찰나에 그가 그녀의 허리를 잡았지만 허우적대던 대책 없는 몸동작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대로 쿵. 남자의 품에 안긴 채 차디찬 길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수현의 뺨이 그의 목덜미에 밀가루 반죽이 치대지듯 쩍 하니 들러붙어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진 그녀는 다만 바닥은 아니지만 단단한 남자의 신체 접촉으로 광대뼈가 깨질 것처럼 얼얼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쯤 바닥과의 차이점에 화들짝 놀랐다.

의외의 따뜻함이 아픈 광대를 찜질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쿠쿵. 쿠쿵. 쿠쿵. 쿠쿵.

자신의 뱃속에서 나는 소리인지 심장에서 나는 소리인지, 그것도 아니면 감각이 없는 뺨에서 느껴지는 진동인지… 그 소리에 수현은 그제야 널찍한 몸통 위에서 우스꽝스러운 허우적거림으로 경박스럽게 일어설 수 있었다.

“하… 그니까…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괜찮으세요? 많이 아프신 거죠? 어떡해… 죄송해요.”

찰흙으로 만든 컵 따위가 서서히 말라가며 쩍쩍 갈라지는 과정. 그 모습과 같은 얼굴이었다. 남자의 표정은 세세하게 혈관이 움직이는 게 보이는 착각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지독하게 건조해지는 느낌의 두려움이었다.

“죄송해요. 저기요. 혹시 머리가 너무 어지럽거나 구토가 나올 거 같아요?”

“당신…….”

수현의 겁에 질린 얼굴에 더 공포를 부러 심어줄 요량인지 아니면 뇌진탕의 증상을 보이는 건지 남자의 뒷말이 흐려짐은 모호함을 넘어선 기괴함이었다.

“네. 말씀하세요.”

“도대체 뭐야… 무슨 짓을 한 거야”

“예?”

“왜… 여기가… 이렇게 빨리 뛰는 거지.”

기괴한 눈빛이 어처구니없게도 무언가를 갈구하는 애절함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우세스러운 손동작. 그는 한 손을 자신의 왼쪽 가슴에 대고 심장이 왜 정상적으로 뛰고 있냐는 멍청한 말을, 진지한 어투로 수현에게 묻고 있었다.

수현이 회사에서 월요일을 시작하는 일정은 언제나 똑같다.

아침 주간 회의에서 끊임없는 기획안을 발표한다. 어차피 아직 들이댈 군번이 아니라는 명목으로 까일 아이디어를 굳이 왜 발표를 해야 하는 건지. 무엇보다 선입견으로 대동단결한 선배라는 것들의 잔소리를 참아야 하는 수행의 시간이다.

“수현아, 생각을 좀 해봐. 좀 더 쌈박한 주제 없냐?”

“하여간… 얼굴 믿고 까부는 것들은 노력이라는 걸 안 해. 인풋 안 하냐?”

“누구 맘대로 주제를 바꿔? 내가 정리한 것에 대해 피드백을 하라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도대체 기승전결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걸 알고 하는 말인 건지, 정말 모르는 건지 수현은 인내심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누구보다 열정과 패기가 넘쳤던 그녀였다.

어렸을 적부터 TV라고는 보지 않던 아이가 유일하게 반응했던 건 다큐멘터리였다. 배우들이 서로의 연기력을 자랑하는 피곤한 드라마보다 웃음을 강요하는 어색한 예능 프로보다 오직 단백과 단조로움이 지리멸렬하게 흘러가는 다큐멘터리가 아이의 눈과 귀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 취향은 생각보다 오래갔고 직업 선택의 최종 목표가 된 것이다.

졸업시즌에 제작한 작품으로 청년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거머쥐기까지 딱 그랬다.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라는 문장의 찰진 느낌이 입사를 하고 나서 입에 달고 살줄은 전혀 예상 못 한 시나리오였다.

“지수현. 기운 내. 다 너보다 못난 놈들이 질투하는 거니까. 인상 펴.”

아름다운 자태로 고운 목소리까지 겸비한 홍지수 과장이 수현의 책상에 캔커피를 놓고는 귓속말을 전했다.

그 말에 회의에서 동네 유리창 깨지듯이 이유 없이 박살 난 수현의 마음이 눈 녹듯이 스르르. 무장 해제되었다. 그녀의 롤 모델이자 지옥 같은 회사생활을 버틸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이유의 대상이 자신을 위해주는 장면은 감동 그 자체였다.

학교 선배이자 현재 승승장구하는 프로듀서. 회사의 간판으로 활약하는 멋지다는 단어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것은 수현이 꿈꾸는 미래였다.

“기획안 다 까이는 거 아시면서. 한번 맡겨주시면 기차게 뽑아낼 수 있는데.”

새침하고도 요망한 얼굴로 구원의 눈빛을 보내는 수현이 맘에 든다는 듯 홍지수는 그녀의 콧등을 우아하게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하여튼. 넌 진짜 과거의 나 같다. 그러면 폐가 뜯어고치는 기획안. 구체화해서 초안 가져와 봐. 떠벌리지 말고 은밀하게 나한테. 오케이?”

“진짜죠, 선배? 아니, 과장님!”

“조용! 여기 너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인간들로 가득 한 거 몰라? 캐스팅 제대로 할 수 있어야 가능해.”

“넵! 사랑합니다. 과장님!”

수현의 들떠있는 방정을 참아줄 턱이 없는 김 부장이 분위기 파악 못 하냐는 고함을 질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인 사무실의 분위기에 그녀는 재빠르게 대답하며 흥분된 감정을 속으로 억눌렀다.

“역시 홍 선배, 넌 좋겠다. 선배가 뒤에서 딱 받쳐주고. 부러워.”

“야! 홍 선배 빼고 다 또라이들 뿐이잖아. 넌 여자 스텝들도 많고.”

수현은 예능국에서 부동의 1위를 찍고 있는 프로그램의 보조 작가인 미소와 점심을 먹었다. 새벽까지 촬영한 탓에 눈 밑의 다크써클이 입꼬리 옆에 있는 것 같은 몰골이었다. 그럼에도 두 공기째 부대찌개와 영혼을 나누고 있는 그녀의 먹성은 실로 대단했다.

대학 동기이자 단짝인 그들은 서로의 든든한 업계 관계자이자 조력자였다. 그놈의 방송국 놈들… 하며 거침없이 욕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