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뽀앵뜨, 뽀앵뜨!

프롤로그''''“나가거라, 당장 이 집을 나가!”'넓은 방, 콩기름을 듬뿍 먹여 도료를 세심히 칠한 반들반들한 한지장판 위로 고풍스럽고 나지막한 가구가 음전하게 놓여 있었다. 곳곳에 유서 깊은 골동품과 고가구가 구색을 맞추어 제자리에 앉은 것이 전체적으로 상당한 품격이 느껴지는 방이었다. 고아한 병풍을 뒤로 하고 비단 보료를 깔고 앉은 노년의 여인은 키 낮은 경상을 사이에 두고 한 젊은 여인과 어린 여아(女兒)를 마주보고 있었다. '“네 이년. 강제로 쫓아내기 전에 어서 나가지 못해?”'젊은 여인은 한 눈에 보기에도 그 아름다움이 주위를 압도할 정도였으나, 모욕적인 내쫓음을 당하는 이런 순간에도 그 얼굴은 가면을 쓴 듯 차갑고 무표정했다. 여인의 옆에 앉은 작은 여자아이는 똘박한 눈망울을 크게 뜨고는 자신의 할머니를 놀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항상 다정하게 자신을 ‘내 강아지’라 부르며 안아주고 웃어주던 할머니가 저렇게 무서운 표정을 지으신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아이는 이마를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엄마가 무언가 잘못한 걸까?’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여아는 제 어미를 꼭 닮은 장밋빛 입술을 열었다. '“할머니, 왜 그렇게 화를 내세요?”'“할머니라니! 날 그렇게 부르지 마! 정말이지 소름이 끼치는구나.”'아직 어린 탓에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았지만 제법 또랑또랑하게 말을 했는데도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소리를 들은 양, 노부인의 얼굴이 무참히 일그러졌다. 아까부터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어떤 표정도 짓지 않으며 그림처럼 앉아있는 젊은 여인을 보자 노부인의 얼굴이 한층 더 찌푸려졌다.'“가증스러운 것! 어디서 다른 씨를 배고 이 집안에 들어올 생각을 감히 했더냐! 이 가문이 어떤 가문인데!”'노년의 여인, 김 여사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가슴에 얹고 요란스레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마주앉은 젊은 여인은 아들이 십여 년 전부터 일편단심 고이던 아이였다. 며느리로 삼으려니 지나치게 인물이 빼어나 어딘가 요망스럽기까지 했지만, 앞뒤 없이 밀어붙이는 아들의 고집을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집안도 어느 정도 구색이 맞는 데다, 약혼 기간만도 이 년이 훌쩍 넘었으니 사실 늦은 감도 있었다. 게다가 이미 저들끼리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말하는 데야 김 여사는 두말 않고 서둘러 식을 올려 줄 수밖에 없었다. '시집을 오자마자 배가 불러 낳은 아이는 딸이었다. 아리따운 어미를 쏙 빼닮아 인물 걱정은 없었으나, 아비를 닮은 구석은 한 군데도 없어 김 여사는 은근히 서운했다. 그러나 꽃 같은 손녀는 커갈 수록 총명함을 드러내며 고운 짓만 골라했고, 자연히 온 집안의 귀염을 한 몸에 독차지했다.'“외탁이면 어떠냐, 내 새끼인데.”' 김 여사가 손녀 선현의 궁둥이를 툭툭 치며 가끔 중얼거리던 소리였다. 헌데, 시간이 갈수록 아들 내외가 소원해 지는 것이 마음 끝자락에 걸렸다. 아들은 자기자식인데도 어쩐지 한 번도 손녀를 안아주거나 보듬어 주지 않았다. 그저 아주 가끔씩, 먹먹할 만큼 깊은 눈으로 딸아이의 이목구비를 찬찬히 들여다 볼 뿐이었다. 스산한 겨울바람을 홀로 맞으며 헤매는 나그네처럼 황량하고 쓸쓸해 보이는 그런 아들의 모습은, 김 여사의 마음 한 구석에 시큼한 가시처럼 박혀 때때로 시름을 앓게끔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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