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2)

제국력 722년.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사냥대회가 시작되었다.

“아가씨, 머리는 이렇게 하면 될까요? 절대 안 풀릴 겁니다. 핀으로 고정까지 시켰으니까요.”

“그래. 풀리지 않겠구나. 되었다.”

프로마쥬는 참가하지 않지만 매번 우승을 했던 사람으로서 이번에 우승한 자에게 트로피를 줘야했다.

“아버지, 가시지요.”

뚜벅-

계단을 내려오며 오델리는 하나로 묶은 긴 머리칼을 휘날렸다. 마치 전장에 나갈 준비가 된 기사처럼.

“제복은 참으로 잘 어울린단 말이지. 이 아비가 트로피를 줄 이가 너였으면 좋겠구나.”

“제가 될 겁니다. 그 어떤 영애보다 큰 마물을 잡으면 되지요.”

연습을 열심히 하고 처음으로 나가는 사냥대회이기에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일어날 일을 걱정하기도 하였다.

스윽-

“아버지, 이걸 제게 매주시려고요?”

라베플레르에선 자신의 자식이 사냥대회에 출전할 때면 표끈을 검 손잡이에 매준다.

“아주 예전에… 위트마야가 만든 거란다. 혹여나 네가 기사의 길을 걷게 된다면 꼭 주고 싶다고 만들었었지.”

“…어머니께서 만드신 거라니. 허나 전 기사의 길을 걷는 게 아닌 그저 사냥대회에 나가는 것일 뿐인걸요.”

“그래도 네가 검술을 통해 어딘가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니 줘도 될 거다. 자, 오델리.”

오델리에게 딱 맞는 색인 푸른색을 띄고 있는 끈이었다.

“이런 표끈까지 받았으니. 우승은 제가 할 겁니다.”

“다치지만 말거라.”

푸른 기사단의 5명 정도와 기사 단장인 아네스, 하녀장인 윌리와 호위 기사인 쥬아나가 함께 따라나섰다.

다그닥- 끼익-

사냥대회가 하는 장소에 도착하자 많은 귀족들이 모여 있었다. 마치 사교계 모임처럼 여러 제복을 입고 있었고, 서로의 디자인을 보며 감탄하기 바빴다.

‘생각보다 더 많군.’

타닥-

오델리가 마차에서 내리자 귀족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오델리 공녀님께선 오늘도 참 아름다우시네요. 제복이라니….”

“그러게 말이에요. 머리를 묶으신 것도 처음이시죠. 아마?”

묶은 머리가 찰랑거리자 더욱 우아해보였다. 그러는 사이 헤레이스와 사놀리아가 사냥대회에 도착했고 모든 귀족들은 예의를 갖추었다.

프로마쥬와 오델리는 천막 아래 준비된 의자에 앉은 둘을 확인 후. 인사를 하러 그곳으로 향했다.

“라베플레르의 태양과 달을 뵙습니다.”

“공작은 황제파 회의에서 매일 보지만 오델리 영애는 오랜만이군 그래.”

헤레이스는 고개를 숙인 오델리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예, 폐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당연한 것 아닌가. 영애 또한 낯빛이 좋아 보이는군. 여전히 아름답고 말이야. 내 영애를 아끼는 것을 알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낀다고. 폐하께서 나를. 예전이라면 그랬겠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오델리가 최근에 깨달은 것 하나. 퍼렌도가 알려주었기에 알 수 있었던 것이 하나 있다. 황제인 헤레이스가 예시엘이 괴롭힘을 받았다는 말을 굳게 믿고 오델리가 올 수 없도록 손을 쓰려 했다는 것. 퍼렌도와 그 밖의 황제파가 말렸기에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찌 그럴 수 있으신지. 나를 새아가라고 부르셨던 분이 아닌가. 황궁접근금지라. 어이가 없군.’

뚜벅-

천막을 나서자 오델리의 주변으로 이레인을 포함한 영애들이 다가왔다.

“오델리 님!”

“아, 이레인. 그리고 영애들까지. 오랜만입니다. 것보다 이레인 네 사업이 잘 된다는 소식을 여전히 듣고 있다. 좋은 소식이구나.”

“다 오델리 님 덕분인 걸요. 헌데 필리스 공자님이 안 보이시네요?”

그에 멈칫하며 이레인을 포함한 두리번거리는 영애들에게 말했다.

“…필리스는 나도 한 달을 못 봤습니다. 백마 기사단에 기사 단장이 될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요.”

“네…?”

괜한 것을 물었다고 생각이 든 영애들은 서로의 팔을 조금씩 치며 입을 열었다.

“수… 습 기간이신가 봐요… 그럼 오늘 나오셨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맞아요…! 필리스 공자님께서도 오델리 공녀님을 얼마나 생각하….”

제 입들을 막으며 더 이상의 악화되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다른 말로 화제를 돌렸다.

“흐흠… 전 오늘을 위해 말을 새로 장만했답니다.”

“어머, 저는 이 제복이요. 아버지께서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제게 어울릴 만한 것들을 몇 벌을 가지고 오셨는지 기억도 안 나요.”

**

하하호호 거리며 담소를 나누는 오델리 쪽을 예시엘은 조용히 응시했다. 그리곤 제 주변에 많은 영애들이 있는 것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영애들도 오늘이 기대가 되지 않나요~?”

“예시엘 공녀님께서는 어째 오늘을 기다리신 것 같습니다.”

“맞아요. 오늘 꼭 우승을 하여 아버지께 트로피를 받고 싶답니다. 영애들도 많이들 연습을 하였잖아요.”

“네, 그럼요~ 것보다 너무 아름다워지셨어요. 어쩜… 이리 좋은 피부를 보세요들.”

이리 예시엘에게 아부를 하며 곁에 있는 이들. 반이 귀족파의 여식이었다. 황제파와 귀족파가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서 친분을 쌓지 말라는 법은 없으나 이런 일은 거의 없었다.

‘귀족파를 설득하며 황제파로 만들고자 하는 취지라고 설명하면 그만이지 않나. 내가 찔릴 것은 없어.’

“그럼 가볼까요?”

뚜벅-

천막에서 나오자 강한 햇빛이 예시엘을 덮쳤다.

‘오늘 누구 하나 죽기 딱 좋은 날씨네.’

정확히 반으로 갈라진 세력은 더욱 눈에 뛰었다.

**

“그 표끈이 참 예쁘네요.”

“고마워요. 어머니께서 만드신 겁니다.”

표끈이 절대 풀리지 않도록 꽉 묶었다.

뿌우-

모두가 기다린 나팔이 웅장하게 울리며 시작을 알렸다.

“저희는 아까 서로 말을 골랐는데. 공녀님께서는 어떤 말을 타실 건가요?”

모든 영애가 오델리가 고를 말을 쳐다보고 있었다. 말의 목에는 이름표가 걸려있었는데 진한 검은색의 회색 눈동자를 가진 말의 이름이 리스였다.

“이 말로 하죠. 리스.”

필리스가 생각이 나 주저하지도 않고 바로 골랐다.

“리스, 안녕. 오늘 잘 부탁한다.”

말을 살짝 쓰다듬은 후 올라타자 다른 영애들도 말에 올라탔다.

“갑시다. 영애들.”

그렇게 사냥대회가 시작이 되었다.

다그닥-

사냥대회이긴 하지만 동물들을 해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동물을 닮은 마물들일뿐.

“저기 사슴 마물이 있습니다.”

영애들은 그 마물을 잡기 위해 이리 저리 달렸다.

“저기 갔다가는 내가 잡히겠군요.”

오델리는 이레인, 아히엘과 함께 다른 곳으로 향했다.

“어? 저기 작은 마물이 있어요. 잡으실 분 있나요?”

자신의 성에 차지 않는 작은 크기의 마물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저쪽으로 한 번 가보는 것도 괜찮겠군.’

잡으러 말로 달리는 이레인과 아히엘을 놔두고, 아무도 없는 조금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다그닥-

“커헝.”

“늑대 마물?”

‘저것보다 큰 것을 잡을 영애는 아직 보이지 않으니. 내가 잡아야겠군.’

오델리는 말에서 내려 조금씩 다가갔다. 소리를 내지 않고 화살을 겨냥해 쏘자 늑대의 가슴에 정확히 명중했다.

“잡았다.”

뚜벅-

그 늑대에게 다가가자 축 늘어져있는 것이 보였다.

“이리 빨리 죽다니. 늑대 마물이 이 정도라면. 사슴이나 토끼는 살짝만 건드려도 잡을 수 있겠어.”

늑대를 들려 쭈그려 앉은 그때 뭔가 싸한 것이 오델리를 덮쳤다.

“…살기?”

그에 오델리는 그 늑대를 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비켜야했다. 땅에서 드래곤과 같은 큰 마물이 나타났기에.

“미친 거 아닌가. 이거?”

그 마물은 방금 태어난 것처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가씨, 물러나십시오.”

주변을 지키던 아네스와 쥬아나가 오델리의 앞에 섰다.

“기다려라. 저 드래곤 어딘가 조금 이상하다.”

“아가씨… 위쪽을 보십시… 오.”

아네스의 말에 시선을 위로 옮기자 위쪽의 바위에 단테와 함께 예시엘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네가 여길 왜… 여기서 뭐하는 거냐. 예시엘.”

“언니, 이 마물을 잡아서 우승하세요. 언니에게 주는 선물이랍니다.”

“뭔 수작질을.”

저 마물을 잡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약점을 알고 있으니.

‘마물의 약점은 물. 근처에 있는 호수에 가서 사냥하면 그만이다. 헌데 화살도 없고. 그 무엇도 없는데 대체 무슨 생각인 것이지?’

오델리의 그런 시선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예시엘은 싱긋 웃으며 눈웃음까지 지었다.

“주는 선물을 왜 안 받아요? 속상하게. 언니가 우승하였으면 좋겠는 마음으로 데리고 왔는걸요.”

“내 선뜻 네 선물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신뢰가 없는데 어찌 그래?”

툭-

오델리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집을 꺼내어 땅을 쳤다.

“키익.”

마물은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그래. 여기다. 여기를 보거라.”

“아가씨, 무엇을 하시려고 이러십니까?”

“사냥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어떤 함정이 있을 줄 알고요!”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단테와 예시엘밖에 없다. 조금이지만 나 또한 기척을 느낄 수 있는데. 없다. 그 누구도.’

다행히도 마물은 달려들지 않았기에 오델리는 아네스에게 말했다.

“예시엘과 단테를 잘 지켜 보거라. 혹 허튼 짓을 하거든 제압하여도 상관없다.”

“예, 아가씨.”

시선을 끌며 오델리는 마물을 호수 근처까지 데리고 갔다.

첨벙-

“들어와라. 네 사냥은 나의 담당이니.”

“끼끽.”

“?”

예시엘이 순수하게 선물을 주었을 것이라고는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았었다. 다만, 해를 가할 수 있는 건 화살이라고만 여길 뿐.

‘설마 저 마물에게… 독을 먹인 거라고? 말도 안 돼.’

드래곤인 마물의 배에서 끓는 소리가 나며 곧 터질 것이라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코를 뚫는 듯한 악취와 잘 보이지 않는 시야까지.

“….”

털썩-

호수까지 함께 왔지만 그 독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독이었기에. 오델리는 예상하지도 못한 채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

“아네스,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프로마쥬 그리고 시에르 가의 몰락이다. 오델리의 죽음까지도 내 원하는 것이었지.”

“…?”

예시엘은 콧노래를 부르며 주변의 마물을 살피었다. 딱히 저를 따라오는 아네스를 저지하지 않을뿐더러 호수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왜 저러는 거지? 진정 선물이라고?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 있는 그것을…? 이상하다. 무언가 이상해.’

**

툭-

‘이 악취… 언제까지 지속되는 것이지. 정신이 멀쩡해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

부글- 부글-

배가 점점 커지는 마물 드래곤… 저것이 터져 오델리를 덮쳤다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 분명했다.

“아가씨…! 일어나보십시오. 아가씨…!”

아무리 혼혈이라고 하여도 몸은 독에 노출되고 말았다. 인간의 피부는 얇고, 연약하니 온전한 힘은 쓸 수가 없었다.

“이럴 수는…! 아가씨, 제가 저 마물을 죽이겠습니다. 호수에 넣으면 되는 게 아닙니까!”

“…안 된… 다. 아니… 야.”

그 마물에게 향하는 쥬아나에게 손을 뻗었지만 이내 그 손까지 힘이 빠지고 말았다.

툭- 펑-

힘이 빠진 오델리를 발견한 쥬아나가 발걸음을 돌려 달려오던 그때. 그 마물은 터져버렸고, 배에 들어있던 많은 양의 독은 오델리와 쥬아나를 덮쳤다.

‘…이건 막을 수 없지 않은가. 쥬아나까지 끌어들일 생각은 없었는데. 이렇게… 또.’

죽음을 예감하고 눈을 감으려던 오델리의 눈앞에 붉은색을 가진 하나의 방어막이 생겼다. 그 방어막은 그 둘에게 덮치던 독을 모조리 막았고, 지켜주었다.

“말도 안 돼… 허. 이건 드래곤의 힘이다. 아, 아가씨!”

바닥에 쓰러진 오델리를 끌어안으며 쥬아나는 오델리를 깨우려 애썼다.

“….”

하지만 오델리는 독에 심하게 노출되어 몸에 힘을 줄 수 없었다.

“어서 저하를 모셔오겠습니다. 조금만… 아가씨!”

주변에서 달려오는 영애들과 아네스 그리고 무사한 쥬아나까지 그것을 본 오델리는 안심을 하며 눈을 감았다.

**

“뭐…? 그게 무슨 소리냐.”

“모든 귀족들이 아는 것은 아닙니다.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만이…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그러니까. 오델리 영애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냐.”

“예, 전하… 그렇습니다.”

사냥대회에서 오델리가 그리 쓰러지고, 드래곤 마물 덕에 우승을 하여 트로피를 받은 사실은 거기에 있던 모든 귀족들이 아는 사실이었다.

“우승을 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 하지 않았느냐. 왜, 대체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고.”

“프로마쥬 공작님께서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다고 하신 바람에 폐하께서 그냥 보냈다고 합니다.”

“소란을 피워야 할 때는 피워야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니냐. 당장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야 할 거다.”

“소란을 피운다면 오델리 공녀님은 또다시 시달리게 되실 겁니다. 소문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으시지 않았습니까.”

사냥대회가 마무리 될 때까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애초에 에런은 그 사냥대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신관들은 말이 없느냐…?”

“애초에 대신관을 본 적도 없는 그들입니다. 해독을 하려면 해독제를 구하는 수밖에요. 또한 그게 어떤 독인지까지 아무도 모릅니다.”

과로로 쓰러졌다고. 몇몇의 귀족들은 그리 말했다. ‘공녀가 동생을 이기려 그리 연습했다네. 제 어미를 닮아 독하기도 하지.’ 라고.

“대체 누가… 아, 짐작 가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 예시엘 영애는 어디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