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와…. 1차 면접 통과한 거 처음이야.”

“근데 좋은 징조 아니야? 대기업이잖아! 면접 파이팅 하자. 드디어 우리 나윤이가….”

“뭐래!”

나윤은 오늘 1차 면접에 통과했다는 문자를 통보받았고, 그것을 바로 친구들에게 알려주었다. 그 누구보다 나윤을 응원하고 기다리던 친구들이기에 축하를 하러 나윤의 집으로 온 것이다.

“응? 근데 이건 뭐야?”

툭-

나윤의 시야에 바닥에 놓여있는 소설 한 권이 걸렸다.

“아, 이거 힘들게 얻은 거다? 너 그거 알지 [엇갈린 운명].”

“음…. 아, 그 드라마로 나온 거?”

[엇갈린 운명]은 사람들의 관심도가 매우 높아 드라마로 방영이 되었다. 색다른 이야기는 아니지만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제작한 드라마이기에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근데 그걸 왜 사?”

“왜 사냐니! 소설로 보려고 샀지. 소장용 모르냐. 드라마에 안 나온 게 다 나와 있다고. 재미있더라~ 그리고 너 소설 좋아하잖아.”

나윤도 소설을 즐겨보며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소설을 들여다 볼 시간이 없었다.

“그렇지…. 그래도 지금은 취업이 더 중요하니까.”

“그럼 이거 빌려줄 테니까 한 번 봐봐. 1차 면접 붙은 기념으로 하루 정돈 괜찮잖아.”

친구에게서 책을 건네어 받은 나윤은 제목을 유심히 보며 침을 삼켰다.

“그럼… 한 번 읽어볼까?”

“그 전에 축하파티는 좀 해야지!”

친구들은 손에 들린 책을 펼치려던 나윤에게서 책을 빼앗아 다시 바닥에 놓아두곤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후로 2시간. 워낙 술이 약했던 나윤의 친구들은 다 뻗어버렸고, 씻고 온 나윤은 자기 전 바닥에 놓아진 책을 들어 침대에 엎드렸다.

“…와, 이거 드라마랑 다르긴 하네? 원작이라 이건가.”

소설의 내용은 이러했다.

주인공인 예시엘은 정부의 딸로. 제 아버지에게서 버려진 셈이었다. 하지만 곁에 있는 어머니 덕에 살아갈 수 있었는데. 그녀마저 병으로 죽고 말았다. 주인공의 이복언니인 오델리 또한 갑작스럽게 어머니를 잃은 때에 그녀들의 아버지는 예시엘에게 이제야 함께 살자하였고, 둘은 자매로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함께 살게 된 예시엘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오델리는 예시엘을 온갖 방법으로 괴롭혔고, 예시엘은 불쌍하게도 매번 당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누구보다 이복언니인 오델리를 위했고, 결국엔 자신을 사랑하는 황태자와 결혼을 하여 황태자비, 황후가 되었다. 끝으로 예시엘을 괴롭힌 이복언니 오델리는 예시엘을 괴롭힌 죄를 받아 황태자가 황제가 된 그 시점에. 제국에서 추방당한 후 원인모를 자객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 이후로도 예시엘은 죽은 오델리의 무덤으로 가 슬퍼했다더라.

엔딩은 해피엔딩이지만 예시엘이 당하는 장면에서 화를 내는 독자들이 많았다.

“참나, 내가 저 예시엘이라면 그냥 당하고만 있진 않았을 거야. 바보같이 왜 저렇게 당하는 거야? 하암… 오델리가 죽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왜 이렇게 쉽게 죽는 거냐고… 예시… 엘 얘는 무슨… 자존심도 없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떨구며 졸더니 그대로 책 위에 엎어져 잠에 들고 말았다. 그날 밤 꿈속에선 하얀 색의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한 여인이 나타나 나윤에게 그 소녀의 운명을 바꿔 달라 말을 했다.

나윤은 그 여인을 쳐다보며 무슨 소리냐 캐물었고, 그 여인은 나윤에게 그 소녀의 운명을 바꿔준다면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답했다.

그저 이상한 꿈이라 여기며 넘기듯이 알겠다고 답했다.

<다음날>

눈을 뜬 나윤은 천장에 생전 처음 보는 전등이 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 샹들리에였다.

“…뭐야?”

누워있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나 아직 꿈꾸고 있나?”

툭-

진한 파란색의 머리칼이 떨어지며 나윤은 홀린 듯 전신 거울 앞으로 갔다.

“…?”

거울을 보았을 때 나윤이 아닌 다른 여자가 서 있었다.

“ㅁ… 뭐야!”

나윤은 두 손으로 전신 거울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소리친 것도 잠시 거울에 비쳐지는 자신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 넋을 놓고 말았다. 진한 파란색을 가진 머리칼하며 영롱하기까지 한 옅은 푸른색의 눈동자까지.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사람이 아닌 마치 요정 같았다.

“아니… 대체 이렇게 예쁘게 생긴 사람이 누구야…?”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하녀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나윤을 쳐다보고 있었다.

‘헐… 엄청 쪽팔린다.’

“아… 안녕하세요…?”

“아가씨…?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가씨요?”

자신의 인사에 당황한 하녀를 보며 이게 무슨 일인지 생각을 하던 중 하녀들이 급하게 설명도 없이 나윤을 욕실로 옮겼다.

“아가씨, 얼른 준비하시고 나가셔야 해요. 얘들아.”

얘들아라는 그 소리에 4명의 하녀가 나윤을 둘러쌌다.

“ㅁ… 뭐예요!”

나윤은 그대로 욕조로 들어가게 되었다.

“…시원하긴 하네.”

한바탕한 후 나윤은 깔끔하게 씻은 모습으로 나오게 되었다. 다시 거울을 보았을 때, 나윤은 한층 더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어찌나 청초하던지.

“…이거 목욕은 좀 위험하겠어.”

“아가씨, 그럼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네? 뭘 또 시작해요?”

하녀들은 다시 나윤을 둘러싸 몇 벌의 옷을 대어본 후 빠르게 치장을 했다.

“와… 이런 미친….”

꾸며진 나윤은 정말 아름다웠다. 머리색과 맞는 드레스하며 수수한 것 같으면서도 화려한 그런 옷은 누구보다 잘 어울렸다.

“아가씨…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고… 마워요. 아니, 근데 왜 아까부터 자꾸 아가씨라고 부르는 거예요? 내가 누군데요?”

하녀들은 나윤을 보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말했다.

“아가씨, 그렇게 가기 싫으세요? 하기야, 우리 아가씨가 반가우실 건 하나도 없지.”

하지만 아직까지 현실직시가 되지 않은 나윤에게는 그 말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놀랄 틈도 없이 씻기질 않나 그리고 웬 드레스? 여기가 무슨 영국이야? 꿈은 아닌 것 같은데. 몰카인가…? 뭔 규모가 이렇게 커. 영화 세트장도 아니고.’

한숨을 쉬며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나윤에게 한 하녀가 말했다.

“우리 오델리 아가씨가 얼마나 여리신데…. 잘하실 수나 있나 몰라.”

“뭐?”

나윤은 하녀들의 소리를 듣고 기겁을 하며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내가 뭐라고요?”

“여리시다고….”

“아니! 그 전에요!”

“…오델리 아가씨?”

그냥 꿈을 생생하게 꾸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미쳤다.”

그러나 오델리라는 이름을 들은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라베플레르 시에르 공작가의 오델리를 말하는 거예요?”

“네…!”

“그… 라베플레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오델리??”

“네…!”

하녀들도 놀라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말에 나윤은 머리를 짚으며 다리가 풀리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오델리라니.’

그리곤 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거울을 보았고. 비로소 자신이 지금 누구의 몸에 들어와 있는지 알게 되었다.

“진한 파란색… 깊은 바다색의 머리칼과 영롱하기까지 한 옅은 푸른색 눈동자… 뽀얀 피부까지 모두 다.”

오델리를 가리키고 있던 것이었다. 소설에서 오델리에 대해 설명할 때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라베플레르는 모든 제국을 발아래 둔 강국이다. 몇 백 년의 역사와 그 뒤를 잇는 훌륭한 황제들. 4개의 제국이 나눠지는 큰 전쟁에서 승리하여 가진 국권까지. 그런 라베플레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오델리가 현재 나윤 자신이 되었으니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잠깐 꿈속에서 금발머리 여자가 말한 게 이건가? 혹시 내가 예시엘이면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을 거라는 말을 해서? 근데 그것도 말이 안 되는데? 나는 예시엘을 말한 거지 악역인 오델리를 말한 적이 없단 말이야.’

그렇게 내려진 답은 빙의. 적응할 시간이 필요함에도 하녀들은 나윤을 아가씨라고 부르며 움직이게 하려 했다.

“저… 아가씨, 이제 가셔야 해요.”

“네? 어디를.”

“프로마쥬 공작님의….”

똑똑-

하녀가 뭔가 말을 하려 할 때. 뒤에서 노크소리가 났고, 그곳에는 시에르 공작가의 공작인 프로마쥬가 서 있었다.

“오델리, 아직 준비가 덜 된 거니?”

“아….”

‘저 사람은… 나를 오델리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오델리의 아버지이자 이곳에 공작인 프로마쥬 라 시에르겠네.’

오델리의 아버지인 프로마쥬는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외모의 소유자였다. 나윤이 어버버거리고 있자 하녀들이 대신 말을 꺼냈다.

“공작님, 아가씨의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내려가시려던 참이었어요.”

“갈 길이 머니 얼른 내려오면 좋겠구나.”

무뚝뚝한 답변에 나윤은 멋쩍은 듯 답했다.

“아, 네….”

프로마쥬가 내려가고, 하녀들은 오델리에게 말을 전했다.

“아가씨, 오늘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지만 걱정되니 조심하셔요.”

“알겠어요….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요….”

“그리고 아가씨, 하녀에겐 그렇게 존댓말을 하실 필요 없습니다. 왜 갑자기 그러시나요? 항상 저 유모에게는 그러지 않으셨는데….”

그 말에 나윤은 저 사람이 하녀가 아닌 유모인 것을 깨달았다. 가장 가까이에서 그녀를 지키던 이라고.

“일단 알겠어… 요… 어.”

“예법은 누구보다 잘 따르시던 분이….”

오델리는 예법을 아주 잘 알고, 잘 따른다. 그런 오델리가 이런 모습을 보이니 유모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에는 다 있다고요. 근데 익숙하지 않은 걸 어떡해. 아니, 나 진짜 소설 속에 들어온 거냐고…! 그 말로만 듣던 빙의…?’

생각할 것이 많고,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나윤이지만 일단은 서둘러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 마차로 향했다.

또각-

“오델리, 얼른 타라.”

마차에 올라타려 발을 올리자 프로마쥬가 무심히 내려 보며 말하고 있었다.

“네, 아ㅃ… 아버지.”

“그래.”

‘와… 씨 자연스럽게 아빠라고 할 뻔했네. 그보다 아빠라니….’

나윤은 어렸을 때, 부모에게 버려져 고아원에서 홀로 자랐다.

‘그보다 지금 어딜 가는 거지. 물어봐도 되나…?’

생각 후에 이 불편한 정적을 깨려 조심스럽게 프로마쥬에게 말을 걸었다.

“저… 혹시 지금 어딜 가는 건가요?”

“…어제 설명해주지 않았느냐. 마음이 변하기라도 한 것이냐.”

“음… 제가 잠을 잘 못 잤는지 어제 일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요.”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다. 잠을 잘 못 잔거랑 기억이 나지 않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고.’

나윤은 말을 잘못했다고 생각했지만 프로마쥬는 한숨을 내쉬며 그냥 말해주었다.

“…너의 이복동생을 만나러 간다.”

그 말에 소설의 등장인물을 떠올렸다.

‘이복동생이라면… 예시엘을 말하는 건가? 아니, 그럼 지금 시점은 또 어떻게 된 거야? 나 지금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도 안 간다고…!’

“아, 그렇군요.”

고개를 휙 돌리자 프로마쥬는 몸을 앞으로 살짝 웅크리며 말했다.

“오델리, …이 아비가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아버지의 탓도 아닌 걸요.”

예시엘과 오델리는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가 다른 것이다.

‘오델리가 있는데도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가졌단 말이지? 심지어 그 여자도 죽었어. 뭐… 이 분 탓은 아니지만 그래도….’

프로마쥬는 잘생긴 탓일까 여자들이 꼬이고 꼬였다. 그 중에 오델리의 어머니인 위트마야 라 시에르는 프로마쥬의 사랑을 받은 유일한 사람이었지만 집안에서 정해준 약혼녀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상태였다. 집안의 압박으로 어쩔 수 없이 예시엘의 어머니인 미케일로 라 시에르와도 아이를 갖게 되었다.

즉 미케일로는 정부, 위트마야는 공작부인인 것이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오델리는 딱히 여린 성격의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왜 프로마쥬 저 사람은 오델리를 꼭…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유리처럼 조심스럽게 대하고, 하녀들은 왜 오델리를 여리다고 하는 거지.’

끼익-

나윤이 생각에 잠긴 동안 마차는 예시엘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공작 저하, 도착했습니다.”

“수고했네.”

마차에서 내리자 예시엘이 마차 가까이에 서 있었다.

“아버지.”

“예시엘, 오래만이구나.”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프로마쥬는 예시엘을 안아주었다. 그리고 보인 광경은 예시엘이 눈물을 흘리며 나윤에게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왜 나를 보고 웃는 거지?’

또각-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예시엘이 나윤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언니, 안녕하세요. 전 예시엘이라고 해요.”

세상 착하게 미소를 짓는 예시엘을 보고 나윤은 생각했다.

‘소설에서의 첫 만남은 끔찍했지. 오델리가 이런 순수한 표정을 가진 예시엘의 뺨을 치다니.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것인지.’

나윤은 소설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예시엘의 인사를 받았다.

“예시엘, 안녕. 난 오델리라고 해.”

예시엘은 그런 나윤을 보고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왜 저렇게 떨떠름한 표정인 거야?’

“…아, 네 언니.”

원하던 답이 아니었던 건지 예시엘은 뒤로 돌며 말했다.

“아버지, 이제 전 어디로 가나요…?”

예시엘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프로마쥬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예시엘, 넌 이제 우리와 살게 될 거다. 오델리와 사이좋게 지내렴.”

“아버지, 전 제게 다시 가족이 생겨서 너무나 좋아요.”

약간의 눈물이 고인 채로 말했다. 그리곤 멍하니 서 있는 나윤을 지나쳐 프로마쥬와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

“오델리, 안 타고 뭐하니?”

“네, 탈게요.”

‘대체 이 싸한 기분은 뭐냐고.’

싸한 기분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저 잘못 느꼈거니 하고 넘겼다.

“저… 언니, 제가 언니한테 줄 선물이 있는데 받아주시겠어요?”

마차를 타고 가고 있는 도중 예시엘은 옆에 준비해둔 상자를 나윤에게 건넸다.

‘그래, 내가 예민했던 것 같아. 저런 순수한 표정을 짓는 애가 뭐가 싫다고 때린 거야?’

“어머,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