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한참 동안 찬바람을 맞으며 과거에 기억에 빠져 있던 나는 핸드폰 진동이 요란하게 울리다가 잠잠해지는 걸 몇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신세희 작품 발표회’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수명을 먹는 ‘계약의 목걸이’에 몇 번이나 수명을 빼앗겨 버려서 수척해진 얼굴은 화장으로 가리니 그럭저럭 봐줄 만해졌고, 아무렇게나 엉켜 버린 붉은 머리카락은 빗어서 단정하게 묶으니 한결 깔끔해 보였다.

“공적인 자리에 옷은 역시 정장이 최고지?”

고개를 끄덕이며 전날 다림질해 놓은 정장까지 꺼내 입으니 곧 시작될 깜짝 이벤트에 심장이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현관 전신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 이제 악마를 심판할 시간이야.”

* * *

현관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피스텔 공동 현관으로 가는 동안에도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심호흡을 계속했다.

공동 현관 앞에는 ‘이은호’ 팀장님이 차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큰 키에 딱 맞아떨어지는 정장 차림에 단정하게 손질해서 넘긴 머리와 각진 반무테안경 그리고 그 아래에 날카로운 눈매와 콧날은 팀장님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반가운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현관 계단을 내려가다가 오랜만에 신은 구두가 말을 듣지 않아서 넘어질 뻔했다.

그러자 팀장님이 성큼 다가와 내 팔을 잡았다.

“조심…….”

순간적으로 거리가 너무 가까워져서 팀장님의 단추 풀린 셔츠 깃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향수 향이 내 정신을 아득하게 했다.

그 상태로 한참 동안 멍해 있으니 팀장님이 내 귓가에 대고 말했다.

“서지수 씨, 언제까지 멍해 있을 겁니까? 이러다가 해라도 져서 ‘한지우’라도 되면 큰일 아닙니까?”

“아, 죄송합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차에 타자마자 팀장님이 내 무릎 위에 꽤 두껍게 인쇄된 A4용지 묶음을 올려놓았다.

“자, 서지수 씨가 부탁한 작품 발표회 기자들의 예상 질문이랑 신세희 멘트 대본입니다.”

“와, 팀장님 감사해요.”

“진행자를 구워삶느라고 고생 좀 했습니다. 그러니까 완벽하게 외워서 꼭 복수 성공하도록 하십시오.”

“네, 근데 정말 신세희가 대본대로만 말할까요?”

“확실합니다. 신세희는 그동안 모든 공식 석상에서 소속사 관계자들이 적어 준 대로만 말하는 꼭두각시였으니까.”

차가 열심히 달리는 동안 나는 대본을 읽어 보며 내용을 빠짐없이 숙지했고, 잠시 눈을 감고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상상하며 내가 할 말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갔다.

시뮬레이션이 끝나자마자, 자동차는 기가 막힌 타이밍에 최후의 결전지인 ‘미래문화예술관’을 향해 들어섰다.

예술관 앞 조각 공원에서는 평소처럼 무명 예술가들이 본인의 솜씨를 뽐내고 있었다. 예술관 건물 앞에 다다르자 ‘신세희 작품 발표회’ 대형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게 보였다.

내가 차에서 내려 비장한 표정으로 현수막을 올려다보니, 팀장님이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밤은 낮보다 기니까.”

나는 팀장님 손에 손을 올려놓으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해가 지기 전에 모든 것을 끝낸다. 맞죠?”

“맞습니다.”

팀장님이 피식 웃으며, 내 손을 꽉 잡았다.

* * *

예술관 안은 기자들과 팬들로 평소보다 더 북적거렸다.

팀장님은 넓은 전시회장이 이미 익숙한 듯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지나쳐 작품 발표회장으로 향했다.

발표회장을 향해 가는 중에도 팀장님은 내 손을 놓지 않고, 꼭 잡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의식하고 나니, 손바닥은 온통 땀으로 축축해져 버렸다.

팀장님을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발표회장에 도착해 있었고, 그제야 팀장님은 꼭 잡았던 내 손을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재킷 안쪽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서지수 씨, 긴장 많이 했나 봅니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양 뺨을 두드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 * *

무대에 붉은 천이 덮인 거대한 그림 한 점과 천이 덮이지 않은 작은 그림 네 점이 차례로 올라오자, 박수갈채와 함께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가 넓은 발표회장을 가득 메웠다.

넓은 발표회장을 울려대던 그 소리는 진행자의 손짓 한 번에 멈췄고, 고요함이 찾아왔다.

“자, 귀한 시간 내서 참석해 주신 귀빈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예술가 신세희 님의 작품 발표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신세희 님,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진행자의 멘트가 끝나자 무대 뒤편에서 신세희가 천천히 걸어 올라왔다.

언제나 그렇듯 그녀는 내 속이 뒤틀릴 만큼 여전히 아름다웠다.

새하얀 피부에 대비되는 새까만 머리칼은 정갈하게 묶어 올렸고, 하얀 블라우스와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 H라인 스커트 그리고 높은 하이힐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완성시켜 주었다.

그녀가 무대의 조명 아래에 서자, 이곳저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그런 탄성이 익숙한 듯 잠시 상냥한 눈웃음을 지어 보이다가, 인사를 하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예술가 신세희입니다.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제 작품 몇 점을 소개해 드리기 전에 몇 가지 중대 발표를 하려 합니다.”

난데없는 중대 발표 소식에 조용하던 발표회장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저는 SC 미래 예술 재단 회장의 손자인 이은호 씨와 파혼하려 합니다.”

당황한 사람들과 다르게 나는 흥미롭게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한쪽 입꼬리만 올려 조용히 미소 지었다. 팀장님 또한 잠시 놀라는가 싶다가, 얼굴에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점점 더 재미있어지잖아? 대본하고 다르게 뭔가를 해보겠다는 것 같은데, 어디 마음껏 발버둥 쳐 보라지.’

* * *

“파혼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혹시, 항간에 떠드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신세희 님, 대답해 주십시오! 숨겨 둔 애인이 있다던데, 맞습니까?”

신세희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하게 만복 아저씨 그림 두 점과 내 그림 두 점을 차례대로 소개해 나갔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림은 평소 제 화풍으로 그려낸 그림입니다. 그리고 낯선 작품들은 세 번째, 네 번째 작품일 텐데, 현대 미술에 한창 빠져 살던 저는 문득 인간과 자연 그리고 그 속에 섞인 감정들에 대한 고찰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이런 작품들을 창조해냈습니다.”

예상대로 그녀의 입에서는 준비된 대본과 똑같은 대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감정을 실어 연기를 하니, 정말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며 열변을 토해내는 일류 화가의 모습 같아 보였다.

“와…… 역시 일류 배우답다.”

기가 막혀서 내가 코웃음 치며 중얼거리자, 옆에서 팔짱 끼고 지켜보던 팀장님이 내 어깨에 팔을 올리고, 귓가에 속삭였다.

“맞습니다. 지금 서지수 씨 눈앞에 저 여자는, 삶 자체가 연기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서지수 씨는 지금 이 순간부터 복수가 끝날 때까지 저 여자를 뛰어넘는 배우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팀장님 말에 수긍하고 있는 동안 작품 네 점에 대한 설명은 끝이 났고, 드디어 내 인생 최고의 걸작에 대한 소개가 시작되었다.

진행자가 붉은 천을 걷어 올리자, 그림이 조명을 받아 눈부시게 빛을 발했다.

그림 중앙에는 신세희로 보이는 여인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한 손을 내밀고 서 있었다. 그리고 여인의 뒤쪽 하늘에는 구름 사이로 햇살이 은근하게 쏟아지고 있어 신비함 마저 느껴졌고, 여인의 발아래에는 갖가지 여러 색의 꽃들이 물기를 머금고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생동감이 느껴졌다. 동시에 쏟아지는 햇살 아래에 모든 대상의 빛과 그림자를 명확하게 표현해내 화가인 내가 봐도 탄성을 자아낼 만했다.

그림을 본 사람들은 처음에는 넋이 나간 듯 멍해 있다가, 이내 탄성과 함께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작품의 작품성에 경이로움과 그런 작품을 창조해낸 화가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는 반응이었다.

나는 그동안 고생한 것에 대한 인정을 받는 것 같아서 가슴 한편이 뜨거워지며,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손에 쥐고 있던 손수건으로 급하게 눈물을 훔치니 팀장님은 픽 하고 웃으며, 내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리고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서지수 씨,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정말 잘해 주었습니다.”

신세희는 앞으로 벌어질 상황은 꿈에도 모른 채, 내 그림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꾸며대기에 바빴다.

“이 작품의 제목은 ‘천사(The angel)’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대지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봄을 부르고 있고, 하늘은 천사의 강림을 햇살의 줄기로 축복하고 있는 듯하죠. 여러분이 상상하듯 ‘천사’로 지칭되는 이 여인의 모델은 제가 맞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화상인 셈이죠.”

그녀의 대사가 끝나가자,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팀장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팀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에 준비해 둔 마이크를 쥐여 었다.

나는 마이크를 켜 입에 대고, 손을 번쩍 든 후 그녀를 향해 물었다.

“신세희 씨, 그 작품이 정말 본인의 작품이 맞습니까?”

그녀의 검고, 큰 눈동자가 촛불처럼 흔들렸다.

“네, 맞습니다. 작품에 대한 질문이라면, 설명이 끝나고 공식 질문 시간에 해주십시오.”

“저는 질문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제 작품에 대한 설명을 마저 하려는 겁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무대 뒤에서 대기 중이던 조명 스태프들이 발표회장의 모든 조명을 끄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나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하다가, 내가 손가락으로 그림을 가리키자 일제히 그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림을 보자마자, 경악하기 시작했다.

조명이 사라진 어둠 아래에 그림 속 여인의 눈은 붉은빛을 번뜩였고, 여인 뒤에는 검고 커다란 날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신세희 씨, 그 그림의 제목은 ‘천사(The angel)’가 아니고, ‘타락 천사(The fallen angel)’ 다시 말해, 악마(The devil)입니다.”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질려 백지장이 되어 버린 신세희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2. 빛과 어둠

‘5년 전 그날 당신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삶이 이 정도로 망가지지는 않았을까?’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으로 향했다. 유리창에는 윤기 없이 아무렇게나 엉켜 버린 붉은색 머리카락과 수척해진 내 얼굴이 비쳤다.

나는 볼품없는 그 얼굴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창문을 벌컥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그래, 5년 전 당신을 만난 그날의 계절도 가을이었지…….’

코끝이 시리도록 차가운 공기에 나의 기억은 점점 선명해져 갔다.

* * *

나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교과 성적과 특기 과목인 미술 성적이 꽤 우수한 편이어서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릴 적 돌아가신 아빠의 역할까지 해내며 나와 내 동생을 기르고 계신 엄마를 생각하며, 대학 꿈은 아예 접어 버렸다.

대학을 포기하고 나니 시간 여유가 많아졌고, 하교 후에는 엄마의 가게 일을 돕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늘도 종례가 끝나자마자 교실을 나서려는데, 담임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수야, 너 잠시 선생님 좀 보자.”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친구들이 우르르 교실을 빠져나가는 걸 지켜보고 있는데, 교실이 텅 비자 선생님이 무언가를 건네주셨다.

“지수야, 이거 선생님이 받은 전시회 관람 표인데 너 줄게.”

“선생님, 저는 지식이 없어서 이런 거 봐도 잘 몰라요……. 그리고 저 이제 그림 안 그리려고요.”

고개를 떨구고 우물쭈물 대답하자 선생님은 내 어깨를 토닥이시고는 한층 더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지수야, 이번 기회를 놓쳤다고 해서 다음이 없는 건 아니야. 네가 네 꿈을 잊어버리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기회는 분명히 다시 온단다.”

선생님의 따뜻한 말씀에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아내고, 관람 표를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 * *

노을이 내려앉은 운동장을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로운이가 저 멀리서 내 이름을 반갑게 부르며 뛰어왔다.

“아, 뭐야. 너랑 같이 가려고 기다렸는데, 어떻게 뒤도 안 돌아보고 먼저 가버리냐.”

가쁜 숨을 고르는 로운이의 말투에서는 서운함이 가득 느껴졌다.

“그야 너는 매일 기사님이 차로 데리러 오시니까, 당연히 먼저 갔다고 생각했어.”

“내 의리를 뭐로 보고! 어? 그보다 너 손에 든 그건 뭐야?”

로운이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내 손에 든 관람 표를 뺏어 들고, 찬찬히 소리 내어 읽었다.

“현대 미술의 신예 신세희 첫 개인전…… 엥? 세희 누나 우리 형 약혼녀인데? 이 누나가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지? 이상하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연예인에 관심 없는 나도 이름은 들어 봤을 정도로 신세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배우였다. 그런 신세희가 로운이의 가족이 될 사람이라니, 로운이의 집안이 대단하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멍하게 서 있으니, 로운이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주 주말이네. 게다가 표도 두 장이야. 서지수는 이번 주 주말에 이로운과 전시회를 같이 가는 거로 결정합니다.”

로운이는 판사 흉내를 내며, 혼자 제멋대로 결정해 버리고는 나를 앞서 걸어갔다.

* * *

그 주 주말, 나는 담임 선생님이 주신 관람 표를 들고 전시회장으로 향했다. 전시회장 입구에는 신세희의 얼굴을 보려고 모인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 인파 속에서 로운이는 나를 한 번에 발견하고,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큰 키에 곱슬기 있는 자연 갈색 머리 그리고 혼혈인다운 서구적인 이목구비로 생글생글 눈웃음을 짓는 로운이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닌지, 몇몇 사람들은 로운이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연예인인가?”라고 수군거렸다.

그에 비해 나는 막 자른 단발머리에 청바지와 후드티 그리고 운동화 차림이었고, 교복을 입지 않으니 로운이와 더욱 비교돼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어졌다.

창피한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운이는 신이 나서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친한 척을 해대며 나를 전시회장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추운 날씨에도 전시회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마도 대부분이 이 전시회 주인 신세희의 얼굴을 보기 위해 온 팬들이겠지?’

나는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간신히 비집고 작품들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함축적인 점과 선 그리고 화려한 색채까지……. 눈을 한 번에 사로잡는 그림들이 계속해서 걸려 있었지만, 나는 그림 옆에 걸려 있는 설명을 읽지 않고서는 그림을 해석조차 할 수 없었다.

‘역시 나는 미술에 대한 조예가 부족하구나…….’

그렇게 그림들의 설명을 꼼꼼히 읽어 가며 작품에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도가 지나친 소란스러움에 나는 미간을 잠시 구기다가, 다음 작품 쪽으로 이동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너무 급하게 이동한 탓에 지나가는 사람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부딪쳐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