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미필적 고의의 시작

형광등 불빛이 유난히 푸른 사무실 한가운데 넓은 책상이 놓여 있었다.

책상 주인의 성격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책상 위에 모니터 두 대와 키보드, 마우스, 전화기 선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 외에는 한쪽 서류철에 가지런히 쌓여 있는 서류와 그 위를 누르고 있는 만년필이 유일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책상 뒤 뻥 뚫려 있는 통유리 창문은 블라인드로 완벽하게 가려져 햇빛이 샐 틈도 없어 보였다. 마블이 연하게 들어간 대리석 벽 한쪽에는 강렬한 색감이 어지럽게 그어져 있는 그림 한 점이 전부였다.

대부분의 자리가 비어 있는 책장에는 외식업 관련 서적과 마케팅 관련 서적, 그리고 경영에 관련된 서적만 몇 권 꽂혀 있을 뿐 휑해 보였다.

그나마 책장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은 선인장만이 유일하게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똑똑똑.

노크 소리에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던 세진은 슬쩍 눈을 뜨고는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안경을 썼다.

“들어오세요.”

그의 낮은 말소리가 사무실 안에 울렸다.

검은색 스커트에 민트색 블라우스를 입은 여성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는 삐져나온 것 하나 없이 단정했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책상 앞까지 다가온 그녀는 손에 들고 있는 서류를 그에게 건넸다. 잠시 그녀의 모습을 안경 너머로 보던 세진은 서류를 받아 들고 책상 위에 내려놨다.

“그래서 알아낸 것은요?”

그녀는 책상 위에 그대로 놓인 서류를 슬쩍 보고는 자신을 쳐다보는 그와 눈을 마주쳤다.

“별거 없었습니다.”

“별거 없었다라……. 무슨 의미죠?”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제야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를 들고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그 사이에도 그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그에게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읽기 어려웠던 감정 없는 눈빛이 쉴 틈 없이 좌우로 움직였다. 단정하게 정리된 그의 짙은 눈썹이 단단해 보였다. 꽉 다물고 있는 입술. 간혹 한쪽 눈가가 움찔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게 답니까?”

슬쩍 눈동자만 올려 서류 너머로 그녀를 쳐다봤다.

“네.”

“정말 보잘것없네.”

세진은 책상 위에 서류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서류를 향해 있었다.

“실장님.”

그녀의 목소리에 서류에서 시선을 뗐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작은 레스토랑에 관심을 가지시는 겁니까.”

세진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내려놓고는 한쪽 팔을 의자 팔걸이에 기댄 채 손끝으로 맨들맨들한 자신의 턱을 쓱쓱 문질렀다.

“별일이네, 유 차장이 질문을 다 하고.”

로즈힐 호텔 외식사업부 유주연 차장. 부장의 자리가 비어 있는 지금, 세진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직책을 맡고 있었다. 외식사업부에서 일한 기간만 따지면 세진보다 더욱 오래되기도 했다. 물론 나이도 그보다 많았다.

세진의 말대로 그녀가 질문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가 처음 실장 자리를 맡았을 때부터 옆에서 도와주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어떡해서든지 반드시 해내며 그 과정을 중요치 않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한번 결정 내린 일에 대해서는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자만심 높은 성격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자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그의 말에 의문을 갖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의아했다.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레스토랑에 대해서 왜 그렇게 알아보라고 했는지.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세인이가 여기서 일하고 있습니다.”

“세인, 씨가요?”

그 이름 하나에 모든 것이 납득이 되었다. 예전부터 동생들 일이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그의 관심거리였다. 옆에서 보고 있노라 하면 그 모습이 강압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한 부서 실장에 위치해 있으면서, 장차 이 호텔의 오너가 될 사람인만큼 그렇게 신경을 쓰는 것이 한편으로는 당연했다. 서비스를 업으로 하는 이 분야에서는 작은 소문도 큰 타격이 될 수 있었다. 특히 그것이 오너 가 일이라면.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놈도 하나 있고.”

“네?”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무튼 이 정도밖에 없는 거네요.”

“세인 씨가 관련되어 있다면 조금 더 조사해 보겠습니다.”

“더 판다고 뭐가 나오겠습니까? 오히려 그렇게 작은 레스토랑에 뭐가 있는 게 더 이상한 거지.”

세진은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5시까지 박 기사 좀 로비에 준비하라고 전해줘요.”

세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걸어 두었던 재킷을 집어 들어 입었다. 큰 키에 넓은 어깨, 긴 팔에 딱 맞게 제작된 재킷은 허리라인까지 딱 떨어졌다.

“오늘 저녁에 시간 있으세요?”

“별일은 없습니다만…….”

“그럼 시간 좀 내주시죠.”

“시간이요?”

자신의 앞에 멈춰 선 세진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들어야만 했다.

머리 하나는 차이 나는 큰 키와 넒은 어깨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자신도 164cm 정도로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그의 앞에서는 턱 끝에만 겨우 다다를 뿐이었다.

항상 무표정한 저 얼굴은 사람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오너 가의 사람이라서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사람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상당히 강렬했다.

“유 차장님 나이가 어떻게 되죠?”

“나, 나이요? 올해로 서른여섯입니다만…….”

“그래요? 머리 때문에 그런가…….”

그의 말에 목 뒤로 손을 넘겨 묶여 있는 자신의 머리끝을 만졌다. 벌써 몇 년째 변화 없이 유지하고 있는 스타일. 사실 스타일이라고 할 것도 없다. 항상 같은 길이의 머리를 하나로 단정하게 묶고 다닌 것뿐이었다.

과장으로 승진 이후로 헤어스타일에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지금 모습이 무난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살짝 턱을 빼고 자신의 어깨너머를 보는 세진의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의 목젖에 멈췄다. 매끈한 목 사이로 살짝 솟은 목젖, 양옆으로 들썩들썩 대는 혈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절로 침이 꼴깍 삼켜졌다.

그와 이렇게 가깝게 선 것은 처음이었다.

“머리 풀어 볼 생각 없어요?”

“네? 왜 갑자기 그런 말씀을…….”

“아, 별건 아니고. 이따 같이 갈 곳이 조금 젊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

“…….”

주연은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속이 쿡 쑤셔왔다. 젊은 사람들이 찾는 곳. 그의 행동과 말을 보면 결국 자신이 젊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러한 기분은 찰나였다. 오히려 그의 말에 약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럼 머리를 풀면 어려 보인다는 말인가?’

흥분한 탓에 어쩔 수 없이 얼굴이 붉어졌다. 그의 시선을 피해가 위해 살짝 고개를 숙였지만 높은 곳에서 내려 보는 시선을 피할 수는 없었다.

“기분 나쁘라고 한 얘기는 아닙니다. 풀면 지금보단 나을 것 같아서.”

“네. 알겠습니다. 그럼…….”

항상 그의 앞에서는 항상 긴장이 되었는데 지금의 감정은 긴장과는 결이 달랐다. 정말 오랜만에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분명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평소에는 그렇게 감정표현이 잘 되면서 이상하게 지금만큼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숨기기 위해 재빨리 몸을 돌려 사무실 밖으로 향하였다.

“유 차장님.”

“네?”

그의 부름에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몸만 살짝 돌렸다. 얼굴은 최대한 보이지 않게 하면서.

“4시 50분에 로비에서 만납시다.”

“네. 알겠습니다.”

사무실 밖으로 나온 주연은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앞에서 묶었던 머리를 푸니 머리카락 사이에 묶었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살짝 물을 발라 툭툭 털어 냈지만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어쩐담.”

그때 화장실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같은 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자른 직원들이었다. 다시 머리를 묶을 틈도 없었기 때문에 재빨리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감싸 쥐었다.

그녀의 모습에 들어오려던 발걸음을 멈칫한 직원은 다시 천천히 거울 앞으로 다가왔다.

“차장님 머리 푸시게요?”

하필 평소에도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관심이 많은 직원이었다.

다른 직원들은 차장이라는 이유로 거리감을 두는데 이 직원만큼은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자신감이 많은 건지 자신의 의견을 툭툭 내뱉기 일쑤였다.

“아뇨. 그냥 다시 묶으려고요.”

거울 너머로 자신을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이 그대로 느껴졌다.

팔목에 끼워둔 고무줄을 빼기 위해 머리카락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축축한 머리카락이 서로 달라붙은 채 어색하게 내려앉았다. 그제야 자신의 행동에 아차 싶었다.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에 잠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차장님. 여직원 휴게실에 가면 드라이어랑 고데기 있어요.”

“괜찮아요.”

재빨리 머리를 묶고는 그녀를 지나쳐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목덜미에 닿는 머리카락이 축축했다. 아무도 없는 복도 좌우를 살펴보고는 한쪽 방향으로 향하였다.

“휴게실이 이쪽인가…….”

머리를 정리한 주연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 탓에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진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주연의 모습을 보고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걸음걸이마다 살짝 웨이브 진 머리카락 끝이 찰랑거렸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머리를 푸니 조금은 더 어려 보였다. 그것 때문일까. 화장 스타일도 평소와는 약간 달라 보였다.

반대로 본인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스타일의 머리를 할 줄 몰라 우선 핸드폰으로 검색해 어찌어찌 하는 법을 따라 하긴 했는데 영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더 이상 머리를 고칠 시간도 없었거니와 그나마 지금이 가장 봐줄 만한 상황이었다.

“나쁘진 않네요. 이정도면.”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재킷.”

고개를 숙여 그가 턱으로 가리키는 자신의 재킷을 보았다.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나중에 들어갈 때는 벗고 들어갑시다. 너무 회사원 티 나잖아.”

“아 네. 알겠습니다.”

일 처리를 할 때도 하나하나 꼼꼼히 본인의 마음에 들게 수정하는 일이 잦았는데 남에 스타일까지 저렇게 할 줄이야. 정말 어디를 가도 숨기지 못할 성격이었다.

“갑시다.”

세진이 먼저 몸을 돌려 로비 밖으로 향했다. 주연도 재빨리 그의 뒤에 바짝 붙었다.

로비 앞에는 세진이 항상 업무에 사용하는 검은색 대형 세단이 서 있었다. 기사가 나와 문을 열어주자 세진이 먼저 오른편 뒤쪽에 올라탔다. 주연은 반대로 돌아가 문을 열어주는 기사에게 살짝 인사를 하고는 마찬가지로 차에 올라탔다.

고요한 차 안. 잠시 동안이지만 세진과 단둘이 있는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긴장이 되었다. 그와 함께 일을 시작한 이후 이렇게 긴장된 적은 아마 단 한 번도 없었다.

기사가 차에 타고나서야 그 긴장이 조금은 풀렸다.

“어디로 모실까요?”

“노마드.”

***

평일 저녁이지만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테이블이 가득 차 있었다. 바쁘기는 해도 그럭저럭 잘 넘길 수준이었을 주방은 평소와 다르게 숨 쉴 틈 없이 바빴다.

쉬지 않고 화로 앞에서 손을 움직이는 다희의 얼굴은 지친 기색이 엿보였다. 현우가 요리를 제외한 모든 일을 최대한 도와주고 있지만 역시나 디너에 준비해야 하는 메뉴들은 조금 벅찼다.

현우는 힘들어하는 그녀의 모습이 내내 신경 쓰이면서도 어떻게 해주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무리했다가는 이 상황이 더 길어질 수도 있었다. 지금은 최대한 하는 데까지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

갑자기 주방에 들어온 태민의 표정이 다급했다.

“잠깐 나와 보실래요?”

“왜? 홀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

“그게. 문제는 문제죠. 심각한…….”

현우는 앞치마에 손을 쓱쓱 문지르고는 태민을 따라 주방 밖으로 나갔다.

가장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입구를 향해 서 있는 세인의 뒷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녀 앞에 서 있는 남자. 세인의 머리 위로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미간에 주름이 잡히면서 절로 눈이 크게 떠졌다.

“저 인간이 왜 또 여…….”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일전에 보았던, 그 재수 없는 미소를 또 지어 보였다. 세인도 그 미소를 보고 눈치챘는지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봤다. 역시나 그녀의 표정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현우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세인의 곁으로 다가갔다. 태민 역시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현우 뒤를 바싹 쫓아갔다.

“뭐야 또. 한판 하자고?”

“여전하네. 그 생각 없는 성격은.”

“뭐 인마?”

“사, 사장님! 손님들…….”

살짝 커진 현우의 목소리는 순간적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태민의 만류에 분위기를 감지한 현우는 일단 목소리를 낮추기로 했다.

“좋은 말 할 때 나가라. 이번엔 세인 씨 보낼 일 없으니.”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아직도 다니고 있는 거 보니 여기도 어지간히 골 때리는 곳이네.”

“이 자식이 보자 보자 하니까.”

“사장님!”

이번에는 세인이 현우의 팔을 붙잡았다. 그 모습에 세진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둘을 내려다봤다.

“왜 왔어, 또. 안 들어간다고 했잖아.”

“왜 오긴 왜 와. 레스토랑에 밥 먹으러 온 거지. 여기 레스토랑은 환영 인사가 아주 대단하네.”

“뭐?”

현우는 그의 대답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쳐다봤다.

그날 그 난리를 피웠으면서 이렇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찾아와서는 고작 한다는 소리가 밥을 먹으러 왔다니.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저렇게 태연하게 말을 하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때 그의 뒤에서 살며시 나오는 여성에게 눈이 갔다. 평범한 키에 눈에 띄게 예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매력적인 얼굴이었다. 하지만 세진 옆에 있어서 그런지 그 매력이 살짝 반감되어 보이긴 했다.

“실장님.”

”아. 미안합니다, 유 차장. 여기 사장이 영 매너가 없어서 말이지. 손님을 이렇게 계속 세워 두네요.”

말끝마다 도발을 동반했다. 다시 한 번 욱하고 성질이 올라왔지만 그의 옆에 서 있는 여성을 보고는 어쩔 수 없이 꾹 찍어 눌렀다.

“사장님…….”

태민이 현우 뒤에 바싹 붙어 불렀다.

고개를 돌려 그의 표정을 본 현우는 그의 시선을 따라 레스토랑 안을 쓱 훑어보았다. 조용히 한다고 했지만 이미 모든 테이블의 시선이 자신들에게로 꽂혀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멱살을 쥐어 잡고 레스토랑 밖으로 끌어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쳐다보는 시선들이 너무 많았다. 거기에다가 그 옆에 불안하게 서 있는 여성도 신경이 쓰였다.

“저 자리가 빈 건가? 저기 가서 앉으면 되나? 가시죠, 유 차장.”

세진은 현우와 신우, 그리고 세인까지 스쳐 지나가서는 비어 있는 테이블에 그대로 앉았다.

그들의 눈치를 살피던 주연도 세진이 자리에 앉자 그들 사이를 살짝 숙이고 지나쳐 세진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저거 뭐 하는 자식이야.”

“사장님 일단 제가 얘기해 볼 테니 주방 안으로 들어가 보세요.”

“세인 씨가요? 어떻게 하려고요?”

“그건 저도 모르겠지만, 같이 온 분도 알고 있는 사람이니 괜찮을 거예요.”

“아는 사람이에요?”

“네, 조금은. 그리고 저기…….”

세인의 시선을 따라 바라본 주방 입구에는 어느새 다희가 나와서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 역시 좋아 보이지 않았다. 힘든 주방일 때문에 내내 구겨진 인상이었지만 세진을 본 뒤의 표정은 확실히 달랐다.

현우는 일단은 세인에게 맡기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지금 당장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주방을 계속해서 비우고 있을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