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잃어버린 파라다이스

‘살고 싶다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시아는 얼마 전까지 그와 함께 ‘살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키에 평범한 외모를 지녔지만, 세상 누구보다 다정하고 상냥했던 남자, 함찬혁. 그는 의지할 곳 없던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해주던 사람이었다. 늘 가족처럼, 때론 든든한 친구처럼. 그런데 지금은….

“나가!”

“아니, 절대 못 나가!”

“신시아, 이래 봐야 소용없다니까? 경찰 부르기 전에 어서 나가.”

“싫어, 싫다고! 내가 미쳤어? 절대로 못 나가!”

그들은 유리문 하나를 두고서 한 시간째 대치 중이었다. 어떻게든 밖으로 내쫓으려는 찬혁과 손잡이를 잡은 채 악착같이 쫓겨나지 않으려는 시아. 한적한 골목 가에 별안간 소란이 일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골목 정중앙, 파란 지붕에 하얀 벽을 두른 레스토랑 ‘파라다이스’를 무대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아니, 쟤네 왜 저래요? 저러다 큰일 나겠어요!”

꽃가게의 여주인이 맞은편 카페 사장에게 물었다.

“글쎄 찬혁이가, 시아 몰래 가게를 처분했다잖아요.”

“네에? 말도 안 돼! 저건 시아 엄마가 연 가겐데?”

“그러니까 말이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요. 둘이 꼭 한 형제처럼 사이가 좋다 했더니….”

카페 사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팔짱을 꼈다.

“아유, 두 분 아직 모르시는구나? 얼마 전에 난리 났었잖아요.”

두 사람에게 카페 위층에 있는 공방 주인이 다가왔다. 그녀는 이 동네 일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소식통이었다. 뭔가를 아는 게 있는지,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말을 꺼냈다.

“재인 씨! 뭐야, 뭐야? 궁금해 죽겠네!”

“일주일 전쯤인가? 시아가 가게 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걸 제가 발견했잖아요. 얼굴이 새파래져서는 몸을 벌벌 떨지 않나, 꼴이 말이 아니더라고요.”

“어머, 그런 일이 있었어?”

꽃집 여주인이 계속 말을 하라는 듯 얼굴을 가까이 붙이며 채근했다.

“네에. 저도 시아를 오래 봤지만 늘 싹싹하던 애가,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니까요. 깜짝 놀라서 이불도 덮어주고 따뜻한 차도 한잔 끓여줬죠. 그랬더니….”

“그랬더니…?”

이번엔 카페 사장이 채근하듯 침을 꿀꺽 삼켰다.

“아시다시피 시아가 좀 어리고 착하잖아요. 찬혁이가 가족이나 다름없으니까 가게 일을 대신 처리해주겠다고 했나 봐요. 시아 입장에서는 당연히 고맙게 생각했겠죠.”

“그랬지, 그랬지. 둘이 좀 사이가 좋았어?”

“근데 그게 문제였던 거지. 찬혁이가 인감이고 뭐고 다 맡기라고 하고선, 레스토랑을, 지점까지 싹 다 지 맘대로 팔았다는 거예요.”

“세상에나, 그게 가능한 일이야?”

“네, 시아가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무슨 법이 그래? 찬혁이 저놈, 그렇게 안 봤는데 생 양아치 같은 놈이었네? 아무리 시아가 어려도 그렇지, 가게를 날로 먹어? 저건 시아엄마 가게잖아. 하늘이 알고 우리가 다 아는데….”

셋은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여전히 소란스러운 가게 쪽을 쳐다보았다. 시아는 찬혁의 벼락같은 고함에도, 손잡이를 꿋꿋이 붙들고 있었다. 하아-. 찬혁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 흔들며 한숨을 쉬더니, 곧이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거기 경찰서죠?”

“함찬혁! 설마 지금 나 신고하는 거야?!”

화가 난 시아가 갑자기 손잡이를 놓고서는 찬혁의 휴대전화를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하지만 작은 체구인 그녀가 남자의 힘을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더 못 참겠는지 찬혁이 거칠게 그녀를 뿌리치자 시아는 반대쪽으로 힘없이 나동그라졌다.

“아야….”

쓸린 다리가 저릿해 살펴보니, 상처가 고속도로 뚫리듯 도로록 길을 튼 후였다. 빨갛게 맺히는 핏방울을 보며 시아는 조용히 다리를 쓸어내렸다.

“이래서 너는 안 된다는 거야! 나를 왜 나쁜 놈으로 만들어? 얌전히 나가면 이런 일 없잖아!”

신고를 마친 찬혁은 모든 게 네 탓이라는 듯 버럭 고함을 질렀다.

“오빠, 나한테 정말 왜 이래? 여기 엄마 가게인 거 잊었어? 가게 꾸려가게 도와준다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안 했어? 그동안 넘칠 만큼 도와줬잖아.”

“이게 도와준 거야? 아무 말도 없이 가게를 뺏어가는 게?”

“야. 제발 정신 차려. 언제까지 엄마의 꿈 운운하며 소꿉장난이나 할 거야? 너희 엄마는 이미 죽었잖아. 너나 나나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거 아냐.”

“뭐어?”

“오히려 하늘에 있는 네 엄마도 좋아하실걸? 가게 넘기면, 너도 죽어라 일 안 해도 되잖아. 월세 집 정도는 내가 구해줄 수도 있어. 인제 그만 네 갈 길 가지 그래?”

“닥쳐!”

“어디 오빠한테 닥치라 말라야? 너는 진짜 버릇이 너무 없어. 죽은 너네 엄마는 나한테 사과해야 돼. 딸자식 이렇게 키워서 미안하다고.”

찬혁이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자 시아는 그를 서슬 퍼렇게 노려보았다. 머리로 피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터질 것 같은 열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치사한 새끼. 나한테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 알면서 저딴 식으로 입에 올려?

“그래, 끝까지 한번 가보자 이거지?”

시아는 절뚝거리며 일어나더니 갑자기 가게 안의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찬혁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야, 너 미쳤어?”

“그래. 미쳤다, 이 나쁜 새끼야! 내가 이대로 얌전히 쫓겨날 것 같아? 너라면 그럴 수 있겠냐고!”

꽃다운 시절이 자그마치 오년. 그녀는 인생에서 가장 빛났을 오 년의 시간을 이 레스토랑을 위해 고스란히 바쳤다. 매일같이 오픈조로 출근해 새벽별을 보며 퇴근했고, 휴가는 사치라며 제대로 쉬어본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렇게 소중하게 일궈온 그녀의 파라다이스가 어처구니없이 남에게 넘어간다니.

“난 절대로 못 나가니까 그냥 여기서 같이 죽어보던가!”

하지만 오늘. 악에 받친 시아는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목숨같이 아껴온 이 가게를 제 손으로 직접 망가뜨리고 있다. 쨍강- 그릇과 접시가 박살이 나고. 텅그렁- 도마와 조리 도구들이 떨어져 나가고. 쾅- 식탁과 의자를 두어 개쯤 넘어뜨렸을 때.

‘죽을 것 같아.’

그녀의 깡마른 몸이 결국 한계를 느꼈다. 현기증이 나고 토할 것처럼 울렁거리던 그 순간은, 마치 제 몸이 살고 싶다고 목청껏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으흐흐…흑!”

그런 후에는 웃음이, 그다음엔 눈물이 났다. 분명히 찬혁과 ‘살고 싶다’라고 생각했을 땐 이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늘 곁에서 의지가 되어주던 오빠에게 남모를 호감을 품고 있던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인제 와서야 그 생각이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바보 같았는지를 절실하게 깨닫고야 만다. 멍청한 신시아. 지금의 그녀는 그저 쫓겨나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 요란법석을 떨고 있지 않은가. 내 가게를 되찾겠노라고, 다시 찬혁이 없는 내 삶을 ‘살고 싶다’고….

“자, 신시아 씨. 적당히 하시죠.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요란한 경광등 불빛이 눈앞에 어른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제복 차림의 경찰관 두어 명이 시아를 둘러쌌다.

“얼른 데려가 주세요! 이 여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결국, 진이 다 빠진 그녀는 들리듯 말 듯 울부짖으며 경찰차에 올라타야만 했다. 자신을 미친 여자 취급하며 경찰들에게 당부하는 찬혁의 후련한 표정이 시야에 들어오자, 분노가 막막함으로, 그리고 슬픔으로 변하며 가슴을 짓이겼다. 오빠, 너 예전엔 이러지 않았잖아. 좋은 사람이었잖아.

“제가 잘못한 게 아니에요! 어서 이거 놔주세요, 여긴 제 가게란 말이에요. 어흐흐흑….”

시아는 삶이 유독 자신에게 참 지독하고,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억울하게 당한 거예요, 네?”

시아가 마주 앉은 경찰의 손을 잡으며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러나 어휴- 한숨을 한번 내쉰 경찰관은 방법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조심스레 손을 빼냈다.

“신시아 씨, 사정이 딱한 건 알겠는데 저희로서도 방법이 없어요, 방법이.”

“경찰이시잖아요. 억울한 일 당했는데 안 된다고 하시면, 저는 어디 가서 얘기해야 하나요?”

“그러게 겁도 없이 어디 함부로 인감을 넘깁니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어쨌든 본인이 직접 위임을 하신 거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 이건 저희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민사로 가셔야 한다니까요.”

“그럼 소송하면 되찾을 수는 있는 걸까요?”

순진한 그녀의 질문에 결국 경찰관이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건 본인이 변호사를 위임하든 알아서 하셔야죠. 이제 어린애 아니고 성인이잖아요.”

“그건 그렇긴 한데….”

시아는 다시 시무룩한 얼굴로 돌아왔다. 내가 어린애였으면 정말 도와주셨을 거예요? 냉정한 세상이라더니 그간 따뜻한 우물 안에만 갇혀 있었던 걸까. 세상 무서운 줄 모르던 개구리가 갑자기 망망대해로 떠내려와 병뚜껑 위에 올라탄 느낌이었다.

“여기 법률구조공단 번호 알려드릴게요. 한번 상담받으시고 차근차근 해결해보세요.”

중년의 그 경찰관은 모니터를 보며 번호 하나를 적어주더니 이내 그녀의 손에 들려주었다. 시아는 물끄러미 쪽지를 내려다보다 다시 경찰관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제법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얼굴에 숨겨진 의미를 그녀는 알고 있다.

‘어서 나가라는 거겠지.’

느릿하게 눈을 몇 번 깜빡거린 그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문으로 향했다.

“아 참, 신시아 씨! 혹시나 해서 일러두는데 파라다이스에는 더 이상 찾아가지 않는 게 좋아요! 다음번에는 훈방조치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헐. 저 아저씨 멘트 좀 보소. 갑자기 억누르고 있던 억울함이 확 튀어나왔다.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안 해도 될 말은 왜 덧붙이는 걸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파라다이스는 내 가게라고! 그 나쁜 새끼 가게가 아니라!’

시아는 잠시 경찰관을 흘겨보았다.

“네? 뭐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도와드릴까요?”

헉. 순간 옆을 지나던 다른 경찰관이 멈칫대던 그녀에게 친절하게 묻자, 시아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허둥지둥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경찰서 문을 열어 나올 때까지도 두근두근 심박 수가 터질 것처럼 요동을 멈추지 않았다.

‘설마 내가 째려본 게 걸린 건 아니겠지? 공무집행 방해 그런 거로 또 잡혀가는 건 아니겠지?!’

울상이 된 얼굴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새가슴 주제에, 이렇게 쫄아들 거면서. 막상 경찰서를 나온 시아는 막막한 심정으로 한동안 그 주변을 서성거렸다. 막상 풀려나오기는 했지만 정말 큰일이었다. 레스토랑에 붙은 작은 다락이 곧 집이자 일터였으니 이렇게 쫓겨난 이상 노숙자나 다름없었으니까. 이제 나는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혹시… 죽으면 좀 나으려나?’

오가는 차들로 붐비는 도로를 보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실수인 척하면서 한 발을 잘못 디뎌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굴러가는 세상처럼, 내 몸도 그리되지 않을까?’

빵~! 빠앙!!

“이봐, 아가씨! 미쳤어? 죽으려면 혼자 죽어! 애먼 사람 뒤집어씌우지 말고! 아우, 재수가 없으려는지, 원!”

급하게 창문을 열어 재낀 운전자가 시아를 향해 고함을 질러댔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정신이 팔려서.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허리가 먼저 수그려졌다. 그리고는 그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부끄러워서. 너무 수치스러워서.

‘…욕먹어도 싸지.’

정신이 팔렸다곤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갈 곳도 없고, 찾는 이도 없다. 그녀의 삶의 이유였던 파라다이스도, 찬혁도 이제 곧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다. 시아에게는 이 상황을 멈출 아무런 능력이 없었다. 스스로도 한심할 만큼 아무런 능력이.

“아가씨, 뒤로 좀 가요. 아까 그렇게 욕을 먹고도 정신을 못 차리는군요. 항상 차 조심해야지.”

마침 옆을 지나가던 나이 지긋한 중년의 여인이 시아를 보며 말을 건넸다. 그녀는 시아의 또래쯤 되는 딸과 함께 경찰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 네…. 그래야죠.”

다정하게 팔짱을 낀 모녀의 모습을 올려다보다가 시아는 저도 모르게 잠시 움찔하고 말았다. 엄마와 함께 산책하던 기억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두 모녀의 팔짱에 닿은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잠시 부러운 듯 쳐다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후두둑, 웃으려 노력하는데 울음이 펑펑 쏟아지고 말았다.

[차 조심해야지.]

늘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잔소리. 이 상황에 그런 말을 들어서 내 멘탈이 산산이 부서지는 걸까? 어이없이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 엄마가 하늘에서 이 모습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드실까.

‘미안해. 엄마는 항상 내가 다칠까 걱정했었는데, 나는 배은망덕하게 진짜 죽으려고 했네.’

밑도 끝도 없이 펑펑 우는 모습에 당황한 중년의 여인은 얼른 핸드백 안에서 티슈를 꺼내 건넸다.

“학생, 왜 이렇게 울어요? 무슨 일 있어요?”

“흐흑… 감사합니다.”

시아는 건네받은 티슈로 코를 흥- 풀며 감사를 전했다. 두 모녀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안 돼.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더 이상 이렇게 한심하게 행동할 수는 없어. 방법이 없어서 죽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시아는 없던 기운까지 끌어모아 금세 울음을 그쳤다. 안 그래도 어려 보이는 얼굴인 데다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는 시아가 안돼 보였던지 여인은 계속 말을 붙여왔다.

“우리 아이랑 비슷한 나이 같은데 무슨 일 있어요?”

“죄송해요.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서요.”

시아는 빨개진 눈으로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이구, 저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힘을 내요.”

“네,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정말 괜찮은 거예요?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아니에요, 전 이제 정말 괜찮아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자, 여기. 이거 내 명함인데 나중에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꼭 찾아와요.”

“네? 네에….”

난데없이 쥐어진 명함을 살펴보던 시아는 잠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경찰서장 한여옥.>

응? 잘못 봤나? 고개를 흔들고 다시 봐도 다르지 않았다. 단아하게 틀어 올린 머리에 화려한 원피스로 멋을 낸 세련된 아주머니. 아무리 봐도 부잣집 사모님으로 밖엔 보이지 않는데.

“네…감사합니다.”

시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저도 모르게 여옥을 다시 바라보았다.

“학생.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 단단히 먹어요. 길게 보면 결국 공평한 게 시간이고, 힘들어도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게 인생이에요. 모쪼록 힘내요, 알았죠?

여옥은 빙긋이 웃으며 시아의 어깨를 다독이더니 이내 경찰서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참 뜻깊은 만남이랄까. 시아는 여옥의 응원을 받으며 바닥을 쳤던 자존감이 조금씩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