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 번째 스캔들

1월 1일.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고 누가 그래?

“신성한 새해 첫날부터 사고를 쳐?”

비좁은 다용도실 안에 쭈그리고 앉은 보은은 물건을 헤집으며 욕설을 입에 담았다.

“딸, 새해 아침부터 거기서 뭐 해? 밥 먹어야지.”

아침 식사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동길이 찾아 나선 것이다.

“아빠, 우리 집에 삽 없어? 작은 거 말고 큰 거로.”

“삽은 왜?”

“으응, 틀이 그 자식 묻어버리려고.”

식탁 위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떡국이 차려지고 있었으나, 보은은 누군가의 명을 단축할 연장을 찾고 있었다.

“광숙아, 이리 와서 딸 좀 말려 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동길은 급하게 주방에 있는 아내를 불렀다.

“무슨 일인데 새해부터 호들갑이야?”

마음이 조급한 남편과는 달리 광숙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느긋하게 걸어왔다.

“틀이 녀석 또 사고 쳤나 봐.”

“난 또 뭐라고. 걔 그러는 거 어디 하루 이틀이야?”

광숙이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동길은 미간을 좁히며 말을 받았다.

“얘 좀 봐. 그 녀석 묻겠다고 삽 찾고 있다니까?”

“그냥 둬. 설마 진짜로 그러기야 하겠어?”

“한다면 하는 애인 거 몰라서 그래? 하여간 당신 닮아서 성깔이 보통이 아니라니까.”

뒷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여보, 틀이 옆에 나란히 묻히고 싶어?”

아내의 날 선 눈빛이 날아왔다. 동길은 깨갱 하며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뒤이어 서늘한 기운을 내뿜으며 보은이 몸을 일으켰다. 손에는 큰 삽 대신 찾은, 작은 모종삽이 들려 있었다.

“엄마, 아빠는 딸 사랑하지?”

낮게 가라앉은 딸의 음성에 동길과 광숙은 불안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안심한 얼굴로 보은이 부탁했다.

“그럼 딸이 오늘 범죄를 저질러도 신고하지 말아 줘.”

말을 마친 보은이 현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딸, 가더라도 밥은 먹고 가.”

“그게 무슨 소리야. 못 가게 말려야지!”

태연하게 반응하는 아내와 달리 동길은 안절부절못했다.

“좀 늦을 거예요. 이걸로 파묻으려면 시간 좀 걸릴 테니까.”

보은이 모종삽을 들어 올리며 싱긋 웃었다. 이대로 보냈다간 그 녀석 뼈도 못 추릴 텐데. 동틀이 걱정된 동길은 재빨리 딸의 팔을 붙들었다.

“딸, 진정하고 무슨 일인지 말 좀 해봐.”

“아빠, 글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남친이 생겼다네?”

“뭐어? 설마, 그럼 또…….”

“그러니까 그 남친이라는 놈한테 내 남친이 된 대가를 치르게 해야겠지?”

한쪽 입꼬리를 씩 말아 올린 보은은 동길의 손을 뿌리치고서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남의 집 귀한 아들을 내 딸 손에 죽게 둘 순 없지.”

동길은 다급하게 동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이른 아침부터 이어지는 기자들의 연락 때문인지 동틀은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메시지를 남겼다.

[긴급! 보은이 연장 들고 나갔다. 피해라.]

***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화보 촬영 준비로 스튜디오에 있던 모든 이들의 눈꺼풀은 하나같이 반쯤 감긴 상태였다. 하지만 준비를 마친 동틀이 카메라 앞으로 걸어 나오자 일순간 사람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사람이야, 조각이야?”

“그러게, 신이 참 정성스럽게도 빚었네.”

검은색 슬렉스에 심플한 화이트 셔츠가 전부였지만 온몸을 금으로 장식한 것처럼 영롱하기 그지없었다.

“작가님, 시작하시죠.”

“아, 네. 시작합시다.”

넋을 놓던 사진작가가 동틀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촬영이 시작되자 동틀은 아이처럼 방긋거리던 미소를 지우고 금세 몰입했다. 순수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눈빛. 옷으로도 가리지 못한 드넓은 어깨. 게다가 풀어헤친 셔츠 사이로 은근하게 드러나는 근육까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냈다.

“어쩜 B 컷이 하나도 없네. 촬영보다 A 컷 고르는 게 더 오래 걸리겠어요.”

“과찬이십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진작가에게 동틀은 적당히 수줍은 미소를 건넸다.

만족스러운 첫 촬영이 끝나고 동틀은 곧장 두 번째 의상으로 갈아입었다. 이번에는 부드러운 니트 차림의 가벼운 의상이었다. 콘셉트에 맞게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손질에 들어갔다.

“후, 후.”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동틀의 얼굴에 손을 대기에 앞서 고개를 돌린 채 크게 숨을 내쉬었다.

“아까도 그러시더니 혹시 몸이 안 좋으신가요?”

동틀은 걱정 어린 눈망울을 반짝이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 아뇨. 배우님 뵙는 게 처음이라 너무 긴장돼서……. 제가 배우님 메이크업해드리는 게 소원이었거든요.”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동틀은 싱긋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소원 이루어드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때, 매니저인 정배가 머뭇거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기, 형.”

손에 휴대폰을 꼭 쥐고 다가온 정배는 울상이 된 얼굴로 안절부절못했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니 무슨 사달이 난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이야?”

둘만 있는 공간이었다면 호들갑을 떨며 물었겠지만 여러 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촬영장이라 동틀은 애써 태연하게 굴었다. 하지만 정배는 곧 울음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큰일 났어요.”

정배가 들고 있던 휴대폰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동틀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양해를 구한 뒤, 휴대폰을 받아 들어 액정 화면에 띄워진 기사를 확인했다. 헤드라인이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국민 남친의 비밀 데이트]

“국민 남친이라면…….”

‘너지, 인마!’ 하는 표정으로 정배가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상대는…….”

네가 생각하는 게 맞는다며 정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동틀은 눈앞이 캄캄했다. 단순히 스캔들이 터져서가 아니다. 주보은, 그녀가 두려워서였다.

“정배야, 내 핸드폰 어디 있어?”

“안 보는 게 좋으실 텐데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정배는 냉큼 동틀의 휴대폰을 찾아 건넸다. 수십 통의 전화와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중에는 동길이 보낸 메시지도 있었다.

“이런.”

스태프들이 보는 앞이라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건만 그 메시지를 보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져 동틀은 그만 몸을 움찔거리고 말았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살폈다.

“괜찮으세요?”

“아……, 괜찮습니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억지로 끌어올린 입꼬리가 파르르 떨릴 정도였다. 이 난관을 어찌 극복해야 한단 말인가. 벌써 세 번째 스캔들이라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이럴 때 필요한 사람은?

“정배야, 대표님 어디 계셔? 얼른 연락해.”

“날 찾니?”

묵직한 목소리가 스튜디오의 공기를 갈랐다. 고개를 돌리자 소속사 대표인 골아풍이 무서운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대표님!”

아풍을 발견한 정배가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스캔들이 날 동안 무얼 했냐며 한 소리 들을 게 뻔하기에 정배는 대표의 등장이 썩 달갑지 않았다.

“우리 동 배우랑 잠시 얘기 좀 하고 싶은데, 자리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아풍이 동틀과 같은 자리에 있던 스태프들에게 정중히 부탁했다. 스태프들은 서둘러 자리를 비켜주었다. 동틀은 가지 말라며 애절한 눈빛을 쏘았으나 모두 소용없는 일이었다. 머지않아 대기실에는 세 사람만 남겨졌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앙칼진 희빈마마처럼 아풍은 눈에서 독기를 뿜어냈다.

“친구랑 밥 한 끼 먹은 게 죄는 아니잖아요.”

“그 친구랑 세 번이나 스캔들이 났다는 건 죄일지도 모르지.”

“그건…….”

“이 화상아!”

순간, 동틀의 등에 매서운 손바닥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동틀은 몸을 비비 꼬며 소리쳤다.

“앗! 아파요, 대표님!”

“아프냐? 난 속이 아주 문드러진다!”

아풍은 제 가슴을 퍽퍽 내려쳤다.

“내가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었냐? 그래서 지금 네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는 거야? 어? 그래?”

“아아, 대표니임.”

화보를 찍을 때 보이던 관능적인 눈빛은 어느새 시골 똥강아지처럼 순진하게 변해 있었다. 그 눈을 보고 있자니 아풍은 더 화가 치밀었다.

“내가 또 속을 줄 알아? 어휴, 골치야, 골치. 내가 왜 이런 걸 회사에 들여가지고.”

아풍은 벗겨져 가는 머리를 소중히 다뤄도 모자랄 판에 저도 모르게 한 움큼이나 움켜쥐었다. 머리숱이 풍성한 동틀은 탈모인을 상대로 스트레스가 쌓일만한 말만 골라서 했다.

“대표님!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서운하죠. 이 ‘빛도사’ 키운 거 내 공이 절반 이상은 될 텐데?”

기획사 이름이 문제였나? 빛의 전도사를 줄인 ‘빛도사’. 소속 연기자들을 빛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다는 취지로 지은 것인데 안내는 개뿔, 멱살 잡고 끌고 가야 할 판국이니.

“알지, 알고말고. 그러니까 내가 이 화상을 못 내치고 데리고 있는 거 아냐!”

“그러지 말고 어떻게 좀 해 주세요. 뽀니 만나면 저 죽어요.”

“넌 기자들보다 보은이가 더 무섭냐?”

“당연하죠! 기자들은 말로 죽이지만 우리 뽀니는 주먹을 쓰잖아요. 가끔 발길질도 하고요. 맞다. 오늘은 연장까지 들었다던데, 저 이러다 땅에 묻히는 건 아니겠죠?”

동틀이 미간을 좁히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보은이가 묻기 전에 내가 먼저 묻어줄까?”

“대표니임.”

비아냥대는 아풍의 말에 동틀이 시무룩 입술을 내밀었다.

분노마저 사그라뜨리는 얼굴이 있다면 바로 이런 얼굴을 보고 하는 소리겠지.

아풍은 순간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몰려왔다. 고개를 내저어 정신을 차리고서 동틀을 다그쳤다.

“솔직히 말해. 너희들 진짜 사귀는 건 아니지?”

“그럼 얼마나 좋겠어요.”

“안 돼! 너 이번에 모태 솔로인 주인공 맡았잖아. 감독이 너 모솔이래서 캐스팅한 거 몰라서 그래?”

“아니, 그게 뭐 자랑이라고. 스물일곱이나 먹었는데 모솔인 게 말이 돼요? 사람들 너무 이기적이야. 자기들은 여친, 남친 잘만 만들고 결혼도 하고 애도 숭숭 잘만 낳으면서 난 여자 만나면 안 된대. 내가 사이보그도 아니고 이거 너무한 거 아니에요?”

동틀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 말 그대로 감독님한테 전할까? 아니다. 이참에 연애하고 싶다고 아예 광고하지 그래?”

“마음 같아서는…….”

“이 자식이!”

정말 광고라도 하겠다는 건가?

아풍은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인 제 입을 나무라며 소리쳤다. 고막을 강타하는 소리에 동틀은 재빨리 입술을 말아 물었다.

“그래서, 너 이제 어떡할 거야?”

“어떡하긴요. 아니니까 아니라고 하면 되죠.”

“벌써 세 번째 스캔들인데 사람들이 믿어주겠냐?”

“그럼 이참에 진짜로 사귈까요? 어차피 다들 믿는 눈치니까 깔끔하게 인정하는 게…….”

이걸 죽여? 말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풍은 동틀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잡고 싶어서 잡은 건 아니다. 차마 때릴 수는 없으니 멱살이라도 쥐고 흔들어야 분을 삭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게 진짜! 한 기자가 보내온 사진 보니까 보은이 쪽도 붙은 거 같던데, 너 어떡할 거야?”

“뭐라고요? 한 기자 이 자식을 그냥!”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동틀이 콧구멍으로 황소 같은 바람을 씩씩 내뿜었다. 아풍은 멱살을 쥐던 손에 힘을 풀었다.

“그러니까 잘 좀 하자. 너 보은이 언론에 드러나는 거 싫어하잖아.”

“제가 싫어하나요? 뽀니가 싫어하니까 그렇지.”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연기 천재 아역 배우 주보은.

‘국민의 딸’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정도로 유명했던 그 아이는 20년 전 벌어진 사건 이후 배우를 포기하고 현재는 작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 반면, 보은을 대신해 배우의 길을 선택한 동틀은 유명해지다 못해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까지 떠돌 정도로 톱스타가 되었다.

그런 동틀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조용한 삶을 꿈꾸는 보은을 위해 20년째 고백을 못 하고 있는 것.

그것은 차마 말할 수 없는 그날의 비밀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티를 내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년째 좋아 죽겠다고 티라는 티는 다 내고 있었다. 이미 주위 사람들 중에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정도였지만 정작 당사자인 보은은 동틀이 20년째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 늘 아슬아슬한 경계에 놓여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그 선을 넘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찍힌 사진들이 다 이 모양이라 부정하면 그만이긴 한데, 그렇다고 공개하기도 좀…….”

아풍은 들고 온 서류 봉투 안에서 꺼낸 사진들을 대기실 테이블 위에 던지듯 펼쳐 놓았다.

“도대체 무슨 사진인데 그래요?”

동틀이 그것들을 집어 눈앞에 들어 올렸다.

“헐.”

멱살잡이, 삿대질, 심지어 발차기까지. 그것도 일방적으로 동틀이 당하는 쪽이었다.

“이게 뭐야.”

동틀은 단단히 실망한 눈치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그가 아니다.

“좀 달달하고 스킨십도 있는, 그런 건 없어요? 우리 이래 봬도 피부도 좀 닿고 그러는 사이인데 이거 너무하네.”

“스킨십? 왜 없겠냐? 있지. 자.”

아풍은 테이블 한 귀퉁이에 있던 사진을 집어 동틀에게 건넸다.

음흉하게 입꼬리를 둥글리며 동틀은 잔뜩 기대에 찬 눈빛을 반짝였다. 보은과 있으면서 뭘 했는지 본인이 더 잘 알 텐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이게 뭐예요!”

사진을 확인한 동틀이 소리를 내지르며 손에 든 사진을 패대기쳤다. 스킨십……이 맞긴 맞다. 어쨌든 어딘가 닿고 있긴 하니까.

사진 속 동틀은 제 덩치의 반만 한 보은에게 헤드록이 걸린 채 낑낑거리고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이라 사진이 찍히던 날도 그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왕 찍을 거 좀 달달하게 찍어주면 어디가 덧나나.”

“흠, 우리 톱스타 씨께서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지금 어떻게 찍혔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찍힌 거 자체가 문제인 거거든!”

아풍은 굵직하게 쌍꺼풀진 눈을 사납게 부라렸다. 그 모습을 본 동틀은 자세를 낮췄다.

“어쨌든 죄송해요.”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제 마음 잘 아시면서.”

입꼬리를 둥글린 동틀이 찡긋 윙크했다.

어이쿠, 골아! 이러려고 선친께서 내 이름을 골아풍으로 지은 건가. 쓸데없는 선견지명 같으니. 아풍은 당장이라도 그의 머리를 콕 쥐어박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암튼 회사 식구들 다 머리 맞대고 대책 마련할 테니까 넌 이거 끝나면 집에 가서 가만히 있어. 쓸데없이 나다니지 말고.”

“알았어요. 이번 드라마 촬영 전까진 집에 콕 틀어박혀 있을게요.”

집에 틀어박혀서 우리 뽀니랑 대본 연습이나 해야지, 라고 생각할 게 뻔했다.

“그래, 제발 좀. 그리고 너, 연기 연습한답시고 보은이 불러들이면 안 돼. 기자들한테 또 걸리면 끝이다.”

아풍은 속을 꿰뚫어 보듯 말했다. 18년 동안 열여덟 숫자를 죽어라 외쳐대며 관리해 온 소속 연기자의 속셈을 대표가 모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