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트라우마를 이긴 노래

오늘따라 편의점에 손님이 없었다. 경우는 편의점에 진열된 이어폰 하나를 들고 왔다. 바코드를 입력한 뒤, 체크 카드로 계산을 해 넣었다. 휴대폰으로 헤비메탈 음악을 검색했다. 이어폰을 연결하고 귀에 꽂았다. 시끄러운 생각들을 덮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진별중학교 2학년일 때부터 경우 씨를 알았어요. 그때 경우 씨의 노래를 들었어요.”-

한영이 했던 말이 왕왕 울리는 노랫소리를 뚫고 다시금 경우의 귓가에 맴돌았다. 경우는 볼륨을 더욱 높였다.

-“졸업하고 나서 한동안은 들을 수 없었죠. 학교 음악실이 아니고서는 들을 수 있는 곳이 없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가깝게 지내던 아저씨가 결혼을 했어요. 예쁜 아내에게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들어보겠냐고 했어요. 처음엔 거절했어요. 노래를 감상할 만큼 내 인생이… 여유롭지 못했거든요.”-

경우는 볼륨을 한 단계 더 높인 뒤, 아는 멜로디를 따라 머리를 끄떡였다.

-“……아저씨는 경우 씨의 노래를 들려주었어요. 이명이 왔을 때 경우 씨의 노래를 들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경우 씨도 잘 알고 있는 바예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노래는 여유를 부리기 위해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들을 수도 있다는 것을.”-

경우는 음악을 껐다. 이어폰을 빼고서 신경질적으로 던져 버렸다. 한영의 이야기, 한영의 목소리, 한영의 웃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우, 씨! 제발, 쫌! 사라져라, 기억아!”

경우는 아무도 없는 편의점에서 홀로 쇳소리를 내질렀다. 세진을 잊었던 것처럼 한영을 잊고 싶었다. 무슨 의도로 자신에게 접근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녀가 기억을 잃은 것처럼 자신을 속인 것이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우는 환하게 웃는 그녀가 너무도 보고 싶었다. 그렇다는 사실 때문에 심한 자괴감에 빠졌다. 그렇게 삭제하고 싶은 기억이 경우를 괴롭히는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혜미였다.

“이 시간에 웬일이야? 지금 수업 시간 아니야?”

경우는 최대한 삼촌다운 어투를 유지하며 물었다.

<“삼촌! 뉴스 봤어? 영솔 오빠가 죽었대. 어떡해?”>

경우의 이맛살이 놀라움으로 들렸다. 영솔 오빠… 라면 오렌지 스타의 리더였던 차영솔?

<“나 이제 공부 안 할 거야! 공부할 의미가 없어졌어!”>

혜미의 울음 섞인 말이 들렸다. 경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엉뚱한 소리 하지 말고, 우선 끊어 봐. 허위 기사일 수도 있잖아. 삼촌이 한 번 알아볼게.”

경우는 혜미를 달랜 뒤, 웹 기사를 검색했다. 오렌지 스타의 차영솔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 있었다. 경우는 영상 뉴스를 실행시켰다.

[속보입니다. 이게 무슨 일일까요? 수년 전 그룹 ‘오렌지 스타’의 리더로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차영솔 씨, 1집 솔로 앨범을 성공적으로 발매하고 직접 작곡한 노래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가수 차영솔 씨가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고 하네요. 아… 차영솔 씨의 마약 투여 장면을 목격한 ‘매그파이 하우스’ 클럽 직원의 신고로 시작된 수사 과정에서 대중의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는데요. 그 비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더 자세한 경위는 지금 조사 중이라고 하는데요. 아까운 목숨 하나가 사라지고 말았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경우는 짜증스럽게 숨을 뱉었다. 하필이면 자살. 혜미가 받을 영향이 좋지 않을 것 같아 짜증이 솟아올랐다. 자신의 뒷모습을 보며 꿈을 꾸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그는 몰랐던 걸까? 올바르게 살지 못하면 바라보는 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거라는 생각은 못 한 것일까? 경우가 머리카락을 털며 웹기사를 살피는 동안, 벨이 다시 울렸다.

“네.”

반갑지 않은 우진의 전화였다. 경우는 어제 그의 할머니에게 연락도 없이 가지 않은 것에 대해 그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가 아니라면 강우진 그가 자신에게 전화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성의 없이 받은 전화였다.

<“고경우! 당장 와! 어서!”>

경우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예상치 않은 우진의 고함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기가 어디길래….”

<“여기 요망이야. 김한영이 아파. 지난번과 똑같아. 어서 와. 빨리!”>

경우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요망? 김한영? 지난번과 똑같은… 경우의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명이 시작됐습니까?”

<“그래, 인마. 묻지 말고 당장 튀어 오라고!”>

우진의 다급한 목소리만큼 경우의 심장이 정신없이 날뛰기 시작했다.

“한영이 가방에서 mp3 찾으세요. 그게 가장 빨라요!”

<“이 새끼야! 그거 없어! 그러니까 네가 와야 해.”>

경우는 어리둥절했다. 늘 가방에 넣고 다니던 mp3가 왜 없다는 걸까?

“그게 없을 리가 없는데….”

<“내가 망가뜨렸어. 네가 보호자 운운하던 그때 흘리고 간 걸 내가 망가뜨렸다고! 김한영, 김한영, 정신 차려!”>

우진의 전화가 뚝 하고 끊겼다. 경우는 마른침을 꿀꺽 삼킨 뒤, 한영의 휴대폰 위치를 추적했다. 휴대폰의 위치는 집이었다. 경우는 전화를 걸었다. 강우진이 쇼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확인이 필요했다. 정말로 김한영이 그와 함께 있는 건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자의 목소리.

“너 지금 어디야?”

경우는 다짜고짜 물었다.

<“경우니?”>

익숙한 목소리.

“누나가 왜 전화를 받아?”

<“휴… 폰을 여기다가 두고 나갔네. 근데 너 아직도 그 애한테 미련이 남아서 전화를 건 거야? 너 정말….”>

경우는 진경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서둘러 편의점을 나섰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제기랄!’

갈 곳이 얼마나 없었으면 고작 거기에 가 있는 건지, 경우는 속상했다. 기억 잃은 것도 아니라면서, 갈 곳 얼마든지 있을 거면서! 무엇보다도 이명을 잠재울 아무런 대책도 없는 그녀에게 나가라고 말한 자신이 싫었다. 더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 다리가 너무 답답했다.

*

우진은 한영을 등에 업었다. 원석이 이끄는 대로 휴게 공간으로 그녀를 옮겼다. 손님이 들이닥칠 시간이기도 했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그녀를 맨바닥에 둘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원석아, 물수건 좀 가져와.”

“어? 어, 그래.”

물수건을 가지러 가던 원석이 다시 돌아섰다.

“근데, 우진아. 구급차를 불러야 하는 거 아닐까? 이러다 사람 잡겠어.”

그러나 우진은 꿈쩍하지 않았다. 구급차보다 더 필요한 게 뭔지 알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기다려요. 경우가 오고 있으니까.”

우진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가쁜 숨을 겨우 내쉬고 있는 한영에게 말했다. 한영은 굉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여기.”

원석이 서둘러 가져온 물수건으로 우진은 한영의 이마를 닦아 주었다. 이미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기에 이마의 땀을 닦아주는 것이 큰 의미는 없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것 말고는.

“여기예요.”

경우가 도착했다. 경우를 한영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며 원석이 설명을 덧붙였다.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셔서 그런가 갑자기 온몸이 고꾸라지더라고요.”

경우는 그가 안내하는 대로 가게 뒤의 공간으로 갔다. 아늑한 소파가 3개의 벽면에 가득 놓인 곳에 한영이 누워 있었다. 아니 누웠다기보다 동그랗게 말린 몸을 기대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그 옆을 우진이 지키고 있었다.

“고경우, 어서!”

우진이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그러나 경우는 선뜻 한영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어서 노래를 불러!”

우진이 답답한 마음으로 소리쳤다. 경우는 빠르게 고인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노래… 할 수 있을까?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난 노래하는 법을 잊어버렸어. 노래를 못해. 할 수 없어….

“이 여자 괴로워하는 거 안 보여? 노래하라고, 인마!”

우진도 울상이 되어 마구 외쳐댔다. 세진을 추모하는 공연에서 그는 말했었다. 세진이 죽던 날, 자신도 다쳐서 노래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그게 한영이 보는 앞에서 세진을 위한 노래를 하지 않으려는 꼼수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정말로 노래할 수 없는 상태라면… 우진은 등줄기가 오싹함을 느꼈다. 이 여자를 위한 노래를 자신이 없애버린 거다. 노래를 잃어버린 보컬의 마지막 소리를 자신이 없애버린 거다.

경우의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어찌할 바를 몰라 입안이 바싹 말랐다. 그런 그를 보며 입안이 마르기는 우진과 원석도 마찬가지였다.

털썩!

이리저리 뒹굴던 한영이 소파 밑으로 떨어졌다. 깜짝 놀란 우진과 원석이 떨어진 한영을 일으켜 세웠다.

“우진아, 지금이라도 구급차 부르자! 이러다 정말 이 여자 죽겠다, 응?”

원석이 두려움에 떨며 우진에게 애원했다.

“그냥 눈을 감고 걸어….”

우진과 원석의 시선이 경우에게로 쏠렸다. 서둘러 다가간 경우가 동그랗게 말린 그녀의 몸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한 손으로 그녀의 등을 안고 한 손으로는 그녀의 뒷머리를 안았다. 그리고 노래를 시작하고 있었다.

“출구에 다다르면 눈두덩이가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때 천천히 눈을 뜨면 돼. 강한 빛에 눈물이 날 수도 있으니까….”

강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잔잔하게 읊조리듯 부르는 노래였다.

“휴….”

우진은 안도의 숨을 뱉어냈다. 그러나 한영의 고통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며 원석은 미심쩍었다. 정말로 저 노래가 구급차보다 나은 게 맞을까?

“천천히 눈을 떠. 그리고 마음껏 누려. 그 따스함을 온몸으로 받아 누려. 출구 없는 터널은 없어. 아직 보이지 않을 뿐….”

우진은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는 한영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제야 원석도 신기한 듯 한영을 바라보았다. 멈추지 않을 것 같던 고통의 몸부림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가는 동안 어둠이 불안하면 내 손을 잡아. 내가 너와 함께 갈게. 무서워하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노래가 끝날 즈음에 질끈 감겼던 한영의 두 눈이 힘없이 열리고 있었다. 우진은 원석의 팔을 붙잡고 문밖으로 이끌었다. 원석이 의아한 얼굴로 우진을 따랐다.

“경우 씨….”

“그래.”

“아빠가… 또 사람을 죽게 했나 봐요.”

이명이 멈춘 한영이 이번에는 울음을 터뜨렸다. 경우의 눈썹이 기울어졌다. 슬픔에 빠져 몸 둘 바를 모르는 한영을 안으며 경우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아빠… 까치집 엔터의 이태호 대표를 말하는 걸까? 그가 사람을 죽게 했다는 말인가? ‘또’라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말인가?

한영은 아까 들었던 옆 테이블의 대화를 다시 떠올렸다. 알렉스의 노래를 다 듣고 다른 노래를 찾는 중에 들린 이야기였다.

-“웬일이야? 차영솔이 죽었대.”-

-“뭐? 아니, 잘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왜?”-

-“매그파이 하우스에서 발견이 됐다는데?”-

-“뭐야? 걔는 왜 자꾸 거기에 가는 거래? 지난번에는 거기서 마약하고 화장실에서 정신 잃은 채로 발견됐었다며.”-

-“응, 맞아. 이번에 히트 친 노래가 마약한 상태에서 만들어졌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래서 ‘마약 노래’라고 부르면서 비난하는 안티가 진짜 많아졌잖아.”-

-“그래서 자살을 했나?”-

-“아유, 끔찍해. 그 클럽은 뭔 죄니? 재수 없다고 손님 딱 끊기겠다.”-

-“야, 그러고 보니 매그파이 하우스, ‘까치집’이라는 뜻 아니야? 차영솔 원래 소속사 이름하고 똑같잖아.”-

-“어, 그러네! 진짜 까치집 엔터는 골치 아프겠다. 독립한답시고 나와서 차영솔이 그 기획사 이미지를 얼마나 망가뜨렸니? 보육원 같은 여러 시설에 후원 잘하기로 유명한 회산데, 그동안 쌓아놓은 이미지가 많이 무너졌잖아. 아무것도 아닌 애들 데려다가 입혀주고 광내주고 했더니 결국은 이미지만 망가뜨리고. 정말 배신감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어.”-

-“내 말이!”-

한영은 경우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 경우는 그녀의 눈물을 벌써 몇 번째 보는 건지 모르겠다. 도대체 그녀에게 있는 아픔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경우는 너무도 그리웠다. 그녀의 웃는 모습이.

“우선 나가자.”

한영의 울음이 잠잠해졌을 때 경우가 말했다. 한영이 머뭇거렸다. 나가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모텔로 가자. 처음에 우리가 들어갔던 거기.”

한영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참, 그곳이 있었네.’

갈 곳이 있다는 게 이렇게 마음이 놓이는 일이었다니! 새삼 깨달으며 한영은 슬픔 속에서도 작게나마 미소 지을 수 있었다.

**

성현은 초조함에 떨리는 두 손을 마주 잡고 비벼댔다. 모니터에 뜬 인터넷 기사를 보며 성현의 아래턱이 자꾸만 떨렸다.

-“…집으로 돌아가면 내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태호가 했던 말이 실감이 났다. 차영솔이 죽었다. 그가 말한 의지라는 것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사람의 목숨 따위는 얼마든지 해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성현은 두 손가락으로 양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이게 무슨 냄새야? 발냄새 아니야? 아니, 백 팀장, 어제 마누라랑 같이 있었던 거 아니었어? 왜 어제랑 옷이 똑같아?”

옆자리에 앉은 차 과장이 미간을 일그러뜨리는 동시에 손가락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속삭이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다른 자리에 있던 직원들도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채고 의아한 마음으로 성현을 힐끔거렸다. 옷차림이 바뀌지 않은 것도 의아했지만, 얼굴에 묻은 그을음이며 옷 여기저기에 묻은 흙먼지가 이상했다.

성현은 여전히 고민에 빠져 있었다. 지은의 폴더 폰 번호가 떠 있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가능성을 가늠하기 시작했다. 태호의 뜻대로 지은이를 돌려놓는다면? 지은은 분명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자신 때문에 누군가 피해 입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아이니까. 하지만 만일 그렇게 상황이 돌아간다면 그 아이는 벗어나기 위해 애썼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그야말로 모든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해결되지 않는 마음의 병을 안고서 평생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