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와. 여긴  다 크구나….”

 깡촌 마을에서 검정고시로 대학을 온 자윤은 새벽부터 챙기느라 일찍 일어났다. 그럼에도 설레는 마음 때문인지 피곤한 기색이 일절 없었다.

통학으로 학교까지 2시간 남짓 되는 거리였다.

중학교 이후로 가방을 맨 적이 처음인 만큼 가방 끈을 꼭 움켜쥔 자윤의 손에 긴장감이 서려있었다.

 다시 학교를 다닌다니….

기쁜 마음으로 한참 감성에 젖어 걷던 때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로부터 치였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앞으로 고꾸라질 뻔한 몸이 상대에게 잡혀 자윤은 어정쩡한 자세로 멈춘 채 벙쪘다.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튕겨 날아갔을 것이다.

“미안해요. 실수로.”

다시 들려오는 사과에 자윤은 정신을 붙잡고서 고갤 돌렸다. 그리고 저를 잡아준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제법 키가 큰 사람이어서 자윤의 눈이 얼굴을 찾아 점점 올라갔다.

낯선 사람…

자윤은 그 사람에게 잡힌 팔을 느릿하게 비틀어 빼내었다.

“괜찮아요….”

자윤이 맞추던 눈을 옆으로 틀며 옹알이하듯 말했다.

“야, 송강현!”

아주 우렁찬 소리로 모든 이의 이목을 끌어당긴 목소리에 자윤의 시선도 그곳을 향했다.

“빨리와!”

나를 보고 손을 흔드는 듯한데.

자윤은 눈썹을 오므리며 건물 앞에 서있는 두 남자를 심오하게 쳐다봤다.

“어. 가!”

저와 부딪친 남자가 자윤 대신 대답을 해주기 전까지 말이다.

자윤은 앞에서 들리는 대답에 다시 강현이란 남자를 쳐다봤다. 그를 올려다보는 눈동자가 다소 소심했다.

“진짜 다친데 없죠?”

“네….”

“가볼게요.”

강현은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큰 손바닥을 올려 인사했다.

멀뚱히 서있던 자윤은 저만치 가버린 강현의 뒷모습만 보았다. 그는 곧 건물 입구에 있던 친구들을 만나 어깨동무를 했다.

그때 강현이 한 번 더 자윤 쪽을 돌아봤다.

황급히 그 시선을 피한 자윤은 뻘쭘함에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다 주변을 눈치 봤다. 그리고 강현이 건물 안으로 자취를 감췄을 때야 가방을 고쳐 매고 뒤늦게 걸음을 움직였다.

 첫 개강일 아침 10시. 전공이 먼저였다.

자윤은 떨리는 마음을 두 손으로 안고서 무거워 보이는 강의실 문을 천천히 밀었다.

그야말로 안은 왁자지껄 이었다. 입학 전부터 오티로든 메신저로든 벌써 친해진 아이들이 두루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얼굴엔 아직도 어린 티가 역력히 묻어있었다. 나름 꾸미고 온 차림새에서도 새 옷 냄새가 가득했다.

“너 진짜 피부 좋은 거 같아. 따로 관리해?”

“에이 무슨. 여드름 나서 요즘 스트레스야. 여기랑 여기.”

자윤은 안면 튼 사이니 조금 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던 그들이 은근 부러웠다. 저 예쁜 여학생들처럼 화장을 한 것도 아니고 새 옷을 입은 것도 아니어서 후드 옷자락을 괜히 매만졌다.

집과 거리가 먼 자윤은 오티에 참여할 기회가 없었다. 저들과 달리 지금만큼은 친구 없이 혼자였다. 어쩌면 동기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는 것도 오늘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편입생 둘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가 수다삼매경이었다.

 하지만 자윤은 괜찮았다. 다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냥 기뻤다. 책상에 앉아만 있어도 너무 설레었다. 이거면 충분했기에 혼자인 것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자윤은 가방을 움켜 메고서 여럿 학생들 틈을 지나 앞자리로 향했다. 

“뒤에 창문 좀 열어줄래?”

얼마 후, 교수님이 들어오시고 창가 쪽에 앉은 학생들에게 지시했다.

선생님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에 다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교수님의 말 한마디에 모두의 눈이 창가 쪽으로 향할 만큼 귀를 쫑긋 세우고 있기도 하였다.

자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앉은 이후 한 번도 돌아보지 않던 얼굴을 돌렸다.

어…?

저 사람은….

자윤의 눈이 동그래지고 그 눈동자가 한 곳에 고정되었다.

“…….”

“…….”

그때 시선이 제대로 맞닿았다.

깜짝 놀란 자윤은 고개를 홱 앞으로 돌려버렸다.

‘야, 송강현!’

아까 나랑 부딪친 사람이었다.

동기였구나.

전공 수업 두 시간이 흐르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다들 학교 주변 맛 집을 검색하느라 바빠 보였다.

배고팠던 자윤도 점심 생각에 잠겼다. 친구 할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어디서 먹을 것인지 머릿속으로 물색했다.

 아까 보니까 엘리베이터 옆에 유리문 있었어.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강의실을 나온 자윤은 그 쪽으로 걸어갔다. 다행히도 바깥으로 나가는 문 하나가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몸으로 유리문을 밀고 나가 자리를 둘러보았다. 소수의 학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유리문 옆으로 세워진 자판기 앞에도 서너 명이 담배를 피우면서 서있었다.

“콜록!”

담배 네 개비가 동시에 태워지고 있다 보니 연기가 꽤 많이 몰아쳤다. 자윤은 대놓고 기침이 나오자 놀라서 입을 막았다.

 “아. 미안.”

 자윤을 본 학생 한명이 급하게 담배를 숨기며 사과했다. 처음으로 얼굴을 익힌 동기, 아침에 봤던 송강현이었다.

…담배피네.

강현을 따라 옆에 있던 다른 친구들도 머쓱하게 손을 내렸다. 강의실 분위기를 밝혔던 수찬도 서있었다. 방해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다들 허둥지둥하자 자윤은 괜스레 미안해졌다.

 “괜찮아요….”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연기 때문에 찌푸려진 눈가가 펴지질 않았다. 얼굴 앞을 후드득 젓다가 꾸벅 인사를 한 뒤 급하게 걸음을 뗐다. 

“우리가 선밴 줄 아나봐.”

수찬이 나름 작은 소리로 쿡쿡대며 웃었다.

“재밌냐.”

그러자 강현이 정색하며 나무랐다.

뒤에서 숙덕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자윤은 자판기 앞을 벗어나는 것이 더 급했다. 담배연기 때문이었다. 자판기로부터 가장 먼 테이블로 오니 공기가 상반되게 맑은 느낌이었다. 

“후우-”

자윤은 참았던 숨을 뱉으며 심호흡을 했다.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도시락을 테이블 위로 올렸다. 직사광선을 막아주는 머리 위 덩굴 덕에 온도와 빛이 적당히 내려앉아 포근했다. 참 기분 좋은 날씨였다. 잠깐 맑은 하늘을 올려다본 자윤은 절로 웃음이 났다. 집에서 보던 하늘과 같은 하늘이겠다만 느껴지는 기분은 많이 달랐다.

 매일 보던 하늘이었는데 오늘따라 처음인 것처럼 설레는 느낌이랄까.

 좋은 기분을 한가득 안은 채 비닐 안에 넣어온 도시락 통을 꺼냈다.

“안녕?”

“네…?”

다음 강의를 준비하며 앉아있는데 누가 자윤에게 말을 걸어왔다.

자윤은 놀라 움찔하며 옆을 올려다봤다.

“왜 존댓말 해.”

예쁘장하게 생긴 여학생이었다. 자윤이 존댓말을 한 것에 웃음이 터진 그녀는 장난스러운 얼굴로 서있었다.

“미안….”

“뭐가 미안해.”

그녀는 여전히 웃으면서 자윤의 어깨로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곧 옆자리로 엉덩일 붙여 앉았다.

“이름이 뭐야?”

자윤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따라 한층 내려왔다. 자윤은 본인과 다르게 화장기 가득한 그녀의 얼굴이 신기하면서도 예쁘다고 생각했다.

“…유자윤.”

“자윤이?”

되묻는 그녀의 말에 자윤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차예지.”

예지….

이름도 예쁘다.

“너 오티 안 왔지?”

“응.”

“어쩐지 처음 보는 거 같더라.”

오티 안간 것 때문에 선뜻 누구에게 인사를 건네기가 낯설었는데 마치 그런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 같았다. 예지의 사소한 말이 자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지금 어색하겠다.”

“…괜찮아.”

예지가 잔잔한 미소를 보이며 자윤의 눈을 마주했다. 그녀의 볼이 봉긋 올라가고 양쪽 볼에 보조개가 깊게 파였다.

자윤은 예지를 다른 세계에서 온 아이처럼 보았다. 자신이 살고있는 동네에선 볼 수 없는 외모였기 때문이다. 예쁘기도 하면서 성격까지 좋고 착해보였으니 예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다른 게 아니고 혹시 책 몇 개 샀어?”

예지는 굉장히 초롱초롱한 눈을 가졌다. 눈매 주변으로 화려하게 색칠된 화장이 파릇한 예지의 인상에 더한 매력을 심어주었다. 눈동자 색깔도 참 특이했다.

회색인가?

자윤은 티비에서 본 연예인들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전공 책 다 샀어?”

“응.”

“잘됐다. 우리 제본 할까 하는데 마침 네가 책이 있더라고.”

예지가 눈을 내려 책상 위에 놓여있는 책을 가리켰다.

제본…?

자윤에겐 살면서 들어볼 일이 없었던 단어라 어색하긴 했지만 대충 책을 복사한다는 말이라는 건 알아들었다.

“솔직히 전공 책이 좀 비싸? 받는 용돈은 적은데 책이 너무 비싸니까….”

예지의 기다란 속눈썹이 아래로 쳐지며 울상인 표정을 만들어냈다.

자윤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제본을 하려면 어떻게 해줘야하는지 몰라서 난처했다. 도와주고 싶은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말인데 수업 끝나고 책 좀 빌려줄 수 있어? 제본 다 되면 바로 갖다 줄게.”

“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당연하지. 설마 가질까봐?”

‘아 그거면 되는 거 였어…?’

자윤의 표정이 밝아졌다. 생각보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응! 알았어.”

“진짜? 진짜 빌려주는 거야?”

“응.”

“고마워 자윤아!”

예지가 두 손을 모으며 짝짝짝 박수를 쳤다. 립스틱 바른 새빨간 입술을 시원하게 늘이며 하얀 치아를 드러냈다. 덩달아 상대방까지 웃음 짓게 만드는 환한 얼굴이었다.

“자윤이 너 성격 엄청 좋아 보인다. 우리 친하게 지내자.”

예지는 다짜고짜 자윤의 손을 가져가 악수를 했다.

친하게…?

그럼 나도 벌써 친구가 생긴 걸까?

자윤은 번지는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나중에 봐. 수업 잘 듣고.”

밝게 손을 흔드는 예지를 향해 연신 끄덕였다. 자윤은 자리로 돌아가는 예지의 동선을 따라 쭉- 고개를 돌렸다. 예지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쳐다봤다.

예지는 곧 옆에 앉은 친구와 수다를 떨며 놀았다.

나도 나중엔 저렇게 떠들고 노는 친구들이 생기겠지.

공부만 해도 상관없었지만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자윤은 그 날이 기다려졌다. 다시 자세를 바로 하려는데, 창가 쪽에 앉은 남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송강현이었다.

“…….”

“…….”

강현은 옆으로 틀어 앉아 창가에 등을 기대고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긴 다리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올려져 있었다. 같이 앉은 친구는 뒷자리 친구들과 수다 중인데 강현만 가만히 자윤을 보고 있었다.

착각인가 싶어 자윤이 주변을 힐끗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이 뒤쪽으로 몰려 앉아 있었으니 눈길이 향한 곳은 자기가 맞을 것이다.

시선이 너무 뚜렷하게 본인을 향해 있어서 자윤은 점점 뻘쭘해졌다.

뭐지. 왜 보는 거지….

자윤은 그의 눈빛을 오래 마주하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급하게 자세를 바로 했다. 아직도 보고 있나 궁금했으나 그쪽으로 아예 돌아보지 못했다. 교수님이 오셔도, 강의가 시작되어도, 뒤에서 강의를 방해하는 잡음이 들려도, 절대 돌아보지 않았다.

“자윤아…?”

강의가 끝나자마자 자리를 정리하고 온 예지가 엎드려 자고 있는 자윤을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자윤은 부스스하게 몸을 일으켰다. 똑 단발인 머리칼이 볼에 걸려 간질거렸다. 힘 빠진 손으로 머리칼을 거둬내며 곁에 온 예지를 보았다. 무거운 눈꺼풀을 애써 들어올렸다.

“엄청 잘 자더라. 교수님이 불러도 모르고.”

웃음을 꾹 참고 있는 예지가 보였다. 옆으로는 예지랑 같이 앉았던 짝꿍도 서있었다.

교수님께서 날 부르셨다고?

예지의 발언에 자윤은 서서히 잠에서 깨어났다.

“끝나고 교수님이 너 한참 부르다가 가셨어. 한 네 다섯 번은 불렀나?”

교수님께서…?

자윤은 그제서야 스크린이 꺼져있단 걸 알아차렸다. 교수님이 계시던 전자교탁도 정리되어 있었다.

아아…. 안 되는데….

“그냥 깨우지 말라 시던데?”

예지 옆에 있던 친구 현숙이 쿡쿡거리며 말했다.

“오늘 전공 두개니까 책 두 권 있겠네?”

예지가 정신 못 차리는 자윤을 보며 먼저 말을 꺼냈다.

“어…. 잠깐만.”

자윤은 책 이야기를 듣자마자 뒤늦게 정신차리곤 급하게 가방으로 몸을 돌렸다. 학생들도 거의 다 강의실을 빠져나가고 없는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