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다음 주면 엠티를 간다. 각 조의 조장들이 메신저 방으로 조원들을 초대했다. 현재 오후 수업 강의실은 엠티 조 이야기로 산만하기 그지없었다. 생애 첫 엠티라 그런지 모두가 들뜬 마음으로 떠들어댔다.

“봤어? 나 강현이랑 같은 조야.”

예지가 신나하며 휴대폰을 들고 방방 뛰었다.

저렇게 좋을까.

잘된 것 같아서 자윤은 보는 내내 뿌듯해 했다. 그녀도 현숙과 함께 축하를 해주었다.

“나는 김수찬이랑 붙었어. 차라리 강민혁이면 좋겠는데. 유자윤 넌 민혁이랑 붙었지?”

“응. 너희들이랑 다 떨어져서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야….”

자윤이 휴대폰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진짜 다행이다….

“강현아…!”

그때 강의실 문 쪽을 보며 팔을 뻗는 예지를 보고서 자윤도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막 들어오는 강현과 수찬, 민혁이 있었다.

예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현에게로 쪼르르 뛰어갔다. 현숙도 뒤따라갔다.

나도 가야하나….

엉덩이만 달싹이다가 타이밍을 놓쳤다. 그냥 그들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눈으로만 쫓았다.

“자윤아.”

그러자 자리에 앉지 않고 가방 멘 채로 다가온 민혁이 자윤 앞에 섰다.

자윤의 고개가 조금 들렸다.

민혁이 비어있는 자윤의 옆자리에 앉으며 바깥 공기를 풍겨왔다.

“우리 엠티 같은 조던데. 봤어?”

“응.”

자윤은 번지는 미소를 숨기지 않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들이 오후에 시간 빼놓으래. 약속 없지?”

“응. 없어.”

“스카이라운지에서 모이는 건데 나중에 같이 가자.”

“알았어.”

자윤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민혁이 기분 좋게 웃으며 자윤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한번 쓸어내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윤은 민혁이 자리에 돌아갈 때까지 쳐다봤다.

수찬의 옆자리로 앉으려던 민혁이 현숙 때문에 강현의 옆자리로 가방을 내리는 걸 보았다. 수다삼매경에 빠진 친구들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리려는데 마지막으로 강현과 눈이 마주쳤다.

정말 찰나였다.

강현이 먼저 예지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바람에 어긋난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강현의 눈빛에서 딱딱함을 느꼈지만 예지를 보고 있는 얼굴은 참으로 부드러워서 되레 착각이었나, 생각하고 말아야했다. 자윤은 다시 자세를 바로 하고 필통에서 펜을 꺼내었다.

교양까지 끝내면 엠티 조원들을 만나기 위해 민혁에게 가야했다. 자윤은 막바지 수업을 위해 교양관으로 들어왔다. 수정기간에 교양을 수정했던 예지와 함께 말이다.

“강현이네.”

강의실에 들어가니 뒷자리로 앉은 강현을 예지가 먼저 발견했다.

강현도 들어오는 둘을 보았다.

자윤은 강현을 보고서 살짝 주춤거렸다. 이상하게도 강현의 기운이 서운함을 표출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도 모르게 긴장감이 발목을 턱 잡았다. 예지가 웃으면서 이끌어주지 않았다면 제자리에 두 발 붙인 채 꽤 서있었을 것이다. 얌전히 예지에게 이끌려 간 자윤은 강현과 점점 가까워졌다.

“일찍 왔네?”

자윤의 팔짱을 놓은 예지가 자연스레 강현의 곁으로 가 의자를 뺐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며 가방을 벗었다.

자윤은 혼자 멀뚱히 서있게 되자 안절부절못한 얼굴로 어버버 입을 떼었다.

“어…. 나는 앞에 앉을게….”

어색하게 웃으며 앞 쪽으로 가려는데 손목이 턱, 소리 나게 잡혔다. 꽤 들어간 힘에 휘청한 자윤은 본인을 붙잡고 있는 강현을 놀란 채 보았다.

“앞에 앉는다며.”

“어…?”

어…. 그러니까 저기 교탁이랑 가까운 자리.

대답 대신 교탁 쪽을 보는 순간 앞자리의 의자가 강현의 발에 의해 쑥 당겨졌다.

“앉아.”

강현이 턱짓으로 가리켰다.

“…….”

“앉으라니까.”

“응….”

자윤은 예지와 강현의 눈치를 보며 어정쩡하게 그 자리로 엉덩이를 붙였다.

“강현아 나 책이 없어서 그런데 같이 볼 수 있을까…? 재고 없대서 다음 주나 살 수 있을 거 같거든….”

“그래.”

뒤에서 나누는 말소리를 들으며 자윤도 책을 펴기 위해 몸을 돌렸다. 가방으로 손을 댔다. 강현의 책이 둘의 책상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걸 보았다. 급히 눈길을 내리고서 책을 꺼내었다.

톡.

그때 정수리를 두들기는 느낌에 자윤이 고개를 들었다.

“펜 좀.”

강현이었다.

“어… 잠시만,”

서둘러 필통을 꺼냈는데 예지가 먼저 알록달록한 오색 볼펜을 내밀었다.

“이거 써.”

“색깔 있는 건 불편해서.”

“그럼 이거.”

자윤이 틈 볼 새도 없이 예지가 바로 까만 펜을 내밀었다. 동시에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예지한테 빌렸으니까 괜찮겠지.

“고마워.”

뒤에서 강현의 인사소리가 들렸다.

예지가 강현에게 좋은 도움을 줬으니까 점수 좀 땄을 것이다. 자윤은 그렇게 생각했다.

“…….”

딸깍. 딸깍.

애꿎은 볼펜을 괴롭히던 강현은 전혀 강의에 집중하지 못했다. 고개를 들었다 내렸다하며 필기에 열을 내고 있는 자윤의 뒤통수에만 눈을 꽂고 있을 뿐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공부만 해도 좋다더니.

수찬의 입에서 나온 ‘연애상담‘ 단어 이후 줄곧 잇따른 가시래기였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든 말든 알바 아니었지만 가슴 한구석이 갑갑한 건 사실이었다.

진우. 진우. 진우.

분명 고향친구, 그 놈이겠지.

“강현아.”

옆에서 예지가 강현의 팔 위로 손을 올렸다.

강현이 눈을 돌려 예지를 보았다.

“볼펜 부서지겠어….”

“…….”

예지의 말에 강현은 책상 위로 눈을 옮겼다. 딸깍이던 펜을 어느새 짓누르고 있었나보다. 펜 심을 넣은 채 책상 위로 긁히고 있던 펜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책상이 나무질이었다면 확실히 파였을 정도였다.

“무슨 고민 있어?”

“…아니야.”

강현이 당황하며 볼펜을 내려놨다. 강의 끝나는 시간을 확인하려고 폰을 보았다.

“여보세요?”

수업이 끝나고 가방을 정리하던 때에 민혁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나 해서 걸었는데 딱 맞췄네. 수업 끝났지?

“응!”

-본관으로 와. 기다리고 있어.”

“알겠어. 빨리 갈게.”

-천천히 와. 무릎도 안 나았으면서.

“알았어.”

자윤은 히죽 웃으면서 통화를 끝냈다. 휴대폰을 가방에 넣으려다가 강현이 주머니에 지니고 다니란 말을 했던 것이 떠올라 다시 책상 위로 올렸다.

“누가 보면 남친인 줄 알겠네.”

뒷자리에서 강현의 곱지 못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윤이 스윽 돌아보니 강현은 가방 챙기기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예지도 물론 가방을 다 챙긴 상태였다.

자윤은 다시 자세를 돌리려했다.

가방을 멘 강현이 그제야 자윤에게 눈을 두었다.

“웃지 마. 바보 같아.”

“…….”

강현은 저를 보고있는 자윤의 동그란 눈망울을 한참이나 보았다.

“왜 그래… 넌 꼭 자윤이한테만 그러더라. 아무리 친구라지만 자윤이도 여잔데… 다른 여자 애들한텐 안 그러면서.”

자윤은 딱히 그런 부분해서 서운한 점을 느끼지 못했는데 예지가 콕 집어 말해주니 좀 섭섭한 것 같기도 했다.

“여자는 무슨.”

“강현아….”

예지가 강현의 팔을 잡고서 말렸다.

둘이서 본인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걸 지켜만 봤지, 자윤은 한마디도 보태지 못했다.

“친군데 뭐, 이 정도 말장난은 괜찮잖아. 난 친구랑 이 강도로 얘기하는데 불편하면 말해.”

“아니, 아니야. 괜찮아….”

자윤이 손을 내저으며 정말 괜찮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강현은 그런 자윤의 반응에 답을 보이지 않고서 예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저녁 먹을래? 집에 가면 혼자 먹어야 돼서.”

“어? 정말…?”

예지의 기다란 속눈썹이 바짝 들리며 커졌다.

자윤은 둘을 열심히 번갈아 보았다.

강현이가 먼저 저녁 같이 먹자고 한 거 보면 수찬이 말대로 정말 강현이가 예지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거 현숙이가 봐야하는데…!

본인의 말을 믿어주지 않던 현숙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윤은 상당히 아쉬워했다. 나중에 말해 줘야겠다고 다짐도 하였다.

“스카이라운지 가자. 입학하고 한번을 안 가봤네.”

“응…!”

예지랑 말을 마친 강현은 얌전히 앉아있는 자윤에게 다시 눈길을 주었다. 그냥 한번 보더니 인사도 없이 일어났다.

예지도 따라서 일어났다.

“자윤아 내일봐!”

예지가 강현의 뒤를 급하게 따르며 인사를 대충한 뒤 나갔다.

예지랑 잘되는 건 좋지만 나는 강현이한테 뭘 잘못했길래 미움을 받고 있는 걸까.

자윤은 강현의 기분 안 좋아보여서 예지의 인사를 차마 받아주지 못했다. 무정한 그의 모습을 상기할수록 정리하는 움직임이 자꾸만 느려졌다.

아직 화난 거 있나…

아님 화가 안 풀린 건가.

우리 집에 놀러오는 걸로 해결된 줄 알았는데…

스카이라운지에서의 모임은 무난히 정리되었다.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었고 조원들과의 대면이 목적이었기에 그리 긴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엠티 때 맛있는 거 많이 사가자.”

40분 정도의 회의가 끝나고 조장 선배가 자리를 뜨면서 말했다.

옆에서 인사하는 민혁을 따라 자윤도 돌아가는 선배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일곱 신데 바로 갈 거야?”

“왜?”

“조금만 놀아주라.”

“어떻게?”

“에프엑스 가자.”

“에프엑스…?”

“오락실.”

우와 오락실….

자윤이 사는 동네엔 없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이었다. 그녀의 마음에 호기심이 마구 피어올랐다.

너무 가고 싶다고 눈을 빛냈더니 민혁이 웃으며 걸음을 떼었다.

“혹시 비싼 거야? 얼마나 할 수 있어? 나처럼 한 번도 못 가본 사람도 할 수 있어?”

“그렇게 좋아? 질문이 끝도 없네.”

“너무 가고 싶었어…!”

“못해 본 사람도 엄청 많고, 싸고, 돈만 있으면 계속 할 수 있어. 편하게 생각해.”

“정말? 다행이다.”

자윤이 두 손을 맞잡고 입을 가렸다. 들뜬 모습을 보였다. 좁은 테이블 사이를 한 줄 지어 나가는데 빨리 뛰고 싶어 안달난 발이 막 동동거렸다.

그런데 와중에 민혁이 가다말고 걸음을 멈추었다.

뒤따르던 자윤은 왜 그러나 싶어 민혁이 보는 곳으로 눈길을 주었다. 그러자 창가 쪽에 자리한 두 사람이 보였다.

“어! 강현이랑 예지다!”

자윤이 먼저 가리키며 인사를 했다.

당장 친구들에게 가려는데 민혁이 자윤을 붙잡았다. 살짝 당기더니 귀 쪽으로 입술을 내렸다.

“쟤네 둘이 데이트 하는 거 같은데 방해하면 안 되지 않겠어?”

아 참….

다시 보니까 아주 오붓한 분위기였다. 스카이라운지에서 마주보고 있는 둘은 참 낭만 가득해 보였다.

이젠 자윤이 민혁을 밀며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

“애들이네. 여기서 엠티 모임 했나보다.”

“…….”

강현과 예지 또한 둘을 보았다.

손들어 인사하는 예지와 달리 강현은 묵묵히 시선만 보내었다.

“우리 조 선배들 되게 예쁘고 잘생겼데, 빨리 만나고 싶지 않아?”

“…….”

“벌써부터 비주얼 조라고 소문났더라고. 좀 민망하다, 그치?”

예지의 설레발에도 강현은 그저 자윤이 다급하게 민혁을 밀고 있는 모습만 보았다. 전부터 쌓인 묘한 서운함이 자꾸 자신을 언짢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