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

자신이 머물던 신수국에는 신수국을 지키는 4방신수인 청룡, 백호, 현무, 주작이 머물고 있었다. 자신은 남방의 주작으로 불의 기운을 타고난 신수였으나, 신수인 아버지와 인간인 어머니에서 태어난 반인반수였다. 금기를 깬 조합으로 태어난 주작 해화는 신수로서 신성함을 인정받을 수 없었다.

그녀를 차별하지 않는 것은 4방 신들 뿐이었다. 그들을 제외한 신수국의 모든 이들이 그녀를 반인반수라 불렀고, 그녀를 남몰래 쭉정이 취급을 하였다.

그리고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을 그녀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취급을 받는 지, 어렸을 적엔 잘 몰랐어…….”

그래, 그때에는 모를 수밖에 없었지. 그때엔 사방신이 곁에 있었고, 그래서 그 누구도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니까. 라고 되뇌이며 해화는 자신이 주저앉아 있는 시냇가를 쳐다보았다. 흐르는 물가에 비치는 붉은 머리칼을 한 여자아이가 맥없이 물 안을 쳐다보고 있다. 해화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정말 맥없는 표정이다… 라고 작게 말하곤 씁쓸하게 웃으며 그래도 그때에는 혼자가 아니었는데… 라는 생각을 돌이켜 하고 말았다. 해화의 붉은 눈이 흔들리고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새하얀 피부가 핏기가 없어, 창백했지만 그만큼 그녀의 미모가 쉽게 드러났다.

이웃에 거주하는 청룡과 현무가 그때만 해도 자주 놀러 왔었다.

‘이 울보!’

사실 성격이 과격한 청룡이 하는 말은 언제나 자신을 울리는 말이었다.

‘전대 주작이 하던 것을 왜 이리 못 하는 게야. 네가 제대로 제 몫을 해야 내가 내 영토로 돌아갈 수 있지 않아!’

그래도 그 둘은 언제나 자신을 아껴주었다.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관심을 가지며 올바른 스승 마냥 자신을 가르쳐 주었고, 또한 자신과 시간을 함께 보내주었다. 언젠가 청룡과 현무와 함께 걸었던 석양의 길은 해화의 기억에도 제법 아름답고 훈훈한 기억이었다.

그래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제 몫을 다하려고 했었다. 반인반수인 자신이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몫을 하기 위해 신수국으로 끌려 왔을 때는, 고아인 자신이 버팀목이 생긴 것만 같아서 아무래도 좋았던 것 같다. 그래, 그래서 뭐든지 열심히 하려고 버티고 또 버티고, 칭찬을 듣기 위해 몹시도 애를 썼다. 그 생각을 하면서 해화는 흐르는 시냇물 속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말야…….”

흐르는 물속에 비친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꼬아대며 해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나 봐.”

해화는 시선을 푸른 하늘로 옮겨 가만히 바라보다 두 눈을 감았다.

그녀가 아침에 눈을 뜨면 그 넓은 주작령의 신수를 위한 저택은 고요하기만 하다. 전대 신수인 아버지께서 머물 때에는 그리도 화려하고 사람들이 넘쳐흘렀다던데, 지금은 그 자취만 남아있고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다. 애초에 신수를 위한 추종자들이 모이는 것이었지만, 반인반수인 그녀를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그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어차피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하니 차라리 없는 편이 나았다.

“주작령에 결계를 확실히 하고.”

방 밖을 나서며 수인(手印)을 맺으며 결계의 기척을 읽는다. 그것이 선대 주작에 이은 그녀의 맡은 바 임무였다.

하루가 다 가도록 신수국 국경에 걸쳐 있는 화염 결계를 책임지고 손을 보는 그녀의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이 샘솟아 있었다. 처음부터 신수국 국경의 결계가 전적으로 화염 결계로 돌아가지 않았지만, 워낙에 해화가 어렸을 적부터 열심히 배워서 결계를 돌리는 것을 본 다른 4방 신수들이 전적으로 모든 결계 업무를 그녀에게 맡겨 버리고야 말았다.

‘하하, 역시 반인반수라서 뭔가 다른가 봐. 아니, 천재라고 해도 좋겠는데, 꼬맹이.’

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청룡 유랑의 말에 홀라당 넘어가는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해화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청룡 유랑의 말에 긍정하는 현무 시현이 있었지.

‘확실히 해화가 친 결계는 우리가 친 결계보다 견고하군요. 물론 속성은 다르지만.’

그들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져서 더 열심히 하려던 것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고야 말았다. 해화는 결계 업무를 독차지하게 된 것이 자신에게 해가 되는 건지 득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결계를 제대로 치기 위해 다른 4방신이 찾아와 주었던 기간 동안에는 참으로 즐거웠다고 생각하는 해화였다.

“떠들썩하고 즐거웠어….”

멀찍이 그들이 언제나 찾아오던 대문을 쳐다보며 해화는 눈을 흐렸다.

이제는 그런 날들이 오지 않으려나. 해화는 그저 이곳 신수국의 결계에만 신경 써야 하는 자신의 하루가 슬펐다.

해화는 결계 정리가 끝나자 언제나처럼 가택 부근의 시냇가로 쪼르르 달려갔다.

오늘은 유달리 오래 시냇물을 따라 걸으니 그 시냇물의 폭이 넓어지고 거대한 폭포수가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히야.”

해화는 우르르 쏟아지는 수십 장의 물을 가늠도 할 수 없어 그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돌아서서 다시 자신의 가택 안으로 들어왔다.

“어디를 갔다 오시는 겁니까.”

어디선가 날선 목소리가 해화의 귓가에 울려 퍼지고, 해화는 그 목소리에 어깨를 움찔했다. 목소리의 출처는 주작령의 신수 휘하에서 인간들을 통치하는 지배자인 주유휘였고, 그는 불만 섞인 얼굴로 해화를 쳐다보고 있었다. 감히 반인반수 주제에 신수의 자리를 휘어 차고 있으니 절대 마음에 차지 않았지만, 그녀의 자리를 대신할 이가 없었다.

“아, 잠시 시냇가에.”

“하? 결계는 온전히 지키고 계신 겁니까?”

기가 막히다며 혀를 차는 주유휘의 말에 해화는 발끈했다.

“당연히 온전히 지키고 말고요. 그것은 실례의 말이 아닙니까.”

본래 말수가 많지 않던 해화였다. 그런 그녀가 그에게 화를 내자 주유휘도 얼굴이 벌게졌다. 아무래도 이번에도 묵묵히 자신의 말에 고개를 숙일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더욱이 그 자리에는 아랫사람이라고 여길 휘하의 신하들이 많이 따라와 있어 더더욱 그랬다.

“아, 그렇군요. 예, 저희는 감사히 여길 따름이지요.”

결국 어찌됐든 고개를 숙이는 주유휘였지만, 해화는 그 모든 것이 귀찮았다.

그래서 그녀 역시 그에게 골을 내며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히 그래야 할 일입니다.”

“…….”

“그럼, 들어가셔야 할 것이 아닙니까. 이곳에 머무실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해화는 드륵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문을 닫으며 명백히 주유휘 일행에 축객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것은 주유휘를 분노케 했고, 그는 그 자리에서 이를 바득 갈았다.

애초에 꼴에 되지도 않은 반인반수였던 계집이다. 더 이상 참고 봐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피곤하다. 그렇지만 그 감정도 외로움에 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해화는 움츠리고 자리에 누웠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 감정인 채로 지내야만 하는 것일까.

‘해화님, 해화님.’

자신을 그리도 따랐던 여아도 있었지만, 그 아이의 말로는 처참했었다.

‘해화님은 우리 신수령의 귀중한 주작님이시잖아요.’

하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언제나 다듬어 주고 해맑게 웃어주곤 했던 그 아이. 그러나 자신은 그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

언제나 자신과 함께 하기만 했던 그녀에게 씌어진 무고.

시정잡배와 함께 귀중한 결계석을 훔쳤다고, 그렇지만 그딴 결계석은 자신의 힘이 막강하면 없어도 상관없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해화님! 해화님! 저는 억울합니다!’

하고 그 아이는 울었다. 해화는 그 아이를 믿었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말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고, 도리어 그녀를 최악의 형벌까지 내려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의 목이 잘리던 마지막 날, 그녀는 해화를 향해 웃어주었다.

‘영아야, 영아야.’

비록 해화는 그녀를 붙잡고 울었지만, 그녀는 담담히 말했다.

‘그래도 해화님은 이 신수국을 지켜주실 거지요.’

‘영아야?’

‘전 그걸로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죽으면 우리 해화님 곁을 누가 돌보지요. 그거 하나 너무 슬프네요.’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유연한 태도를 지키던 영아의 뒤를 홀로 쳐다보던 해화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었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봐 주었어야 했는데 라고 자조적으로 되뇌며 해화는 웅크린 몸을 더더욱 웅크렸다.

그렇지만 자신은 약하고 아직도 약하다. 강해지고 싶어, 그녀의 말대로 모든 것을 지킬 수 있는 이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면서 해화는 웅크린 자세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 날이 되면 또 오늘과 같은 아침이 되겠지 하며 말이다.

오늘도 결계를 살피며 수인을 맺던 해화였다. 그런데 그녀가 살피는 결계의 구석진 곳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한데…….’

그녀는 붉은색 결계석들 위로 양손을 펼쳤다. 다시 한 번 집중해서 전체적인 결계의 양상에 집중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자 바람이 불면서 찬찬히 그녀의 앞에 뿌연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불청객이 결계를 부수고 있다?’

처음 보는 얼굴의 사내였다. 매서운 눈매의 그는 청룡의 푸른 머리칼보다 흐린 감청색의 머리칼을 지녔고, 기이한 문양의 푸른색 옷을 입고 있었다. 해화로서는 처음 보는 수려한 얼굴이었다. 백옥같은 피부에 붉은 입술이 매력적으로 빛났다.

그의 얼굴은 희미한 미소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혹자는 그의 지나친 자만심이 그를 해칠지 모른다 했으나, 그는 언제나 모든 일에서 자신을 믿었고, 그것을 그르친 적이 없었다.

주작령의 결계를 부수고 있는 지금도 그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고 오히려 복잡하게 꼬인 결계에 대해 흥미의 기색을 엿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드디어 결계의 주변 핵 중 하나를 와해시키려던 그때, 해화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만둬!”

“……!”

해화가 나타나자, 부서졌던 결계가 다시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그는 흥미롭다는 듯이 해화를 쳐다보았다.

“그 유명한 주작이 너인가 보지?”

턱을 만지작거리며 붉은 머리칼의 해화를 쳐다보던 그는 씨익 웃으며 손을 우둑거렸다.

“어찌 알았……. 앗!”

자신의 자리에서 발로 바닥을 가볍게 톡톡 차던 그가 손을 옆으로 휘두르자 거대한 얼음날이 달린 창이 그의 손에 잡혔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의 발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거대한 파도의 무리를 보고 해화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 이름은 이해. 내 정체를 굳이 말한들 아가씨가 알 리가 없지. 그러나 한 가지 말해줄까?”

파도가 몰아치며 거대한 폭우가 내려친다. 이제껏 술사끼리의 싸움에는 참전한 적이 없는 해화에게는 몹시도 버거운 싸움이었다.

“됐어! 네 녀석 따위는 곧 내가 잡아 줄 테니까.”

그래도 호승심을 가지고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일단은 마구잡이로 그녀의 힘을 부리고자 화염을 일으켰지만, 이해라는 청년이 부리는 물에 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이해는 코웃음을 쳤다.

“쯧쯧, 그렇군, 그대의 말에 찬탄을 보내지. 그런데 그게 될 법한 이야기여야 말이지.”

“끄, 끄으.”

어느새 이해가 일으킨 거대한 홍수의 무리에 빠져 숨을 쉴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해화는 서서히 정신을 잃었다.

“그 유명한 4방신이 이 모양이라니, 웃음도 나오지 않는군 그래.”

그리고 이해는 그 해화를 봉쇄한 물무리 옆에서 어깨를 으쓱하며 손가락을 튕겨 물무리를 없앤 후에, 젖은 해화를 등에 업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온몸이 축축해.’

잠에서 깨어나며 든 생각에 어디서 비가 샌 걸까 하고 부시럭 일어났던 해화는 자신과 마주친 푸른 눈동자에 깜짝 놀랐다.

“드디어 일어났네.”

이해였다. 그는 해화가 일어났음에도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그녀의 눈동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 날 쳐다보고 있었던 거야?”

해화가 얼굴이 붉어지며 하는 말에 이해가 피식 웃었다.

“겸사겸사, 두근거리는 박동 소리가 듣기 좋아서.”

박동 소리? 해화가 의문 섞인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이해가 그녀의 가슴팍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으, 으아악! 비, 비켜!”

해화의 소란에 이해가 천천히 떨어져 나오면서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해화는 그런 그를 쳐다보다가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고 그에게 다시 물었다.

“날 왜 살린 거야?”

“……애초에 죽이려고 한 것도 아니야.”

해화가 자신보다도 훨씬 강한 술사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술사 자체를 보는 것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그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지만 그는 그가 한 말 대로 그녀에게 기묘한 시선을 보낸 채로 의문스런 자태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해화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죽이려 한 게 아니면, 왜 공격은 한 거지?”

그 말을 듣고 그는 도리어 웃으며 되물었다.

“꼭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공격을 하진 않지. 제삼의 목적이 있을 수도 있는 거고.”

그 말에 해화는 고개를 갸웃하다, 그에게서 느껴지지 않는 악의 때문에 마음이 놓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사실 그녀는 그의 공격을 받았을 때,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진실로 숨이 끊어지는 느낌 때문에 자신의 생이 이걸로 끝인가 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그래서 왜 살렸느냐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그녀가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날 어떻게 할 거야?”

분명 그는 자신보다 강했다. 그런 그의 의도에 따라 자신의 처지가 결정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