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침대 옆에 놓인 전자시계가 정각 5시를 알림과 동시에 시온은 온몸이 알람시계라도 되는 듯 눈을 떴다. 무표정한 얼굴로 몸을 일으킨 시온은 남색 민소매 티에 같은 색의 핫팬츠를 입고 밖으로 나갔다. 새벽마다 근처에 있는 호수공원을 조깅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한국으로 돌아온 후 시온의 습관이었다. '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공원 여기저기엔 새벽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눈에 띠었다. 하얀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와 함께 달리는 늘씬한 여자. 서로를 아름답게 바라보며 걷는 노부부. 살을 빼겠다는 일념 하에 필사적으로 달리는 중년의 아저씨. ' 그들 틈에서 시온은 지극히 무표정한 얼굴로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 될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 달리는 사람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살을 빼기 위해. 건강을 지키기 위해. 무작정 달리는 것이 좋아서. 시온은 땀을 흘리기 위해 달렸다. 땀을 흘리면 몸속에 남은 감정이라는 것이 땀방울로 둔갑해 빠져나가는 듯 했다. 아무런 감정도 남지 않은, 매 마른 가지처럼 퍼석거리는 허시온을 만들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그날부터 줄곧 달렸다. 감정이 살아나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진서 씨 같은 남잔 세상에 둘도 없을 거예요. 호호호.’' ‘부끄럽게 왜 그래?’' 진서 외삼촌과 그의 여자 친구였던 정유림의 목소리가 귓속을 쟁쟁하게 울린다. 시온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듯 완벽해보였던 그들. 그들의 사랑이 그렇게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한 일이었다. ' 완벽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더럽고 추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데…….' '' “서이다. 서이다. 안 일어나? 서이…….”' 놀부마누라처럼 밥주걱을 들고 빽빽거리던 유정은 침대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이다가 보이지 않자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아침부터 왜 소리를 빽빽 지르고 난리야!”' 욕실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나오는 이다를 보고 유정이 오래 살고 볼일이라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왜 그러고 봐?”' “너 서이다 맞니? 내 딸 서이다 맞아?”' “엄마 딸 아님 옆집 아줌마 딸이겠수?”' 아침부터 무슨 헛소리냐며 툴툴거린 이다가 거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젖은 머리를 마저 닦아낸다. '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깨우지도 않았는데 일어나고.”' “면접 보는 날인데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야지.” ' 이다의 말에 유정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중요한 일이 있는 날마다 늦잠을 자거나 꼭 필요한 서류를 잊어버려서 유정의 혼마저 빼놓은 게 누군데 어디서 그런 말이 술술 나오는 것인지. ' “최소한의 예의? 서이다 니가 언제부터……. 아아. 못살아. 증말. 왕유정 미친다. 미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