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우리 사귀자.(2)

“시청자 여러분, 사진을 보여드릴게요.”

잭은 목소리만 나오고 화면을 이등분 해 사진 2장이 채워졌다. 왼쪽 사진은 블랙맨 1차 사건 당시 현장 사진이었고, 오른쪽 사진은 이든을 검찰로 호송하던 때의 사진이었다.

왼쪽 현장 사진에는 성호, 유진, 주원이 담겨 있었다. 성호와 유진은 폴리스 라인 안에 있었고, 주원은 폴리스 라인 밖에서 유진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유진과 주원은 같은 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일전에 제트(Z)가 길냥이 라이브 방송에 올렸던 사진은, 유진이 시신 가방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유진의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 사진은 과학수사대가 유리가 담긴 시신 가방을 옮기고 있었고, 유진은 그 시신 가방을 쳐다보고 있어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오른쪽 사진에는 성호, 해준, 주원, 유섬이 있었다. 유섬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다. 성호가 이들 중 맨 앞에 서 있었고 그 뒤에 주원, 유섬, 이든이 있었다. 주원과 유섬이 이든의 팔을 양쪽에서 잡고 있었고, 이든의 손목은 수건으로 가려져 있었다. 이든을 검찰로 호송하려고 미제사건전담팀 형사들이 그를 세진지방경찰청 청사에서 데리고 나오던 사진이었다. 오른쪽 사진은 뉴스 화면을 캡쳐한 것이었다. 잭은 왼쪽 사진과 오른쪽 사진 성호의 얼굴에 빨간색 동그라미를 그렸다.

“10년 전 세진경찰서 강력계 막내 형사였던 나성호는 현재 세진 지방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 팀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주원의 얼굴에 파란색 동그라미를 그렸다.

“문주원은 진안고등학교 2학년이었는데요, 그는 경찰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하고, 현재 미제사건전담팀 팀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나이는 28살이 되었겠네요. 10년 전 사진 속의 나성호와 문주원은 현재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두 사람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된 걸까요?”

잭은 아주 차분하고 꼼꼼하게 설명했다.

“그러면 피해자 언니인 도유진은 어디에 있을까요?”

찰칵!

화면에서 셔터 음향 소리가 나며 다음 사진으로 넘어갔다. 왼쪽에는 블랙맨 1차 사건 사진 중에서 유진과 경수의 얼굴이 확대되어 담겨 있었고, 오른쪽에는 폴라리스 별채 게임장에 있는 명한의 얼굴이 나타났다.

“시청자님, 어떻게 보이십니까? 동일인으로 보이십니까?”

잭은 잠시 간격을 두었다.

“다음 영상을 보십시오.”

영상은 해준이 게임장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영상은 편집되어 있었다. 이어 해준과 명한이 불 꺼진 게임장 안에서 나왔다. 해준이 문에 걸린 푯말을 ‘OPEN’에서 ‘CLOSE’ 쪽으로 돌려서 걸었다.

[아빠, 어서 가요.]

[그래.]

해준이 명한의 팔짱을 끼고 걷는 장면에서 영상이 끝났다.

“아빠!”

잭이 멘트를 이어갔다.

“아빠라고 했죠?”

[ A : 분명 아빠라고 했어요.]

[ B : 왜 이해준이 도유진 아빠에게 아빠라고 하죠?]

[ C : 도유진과 이해준은 무슨 관계인가요?]

[ D : 도유진과 이해준이 같은 사람인가요?]

잭의 얘기에 댓글이 빠른 속도로 올라왔다.

“그럼 아까 사진을 다시 보여드릴게요.”

잭은 영상을 화면 왼쪽에 축소한 다음 해준의 얼굴을 확대했다. 오른쪽에는 하이든을 검찰로 송치하던 날의 사진에서 해준의 얼굴을 확대했다.

“자, 여기 있는 형사와 동영상 속의 사람은 동일 인물입니다.”

잭은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해준의 얼굴을 레이저 포인트로 번갈아 비추며 말했다.

“이 아저씨는 분명 1차 사건 피해자의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왜 경찰 이해준은 이 아저씨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걸까요? 이해준과 도유진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갑자기 전학 갔다는 도유진이 이해준이 돼서 돌아온 걸까요?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오늘 방송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잭 스필드였습니다.]

영상이 멈추며 라이브 방송 창이 닫혔다.

‘점점 더 압박해 오고 있어. 하이든 선고 공판 때까지 내 비밀이 지켜지기 바란 건 욕심이었나…….’

태블릿으로 방송을 보던 해준이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잭 스필드가 라이브 방송에 올렸던 모든 사진과 영상은 SNS를 통해 금방 퍼져나갔다. 이해준, 도유진은 인기 키워드 순위권에 진입하더니 이내 1위, 2위에 올랐다. 이해준과 도유진이 1위, 2위를 번갈아가며 차지했다. 문주원과 나성호는 전체 검색어 10위권에 들어 있었다.

윙-

책상에 놓아둔 휴대폰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해준은 액정을 보았다. [강평일보 황금윤 기자]가 떠 있었다. 해준은 무음으로 해놓고 전화가 끊어질 때까지 그대로 두었다.

그 전화가 끊어지자마자 휴대폰 액정에서 빛이 났다. 또다시 전화가 수신되고 있었다. 해준은 종료 버튼을 누르려다가 멈추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액정에 [나성호 팀장님]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

“네. 팀장님.”

[방송 봤니?]

“봤습니다.”

[방송한 계정 서버가 베트남이라고 하더라.]

“네. 하 팀장에게서 연락받았습니다.”

[서버 차단과 계정 블라인드 처리 요청해 놨다.]

“네.”

[내일 기자 회견을 하게 될 것 같구나.]

“알겠습니다.”

[기자 회견 때 얘기할 내용 준비해 와라. 내일 출근해서 함께 검토하도록 하고.]

“네. 경찰청 상황은 어떻습니까?”

[우리 세 사람의 관계를 확인해 달라는 전화가 빗발치는구나.]

“심려 끼쳐 죄송합니다.”

[해준아, 너무 염려하지 마라.]

“네. 팀장님.”

[침착하게 대응하자.]

“네.”

해준은 휴대폰 너머에서 통화 종료 음 소리가 난 뒤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통화를 끊자마자 다시 전화가 수신되었다. 해준은 휴대폰을 그대로 둔 채로 거실로 나갔다.

“아빠, 뭐하세요?”

거실로 나오던 해준이 창밖을 보고 있는 명한에게 물었다.

“해준아.”

“네, 아빠?”

“저 사람들 기자들 같구나.”

해준은 명한 옆에 서서 창밖을 보았다. 폴라리스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런 거 같아요.”

“왜 기자들이 우리 집을 앞에서 저러고 있지? 얼마 전까지 하이든 집과 레스토랑을 그렇게 찍어대더니.”

“아빠, 좀 전에 어떤 사람이 SNS에서 라이브 방송을 했어요.”

“라이브 방송?”

“네. 그 사람이 우리 얘기를 했어요.”

“어떤 얘기를 했는데?”

“나도 좀 볼 수 있겠니? 방송 지금도 하니?”

“방송은 좀 전에 끝났지만, 녹화해 둔 게 있어요.”

“그래? 어디 한 번 보자꾸나.”

해준은 방에서 USB 드라이브를 가지고 나와 TV 뒷면 잭에다가 꽂았다. 그리고 TV 리모컨으로 USB에서 파일을 선택해 재생했다. 영상이 시작되었다.

“해준아, 방에 들어가 있을래?”

해준이 옆에 앉자, 명한이 리모컨으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혼자 차분하게 보고 싶구나.”

“아빠…….”

해준이 명한을 걱정스럽게 보았다.

“괜찮아.”

명한은 그런 해준을 안심시키려는 듯 미소를 짓고 말했다.

“알겠어요.”

해준은 작업실 방으로 들어갔다. 명한은 방문이 닫히자 영상을 재생했다.

해준은 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5cm 정도 열고, 그 틈새로 거실을 내다보았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명한이 보였다. 명한은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소파 깊숙이 기대앉은 후에 TV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TV에서 곧 VJ 잭 스필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빠 많이 속상해하시면 어쩌지?’

해준은 걱정스럽게 명한을 보았다. 그러나 문 틈새로 보이는 명한은 덤덤했다. 그녀는 문을 살짝 닫은 후, 책상 앞에 앉았다. 해준은 책상 위에 놓아둔 휴대폰을 보았다. 부재중 전화, 문자, 레몬톡 등이 수십 통 와 있었다. 휴대폰을 내려놓으려는 찰나, 액정이 빛을 냈다. 또다시 전화가 수신되고 있었다. 해준은 액정을 힐끗 보았다.

[광명일보 은선재 기자]

“또 기자네….”

해준은 책상 구석으로 휴대폰을 밀어 놓고 노트북을 켰다. 액정은 한참 동안 빛나다가 꺼졌다.

[블라인드 처리된 계정입니다.]

해준은 노트북으로 잭 스필드의 인별그램 계정에 접속했다. 접속하자마자 블라인드 처리된 계정이라는 알림창이 떴다.

휴-

해준은 가벼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여러 검색 사이트에서는 여전히 도유진과 이해준이 인기 키워드 1, 2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문주원, 나성호도 10위권 내에 있었다.

‘무섭다.’

해준은 무척 긴장되어 있었다.

‘쭌-’

그녀는 주원이 떠올랐다.

해준은 휴대폰을 집어 키패드 숫자를 하나씩 하나씩 눌렀다.

11자리 숫자를 모두 누르자 연락처 목록 중에서 ‘쭌-’이 나왔다. 그러나 해준은 선뜻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통화 버튼을 누를까 말까 망설이던 그때, 액정이 빛났다.

“…….”

해준은 휴대폰을 내려놓으려다가 다시 보았다.

[쭌-]

주원에게서 온 전화였다.

“주원이다.”

해준이 액정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녀는 천천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주원아.”

해준은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해준아, 팀장님 연락 받았어?]

휴대폰 너머에서 주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해준은 짧게 답했다.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주원의 목소리에, 그녀의 얼굴을 가득 채웠던 두려움과 긴장감은 조금 누그러지고 있었다.

[기자회견 준비해 오라는 얘기 하셨지?]

“응.”

[같이 준비해.]

“각자 준비해.”

해준과 주원은 동시에 말했다.

[…….]

휴대폰 너머의 주원은 조용했다.

“우리 집으로 올래?”

해준이 얘기를 이어갔다.

[너희 집으로 오라고? 각자 준비하자며?]

“우리 집에서 각자 준비하는 건 어떠니?”

[그래.]

“30분쯤 후에 올래? 지금 하던 일이 있어서.”

해준은 그러면서 문 틈새로 거실을 살며시 쳐다보았다.

[알겠어. 그때 지하로 갈게.]

“응.”

해준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의자를 돌려 문 틈새로 거실을 쳐다보았다.

명한이 아까와 마찬가지로 덤덤하게 영상을 보고 있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TV에서 나오던 VJ 잭 스필드의 목소리가 멈추었다. 거실의 상황에 주의를 두고 있던 해준은, TV 소리가 멈추자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살금살금 방문으로 쪽으로 다가가,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해준은 문턱 앞에서 명한을 슬쩍 쳐다보았다. 명한은 여전히 TV 화면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덤덤했던 처음과 달리 그는 동요가 일어나 있었다.

해준은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거실로 나갔지만, 명한은 기척을 느끼고 해준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소파 한 쪽 끝에 살며시 앉았다.

TV 화면은 라이브 방송 엔딩 화면이었던 잭 스필드 일러스트로 꽉 채워져 있었다. 잭 스필드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명한은 그런 잭 스필드의 얼굴을 원망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탁자에 놓아두었던 리모컨을 집어 TV를 껐다. 고요한 거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자식 잃고 겨우겨우 사는데 가만히 좀 두지…….”

명한의 목소리에는 원망이 담겨 있었다.

“…….”

해준은 그런 명한을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해준, 명한 부녀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내가 괜히 여기에 왔나 보다.”

명한이 침묵을 깨고 얘기했다.

“아빠,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내가 안 왔으면 저놈들이 너, 나, 도유진의 관계를 파악하지 못 했을 거 아니니….”

“저 녀석들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캐냈을 거예요.”

“…….”

“아빠 잘못 아니에요. 자책하지 마세요.”

“…….”

“전 비밀 수사 기간 동안 아빠가 함께 계셔서 든든했어요.”

“그나저나 너한테 별일 없어야 할 텐데.”

“별일 없을 거예요.”

“해준아.”

“네.”

“아빠가 돼서 네가 큰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도 모르고 누워만 있었으니.”

“아빠, 자책 그만. 저들이 원하는 게 이런 거예요. 우리가 자책하고 아파하고 무너지는 거.”

“그래. 알겠다.”

“아빠, 우리 여기 있으면 기자들 안 가고 계속 저러고 있을 거 같아요.”

해준이 창문을 힐끗 보며 말했다. 밖에는 여전히 기자들이 있었다.

“그럴 것 같구나.”

“지하실에 가 있어요.”

“그래. 그러자.”

해준과 명한은 2층의 불을 끄고 실내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자 같은 모양의 방문 3개가 있었다. 방문은 동일한 간격을 두고 설치되어 있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방문에 1, 2, 3 숫자가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