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영은 멍청해진 채 끊어진 루아의 전화를 들고 있었다. 루아는 집에 온 날 휴대전화를 화장대에 얌전히 올려놓았다. 나영은 그 전화가 걸려 온 것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었다. 캔디폰이라 생각했던 것이 갑자기 울리기에 무심히 집어들었던 것이다. '‘나 너를 좋아했다.’ '갑자기 가슴이 쿵쿵쿵 뛰기 시작했다. 아니 이런목소리로 나 너를 좋아했다 라니! '루이의 목소리는 여전히 섹시하다. 온몸의 힘이 쫙 빠져나가면서 가슴이두근거릴 정도로. 어지럽고 몽롱한 것이 온몸에서 힘이 쫙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이상해. 지금 내 몸의 상태가 책에서 읽은 오르가슴의 증상과 비슷하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오르가슴에 도달할 수 있을까? 석훈과의 관계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오르가슴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터넷 서핑에 의학책까지 섭렵하며 알아낸 오르가슴의 가장 흔한 증상이 몸에서 일어나자 나영은 적이 당황했다. '설마 이런 게 오르가슴이야? 으아! 나 미쳤나 봐. 지금 뭔 생각을 하는 거야. 하지만 어떻게 말소리가 입에서 침이 떨어질 정도로 섹시할 수 있는 거냐고. 으, 온몸에 소름이 쫙 돋은 이 기분은 대체 뭐야? 응? 아니 가만있어. 나 너를 좋아했다? 이 인간 이제 보니 루아를 좋아한 거야? 그래서 루아 남편에게 혼인무효신청을 하게 만드는 거야? 혹시나 루아하고 어째 보려고? 그래도 되는 건가? 법에 아무 이상 없어? 이게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나영의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말도 안 되는 상상들이 날줄 씨줄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윤나영, 왜 그래?” '“응?” '“뭐야, 왜 바보같이 멍한 표정이야?” '“목소리.” '“목소리?” '“아냐, 아무것도.” '나림이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4시 30분이 조금지난 시간이었다. '“루아가 안 들어오는 것 나 보기 싫어 안 들어오는 건 아니겠지?”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너 같은 줄 아냐? 봉사하던 곳 갔다잖아. 일이 많은가 보지. 뭐.” '“처음엔 일탈을 경험하기 위해 아침 먹고 들어온다며, 그러더니 뜬금없이 무슨 봉사 하러 가? 가는 건 좋아. 왜 집에도 안 들어오고 간대?” '나림이 뭐라든 말든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영의 머릿속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지금 내 몸의 나른함이 오르가슴이 맞는 거야, 아닌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