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살다보니 유난히 일이 풀리지 않는 날이 가끔 있다, 바로 오늘처럼. 시작은 싱크대였다.

우유한잔 마시려고 싱크대 상부 장을 열었을 뿐인데 경첩이 떨어지면서 손에 닿았던 컵 두개가 떨어져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늘 입을 대고 마시던 우유였지만 날이 날인 관계로 조심스럽게 마시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오히려 손실을 맛보았다.

“루틴이라는 게 있는데 하던 대로 했어야지, 이런다고 합격할 것도 아닌데.”

쓸데없이 요란을 떨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질책하며 꼼꼼히 깨진 유리컵조각들을 치웠다. 그리고 평소처럼 입을 대고 우유를 마시다가 날카로운 통증에 놀라서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아!”

인간의 몸을 이루는 신경세포들은 모두 한통속인지 아픈 건 발바닥인데 온 몸 신경이 한바탕 뒤집어 진 것처럼 화들짝 놀라는 바람에 우유로 샤워를 하고 말았다. 유통기한이 며칠 지난 우유였으니 아까울 건 없었지만 문제는 한 벌뿐인 정장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하, 돌겠네. 반드시 정장 입으랬는데….”

면접 시 유의사항에 '필히 정장 착용'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미처 치우지 못한 유리가 발바닥에 꽂혔다는 사실보다 정장이 더 걱정되었다. 급한 대로 화장실에서 다시 머리를 감고 옷에 묻은 우유를 씻어낸 후 드라이기로 말렸다. 다림질을 한다고 했지만 결국 후줄근한 모습으로 버스를 탈 수 밖에 없었다.

“킁킁. 어디서 구린내 나지 않아?”

“헐. 나만 맡았던 게 아니었어?”

“극혐!”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아이들이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그녀는 그들의 시선 끝에 자신이 있다는 사실에 기함했다. 따가운 눈빛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구린내를 제거해 볼 요량으로 한 정거장을 먼저 내려서 걸었다.

우유는 살아있는 미생물이 많아서 주어진 상황에 따라 상황을 만들어낸다. 오늘처럼 어설프게 씻어낸 경우가 그에 해당할 것이다. 그로인해 수없이 증식된 많은 미생물이 꼬릿한 냄새를 만들었다.

본격적인 하루는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하루가 지루하게 느껴졌다. 발바닥에 박혔던 유리조각을 빼낼 때에도 아픈지 몰랐었는데 걸을수록 통증이 심해져서 걷기가 불편했다.

네 번째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넜을 때 30층 규모의 더 뷰티 본사건물이 나타났다. 층수를 세듯 고개를 꺾어 올려다보다가 한걸음 뒷걸음질 쳤다. 새삼 밀려드는 통증에 미간을 좁혔다.

“우와, 멋지다. 이런 곳에서 일을 하면 어떤 기분일까?”

아연은 통번역사 면접을 보기 위해 대한민국의 젊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사용한다는 유명 화장품 회사에 도착했다. 황금색 크롬의 거대한 회전문을 지나자 안내데스크가 나왔다.

“면접 보러 왔습니다. 황아연입니다.”

“15층으로 가십시오.”

대기실이라고 적힌 곳에는 면접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나같이 외모에 잔뜩 신경을 쓴 것 같았고 비싼 향수냄새가 코를 찔렀다. 누구도 자신처럼 후줄근한 정장에 꼬릿한 냄새를 걱정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연은 냄새가 신경이 쓰여 멀리 떨어진 곳에 다소곳이 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건물 입구처럼 온통 황금색 의 거대한 크롬 기둥이 아틀라스처럼 천정을 떠받들고 서 있었다.

지금껏 면접 봤던 회사들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였기에 면접 결과가 더욱 분명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면접은 늘 같았다. 그녀에게 묻는 내용도 거의 같았다.

“학교는 왜 다니지 않았습니까?”

“혼자 살았다니 참 대단하십니다.”

“자격증을 이렇게나 많이 취득하다니 놀랍습니다. 요즘 보기 드문 인재군요.”

쳇! 지나치게 보기 드문 인재였는지 언제나 퇴짜를 맞았다. 동정 같은 건 바라지도 않지만 진짜 대단하고 또 불쌍했으면 조용히 뽑아주면 될 것을 요란스럽게 너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듯 쓸데없는 소리만 지껄였다. 때문에 오늘 면접도 큰 기대는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지원했던 회사였기에 유종의 미를 거두자는 마음에서 나왔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 몸에서 나는 냄새가 더 지독해지는 것 같았다. 근처에 앉았던 사람들이 냄새의 근원을 찾으며 결국 아연을 흘끔거렸다.

‘어차피 결과는 같을 텐데 그냥 갈까?’

잠시 망설이던 아연이 고개를 숙이고 눈동자만 굴려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피다가 노숙자 보듯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버텨낼 재간이 없어서 쭈뼛대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황아연님 준비해주세요. 황아연님? 황아연님?”

제 이름을 호명하는 소리를 들으며 아연은 명찰을 떼어내 가방 속으로 쑤셔 넣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뉘어 층층이 바뀌는 세 대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저 많은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내기에는 냄새의 정도가 좀 셌다.

내려가는 건 수월하니까 15층이었지만 계단을 이용하기로 했다. 사람들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출구를 찾았다. 문은 많았지만 하나같이 방 이름이 붙어 있었다.

“무슨 방이 이렇게나 많지?”

빨리 빠져나가고자 하는 조급한 마음과 달리 발바닥이 아파서 빠르게 걸을 수가 없었다.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에 마른침을 삼켰다. ‘회의실’이라고 적힌 방 옆에 황금빛이 번쩍이는 또 하나의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그 옆에는 비상구라고 적힌 커다란 철문이 보였다. 당연히 계단으로 가야했지만 그러기에는 발바닥이 너무 아팠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는 사람은 없었고 사용하지 않는지 10층에서 멈춰있었다.

“딱 한번인데 실례 좀 합시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굽실거리며 조심스럽게 버튼을 눌렀다. 빛의 속도로 도착 알람이 울렸다.

“헐, 대박! 진짜 빠른데.”

매끄럽게 문이 열렸고 바닥에 깔린 고급스런 카펫에는 마름모 형태의 작은 패턴이 있었다. 황금색 벽면은 어찌나 번쩍이는지 고개를 돌리는 곳 마다 자신의 얼굴이 있어서 흠칫 놀라고 있었다.

“어우, 정신병 걸릴 것 같아.”

고개를 가로저으며 로비 층 버튼을 누르고 숨 한번 내쉬었을 뿐인데 알림이 울렸다.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서서히 문이 열렸을 때 자신을 노려보는 화려하고 이목구비가 선명한 남자의 우뚝 선 모습과 마주해야 했다. 냄새 때문인지 반듯하던 남자의 미간이 모였고 꾹 다물고 있던 입술이 미세하게 비틀어졌다.

남자의 기세에 놀란 아연이 가방을 끌어안으며 층수를 확인했다. 10층. 좀 높았지만 이정도면 계단으로 내려갈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노려보며 성큼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는 남자를 피해 벽으로 밀착했다. 그리고 남자가 들어선 곳으로 아연이 발을 내밀었다.

“어? 어!”

버튼을 향해 손을 뻗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자신의 뒤통수를 향해 다 연발 눈총을 난사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죽을 것 같았다.

‘버튼을 눌렀어야지 바보같이.’

아연은 울상을 짓다가, 그럼에도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아냐, 금방 내려갈 텐데 뭐….’

덜컹!

급격히 실내가 흔들린다 싶더니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이 흘렀다. 아연이 손잡이를 잡고 상황을 주시하며 눈을 껌뻑였다. 놀랍게도 엘리베이터가 멈춘 것 같았다.

“엄마야! 이거 왜, 왜이래?”

“이런 빌어먹을!”

낮게 으르렁거리는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아연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머, 멈춘 거 맞죠?”

대답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들리지 않는 듯 아무런 대꾸 없이 남자의 긴 손가락이 호출 버튼을 꾹꾹 눌렀다. 그의 손동작을 보던 아연이 119라도 부를 요량으로 전화기를 꺼냈지만 놀랍게도 신호가 터지지 않았다.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면서 신호가 있는지 체크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헐! 왜? 아니 왜 신호가 잡히지 않죠, 이렇게 대단한 빌딩에서?”

호출 버튼을 눌러도 전혀 반응이 없자 더 이상 누르기를 포기한 남자가 팔짱을 끼고 숫자 패드만 노려보고 서 있었다.

“여기 잘 아세요? 직원이신가?”

“…….”

아연의 존재는 보이지도 않는 듯 행동하는 남자에게 더 이상 말을 걸 수 없어서 그의 다음 행동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마침 기다란 남자의 손이 다시 호출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그 어떤 소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왜 아무 소리도 안 나요? 이렇게 대단한 건물에 관리하는 사람이 없다고요? 호, 혹시 이거 납친가?”

처음으로 남자의 눈동자가 아연을 향하더니 한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웃자고 해본 소리에 뭘 노려보기까지 하시고 그러실까?”

아연은 불안한 생각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잠자고 있던 공황이 되살아나는 듯한 기분에 정수리 끝이 하얘졌다.

“하아, 미치겠네.”

“…….”

죽을 것 같은 침묵 때문에 더 참기 힘들었다.

“저, 저기 분위기도 안 좋은데 무슨 말이라도 좀 하면 안 돼요?”

“…….”

“말을 못하는 분이신가? 아, 아니지 아까 욕하는 소리 들었는데.”

아연이 재킷에 손바닥을 문질러 식은땀을 닦아냈다.

“무서워 죽겠는데 말 좀….”

“그 입 좀 다물지?”

갑자기 들려오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남자의 목소리에 아이러니하게도 위안이 느껴졌다.

“하, 목소리를 들어서 반갑기는 한데….”

“빌어먹을! 썩은 내가 진동하니까 닥치고 있으라고!”

어처구니가 없는 말에 무안하다가 뒤이어 화가 치밀어서 거세게 남자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한테서 냄새가 좀 난다는 거 나도 아는데….”

“좀 아니고 많이.”

“예예, 많이 나는 거 아는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초면에 욕을 해야겠어요?”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바락바락 따지는 아연과 달리 놀랍게도 하얗게 질린 남자의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시궁창을 굴렀나? 사람에게서 어떻게 이런 냄새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남자가 어지러운지 눈을 질끈 감으며 빚어놓은 듯 잘 생긴 입술로 독설을 퍼부었다.

“허! 나 참. 아픈 사람 상대로 욕도 못하겠고….”

투덜대는 아연의 눈앞에서 커다란 남자가 휘청거린다 싶더니 힘겹게 손잡이를 잡고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엄마야! 저기… 괜찮아요? 아무리 냄새가 난다고 이렇게까지….”

난감했다. 아연은 자기 탓이라는 생각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재킷을 벗어서 구석에다 던졌다. 남자가 벽에 몸을 의지한 채 머리를 기댔다. 얼굴색은 백짓장 같았고 식은땀이 잘 세팅된 머리카락을 적셔놓았다. 무엇보다 점점 빨라지는 남자의 숨소리가 신경이 쓰였다.

“우유를 뒤집어썼어요. 면접 시 꼭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데 어쩌겠느냐고요, 한 벌뿐인데.”

“옷이… 헉헉… 한 벌뿐이라고?”

“아니 아니, 옷이 한 벌이면 어떡해요, 정장이 한 벌 뿐이란 거죠. 저기요, 심호흡 좀 해볼래요? 그쪽, 지금 A4지 같아요. 길쭉하고 하얗다고요.”

냄새 때문에 힘들어하는 남자를 위해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 벽에 밀착했지만 그래봐야 내부는 좁은 사각형에 불과했다. 미친 듯이 호출버튼을 누르다가 까치발을 세워 마이크에 대고 무작정 소리를 질렀다.

“여기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허리를 숙인 채 구석에서 힘겨운 모습으로 서 있는 남자가 급기야 쓰러질 듯 앞으로 몸이 쏠렸다. 황급히 옆으로 가서 남자의 팔을 제 어깨에 둘렀다.

“잠시 실례할게요. 그쪽 좀 위태로워 보여서.”

“꺼져….”

지독한 독설이 이어질 거라 생각했지만 다행히 아연의 움직임에 의지하는 것 같았다. 남자의 허리를 감싸고 조심스럽게 바닥에 앉혔다.

“저기요! 숨 쉬어 봐요. 뭐라도 말을 해보라고요.”

사실 숨쉬기는 아연에게도 절실했다. 머릿속이 하얘질 정도로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있었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자, 이봐요. 나 따라서 숨 쉬어 봐요. 흐흠… 들이쉬고 하아… 내쉬고.”

하지만 폐를 긁는 듯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점점 의식을 잃고 있었다. 두려웠다. 아연이 뺨을 때리며 남자의 의식을 되살리려 애를 썼다. 제법 세게 때렸는지 커다란 손이 제 뺨을 두드리는 아연의 손을 움켜쥐었다.

“잘 했어요. 눈 떠요, 숨 쉬어요.”

감았던 눈을 힘겹게 뜨더니 불안하게 떨리는 눈꺼풀 사이로 걱정을 한가득 담은 여자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뭐예요? 이 와중에 이런 눈빛은 곤란하죠. 심쿵 한다고요.”

“이 냄새…. 헉. 크헉!”

남자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나 싶더니 어느새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내, 냄새요? 아이씨,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요. 어차피 합격도 못 할 텐데 오지 말 걸 그랬어요. 원래부터 냄새가 났을 거라는 오해 따위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뭐 앞으로 볼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봐요! 이봐요!”

아연이 축 쳐진 남자를 끌어서 바닥에 눕히고 호흡을 확인했다.

“왜? 왜 숨을 쉬지 않지?”

지체 없이 흉부압박을 위한 자세를 잡았다.

“훈련은 받았지만 실전은 처음이란 것만 알아줘요.”

공황이 오기는 아연도 다르지 않았다. 들리지도 않을 소리라는 건 알지만 무슨 말이라도 해서 점점 멀어지려는 자신의 의식을 붙잡아야만 했다. 남자를 살리고 자신도 살기위해 쉬지 않고 흉부압박을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성인의 경우 분당 100회에서 120회 이내로 규칙적이고 빠르게 압박을 해야 한다.

“쉰 둘, 쉰 셋, 쉰 넷….”

압박 깊이는 약 5cm를 유지하고 6cm를 넘지 않아야 한다.

“여든 여덟, 여든 아홉, 아흔….”

사지에서 힘이 빠져나가자 점점 아연의 의식도 안드로메다를 향하고 있었다. 습관처럼 펌프질을 하면서 죽지 말라고 제발 살아달라고 과거의 어떤 시간에도 했던 기도를 했다. 의식의 저편처럼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욍욍거렸다.

이제 됐다….

**

열흘 만에 퇴원을 했다. 엘리베이터에서의 사고는 급성 스트레스 장애에 의한 공황 발작이 원인이었다. 멀쩡하던 사람의 호흡이 멈췄으니 주치의도 유난을 떨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사라졌던 증상이 재발했다는 사실에 주석도 긴장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열었을 때 그 여자는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흉부를 압박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지독한 악취를 풍기던 여자에게서 아이러니하게도 잊고 있던 냄새가 느껴졌다. 그리고 연쇄작용처럼 그날의 기억까지 떠올랐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

호흡이 멈춘 이유가 스트레스였다면 그것의 원인은 분명히 냄새였을 것이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그것. 분명히 같은 냄새였다. 아니, 그랬던 것 같았다. 사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확신할 수 없었다.

“이사님.”

생각에 빠진 채 창밖을 주시하던 주석이 인자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오랜만에 출근하셔서 그런지 생각이 좀 많은 듯 보입니다.”

“아, 예. 인력충원은 끝났습니까?”

“팀별로 신입직원 교육이 시작된 걸로….”

말끝을 흐리며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김대식, 60세 전무.

웃을 때마다 생기는 눈가의 주름 때문에 다정함을 풍기는 대식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지인 중 한명이었다. 본인은 죽마고우였다고 하지만 주석에게는 확인 불가능한 이야기일 뿐이다.

인간이란 고도의 지능을 소유하고 독특한 삶을 영위하는 고등동물이자 포유류다. 주석이 인지하는 세상엔 믿을 수 있는 포유류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고도의 지능으로 얼마나 이기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언제까지 신뢰가 유지될 수 있느냐가 주석에겐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김대식이란 존재는 그나마 주석에게 안정적인 신뢰가 유지되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유로 알게 모르게 의지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가까워지는 것을 꺼리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