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명백한 질투

퍼펙트 매칭의 마상희 대표의 방에 들어온 감초는 온몸이 마비된 듯 꼼짝을 할 수가 없어서, 고개만 푹 숙인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꽤 긴 침묵의 시간이 흘렀고, 때마침 윤 팀장이 바로 들어왔다.

“대표님! 늦게 올라와서 죄송합니다. 말씀하신 자료 좀 챙겨오느라 늦었습니다.”

품 안에 자료를 가득 앉고 가쁜 숨을 쉬며, 달려온 윤 팀장의 얼굴이 보였다.

“알았으니, 앉아요. 윤 팀장 올 때까지 아직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으니까. 우선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단감초 커플매니저가 나한테 설명 좀 해 보죠.”

마 대표는 잔뜩 굳은 얼굴로 감초에게 말했다.

“대표님! 그게 단 대리는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출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제가 상황설명을 다 못했어요. 얘기 듣기 전에 제가 가지고 온 자료 먼저 봐주세요.”

윤 팀장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감초가 안쓰러워 서둘러 갖고 온 자료들을 마 대표에게 건넸다.

“이게 다 뭐죠? 강준후 씨 맞선 스케줄하고 상대 리스트를 지금 와서 보여주는 이유가 뭐예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맞선 상대가 단 대리가 매칭해 놓은 상대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그 일로 강준후 씨가 많이 화가 난 상태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은 누군가, 아니 천 팀장이 바꿨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알겠지만, 내가 보고 강준후 씨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 바꿀 권한 부여해 줬습니다. 뭐 잘 못 됐습니까?”

마 대표는 심히 기분이 상한 듯 윤 팀장을 무섭게 쳐다보며 대꾸했다.

“중요한 걸 하나 놓치신 게 있습니다. 단 대리에게 맞선 상대 중 꼭 빼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료 분명히 천 팀장에게 제가 전달했고요. 그런데 그 상대가 떡하니 나왔다면 이건 다분히 고의적인 거 아닌가요?”

윤 팀장은 그때 일을 생각하자 열이 받았지만, 대표 앞에서 화를 낼 수도 없어 최대한 감정을 눌러 내린 채 마 대표에게 강력하게 말을 전했다.

“그래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실수이자, 우리 회사 과실이 분명한데… 그럼 누가 그런 일을 벌인 걸까요? 지금 상황으로는 천 팀장밖에는 없는데….”

“천 팀장도 불러다 같이 물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알겠어요. 그런데 오늘 내가 보자고 한 건 그 문제가 아닌 걸 잘 알 텐데요. 모르면 내가 직접 알려줘야겠네.”

말을 마친 마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노트북을 가지고 와 감초 앞에 회사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직접 보여주었다.

감초는 고개를 들어 문제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제목부터가 무척이나 자극적이었다.

-커플매니저가 직업의식도 버린 채 자신의 회원을 유혹했다면?-

물론 실명이 거론된 건 아니었지만, 이니셜 만으로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 수 있는 내용과 사람이었다.

결론적으로 자신의 회원인 강준후를 그의 전담 커플매니저인 감초가 유혹했고, 눈이 맞은 두 사람은 이번 열애설에 휩싸인 당사자들이 되어버렸다.

“단 매니저, 말 좀 해 봐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그냥 루머가 맞는 건지, 아니면 사실인지?”

감초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감초는 딱 한 마디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근거 없는 소문일 뿐이라고 얘기해야지, 왜 그래? 단 대리가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강준후 씨 맞선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것밖에 없는데. 시원하게 대표님께 말씀드려.”

윤 팀장은 그저 속이 답답해 한마디 더 거들었다.

“그런데, 아무 말도 못 하는 걸 보니 어느 정도 사실이 맞나보네. 안 그래요. 단 매니저?”

“…….”

감초는 진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단 대리! 아니라고 빨리 말씀드려.”

윤 팀장은 자신이 더 애가 타는 듯 급하게 감초에게 대답을 독촉했다.

삐이-

“어, 김 비서 무슨 일이야? 내가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을 텐데… 뭐? 누구? 어, 들어오시라고 해.”

비서의 얘기를 전해 들은 마 대표는 갑자기 사색이 된 얼굴로 급히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문이 열리자 강준후의 얼굴이 보였다. 안에서 보고 있던 감초와 윤 팀장도 놀라 넋 놓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준후 씨! 이른 시간에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보시다시피 제가 지금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잠시 VIP 미팅 룸에 가서 기다려 주시면 금방 연락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상희 대표님! 어머니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여기 온 이유가 이 자리에 지켜야 할 사람이 있어서요. 실례가 안 된다면 저도 같이 얘기 나눠도 될까요?”

말을 마치자 준후를 비롯한 마 대표와 윤 팀장의 시선이 일제히 감초로 향했다.

“그게… 혹시….”

차마 말을 다 마치지 못한 마 대표가 머뭇거리고 있자, 준후가 감초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옆에 섰고, 미세하고 떨고 있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당황한 감초는 손을 빼려고 힘을 써 보았지만, 그녀의 손을 꽉 감싸 쥔 그의 손이 절대 놔줄 생각이 없다는 듯 강하게 잡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놀란 두 사람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앉으시죠. 기사로 먼저 알리려고 했는데, 발 빠르고 입 싼 누군가가 벌써 일을 저지른 것 같길래, 제가 직접 와서 해명하는 게 빠를 것 같아서 무례하게 급히 들어왔습니다.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준후는 매우 느긋한 목소리로 이 심각한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럼, 두 사람 진짜 사귀는 거 맞아요?”

윤 팀장이 놀란 가슴을 부여잡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그런데 단감초 씨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아시겠지만, 제 맞선 의뢰는 어머니께서 단독으로 진행하셨고, 이미 맞선 상대도 정해놓은 거로 알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맞선은 제게 솔직히 큰 의미가 없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단감초 씨를 커플매니저로 지목하셨죠.”

준후는 이미 마 대표와 어머니인 주희의 계획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준후 씨 어머님께서 분명 현재 사귀는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VIP 회원님들의 경우에는 맞선 리스트를 부모님들이 따로 주기도 하십니다. 그 안에서 저희가 가장 맞는 상대를 매칭해서 만남을 주선해 드리는 거고요.”

“대표님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단감초 씨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다는 걸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커플매니저로 만나기 전부터 단감초 씨랑은 인연이 좀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먼저 사귀자고 쫓아다녔습니다.”

“네? 그게… 그러면 맞선을 보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윤 팀장이 놀란 반 의심 반으로 그에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어머님이 워낙 고집이 세셔서 일단 만나보기는 했지만, 그분들과 저는 인연이 아닌 것 같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 덕에 제가 좋아하는 단감초 씨를 자주 볼 수 있었으니 굳이 안 볼 이유가 없었죠.”

“아… 이게 무슨 일인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호호!”

마 대표는 준후의 말을 들으면서도 현재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세 번째 맞선 상대로 나온 고유라 씨는 제가 개인적으로 꼭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 여러 번 당부했던 사항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해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솔직히 굉장히 기분 나쁩니다.”

준후는 당황한 감초를 좀 더 붙들어 놓고 싶어서 여전히 잡은 손은 놓지 않고 있었다. 그의 손안에서 안간힘을 쓰며 빠져나가려고 하는 그녀의 노력은 가상했으나 그는 아직 놓아 줄 생각이 없었다.

“그 건은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반드시 확인해서 보완조치 하겠습니다.”

마 대표는 준후가 다소 무서운 말투로 불만 사항을 전하자 당황해서 얼른 사과부터 했다.

“괜찮습니다. 대신, 게시판에 올라온 익명의 글은 지워주시고, 안내문 하나 올려주세요.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고요. 곧 회사를 통해서 정식 기사 나올 겁니다. 그때까지만이라도 이 사람 힘들지 않게 지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말을 마치면서 감초와 눈이 마주친 그는 잠깐이었지만 미소를 지었고, 감초는 그의 그런 눈을 바라보며 이유 모를 따뜻함에 그저 가슴이 뭉클했다.

“그럼 전 두 분만 믿고, 이 사람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어차피 오늘 회사에서 편히 일하기도 힘들 것 같은데, 허락해 주시는 거로 알겠습니다.”

“어… 그래요. 여기는 걱정하지 마시고, 그렇게 하세요.”

마 대표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준후에게 대답했다.

“단 대리! 나중에 연락해줘. 여기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말고….”

윤 팀장도 옆에서 한마디 보탰다.

“대표님, 팀장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나중에 다시 잘 설명해 드릴게요.”

감초는 지금이 상황이 너무나 어색하고, 정신없어 일단은 빠르게 상황을 마무리하고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럼, 이만 가자!”

감초는 그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잡힌 손 그대로 끌려나가듯 그의 빠른 걸음을 쫓아 나갔다.

준후와 감초가 그렇게 대표실에서 사라지자 남은 마 대표와 윤 팀장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대표님! 이게 도대체 어떻게….”

“그러게요,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네요. 후우! 일단 게시판 글부터 처리해야겠네요. 조금 전 들은 얘기는 우리 둘 다 정확한 상황을 알게 될 때까지는 비밀로 하죠. 윤 팀장도 정신없을 텐데 내려가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온 윤 팀장도 조금 전 자신이 보고 들은 두 사람의 이야기에 당황하고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

감초를 데리고 나온 준후는 곧장 VIP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안에 오롯이 둘만 있는 걸 인지한 감초가 그제야 준후에게 말했다.

“오빠! 저 이 손 좀 이제 놔 주시면 안 돼요? 아파요.”

“어, 미안해. 아까 네가 너무 떨고 있는 것 같아서 살짝 잡아준다는 게 나도 모르게 그만. 괜찮아?”

그제야 잡은 손에 힘을 뺀 준후가 미안함에 그녀의 손을 살폈다.

“괜찮아요. 그리고 고마워요. 오빠가 잡아 준 손 때문에 잘 버틸 수 있었어요.”

“나 때문에 너한테 이런 곤란한 일이 생기게 돼서 미안하다. 아마 그 글도 분명 고유라 작품일 거야. 후우!”

준후는 무심하게 내뱉었지만, 감초는 그가 힘들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오빠는 괜찮아요?

“그럼. 내 걱정은 하지 마. 넌 네 걱정만 하면 돼.”

“아니에요. 이제부턴 우린 한 배를 탄 거니까 서로 힘들면 의지하고 위로해 줘야죠. 오빠도 힘들면, 저한테 기대세요.”

감초는 그에게 말을 전하고, 조금 전 자신의 손을 잡아 준 그의 손을 다시 꼭 잡고 토닥여 주기 시작했다.

그가 자신의 손을 잡아준 것처럼 그녀도 그에게 이 따뜻함을 전해주고 싶었다.

작고 여린 그녀의 두 손이 준후의 한 손을 고이 감싸 쥐여주자 준후는 조금 전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띵-

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고,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두 사람은 그렇게 손을 마주 잡은 채 서 있었고, 엘리베이터 문밖에 두 사람을 바라보는 세련된 옷차림의 중년 여성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준후와 감초를 쳐다보고 있는 주희의 독기어린 눈빛과 마주친 두 사람은 내리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감초는 놀라 잡고 있던 준후의 손을 슬며시 놓고, 앞에 있는 주희를 향해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했다.

“여사님! 안녕하셨어요?”

“어머니!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이 시간에 네가 여긴 어쩐 일이니?”

주희는 감초의 인사는 받지도 않고 준후에게 되려 되물었다.

갑자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고 하자 준후가 열림 버튼을 서둘러 누르고 감초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내렸다.

둘의 그 모습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을 때 누군가 주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정 여사! 거기서 뭐 하고 있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감싼 다른 중년의 여성이 주희를 향해 다급히 말을 건넸다.

“아니, 차 여사!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예요?”

고개를 돌려 그녀를 확인한 주희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아휴… 내가 여기 안 오게 생겼어요? 오늘 아침에 너무나 황당한 소문을 들어서 직접 확인하려고… 어, 강준후 씨가 여긴 어떻게?”

얼마 전 준후와 두 번째 맞선을 본 유사라의 엄마이자 한남건설 유재현 사장의 아내인 차윤희였다.

분명 사라에게 듣기론 준후와 좋은 인연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양쪽 집안에서 핑크빛 분위기가 조금씩 올라오는 중이었는데, 이렇게 찬물을 끼얹는 소문이 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해 소식을 듣자마자 열이 받아서 확인하러 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당사자인 강준후와 그의 모친을 만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어, 준후야, 인사드려. 너 얼마 전에 선본 한남건설 유사라 씨 어머니셔.”

이 상황이 무척이나 어색하고 불편했던 주희가 먼저 선수를 쳐서 준후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강준후입니다.”

준후는 아주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고 감초를 쳐다봤다. 안절부절못하는 그녀가 안쓰러워 그는 이 상황을 빨리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반가워요. 준후 씨! 실물이 훨씬 더 잘 생겼네. 조만간 우리 사라랑 자리 한번 다시 가져요. 호호!”

윤희는 준후의 훤칠한 모습을 보자 사윗감으로 더 욕심이 났다. 어떻게든 사라와 꼭 결혼을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옆에 계신 여자분은 누구?”

준후를 보느라 미쳐 신경 쓰지 못한 감초의 얼굴이 윤희의 눈에 들어왔다.

“제가 오늘은 좀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분 다 회사에 일이 있어 오신 것 같으니 어서 올라가 보시죠. 어머니는 제가 따로 연락 드릴 테니, 지금은 그냥 아무 말도 말아 주세요.”

“준후 너… 후우! 일단 알았으니까 오늘 중으로 꼭 전화해라.”

주희는 감초를 만나 따져 물을 생각으로 온 거였는데, 준후가 저렇게 그녀를 감싸고 있는 데다 옆에 있는 윤희 때문에 더는 말을 못 하고 일단은 후퇴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두 사람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옆에 있던 감초도 엉겁결에 같이 인사를 건넨 후 준후를 따라 주차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