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다음 주까지 리포트 제출하는 것 잊지 말도록!”' “아, 교수니 임!”'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교수는 여대생들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의실 문을 열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러자 강의실 여기저기서 방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험악한 불평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 교수에게만큼은 그녀들의 주특기이자 무기인 애교와 눈물도 통하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야, 진짜 이 교수님 너무 하시지 않냐? 다음 주가 기말고사 기간인데 시험도 보면서 리포트까지 내라니 말이야.”' “맞아. 말이 리포트지 그게 어디 리포트냐, 논문이지. 취업 앞둔 4학년들한테 이런 시련을 주시다니 정말 너무하셔.”' 강의실을 나와 학교 식당으로 향하는 시은의 친구들이 한마디씩 불평을 늘어놓았다.' “아, 이 미모에도 넘어가지 않으니. 혹시 이 교수님…….”' 갑자기 시은이 과장되게 긴 생머리를 쓸어 넘기며 조심스럽게 말꼬리를 흐리자, 호기심 많은 영옥이 무슨 큰 비밀이라도 듣는 것처럼 귀를 쫑긋 세웠다.' “이 교수님이 뭐?”' “혹시 이 교수님이 말이야. 그, 그 우리 같은 아리따운 아가씨들보다 혹시 구릿빛 피부에 탄탄한 가슴 근육과 허벅지를 가진, 그런 청년들을 좋아하시는 게 아닐까?”' “야!”' 영옥을 비롯한 시은의 친구들이 합창이라도 하듯이 시은을 향해 소리를 빽 질렀다.' “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 하냐? 그 고루하고 보수적인 이 교수님이 동성애자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차라리 우리 학교에 남학생이 다니는 게 더 빠르겠다.”' “하여간 정시은. 엉뚱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아주 소설을 써서 영화를 한 편 찍지 그러냐. 이름 하여 노교수의 로망!”' “아니, 그럼 대체 왜 나 같은 미인에게 그런 가혹한 형벌을 내리시는 거냐고.”' “야, 아서라, 아서. 네가 좀 더 예뻤다간 우리 졸업도 못하겠다.”' 시은의 친구들이 못 말리겠다는 듯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사실 시은은 스스로를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못난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다만 요즘 졸업과 취업 걱정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위해 썰렁한 웃음이라도 선사하고 싶은 마음에서 스스로도 부끄러운 연기를 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시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에잇. 또 그 인간이 생각나 버렸잖아. 내 자신감의 원천, 강태준!’' 시은은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야, 너 갑자기 주먹을 왜 그렇게 쥐냐? 정말 영화 찍게?”' “아니야. 꿈에도 보기 싫은 인간이 떠올라서 말이야.”' 시은이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흔들자, 친구들이 알겠다는 얼굴로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 왕 싸가지, 도련님 말하는 거지?”' “으. 나 생각하기도 싫으니까 말하지 말아 주라.”' 시은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태준의 얼굴을 지워버리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유독 태준만 시은을 ‘못난이’라고 부르며 지독하게도 괴롭혔었다. 아니 그것은 괴롭힘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시은의 가슴에 시퍼런 멍 자국을 남기게 한 기억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태준에게 그런 말을 습관처럼 들은 시은이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물론 항상 곁에서 시은을 지켜 봐 준 기준 덕분에 지금의 쾌활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지낼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