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캐한 담배연기와 대박에 대한 욕구로 술렁이는 도박장 한 가운데 사각의 체스보드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앉아 있었다. 백색 기물을 잡은 마흔 중반의 남자는 무료한 얼굴로 상대편이 다음 수를 놓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남자의 자신만만한 눈빛에는 상대방을 얕보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지금은 비록 퇴물소리를 듣고 있긴 하지만 그는 도박장에서 굴러먹은 지 어언 10년이 넘은, 일명 선수인 반면 맞은편에 앉아 골똘히 다음 수를 계산하고 있는 여자는 이 도박장에서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한 지 겨우 6개월 남짓한 애송이 중에 애송이였다. 어쩌다 천운이 따라 거액의 판돈이 걸린 게임까지 올라온 듯한데 지금까지의 게임 진행으로 봐서는 그의 승리가 확실했다. 게임 중 가끔 허를 찌르는 여자의 수에 몇 번 간담이 서늘해지긴 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능숙하게 위기를 벗어났고 그 결과 자신이 주도권을 쥔 채 느긋하게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이번 게임에서 이기게만 된다면 너저분하게 깔려 있는 빚도 청산할 수 있을 테고,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딸에게 으스대며 그럴싸한 선물도 사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게임이 끝난 건 아니지만 그는 게임을 이긴 후 받게 될 막대한 수당에 대한 생각으로 지나치게 흥분해 있었다.'“것 봐, 내가 백이 이길 거라고 했잖아.” '기윤의 원망 섞인 푸념을 듣던 태서는 느긋하게 대꾸했다. '“글쎄……. 아직 게임이 끝난 건 아니니 좀 더 지켜보자고.”'“아무리 봐도 백이 유리해. 그냥 내 소신대로 배팅하는 건데 괜히 네 말 듣고 여자한테 걸었나 보다.”'태서는 툴툴거리는 기윤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는 여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신중하게 흑 나이트를 옮긴 여자가 피곤한 듯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체스보드를 환하게 비추고 있는 조명 탓에 긴 속눈썹이 여자의 눈 밑에 흐리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태서가 여자가 승리를 장담하는 건 게임에 임하는 여자의 태도 때문이었다. 수세에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어마어마한 거액이 걸린 판에서 저렇게 느긋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게임을 아예 포기했거나 그도 아니면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어서다. 그가 보기에 여자는 이 게임을 자신의 의도대로 교묘하게 조종하고 있었다. 적당히 수세에 몰려 상대편이 방심하게 만들어 놓고 그걸 기회 삼아 역공을 펼치는 것, 바로 여자가 쓰고 있는 지능적인 전술이었다.'상대 남자가 다음 수를 놓기 직전 여자가 무언가에 이끌리듯 태서가 서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체스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선수는 경기 중에 웬만해선 다른 곳에 시선을 주지 않는 편인데 여자는 그가 뚫어지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처럼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동양인치고는 상당히 윤곽이 뚜렷한 얼굴이다. 깊은 눈매와 곧은 콧날, 그리고 단단하게 맞물린 입술이 언뜻 보면 혼혈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태서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매달고 가볍게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다른 뜻은 없었다. 부디 이 게임에서 이겨 자신을 괴롭히게 될 기윤의 넋두리를 사전에 막아 달라는 의도였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