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다섯 살이었던 것 같다. 재원의 기억 속엔 시린 한기 속에서도 제법 똘똘한 눈을 하고 제 오빠의 팽이를 들고 있던 여자아이, 연수가 있다. 코를 훌쩍거리면서 제 주위로 모여든 동네 아이들 가운데서 연수는 왕이라도 된 듯 팽이를 쥐곤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그거 뭐야?’'‘팽이. 너 이거 없어?’'그 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가진 건 재원, 본인이었다. 연수가 손에 쥔 새로운 디자인의 팽이가 아니라 팽이를 다루는 연수에게 관심이 있었던 거다.'‘자 봐,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는 거야. 쉽지? 해볼래?’'‘그래!’'나도 하겠다며 줄을 지어 달려드는 아이들을 제치고 연수는 재원에게 가장 먼저 팽이를 쥐어줬다. 장갑을 낀 작은 연수의 손이 처음으로 재원에게로 닿았다.''여덟 살. 딱 설날이 지나고 나서였다. 재원의 부모님께서 장에서 사 온 새로운 스케치북이며, 공책을 한참 신나게 연수가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이것 봐, 나 글씨 참 잘 쓰지?’'‘응, 잘 쓴다.’'그렇게 제 스케치북위로 쓴 삐뚤삐뚤한 글씨를 한껏 선보이다가 탁자 위에 있는 색연필을 가리키는 연수다.'‘어? 너 색연필 새로 샀어?’'‘학교 들어간다고 선물로 삼촌이 사줬어. 그려 볼래?’'‘응! 응!’'고작 다섯 색 밖에 없는 색연필이 새것이란 이유로 받을 때 설렜다. 아낀다고 한 번도 써 보지 못했던 색연필들을 연수가 써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재원은 단 번에 연수에게 내밀었다. 재원의 스케치북은 그때부터 색색깔로 엉망이 되어 갔다.''열 살. 땅이 얼어서 넘어지기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즐거운 계절이었다, 겨울은. 호숫가가 추운 겨울의 온도를 못 이겨 꽝꽝 얼었기 때문이다. 미끌미끌, 연수는 그 느낌이 좋아 얼음 위로 발을 디디자 재원이 조심하라며 얼음을 가리킨다. '‘조심해, 살얼음이야.’'‘이렇게 두꺼운 살얼음이 어딨어?’'그런데도 이 미끄러운 느낌은 중독성이 강해 쉽게 나갈 수가 없다. 재원에게 너도 오라며 손을 내밀다가 그만 얕은 얼음 판위로 연수의 발이 헛디뎌진다.'‘앗, 차거!’'‘거봐, 살얼음이라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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