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안드레아는 레드 마피아였다. 동양적인 이목구비를 가진 그의 머리칼은 러시아 특유의 눈빛을 닮은 은발이었고 입술을 피부색에 대조되어 붉은 편이었다. 그의 주변은 190센티가 넘는 장정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언뜻 왜소해 보일 수 있는 체격이었으나 은성은 그가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한번이라도 본 인간이라면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보다 유리 안드레아를 무서워할 것이라 자신할 수 있다. '“입에 맞아?”'“네.”'오늘 하루의 목표가 강은성의 위장을 늘려놓기인 인간이 말을 건다. 내가 많이 먹긴 해도 1시간 간격으로 브레드와 스테이크와 홍차를 먹을 수는 없는 것이라고, 아무리 조리 있게 설명해 봐도 그에게는 먹히질 않았다. 그리고 오늘 하루 겪은 신종 고문으로 위의 부피가 1.5배는 늘어난 것 같은 그녀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은성은 그가 눈치 채지 못하게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그보다 세 살이나 많았지만 그래도 그의 앞에 서면 깍듯한 존칭을 쓰게 된다. 언젠가 한번, 그녀가 사무실을 정리하고 유리의 일을 돕기 위해 낸 사직서가 처리되지 않아 두통에 시달리던 때 유리 안드레아는 한밤중에 그 사무실에 불을 질렀다. 자고 있는 사람을 불러내기에 젠장 젠장 거리면서 나와 봤더니 12월 눈과 함께 화려한 불구경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소리를 지르고 소방차가 난리 부르는 와중에 유리가 그녀에게 딱 한마디를 했다. 내일부터 출근해. 그리고 그때 이후로 은성은 단 한 번도 그에게 말을 놓아 본 적이 없었다.'“마샤랑 할 말 있다고 해서 왔는데 왜 그렇게 조용해?”'너 때문에 그래요. 차마 하고 싶은 말은 못하고 조커처럼 웃어 보이자 유리의 표정이 또다시 어두워진다. 넌 내가 웃어도 싫고 울어도 싫고. 어쩔까. 이 얼굴 근육을 아예 굳혀 버리도록 보톡스 삼백 개를 한방에 맞아 보이는 기행을 펼쳐줄까?'“은성 씨, 나랑 할 말 있어요?”'“아무것도 아니에요.”'“그래요? 난 또, 저번에 그 얘기인 줄 알고.”'쨍그랑. 커트러리가 접시 위로 떨어지는 소리에 유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여태껏 갈고 닦은 연기력으로 그의 의문을 가볍게 씹어 넘긴 은성이 빙그레 웃으며 마샤에게 말했다.'“맞다. 내가 그걸 깜박했네요. 지금 잠깐 시간 되요, 마샤?”'“나야 괜찮지만…….”'함축된 말속에 우리 보스를 내버려 두고 가면 당신은 앞으로 30분 간격으로 돈가스를 먹게 될지도 모른다, 는 눈빛의 마샤를 보던 은성이 평상시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변죽으로 그에게 애교를 부렸다.'“여자들끼리 얘기에요. 부끄럽게 안 할 거죠, 유리?”'그리고 괴력을 발휘해 마샤를 끌고 사라지는 뒷모습을 멍청히 바라보던 유리가 피식, 하고 웃었다. 여태껏 얼마 먹지도 않은 스테이크를 한쪽으로 밀어 버리고 언제나처럼 총총총, 하는 발걸음을 듣는 그의 입가가 부드럽게 풀렸다.''복도를 걷는 동안 최전방에 나가는 사람들처럼 살벌한 얼굴로 방이란 방을 죄다 뒤진 은성이 으슥하고 조용한, 말 그대로 범죄를 꾸미기 좋은 방에 이르러 마샤를 밀어 넣었다. 통통한 러시아 여성이 기쁜 낯으로 은성에게 말을 건다.'“은성 씨, 드디어 관심이 생긴 거예요?”'당신은 참 좋은 여자야, 마샤. 근데 제발. 제발제발제발제발 고놈의 입 좀 조심했으면 좋겠어. 발을 동동 구르던 은성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마샤에게 말했다.'“내가 관심 없다고 했잖아요! 앞으로 입도 뻥끗하지 말라고!”'“왜요? 내가 자부한다니까?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아, 좋은 사람이고 나발이고 난 싫다고요!”'우락부락한 얼굴로 쿵쾅거리는 은성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던 마샤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하지만 난 이해가 안 되는 걸? 은성 씨 이제 미스잖아? 그런데 왜 남자 소개해 준다는 걸 그렇게 싫어해?”'그 순간, 은성은 상하좌우 모서리까지 단 2초 만에 스캔을 끝냈다. 혹시나 감시카메라가 있진 않을까. 여기어디 도청기가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의 목숨과 직결된 도구들이 없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은성이 마샤의 멱살을 부여잡고 짤짤거리며 흔들었다.'“나 남편 있다니까!”'“에이, 나한테 다 말했잖아요. 헤어졌다고. 그리고 전 남편은 이제 꼴도 보기 싫다며?”'뻐끔뻐끔. 곧 호흡 곤란이 올 것 같은 표정의 은성이 다시금 주변을 탐색했다. 그래, 여긴 완전범죄를 이루기 아주 좋은, 최적의 장소야. 내가 이대로 이 여자를 아작 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D컵 가슴을 무기삼아 휘두르는 러시아 여성을 이기기에 강은성은 체급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 동양인이었다. 한숨을 거듭 내쉰 은성이 마샤에게 아주 애원을 하며 말했다. 내가 일주일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 여자와 술 따위 마시지 않을 텐데. '“나 남편 없는 거 딴 사람들이 알면 뭐라 그러겠어요? 이혼녀인 거 티내기도 싫고, 딴 남자들도 싫어! 내가 싫다는데 마샤가 자꾸 왜 그래!”'“아니, 난, 너무 아까워서 그러지.”'“하나도 안 아까워도 돼요! 진짜로! 진심으로! 그러니까 제발 나 좀 봐줘!”'반말과 존댓말을 섞어가며 애원하는 은성을 안됐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마샤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알았어요, 알았어. 당사자가 그렇게 싫다는 데 내가 어떻게 못하지. 대신에 혹시라도 누구 생기면 바로 말해 줘야 되요?”'차에 붙여 놓는 스프링 인형처럼 목을 끄덕인 은성이 기력이 전부 빠진 몸을 이끌고 방문 밖으로 나왔다. 진짜 이놈의 저택은 세렝게티가 따로 없다. 정원에 부비트랩이 있어야만 정글인가? 여긴 사방에 깔린 게 맹수야, 맹수. 늑대가 따로 없는 유리 안드레아에 독사 같은 미하일, 그리고 얼룩말처럼 흙먼지를 일으키고 다니는 마샤까지 생각하니 두개골이 이만 개로 뽀개질 것만 같다. 내가 진짜 어쩌자고 레드 마피아 집안과 얽혀서는. 우울하게 한 발짝 씩 걷던 은성은 맞은편에서 모델처럼 걸어오는 유리를 보고 눈을 깜박였다. 광란의 파티를 겪고 났더니 이제 저 인간을 봐도 멀쩡하구나.'“이야기는 끝났어?”'“네, 대충.”'“그럼 가지.”'“어딜요?”'“식사 아직 덜 끝났잖아.”'내가 소냐? 내 위장이 네 개인 줄 알아? 소라도 이렇게는 못 먹어. 차라리 농약을 줘라. 그거 먹고 죽어 버리게. 눈으로 말하는 은성의 표정을 미처 읽지 못한 유리가 그 조각 같은 얼굴을 살짝, 기울인다. 그녀가 그의 몸 중에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붉은 입술과 흩어지는 은발이 아름답다. 이렇게 예쁜데, 도대체 왜.'“가자. 디저트가 아직 남았잖아.”'왜 너는 마피아인 것이냐. 응? 체념에 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은성은 갑작스레 다가오는 체온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느 덧 그녀와 눈을 맞춘 유리가 달큰한 목소리로 말한다.'“강은성, 당신은 내가 무서워?”'뭐라고 대답해야, 이 상황에서 총알을 피하고 나이프를 피하고 수류탄을 피할 수 있는 걸까.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찾아오는 고난에 은성의 머릿속은 난장판이었다. 그래도 아직 죽기는 싫어. 절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은성이 억지로 웃으며 걸어간다. 그 뒤를 조용히 따르는 유리의 얼굴에, 얼핏, 냉소가 지나간다.'''*****'''미하일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고 잠시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시무룩한 표정의 마샤가 자신이 있는 것도 모른 채 그의 앞을 스윽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튼실한 몸으로 복도를 덩실덩실 잘도 걷던 그녀가 갑자기 이번엔 벽을 짚고 후, 하고 한숨을 쉰다.'저게 요즘 또 연애한다고 설치고 다니나.'어지간하면 고용인의 연애사까지 신경 쓰고 싶지는 않은데 마샤의 연애사가 타격을 받으면 이 저택의 모든 사람들의 브런치와 디너가 위협을 받는다. 그 꼴은 못 보지. 하루 세끼 잘 챙겨먹는 것을 기쁨이자 축복이라 생각하는 미하일이 성큼성큼 마샤에게 다가갔다.'“뭔데 한숨이야?”'“어? 미하일, 왜 거기 있어요?”'“내가 먼저 왔거든? 왜 그러냐니까.”'“에휴, 자꾸 아까워서 그래요.”'“뭐가.”'“말할 수 없어요.”'그 말에 미하일이 놀라서 혀를 씹었다. 이 세상에서 공기 다음으로 가벼운 것이 마샤의 입이라는 사실은 이 집안 모든 사람들이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런데 저 앵무새 입에서 ‘말할 수 없어요.’ 같은 조신한 말이 튀어나오다니. 본능적으로 이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촉이 온다.'“너한테도 비밀이 있어?”'“물론 내 비밀은 아니죠.”'그럼 그렇지. 잠자코 기다리면 술술술 다 불어 버리는 마샤에게 비밀 따위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럼 대체 누구 비밀을 지켜준다고 저 생쇼를 하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자기 비밀도 해맑게 공표하는 여자가 누구랑 짝짜꿍을 하기에 저 모양이야?'“나한테만 말해 봐.”'“절대 안 돼요!”'“답답하지 않아?”'“답답……! 하지만 참을 수 있어요!”'“나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해.”'“거짓말 말아요! 저번에 코냑 사건 때도 얘기 안 한데서 알려줬다가 유리가 술 창고 다 날려 버렸던 거 기억 안 나요?”''그 말에 미하일도 별달리 할 말이 없었는지 쩝, 하고 뒷머리를 긁는다. 어느새 세모꼴로 변한 눈을 한 마샤가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발을 구른다. 땅이 위협적으로 울린다. 주방에서 나오질 않더니 저 여자가 점점 킹콩이 되어 가는군. 미하일이 슬쩍 고개를 들자 아주 힘차게 메롱을 한 마샤가 반대편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래서 그 비밀이 뭐냐고요.”'어쩐지 뒤가 많이 찜찜한 기분이 드는, 어느 오후였다.'''***''은성은 빠른 속도로 숫자가 빽빽하게 쓰인 표를 훑고 두 대나 연결해 놓은 컴퓨터를 뒤졌다. 그녀는 일을 할 때만큼은 누구의 방해도 받기 싫어하는 워커홀릭이었고 돈 계산에 있어서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리만큼 집요했다. 꼬박 세 시간 동안 움직이지도 않고 일한 은성이 뻐근하게 저려오는 몸을 한번 일으켜 발코니 쪽으로 걸어갔다. 으으으, 하고 기지개를 켜는 동안 도합 200개는 되는 것 같은 뼈마디에서 우두둑 소리가 미친 듯이 울린다. 내가 이러다 늙지. ''앞으로 다섯 시간 후에는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해야 하는 데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주식을 다루는 그녀에겐 천 년보다 더 까마득한 날짜다. 초단위로 바뀌는 주식시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간 돈이 날아가고 돈이 날아가면 그녀의 목도 날아간다. 유리 안드레아는 돈을 무진장 밝히는 마피아였으니까. ''선 베드가 놓인 발코니에 들어선 은성이 저무는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이래서 플로리다가 좋다니까. 나른하잖아? 여기가 비록 사람을 찐 마늘처럼 잘게 다지는 마피아의 집구석이라도 풍경 하나는 기가 막히니까. 그래, 내 평생 이런 데를 어떻게 와보겠어. 착잡한 입맛을 애써 다지며 선 베드에 드러눕는 은성의 얼굴은 어찌 보면 서른이 넘은 성숙한 여자가 보이고 한편으로는 아직 풋풋한 아가씨로도 보였다. 그것은 실제로 그녀의 삶이 그러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잠시 망상에 빠져 있느라 방 안에 누가 들어온 줄도 몰랐던 은성이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일어나던 찰나, 누군가 강하게 어깨를 내리누르는 바람에 파묻히듯 선 베드에 누웠다. 아, 내, 꼬리뼈.'“일 많이 했잖아, 그만 쉬어.”'아침보다는 덜 까칠한 유리 안드레아가 그녀의 곁에 비스듬히 서며 말했다. 그는 기분이 한없이 꼬여 있을 땐 독설을 작렬하는 인종이었다. 그의 기분이 좋다는 걸 깨달은 은성은 그나마 한시름 놓으며 대답했다.'“쉬는 것도 많이 쉬었어요.”'“일주일 동안 힘들 텐데 그때 가서 피곤해서 일 못하겠다는 헛소리하지 말고 지금 쉬어.”'너는 어쩜 그렇게 주기적으로 내 염장을 지르니. 쉬다가 경기 들릴 것 같은 말을 들은 은성이 앓느니 죽지, 라는 표정으로 웃었다. 하도 웃으며 살았더니 이제는 무표정 할 때가 가장 즐거운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그녀가 결국 고집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노트북 앞으로 걸어가는 것을 본 유리는 대놓고 미간을 구겼다. 뭐뭐뭐! 내가 일 좀 하겠다는데! 일 해서 니 재산 좀 불려 주고 덧붙여 내 수명도 좀 늘리겠다는 데 뭐! 속으로는 별별 말을 다 하고 있지만 이번에도 그녀의 살고자 하는 욕구가 그 위에 웃음을 덧입힌다.'“저 워커홀릭인 거 아시잖아요? 일 할 때가 편해요.”'한숨을 내쉬던 유리가 어쩐지 조금 화난 기색을 하고 방을 나갔다. 그 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보던 은성이 책상 위에 엎어져 얼굴을 파묻었다. 아, 정말. 나한텐 휴가가 필요해.''***''일본으로 가는 일정표를 들여다보며 전용기에 탈 인원을 체크한 미하일이 ‘그럼 내가 제일 먼저 타 볼까나?’ 하는 기쁨을 안고 활주로에 발을 딛었을 때, 유리 안드레아는 이미 그 전용기의 안락한 침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미하일은 열려 있는 전용기 문짝을 보고 조심스레 권총을 뽑아들려 했으나 안에서 서릿발을 날려가며 책장을 넘기는 유리의 모습에 방아쇠를 당길 뻔한 손을 간신히 내렸다. 와, 책에서 칼 튀어나올 기세네. 또 뭐가 꼬인 거람.'“아침엔 마샤가 난리더니 이번엔 너냐?”'“무슨 헛소리야.”'“그런 게 있어. 하여간 넌 또 왜 그래?”'그 말에 무심하게 책장만 넘기던 (도대체가 읽고 있긴 한 건지 알 수 없는 속도로) 유리가 미하일에게 건너가듯 묻는다.'“강은성.”'“왜 또.”'“조사 좀 다시 해 와.”'“아, 고만 좀 해! 무슨 조사를 한 달에 한 번씩 하냐! 은성 씨가 그렇게 못 미더워?”'“입 다물고 말로 할 때 조사 다시 해 와. 한국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누굴 만났고 어떤 새끼랑 잤는지까지 하나도 빠짐없이.”'“야, 너 그건 사생활 침해…….”'베개 옆에서 나이프를 꺼내 휙휙 돌리는 유리의 사이코 같은 행동에 미하일이 이를 악물었다. 저 자식은 하여간 수틀리면 살인귀가 된다니까. '“할 때 하더라도 이유나 알고 하자.”'“그거 들으면 조사 내용이 내 맘에 들게 바뀌나?”'“그냥 있는 사실 들고 오는 거지 그걸 조작하리?”'그 말에 유리가 빙빙 돌리던 나이프를 휙, 던진다. 구두 코앞에 박힌 나이프의 선연한 광택에 차마 비명도 못 지른 미하일이 곧이어 배신감에 찬 목소리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그래! 다 잘라라, 다 잘라! 손가락도 자르고 발가락도 자르고 머리도 자르고 니 맘대로 해! 왜? 이놈의 입도 자르시지? 내가 알아오는 내용 못 믿겠으면 다른 놈 시켜! 나도 매달 한 번씩 한국 들어가기 싫으니까!”'흥, 별 말 같지도 않은 투정을 바로 무시해 버린 유리가 책을 덮고 걸어 나가려는 것을 잡아챈 미하일이 속이 터져 죽겠다는 표정으로 애원을 한다.'“대체 니가 듣고 싶은 소식이 뭔데? 뭘 알아야 나도 서류 조작을 하든 말든 할 거 아냐!”'나도 귀찮아 죽겠으니 이쯤에서 쇼부를 보자, 라는 얼굴의 미하일을 1초간 말없이 바라보던 유리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강은성.”'“이거 은성 씨 얘기인 거 모르는 사람도 있냐?”'“인간관계 깨끗하게 비워 와, 그럼.”'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눈만 끔벅거리며 멍청히 서 있는 미하일에게 유리가 다시 한 번 정중하고 파괴적인 글자를 읊었다.'“내가 조만간 이름 쓸 것 같으니까, 그 자리 깨끗하게 비워 오라고.”'곧 비행기가 출발할 시간이었다. 어디선가 먹구름이 몰려오는 착각을 느끼며 미하일이 턱이 빠질 것처럼 입을 벌렸다. 비명이 나올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