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임신한 남자

연회장 화재는 벌써 마무리 되어 보수공사가 시작되었다. 난 그날 이후로 며칠 동안 끙끙 앓았다. 한꺼번에 많은 진실을 알아버린 충격과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의욕과 목표가 사라졌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입만은 주구장창 열심히 제 임무에 충실했다. 이 상황에서도 입맛이 살아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것도 주는 대로,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먹고 또 먹어치웠다. 내 몸에 또 다른 신이 들어앉은 것 같았다. 걸신이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음식에 집착 할 수 있을까.

왕성해진 식욕에 날 대하던 고 집사와 박해량의 행동에도 변화가 생겼다. 나를 왕처럼 떠 받든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쉬지 않고 먹는 내 비위를 알아서들 맞췄다. 나한테 아쉬운 부탁 할 일도 없는 사람들인데 평소답지 않게 과한 관심과 뒷수발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음식은 또 어떻고. 최고급 음식으로 두 시간 간격으로 룸서비스로 서재까지 올려다 주었다. 희귀하고 괴이하게 생긴 음식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미끄덩하게 생긴 건 뭐야? 개구리 알인가?”

“캐비아에 플랑크톤과 박테리아를 섞어서 만든 샐러드입니다.”

“아무리 고급음식이래도 눈으로 반을 먹는 건데. 이건 아냐. 저리 치워.”

“여보. 이걸 드시면 입덧이 좀 가라앉을 거예요.”

“입덧?”

내가 잘못 들었나? 박해량이 분명 입덧이라고 했다. 헛구역질을 입덧으로 잘못 말한 거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남자인 내게 입덧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았다. 입덧은 임신 중에 느끼는 구역 및 구토로 여자가 아이를 잉태했을 때 흔히 겪는 증상이었다.

“방금 입덧이라고 했어요?”

“누, 누가요?”

“…….”

“아! 헛구역질이라고 한다는 게 말이 헛 나왔나 보네요. 호호호.”

“그렇죠? 난 또 나더러 임신했다고 하는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하하하.”

“그럴 리가요. 호호호”

“불편한 거 없으시도록 오 비서 들여보내겠습니다, 회장님.”

“어? 그래. 고마워, 고 집사.”

평소와 다르게 두 사람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부드러워졌다. 아마도 내가 아프면 안 될 몸이라서 챙기는 것 같았다. 쭉 찢어진 눈 대신 고분고분한 고 집사의 표정도 나쁘지 않았다. 이제야 이 몸이 진짜 최계수로서의 대우를 제대로 받는 것 같았다.

“이상하네. 먹는 만큼 살이 쪄야 하는데 오히려 더 빠진 거 같잖아?”

거울을 보니 핼쑥한 얼굴이 피죽도 못 얻어먹은 사람 같았다. 파티 이후로 충격과 함께 심경의 큰 변화가 온 이유에선지 속이 계속 파토타기를 했고, 어지럼증과 헛구역질 때문에 그간의 영양실조가 이럴 때 표출되는 게 아닌가 싶어 닥치는 대로 먹어댔다. 먹고 싸기만 하는 원초적인 생활을 한지 5일째.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팠다. 음식의 영양분이 팔 다리를 제외하고 배에 집중되는 것이 이상했다. 배만 올챙이처럼 볼록 부풀어 올라 거동조차 힘들었다.

“무슨 큰 병에 걸린 건 아니겠지?”

그렇다고 해도 걱정할 건 없었다. 최고의 의료진이 항상 대기 중이었다. 5일전부터 매일 나의 대소변과 혈액검사는 물론 건강상태를 주치의가 와서 꼼꼼하게 챙겼다. 몸에 필요한 비타민과 영양제도 달고 살았다. 당분간 무리하지 말라는 처방도 함께 말이다.

“회장님, 무조건 쉬셔야합니다.”

“지금도 잘 쉬고 있는데.”

“아무것도 하시지 마세요. 생각하는 것조차도 금물입니다.”

‘역시 갑부는 몸이 재산이야. 이렇게 관리한다면야 900살까지도 살겠는데?’

노크소리와 함께 오로라가 들어왔다. 반가워서 한달음에 달려가 마중하고 싶었지만 들썩이던 엉덩이를 다시 침대에 붙였다.

“몸은 좀 어때?”

“누가 아픈가?”

마음과 달리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정말 괜찮은 거지?”

“괜찮지, 그럼. 이것 봐. 배에 살 찐 거. 이게 다 인격이잖아. 하하!”

그녀는 내 옆으로 다가와 볼록한 나의 배를 응시했다. 불편한 시선에도 나의 입은 저작운동 중이었다.

“밥은 먹었어?”

“…….”

“안 먹었으면 같이 먹을래? 종일 먹어도 왜 이렇게 배가 고픈지. 배에 거지가 들었나 봐.”

내 말을 백번은 받아쳐야 하는데 이상했다. 그녀는 혼자 심각한 표정으로 내가 아니라 나의 배를 보았다. 살찐 배가 민망했다.

“걸신처럼 먹는데도 살은 빠지는 것 같은데 배는 자꾸 나오고. 가스가 찬 거 아닌가 몰라. 며칠 째 볼일을 못 봤거든.”

“장태산.”

그녀는 잊고 있었던 내 이름을 심각하게 불렀다. 그러고 보니 올 때부터 지금껏 저 표정이었다.

“왜 그래, 무섭게. 서, 설마. 놈을 죽일 방법을 찾은 거야?”

“아직 말 못한 게 있어.”

고백 아니면 폭로였다.

“내가 충격 받을 일이 아직 남았냐?”

“최가 황을 찾아간 이유. 이것 때문이었어.”

입 안의 음식물을 삼키던 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가 말한 ‘이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였다. 나는 그녀의 야무진 입술만 뚫어져라 보았다.

“이틀 뒤면 출산이야.”

“누가 임신했대?”

“…….”

“설마 박해량은 아니지?”

“…….”

“난 그 아줌마랑 아무 일도 없었어. 맹세코. 얼떨결에 입 한번 맞춘 게 단데.”

묻지도 않은 관계에 대해서 발설할 필요까진 없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박해량의 임신이 나와는 무관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누가 임신을 했다는 거야?”

“너.”

“그래. 차라리 내가 임신했다고 하면 믿겠다. 이 배를 봐. 푸하하.”

“임신한 거 너라고.”

“그게 사실이라면 충격적이겠지만. 에이. 재미없는 농담이다.”

“내가 농담 할 사람처럼 보여?”

오로라가 그것도 진지하게 농담할 타입은 아니었다. 그래서 덜컥 겁이 났다. 놀란 눈이 부풀어 오른 배를 내려다보았다.

“에이. 설마?”

“최도 그랬을 거야. 너처럼. 그래서 살려고 황을 찾아 갔던 거였어.”

“내, 내가 임신을 했단 말이야? 나 남자인데?”

“지금 넌 그놈의 새끼를 가진 거라고.”

“푸하하. 들은 얘기 중에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였어. 와, 신선했어.”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가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아무 말이나 던진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으니까. 잠깐 상상을 하고 말았다. 온몸의 각질이 곤두서는 끔찍한 상상이었다. 하지만 그 상상은 곧 현실이 되었다.

“생물은 노예에게 자신의 새끼를 가지게 한다고 했어. 새끼는 노예의 정기를 먹고 자라는데 수가 틀리면 노예를 잡아먹는다고. 잡아먹히지 않아도 점점 죽어가겠지만 말이야.”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해?”

“최가. 그도 너처럼 이런 과정을 겪었겠지. 한 두 번이야 운 좋게 넘어갔겠지만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면서까지 생물의 새끼를 낳을 순 없잖아?”

“내가 개불 새끼를 가졌다고?”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하나에서 둘로 늘어났다. 내 안에서 들리는 심장소리가 틀림없었다. 정상적인 내 심박수와 달리 또 다른 심장은 매우 빨리 뛰었다. 난 완전 패닉 상태였다.

“황은 최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단 말이야?”

“아니.”

“없단 말이야?”

“최는 살려고 황을 찾은 게 아니었어. 놈과 그 놈의 새끼와 함께 죽으려고 간 거였어. 그런데 그날 공교롭게도 너 때문에 사고가 난 거야.”

“뭐야? 그날 사고는 진짜 우연이었던 거야?”

“글쎄. 최에겐 우연이었겠지만 황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

누군가에겐 우연이 나에겐 운명이었다. 추측컨대, 황재만은 최의 뱃속에서 꺼낸 생물의 새끼를 내게 마지막 할당량으로 던져 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 했다. 난 황재만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통화대기음이 길어질수록

“당분간 전화 못 받을 거야.”

오로라는 황의 사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인간 잠수 탔거든.”

그는 법에 저촉되는 일만 했다하면 몇 달 씩, 길게는 일 년까지도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탔다. 간혹 살아있다는 안부정도는 알려줬지만 내가 최계수가 된 걸 모를 테고 핸드폰은 경찰이 수거해 갔으니 연락을 할 길이 없었다.

“이틀 뒤 출산이라고 했어? 그렇게나 빨리? 난 마음의 준비도 안 됐는데.”

그녀는 혼란스러움과 초조함에 허둥지둥 대던 날 한심하고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잘 들어. 네 뱃속에 있는 새끼가 위험에 빠지면 자기 보호하기 위해 생물이 네 몸으로 들어 올 거야. 기회는 그때뿐이야. 새끼 때문에 네 몸에서 도망치진 못 할 거야.”

“그때 날 죽이겠다고?”

“네가 아니라 놈을”

“그게 그 말이잖아. 심장이나 머릴 쏴야 죽일 수 있다며?”

사실이라고 해도 믿고 싶지 않았다. 거짓말이라고 해도 믿을 수 없었다. 이야기를 어떻게 꼬아도 결론은 하나였다. 내가 죽는다는 것.

‘내 몸에 개불의 씨가 자라고 있다니.’

입에 회충약이라도 한 트럭 털어 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김영태의 뱃속에서 죽은 생물의 사체가 발견되었어.”

“뭐? 그런 얘길 왜 이제 하는 거야?”

“안 물어 봤잖아.”

“뭘 알아야 물어보든가 말든가 하지. 근데 김영태 시신은 경찰이 수습해 갔을 텐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

“네가 기절한 사이 죽은 최계수, 그러니까 김영태 시신에서 나온 걸 봤으니까.”

“나 말고도 최계수였던 남자들이 다 임신을 해서 개불을 낳았다는 거야?”

오로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임신을 했다는 것도 기함할 일인데 괴물까지 낳는다니. 내가 개불을 낳았다는 소문이 공기처럼 세상을 떠돌 걸 생각하니 숨이 턱하니 막혔다. 죽어서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놀림감이 될 일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최계수는 자신이 낳은 개불을 어마어마한 가격에 상위 1%들에게만 은밀하게 거랠 했어. 돈을 벌 목적도 있었겠지만 진짜 목적은 다른데 있었지.”

“종족 번식 말고 뭐가 더 있어?”

“신은 그 존재를 드러냄으로서 자신이 유일무이하다는 걸 알리는데 있어. 모체의, 신의 생명을 잉태해서 낳은 생물의 새끼들이 그 증거가 되는 셈이지. 그 생물을 가진 자만이 영원불멸의 부와 영생을 얻는다.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에 사람들이 혹한다는 데 문제가 있지. 부와 영생이라면 자신들의 영혼도 악마에게 팔 사람들이야.”

“쳇! 이건 뭐 성모마리아도 아니고. 어이가 없네.”

“너 말하는 거야?”

“나 말고 또 누가 있어? 개불 새끼를 밴 놈이.”

그녀가 피식 웃었다.

“왜 웃어?”

“네 말이 웃겨서.”

“허허.”

“넌 왜 웃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해해.”

“이해한다고? 지금 내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기분 나빴다면 미안.”

“사람 죽여 놓고 기껏 사과하면 다야.”

“아직 죽이진 않았는데.”

죽인다는 말보다 더 소름끼쳤다. 그 예쁜 입술로 죽인다는 얘기를 밥 먹듯 했다. 죽음 앞에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하지만 당연한 죽음 앞에서는 잘 죽을 의무는 필요했다.

“어, 어?”

“왜?”

“금방 발로 찼어.”

“출산이 가까워졌단 얘기야.”

“어떻게 해?”

“그 전에 놈을 죽여야지.”

“날 죽이겠다고?”

“흠! 기회는 단 이틀뿐이야.”

이미 난 생물의 노예가 되었고 놈의 새끼까지 밴 상태에서 더 이상 선택권이 없었다. 이 몸으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사형수가 된 것이다.

“내 삶이 이틀 남았다니.”

“이해해.”

“개뿔. 이해 못 할 거야. 아니 절대 못 해.”

“나쁜 생각은 하지 마. 태교에 안 좋아.”

“야! 너!”

“쉿! 네 생각을 들키지 마. 놈이 들어오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게 돼. 그러니까 조심하란 말이야.”

“그게 말처럼 쉬워?”

“차라리 다른 생각을 해. 전혀 다른 생각을.”

사형수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근데 왜 하필 꼭 나야?”

“재수가”

“재수 없는 놈을 꼭 죽여야겠어? 우리 그냥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면 어때?”

“우리라니?”

“너랑 나 말이야.”

“너 여태껏 내 말 어디로 들었어? 내가 안 죽여도 넌 죽게 된다잖아!”

“아……!”

“널 죽게 내버려 두진 않을 거야.”

하루가 지났다. 밤새 잠들지 못하고 식충이처럼 먹어댔다. 배가 부르다는 느낌을 상실한지 오래고 식욕은 두려움과 비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