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군(破君). '대륙을 이루고 있는 네 개의 나라.'그 넷의 나라에서 섬기는 신은 모두 달랐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율해국에선 해신(海神)을 섬겼고, 을지국(乙地國)에선 지신(地神)을, 사풍국(砂風國)에선 풍신(風神)을, 서화국(西火國)에선 화신(火神)을 섬겼다. 자신들이 섬기는 나라의 신의 두 발과, 두 손이 되는 이가 바로 파군(破君)이었다.'무녀는 신과 파군의 뜻을 인간들에게 전하는 매개체일 뿐이었지만, 파군은 신들의 손과 발이 되어야 했다. '신이 하는 일을 대신하는 이들. '대륙의 나라들에게 신들은 두려움과 숭배해야 될 대상 이외의 것이 되기 힘들었다. '자신들의 힘을 보여주며 재앙을 내리고, 그 재앙을 근원삼아 인간들을 공포로 지배하며 신의 존재를 믿게 만드는 것이 파군(破君)의 소임이었다. 일생을 그들이 모시는 신과 함께 말라죽어야 했다. 인간들에겐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재앙을 내리는 존재로 낙인 찍혀 사람들은 기근과 역병으로 죽어갈 때마다 신 대신 벌을 내린 파군을 원망했다. '어느 누구도 파군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일생을 두려움에 떨며 인간 같지 않게 살아야 되는 그 삶을 대륙의 그 누구도 바라지 않았다. ''이제는 누구의 입에서 입으로도 전해져 내려오지 않았던 태초의 이야기.'신과 인간들을 창조해낸 위대한 창조주는 힘없고 연약한 인간들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 태초에 창조주가 빚어낸 인간은 아름다운 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만들어낸 세상에서 빛을 가진 인간들이 살아가며 그들의 아버지에 대해 소리 높여 칭송했다. 그가 만들어낸 그 어떤 것보다도 인간이 가진 그 빛을 너무도 사랑한 창조주는 자신의 피조물을 지키기 위해 사방신(四方神)을 창조해 냈다. '오로지 인간들을 위해 창조된 네 신. '그들은 바다의 파도에서, 열사의 모래사막에서, 회오리치는 폭풍 속에서, 대지의 한가운데서 태어났다. 신들 또한 창조주의 피조물이었으니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히 지극했다. 하지만 인간들을 위해 태어난 네 신에게 창조주는 마음을 주지 않았다. '연약하고 약한 인간에게 가 있는 창조주의 온 마음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은 불에서 태어난 화신(火神)이었다. 세상의 불로 인간들을 벌하고 그들의 땅을 온통 열화의 지옥으로 변하게 한 그를 보고서야 창조주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여전히 인간들을 지키고 싶었던 창조주는 네 신들에게 제약을 걸었다.'“…… 너희들이 인간을 기만하고 그 힘에 도취된다면 사신의 칼날이 등 뒤에 박히리라.'신들 중 어느 누구도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네 명의 인간을 고르라는 창조주의 말에 신들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누구라도 끌어와 그들의 아버지 앞에 내세웠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름다운 인간들을 어루만지며 창조주는 그들을 사신으로 만들었다.'파군(破君). '모든 것을 파괴하고 깨뜨리는 자.'그 파괴의 칼날이 향하는 곳은 그들의 ‘신’이 있는 곳이었다.'파군을 선택하는 것은 신들 자신.